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화 시대, 국가는 무력한가?
    국가의 명암, 인도네시아와 중국의 엇갈리는 모습들
        2017년 07월 31일 12: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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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계화가 매우 진전된 오늘날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지겨울 정도로 들어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력은 자본으로 넘어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정부가 개별 자본을 통제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소극적으로 이해했을 때 이 말은 자본이동의 경계가 무너졌기 때문에 정부 정책의 효과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자본이 경제를 주도하면서 정부의 정책 개입 능력은 매우 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개별 정권의 운명과 비교하여 재벌기업들의 장기 성장을 보고 있노라면 권력이 자본으로 넘어갔다는 말이 공허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전후 케인즈주의라고 일컫는 일련의 경제정책(재정정책, 환율정책, 금융정책 등)은 고정환율제도와 자본이동의 통제라는 제도적 조건 하에서 이뤄진 것이다. 현재와 같이 자본이동이 자유롭고 제도적 환경이 많이 달라진 맥락에서 경제정책의 유효성이 약화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초국적화된 기업은 자본도피를 통해 국가의 조세정책을 무력화시키고, 자회사 간 복잡한 거래를 통해 수익을 국제적으로 이동시키며, 자본이동성을 매개로 국가의 제도적 규제를 무력화시킨다. 임금이 상승하면 그에 따라 생산기지를 이동시키고, 세금이 오르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조세를 회피하고, 관세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무관세 혜택을 제공하는 지역에 투자를 확대한다. ‘평평해진 세계’에서 기업들은 날개를 달았다.

    그러나 자본이동성의 증대로 인한 자본의 협상력 증대가 경제에서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국가의 경제정책이 경제성장이나 사회발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국가와 제도가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따라 한 국가의 경제 역량, 성장 전망, 사회 발전의 결과는 매우 달라질 수 있다. 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고, 핵심적이다. 세계화된 세계에서도 그렇다는 말이다.

    2.

    필자는 최근 한국 기업의 해외직접투자 현실과 관련하여 두 곳의 해외공장을 방문하고 관련기업 종사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 함께한 경험이 있다. 필자는 속한 ‘부경대 SSK 산업생태계 연구단’의 일원으로, 지난 겨울 방학에는 중국 소주 지역의 현지 공장들(삼성반도체,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을 방문했고 지난 주(7월 17-21일)에는 인도네시아의 (주)크라카타우-포스코(KARAKTAU-POSCO) 현지공장 및 LG전자 공장을 다녀왔다.

    두 나라의 현지공장 방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중국에 투자한 기업(삼성전자)과 인도네시아에 투자한 기업(포스코와 LG전자)이 투자 상대국을 평가하는 관점이었다. 삼성전자 계열사 임원들의 태도는 중국 정부의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으며, 중국 정부가 제시한 제도적 기반을 토대로 사업계획을 짜고 있었다.

    반면 인도네시아에 투자한 두 기업 임원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포스코 현지 관계자와 LG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아무런 정책 방향도 없고, 자국의 제조업을 키울 의지도 없으며, 관료들은 부패해 있고, 뇌물을 주는 기업들에게 매수되어 있으며,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것은 3% 인구를 대표하는 화교자본이라고 했다. 화교자본은 유통과 부동산을 통해 초재벌이 되었으며, 이들이 낳는 수익은 모기업이 있는 싱가포르 등으로 상당부분 유출된다는 것이었다.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당시의 중국보다 훨씬 발전된 상태였다. 엔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를 대폭 낮추었던 1986년의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초국적 기업들은 ‘강한 엔’으로 인한 수출 경쟁력을 보완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로 생산네트워크를 확산했다. 그 과정에서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은 빠른 성장을 기록하는 국가들이 되었다. 또한 당시 미국의 ‘신경제'(New Economy: 1993-2000년에 이르는 장기 호황), 중국의 자원 수요 등으로 인해 동남아시아 지역경제는 매우 활기를 띠었던 것이다.

    반면 중국은 84년부터 남동부를 넘어 상하이, 칭다오, 텐진, 다롄 등의 14개 연해도시를 개방했고, 88~89년부터는 하이난성 전체와 산둥반도 랴오둥반도 보하이만을 개방했으며 이 개방화의 결과가 큰 성공으로 나타나자 중국공산당은 91년부터 외자유치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들도 이후 중국 현지 진출을 많이 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 기업이 중국에 투자한 주된 이유는 저임금 노동자를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1991년을 기준으로 보면 중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발전 수준에 한참 미달하는 국가였다.

    그러나 2017년 현재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중국은 미국보다도 실질GDP(물가로 보정한 GDP)가 더 큰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으며, 세계의 공장으로서 지위를 누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달러보유 자산이 가장 많고 미국에 대해 거의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정치적 지위를 향유하는 국가이다. 비록 중국은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만 미국 역시 중국에 대해 채무국으로서의 지위를 수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일대일로’ 전략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친중국적 질서로 만들기 위한 장기적인 플랜을 가동 중이다.

