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지구,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곳
라오스 개발협력사업 현장 이야기
    2017년 08월 02일 10: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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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드벤처, 현장조사 떠나기

 자칫 해가 떨어지기 전에 마을에 닿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 걱정이 들어 이제 막 루앙파방(Luangprabang)에서 싸이냐부리(Xayaboury)로 다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이들을 재촉했다. 라오스 초행길에 더해 산골마을까지 들어가는 험로의 현장조사에까지 동행하겠다고 한 일행은 나의 독촉에 피곤함을 하소연할 새도 없이 부랴부랴 하룻밤 홈스테이에 필요한 것들만 챙겼다. 차는 내 급한 마음만큼 20여 분 만에 읍내를 출발했다.

정말 꽉 찼다. 우리 차량은 운전자 포함 4인승, 백보 양보해 5인이 정원. 그런데 무려 일곱 명이 탔다. 조수석에 여자 두 명, 뒷좌석에 남자 네 명. 살을 접고 뼈를 포개 가까스로 구겨 넣었다. 불과 10분여 만에 평탄한 읍내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오프로드로 들어선 차는 내부의 모든 곳에 사람들 몸을 찧을 정도로 요동친다. 설상가상, 비가 온다. 바깥 짐칸에 탔던 한 명이 뒷자리 다리들 위로 허리를 굽히는 자세로 마저 안으로 들어온다.

앞자리 나도 조수석에 걸친 한 쪽 엉덩이만으로 균형을 잡으면서 다른 쪽 엉덩이가 운전 조작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끔 이리저리 피해줘야 하는 새로운 극한 상황. 그러나 바로 이때부터 나의 마음은 현장조사 갈 때마다 얻게 되는 익숙한 평화. 이제부터 생기는 모든 일은 나의 예측과 의지의 영역을 떠난다.

의지로부터 자유로운 현장조사

이번 5월까지 라오스는 극서기 답지 않게 꽤 자주 비가 내렸다. 날씨가 좋아 좋지만 (라오스에선 아주 해가 쨍쨍하지도 그렇다고 비가 많이 오지도 않는 흐린 때를 날이 좋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극성으로 건조하지도 하루에도 두세 번씩 폭우가 내리지도 않는 우기나 건기의 시작이 좋은 계절이 된다) 그래서 건기임에도 길이 패이고 무너지고 냇물이 불어 잠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두 시간 걸린다고 한 길이 네 시간이 걸릴 수도, 조사 작업이 이틀이 아니라 사흘이 걸릴 수도, 아예 처음부터 읍내를 벗어나 산길로 들어서지 못할 수도 있었다.

물리적 상황만이 아니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다. 몇 해 동안 똑같이 내가 계획하고 교육청에 부탁해 마을에 전달된 바 그대로 하면 되는 현장조사 작업이다. 그렇지만 매번 똑같지 않았다. 이번에 동행한 교육청 직원들과 그 마을 사람들의 상호작용,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일의 순서나 소요시간이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있던 일도 없어지고 없던 일이 생기기도 한다. 모든 것이 예측불가, 장담불가, 그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 이제는 그저 일이 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딱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몸을 길의 요철에 맞춰 제멋대로 움직이도록 내버려두듯이 내 의지도 라오스 상황에 맡겨 일을 되는대로 놓아두면 된다. 그러면 자유다.

다른 시간을 사는 라오스의 현장들

다행히 예상한 대로 2시간 만에 첫 번째 조사 대상지 나탕 마을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주로 다녔던 마을들 보다 읍내에서 가까워서인지 마을은 규모도 컸고 모두 구멍가게들이지만 전에 없이 골목에 가게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바로 조사지표, 설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는 전봇대와 전선들, 집안과 거리에 전등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입구에 있는 교사 기숙사, 가까이 전봇대가 섰지만 전선조차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

꾸깃꾸깃 차에 접어 넣었던 몸을 펴고 교장 선생님이 하는 가게에 앉아 목을 축였다. 혹시나 하고 전화기를 꺼내봤다. 읍내에서 35킬로미터, 두 시간 거리지만 여기서도 전화신호는 잡히지 않는다. 전화기를 집어넣고 우리 도착 소식이 전달돼 현장조사의 핵심 인물 이장님을 기다렸다. 빨라도 한 시간은 넘을 것, 그 동안 마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살펴보기로 했다.

