• 마필관리사 연쇄 자살
    ‘죽음의 경주’ 한국마사회
    “마사회, 정부와 국회 모두가 공범”
        2017년 08월 02일 05:43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 마필관리사인 박경근 씨에 이어 또 한 명의 마필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마사회가 부상경남경마공원 노동조합 등의 요구대로 박 씨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착취구조 개선 등에 나섰다면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기에 마사회와 정부에 비판이 쏟아진다. 노동계는 마사회 경영진 퇴진과 고용노동부의 작업중지 조치, 국회의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등을 촉구하며 강경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고 박경근·이현준 조합원 유가족들 오열 “마필관리사는 노예가 아니다”
    박 조합원 어머니 “내 아들 죽음이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부탁했건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은 박경근 열사의 항거로도 모자라 또 다시 이현준 조합원을 죽음으로 내몰고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죽음의 경주를 계속할 것이냐”며 “공공운수노조는 노동부 책임 촉구, 국회진상규명위원회 설치를 요구하며 향후 강도 높은 투쟁을 통해 한국마사회 착취구조를 끝장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은 오열과 통한으로 가득했다.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은 고 박경근·이현준 조합원 부모들은 “내 자식을 잡아먹은 마사회가 이제 와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한다”며 분노했다.

    이현준 조합원의 아버지 이복근 씨, 어머니 이시남 씨, 박경근 조합원 어머니 주춘옥 씨가 회견에 참석했다. 부당한 구조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들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마이크 앞에 선 이복근 씨는 차마 입을 떼지도 못한 채 소리 내어 울다가 “마필관리사도 사람이다. 노예로 취급하지 말고, 사람답게 보살펴주면 감사하겠다”는 말을 겨우 이어갔다. “마사회가 하는 일은 사람 죽이는 일인가. 우리 현준이가 마지막이 되도록 제발, 제발 신경 써 달라”는 이시남 씨는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두 달 째 아들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주춘옥 씨는 마사회의 착취구조와 아들이 죽고 난 후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마사회의 행태에 강한 분노를 나타냈다.

    주 씨는 “제 아들이 죽은 지 벌써 2달하고 7일이 지났다. 마사회는 여전히 자기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다. 아들이 죽었을 때 내가 ‘내 아들이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얼마나 간곡히 부탁을 했나. 지금까지 마사회가 나 몰라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또 죽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두 달 사이에 3명이 죽었다. 그런데도 책임이 없다고 한다면 마사회가 문을 닫든지, 회장이 물러나야 한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책임이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고 말했다.

    이현준 조합원 죽음에 대한 기자회견(사진=곽노총)

    마사회와 조교사의 반인권적 태도와 횡포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인권유린, 사건 은폐까지”

    박경근, 이현준 조합원 모두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일하는 마필관리사였다. 한 사업장에서 이처럼 2명의 노동자가 자결하는 일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서울 과천과 제주에도 경마공원이 있지만 유독 부산경남에서만 마필관리사 자결 사건이 벌어지는 이유가 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은 ‘마사회→개인마주→조교사→마필관리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고용구조로 이뤄져있다. 개인 마주가 조교사에게 말을 위탁하면 조교사가 개인사업자로서 마필관리사를 개별 고용한다. 마사회는 시설 임대, 경기 진행 등을 책임진다.

    다단계 고용구조는 마필관리사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 인권유린을 불러왔다.

    마필관리사는 최저임금 수준인 기본급 135만원에 경주 성과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 형태로 임금이 책정된다. 경주에서 받은 상금 대부분은 마주가 가져가고 마사회가 일부 또 떼어간다. 조교사와 마필관리사에게 돌아가는 몫은 17% 정도다. 문제는 조교사와 마필관리사의 상금 배분 기준이 집단교섭 등을 통해 정해져 있는 다른 지역 경마공원과 달리, 부산경남경마공원은 상금 배분 비중이 조교사의 자의적 기준에 따라 정해진다는 데에 있다.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만 받고 임금의 상당 부분을 성과급에 의존하는 마필관리사로선 불안정한 임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인력 부족으로 인한 장시간 노동 문제도 심각하다.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하루 종일 말의 상태를 점검해야 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최대 20시간 이상을 일하는 경우도 있다.

    노조는 법적 고용주인 조교사의 폭언과 물리적 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다단계 하도급 노동자인 마필관리사는 가장 중요한 임금과 고용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조교사에게 강하게 항의하지 못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제들은 지난 2004년부터 현재까지 10여 년 동안 지속돼왔다. 국내 1호 마필관리사였던 박경근 조합원은 이러한 이유들로 ‘x 같은 마사회’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일부 언론은 박 조합원이 가정 불화 때문에 자살했다고 보도했다. 박 조합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거부해온 마사회 부산경남본부장은 장례식장에 찾아와 “이번에는 조용히 보내드리자”고 했다고 전해진다. 마사회의 고질적인 착취 구조 등으로 인해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음에도 그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문제를 은폐하고자 한 셈이다. 노동계가 마사회와 부산경남경마공원 경영진 퇴출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이유다.

