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편세금론의 오류,
    현실은 산수만으로 풀리지 않아
    [기고] 자본소득 과세에 대한 침묵 또는 외면
        2017년 07월 31일 02: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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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연소득 2000만원 정도 되는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급여까지 소득세 세금을 추가로 더 털어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퍼져 있다.

    자본 측만의 주장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명백히 더나은 보다 바람직한 사회로 나아가길 희망하며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만한 진보진영의 인사들(너무 많기도 하여 이름들은 모두 생략) 주장에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아마도 복지국가 담론을 가지고 산수를 해보면, 보편세금의 불가피성이 한 눈에 드러나므로 진보진영의 주요 인사들까지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라 추정된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특히 선후의 문제와 구체성 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주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선 월급쟁이들의 소득세 세금을 추가로 털어 가는 것은 아주 선명하다. 반면에, 현재 한국의 조세체계에서 세금 제대로 안 내도 되고 제대로 된 규제도 없이 맘대로 치부하는 자본소득자(이윤, 이자, 배당, 임대소득, 주식이나 주택의 양도차익 등)에 대해 어떻게 조세체계를 개편해서 세금 제대로 내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주장은 거의 없다.

    예를 들면 문재인 정부는 지분율 1% 이상 또는 시가총액 25억원 이상을 보유한 대주주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현행 20%의 단일 세율을 25%로 상향조정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보편세금을 주장하며 월급쟁이 소득세 세금도 추가로 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진영의 주요 인사들 어느 누구도 여기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우선 문재인 정부의 안은 자본소득 과세 강화 방향으로 옳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보편세금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다.

    왜냐하면 일부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최고세율은 유리알 세금인 노동소득세(근로소득세)의 최고세율 40%보다 터무니 없이 낮은 25%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 추진안에서는 대주주가 아닌 자의 주식 양도차익은 금액 불문하고 불로소득임에도 여전히 비과세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월급쟁이 소득세 세금까지 추가로 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편세금론자들 누구 하나 최소한 노동소득세의 최고세율과 기계적 형평이라도 맞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주식양도 차익뿐만 아니라, 다른 자본소득들에 대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거기에서도 노동소득세와 기계적 형평이라도 맞춰야 한다는 구체적인 주장을 찾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기껏 있는 것이라고는 “선 임금노동자의 고통분담, 후 부자들에 대한 압박론” 류의 이데올로기 같은 것들로, 나로서는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얘기들이다.

    왜냐하면 설령 이에 따라 압박 여론이 생긴다 하더라도(압박 여론이 생길지조차 의문이나 어쨌든 생긴다 하더라도), 도대체 우리나라 자본가들이 이런 류의 압박 정도로 호락호락하게 자신들의 세금부담 문제에 대해 대인적으로 양보하고 물러날 사람들인가 말이다.

    더구나 자본의 권력뿐만 아니라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과 정치적 권력까지 거머쥐고 있는 우리나라 자본가들에게는 거대한 반동의 빌미가 생길 위험마저 있다. 즉, “세금폭탄론” 등으로 노동대중을 선동하고 그나마 소극적으로 추진하는 사회복지재정 확대 정책 등을 뿌리채 흔들어 버리거나 또는 담뱃값 인상 등을 통해 여실히 입증했듯이 세금 충분히 걷고 있으므로 추가증세는 커녕 부자감세가 필요하다는 이데올로기를 유포할 수도 있다.

    물론 사회적, 자연적 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기금, 늙어서 어려서 병들어서 기타 다양한 사유로 노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금, 학교나 보건시설이나 육아나 보육 주거 등등 과 같이 수요를 공동으로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기금 등 사회복지 재정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조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이 필요성 등에 대해 보편세금론자들 이상으로 급진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상충될 뿐만 아니라 다수가 피지배계급인 사회에서 그렇지 않아도 잉여가치를 착취 당하는 피지배계급의 추가 부담까지 동반된 우리의 문제에서, 문제 해결 과정은 반드시 지혜로워야 하며 최소한 선후는 명확해야 한다.

    즉, 자본소득에 대해 노동소득세와 최소한의 기계적 형평이라도 맞춘 후에야 보편세금을 얘기하는 것이 옳다. 자본주의 문제는 산수로만 풀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끝으로 보편적 세금론자들이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보다 중요한 부분도 있다.

    즉, 자본주의를 전제로 하는 복지국가 담론은 그 과도기적 필요성과 의의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측면이다.

    왜냐하면 생산수단에 대한 토지소유자(토지소유의 독점은 자본 독점의 토대이기도 하다!)와 자본가의 독점상태를 그대로 두는 경우, 이들의 분배결정권은 어떠한 형태로든(심지어 분배결정권이 대폭 수정되어 스웨덴식 공동결정의 형태를 취하든, 독일식 공동결정의 형태를 취하든 관계없이 어떠한 형태로든) 지속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만큼 소비재의 분배는 양극화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토지자본가와 자본가들은 그들이 보유하게 되는 막강한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자본주의 사회가 유지되는 한, 이들은 여전히 지배계급이다!)을 활용하여 그나마 진전된 사회보장시스템까지도 후퇴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다 지혜롭다면, 우리는 주어진 현실을 관련된 전체로 파악하고 이를 전제로 사회복지 시스템의 확충도 필요한 요소의 하나로 접근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계급과 계급이 대립하는 낡은 자본주의 질서를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관계로 이행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도 심혈을 기울여야만 한다.

    실질적 자유, 실질적 평등, 실질적 풍요 등은 아무리 사회보장 시스템이 잘 갖추어지더라도, 자본주의를 전제로 하는 한 영원히 도달 불가능한 꿈일 뿐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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