현장 조사기간 숙소로 쓰인 나탕 마을 교장 선생님 가게 모습

마을 입구 개울 건너에 있는 초등학교는 블록 벽체 외에는 여느 산골학교와 다르지 않았다. 이장님은 아직 안 왔다. 두 번째 조사 대상지 깨오 마을과 사이, 이 마을 쪽에 가까운 2킬로미터 떨어진 중학교로 갔다.

인가 없는 산길을 10여 분 달려 신기하기까지 한 풍경을 만났다. 파쌍 중학교 분교. 멀리 화전으로 타다 만 나무가 듬성듬성한 산들로 둘러싸인 황량하기만 한 넓은 터. 덩그러니 양철지붕이 통나무 기둥에 얹혀있다. 가운데 흙바닥에 칠판 하나, 책상들 몇 개. 그게 다였다. 학교.

나탕 마을에서 2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중학교 전경

현장조사 일행들이 지붕만 덩그런 학교 맨바닥에 놓인 책상에 앉아있다.

가까운 소외와 빈곤, 먼 개발협력

 예상대로 한 시간 여 만에 나타난 이장, 부이장들에게 일단 마을의 공식 현황을 물었다. 인구는 147가구 742명, 모두 지배적인 민족 라오족이다. 태양광발전기 지원을 필요로 하는 에너지 빈곤가구는 불과 11가구. 첫 눈에 보이는 것처럼 마을형편은 비교적 좋은 것 같았다.

해가 기울었다. 이집 저집 불을 들어오는데 덩달아 주변이 경운기 소리로 시끄럽다. 웬 소음인지 물었다. 바로 이 전등들을 켜기 위한 발동기 소리란다. 아니, 그럼 이 전봇대와 전선은 뭐지? 지난해 마을로 전봇대가 들어오고 형편이 되는 집들은 모두 전선까지 연결했지만 정작 읍내로부터 전기는 들어오지 않고 있단다. 왜냐고 물었다. 모르겠단다. 그럼 언제 들어오느냐고 물었다. 모르겠단다. 에고, 이런 것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두 번째 조사 대상지는 크무(Khmu)족이 대부분인 69가구 334명이 사는 깨오 마을. 큰 마을에서도 10킬로미터를 더 들어가야 하고 라오스어는 학교나 가야 배울 수 있는 소수민족 마을이지만 당연히 그 라오스어를 배울 수 있는 중학교는 없고 화폐가 있어야 물건을 살 수 있는 구멍가게도 드물었다. 반비례해서 태양광발전기 지원이 절실한 빈곤 가구는 17가구로 훨씬 많았다.

여기 이들에게서 어떻게 ‘국익’을 뽑을까?

돌아오는 날이 월요일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우리 숙소이기도 한 교장 선생님 구멍가게 앞 마을회관에 학생들이 많다. 가끔 종소리도 들린다. 역시나 내 의지대로 오지 않는 차를 기다리며 느긋이 마을회관을 어슬렁거렸다. 창문 안이 영락없는 교실이다. 지붕만 있는 중학교보다 학생도 많다. 교사로 보이는 사람도 서넛.

늦게나마 중학교로 진학하려는 학생들을 위한 마을회관 학교, 문맹 성인을 위한 야학이기도 하다.

내가 물었다. 이곳도 학교, 그 지붕만 있는 중학교가 생기기 이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할 중학교가 없어서 제 시기를 놓친 학생들을 위한 중학교 예비과정이었다. 그들이 답해주었다. 마을회관은 야간학교가 되기도 한다. 문맹인 라오족을 가르치는, 문맹과 다름없는 소수민족 성인을 위한 학교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목록 말미에 ‘국익을 증진하는’ 개발협력이 있다. 국제협력을 주도하는 당당한 외교 전략의 주요내용은 ‘청년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개발협력 추진을 통한 국익의 증진이다. 공적개발원조(ODA)를 수행하려는 나는 여기 이들에게서 어떻게 한국의 ‘국익’을 뽑을까?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라오재생가능에너지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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