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역사야"
노동자역사와 함께했던 이.승.원.
    2017년 08월 02일 01: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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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공공연맹 위원장이자 ‘노동자역사 한내’의 이승원 사무처장이 운명한 지 벌써 1주일이 지났다. 조금 늦었지만, 노동자역사 한내 앞에서 치러진 노제에서 필자가 낭독한 추모사를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다시 한번 이승원 동지의 명복을 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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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는 현장에서, 이름 없는 노동자들에게 역사를 찾아주자고 ‘노동자역사 한내’가 만들어졌죠. 영등포 작은 빌딩 한 귀퉁이를 빌려 열었던 사무실. 10년 전, 아주 추운 겨울 데이콤노조 위원장, 공공연맹 위원장이었던 해고자 당신, 이승원을 처음 만났습니다.

96-97년이었던가요.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저지를 위해 온 나라의 노동조합이 파업으로 들고 일어섰던 일. 그리고 2000년 국민 기업 데이콤이 LG에 합병되는 것을 막기 위한 총파업, 2003년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과 열사 정국을 이끌어 간 공공연맹 위원장 시절. 마지막으로 복직 투쟁하던 긴 시간.

맹활약했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뒤로 하고 당신은 노동운동 사료를 모으고 역사 자료를 수집하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쓸쓸한 집회 현장, 아스팔트 위 차량들이 악셀레이터를 밟기 전, 함께 유인물, 신문, 피켓을 수습했지요. 역사라는 것이 바람처럼, 봄꽃처럼 얼마나 금세 사라지는 것인지 우린 알았고 그것을 갈무리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사무실엔 대학 청소 노동자들이 만든 거대한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아니 우리가 이런 것까지 모아야 하나’ 싶었을 때 이승원 위원장은 제게 그렇게 말했죠. “이게 역사야!”

우리 노동자들의 역사는, 하나하나 보았을 때 얼마나 가난한지요. 우리의 서사는 얼마나 가난한지요. 하지만 그런 작은 것들이 모여야 30년, 100년, 200년의 시간이, 그 거대한 발걸음이 비로소 보이겠지요. 당신은, 이승원 위원장은 그걸 알았던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도 남는 산천이 우리 대신 외쳐 주는 뜨거운 함성, 그걸 만들고자 했던 것이겠죠.

노동자역사 한내 10년 동안의 성취는 모두 당신의 수고에 기대고 있습니다. 수많은 노동조합사, 노동운동사, 투쟁 백서가 쓰여졌습니다. 엄청난 양의 노동운동 자료가 수집됐고, 인터넷으로 볼 수 있도록 서비스 되고 있습니다. 스캔을 거친 자료들을 보관하는 자료관을 별도로 크게 지었습니다. 산별노조나 개별 지부와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마지막으로 ‘노동 박물관’을 만들고 싶어하셨고 노동자역사 한내는 그 일에 매진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양규헌 대표님께서 집필하신 1987 노동자대투쟁을 출간하시느라 애를 쓰셨고 87년 노동자대투쟁 전시회를 위해 몰두하셨습니다.

그렇게 당신이 앞서서 나갔던 길 위에서 당신이 스러졌습니다. 산 자들이 따를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쓰러지고 다들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당신의 빈 자리가 광장처럼 넓은데, 거기 서서 우린 허청댑니다.

이승원 위원장, 당신이 시간을 좀 주신다면 우리 산 자들은 따를 겁니다. 노동자역사라는 것은, 실제 역사를 만들어 감과 동시에 그 역사를 갈무리하고 모두는 일, 둘 다입니다. 둘 다를 해낼 겁니다. 언제나 세상이 필요한 곳에 있고자 했던 당신처럼 말입니다. 일본의 한 시인은, 마치 당신을 두고 노래하는 것처럼 이런 시를 썼더랬죠.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볏단 지어 날라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잘 가세요. 이승원 위원장님 당신이 너무 고독하지 않았기를. 우린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황홀하게 기꺼웠기에. 당신과 함께, 노동자역사와 함께.

필자소개
서대문 인문사회과학서점 레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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