    노동자 우롱하는 마사회와 조교사 교섭장 나와선
    마필관리사 죽음으로 내몬 현 착취구조 “매우 선진적”

    박 조합원의 사망 이후 교섭장에 나온 마사회와 조교사는 시종일관 노조를 우롱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마사회는 정부에 직접고용을 제외한 노조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겠다고 보고하고, 언론에도 같은 취지의 입장문을 낸 바 있다.

    그러나 정작 교섭장에 들어와선 노조의 모든 요구를 거부했다. 교섭에 나갔던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정작 교섭장에 나온 이들은 인력 충원 문제에 있어선 기존 마필관리사들의 임금삭감이 있을 것이라거나, 마필관리사들이 죽어나가는 현재의 착취구조를 “매우 선진적”이며 “제주와 서울에서도 시행해야 하는 체제”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노조가 요구하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 고용불안 해소 등 모든 요구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지난 7월 30일 마지막 교섭 날까지도 계속됐다.

    마사회는 박경근 조합원이 사망하자 마필관리사들에게 400여만 원의 임금을 지급했다. 10여년 동안 받아온 임금의 2배 이상 액수였다. 박경근 조합원 어머니 주춘옥 씨는 “이렇게 줄 수 있었다면 그동안 중간에서 얼마나 떼어먹었다는 거냐”고 울분을 토했다.

    한대식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 부실장도 이날 통화에서 “말 나올까봐 갑자기 임금을 올려 준 것이다. 노동자들을 우롱하는 이런 기만적인 태도는 실제 교섭에서도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마사회는 이날도 입장문을 내고 “지난 6~7월 실시된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의 결과가 나오는 대로 지적 사안들에 대해서도 신속히 시정조치를 하겠다”며 “사업장 내에서 발생한 일련의 안타까운 사안에 대해 막중한 책임의식을 갖고 유가족의 의견을 적극 수렴함은 물론 조속한 사태 해결과 재발방지대책 수립 및 시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마필관리사의 또 다른 죽음 막으려면
    정부의 즉각적 작업중지 조치, 국회의 진상조상위 설치해야

    노조는 현재로서 가장 시급한 조치는 고용노동부가 마사회에 작업중지 조치를 내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필관리사들은 지금도 저임금, 장시간 노동, 고용불안이라는 기존 체제 속에서 인권유린을 감당하고 있고, 이로 인해 또 다시 누군가가 바뀌지 않는 구조에 절망해 죽음을 선택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한대식 부실장은 “이번에 돌아가신 이현준 조합원은 박경근 열사의 빈소를 지키신 분이다. 몇십년 동안 바뀌지 않는 구조로 인해 동료의 죽음을 다른 동료 마필관리사도 목격했다”며 “즉각적인 작업중지가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인상 한국노총 공공연맹 위원장도 이날 회견에서 “마사회의 80% 이상이 간접고용이고, 마필관리사들이 현재 집단적 우울증상을 보이고 있다”며 “조직적인 인권유린이 그 원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또한 “한 사업장에서 2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일은 지금까지 없었다. 박경근 열사의 죽음으로 재발 방지대책을 시행했다면 이현준 열사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노동부는 마사회를 중대재해사업장으로 분류해 이 시간 이후로 업무중지권을 즉각 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필관리사의 죽음, 국회와 정부는 공범”
    국회 진상조사위, 형사처벌 촉구…민주노총 “즉각 시행 않으면 노정관계 결단”

    이날 회견에선 국회와 정부에 대한 규탄이 쏟아졌다. 마필관리사 문제는 10년 이상 꾸준히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제기됐다. 그럼에도 정부는 그동안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국회도 피해자들이나 노조 앞에선 “문제 해결에 노력하겠다”고 말했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주춘옥 씨는 “국회는 대체 뭐하는 건가 아들이 죽은 지 두 달 동안 ‘협조해보겠다’고 하더니 그래도 아직까지 아무 일도 해결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조상수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국회에, 정부에, 또 언론에게 위원장으로서 호소한다”며 “누가 또 이런 선택을 하게 될지 두렵다. 제발 더 이상 이런 일 발생하지 않도록 범정부적으로 이 문제 해결에 나서 것을 요구한다”며, 마사회 회장 해임과 검찰의 마사회 부산경남본부 수사, 국회 진상조사위 구성을 촉구했다.

    최종진 직무대행도 “다단계 하청 착취구조가 사람까지 죽게 만드는 동안 정부는 대체 뭘 할 것인가.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는 비정규직 공기업 제로 시대는 착취 구조는 방치하는 것인가. 이러려고 촛불 들었나 하는 분노를 감 출 수가 없다”면서 “정부와 국회가 모두 공범”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은 노동부의 마사회 업무중지 조치, 책임자 형사처벌, 국회 진상조사위원회 설치 등 3가지 요구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최 대행은 “민주노총이 요구하는 3가지를 시행하지 않는다면 노정관계에 대해 결단을 내리겠다”고 경고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