    현재 중국 현지에 투자했던 한국 기업들 중 중국 내 시장을 목표로 한 기업들은 중국에 머물지만 해외 수출을 목적으로 한 기업들은 동남아시아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다. 중국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이 급속히 높아지고 있고, 환경기준이 엄격해지면서 이를 충족시킬 경우 국제적인 가격경쟁력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에게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저임금을 활용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 중국은 이제 ‘고임금-친환경을 지향하는 국가’가 된 것이다.

    3.

    인도네시아와 중국이 이와 같은 차이를 보이는 것은 여러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필자는 두 국가의 방문을 통해 ‘인상비평의 측면’에서 국가의 경제적 역할과 관련하여 그 차이를 살펴봤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 5천만으로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인구 4위의 대국이다. 인도의 최북쪽 수마트라 섬에서 최남단 뉴기니섬까지의 거리는 서울에서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까지의 거리와 맞먹는 5600킬로미터이다. 지리적으로 엄청나게 큰 대국이다. 3모작이나 4모작을 할 만큼 기후가 따뜻하고, 자원의 비축량도 많으며, 석유 수출국이기도 하다.

    동남아 최초의 일관제철소 ‘크라카타우포스코’의 전경.(사진=포스코)

    현지에서 만난 크라카타우-포스코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정부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크라카타우-포스코는 포스코와 인도네시아 국영 제철회사인 크라카타우사의 공동투자 법인기업이다. 포스코가 70%의 지분을, 크라카타우가 30%을 지분을 갖고 있다. 제철공장이 완성된 것은 2013년이고, 2017년부터 단기순이익이 흑자로 돌아선다고 예상했다. 포스코로서는 세계 최초로 철강 해외직접투자에서 제3공정 즉 압연공장을 투자할 만큼 인도네시아 투자를 중요한 전략적 목표 하에서 진행하고 있다.

    철강산업의 공정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철강석과 석탄을 녹이는 제선작업, 쇳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제강작업, 불순물이 제거된 철강판(‘슬라브’라고 한다.)을 필요에 따른 일정한 두께로 누르는 압연공정이 그것이다. 압연은 열연공정과 냉연공정으로 나뉜다. 일본제철은 기술유출을 우려하여 앞의 두 공정만 동남아시아 현지투자를 했지만 크라카타우포스코사는 이 지역에서 3공정 전체를 완결할 수 있는 생산능력을 갖췄다. 전략적 목표란 관세동맹을 맺고 있는 아세안(ASEAN)의 수요를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에서 조달한다는 것이다. 아세안 경제공동체 소속 국가들 내에서 생산된 공산품은 무관세로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을 지닐 수 있다.

    크라카타우포스코의 현재 생산용량은 300만톤이고 앞으로 투자계획이 실현되면 600만톤 생산용량을 갖출 수 있다고 한다. 현재 300만톤 생산량은 모두 국내 소비용이다. 인도네시아의 연간 철강 소비량은 1500만톤, 그 중 1200만톤은 수입하고 300만톤은 크라카타우포스코의 제품을 소비한다. 크라카타우우포스코의 생산효율성은 광양제철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크라카타우우포스코는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더 큰 생산능력을 갖추려고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와 현지 기업인 크라카타우사는 투자에 미적거리고 있다. 필요한 철강은 수입하면서.

    이 나라는 자국 국유기업의 생산능력을 키우거나 철강사업 발전을 위한 투자에는 미적거리면서 해외로부터 철강 수입을 엄청나게 하고 있다. 제품의 질도 크라카타우포스코가 생산하는 철강에 미달하는 것을 대량 수입하는 것이다.

    정부의 최고위층은 자국 철강산업을 발전시키려고 하지만 구체적인 실무를 담당하는 관련부처는 철강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목적도, 의지도 없다고 한다. 해외로부터 철강 수입을 담당하는 업주들이 뇌물을 주면 관료들은 그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포스코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정부는 구체적인 목표와 정책도 없이 그저 포스코 자본을 유치한 것에 만족하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LG 현지 법인장은 LG 현지 공장이 건설된 시점이 1994년 즉 23년 전이라고 했다. 그때 투자 목적은 인도네시아의 잠재시장을 보고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20년 후의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잠재시장”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는 질적인 성장을 거의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경제성장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제도, 문화, 노동생산성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이루려면 정부의 정책 의지, 성장단계별 주요 목표, 이를 위한 자원의 동원과 배치, 상호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제도와 투입-산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목표 자체가 없는 국가에서 이런 정책의 일관성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LG전자는 이 곳에서 평면TV를 생산한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생산은 모듈화된 부품들을 조립하여 완성품을 만드는 것일 뿐 높은 기술수준이 필요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듈제품이란 평면TV를 구성하는 주요 부품들은 모듈(특정한 틀)로 생산하고, 이를 조립하는 것을 말한다. 스피커 모듈, 디스플레이 모듈, 반도체 모듈, 기판모듈과 같이 주요 부품을 모듈 단위로 분할하고 각각의 모듈을 계열 자회사나 협력업체가 생산하여 납품하면 LG전자가 이들 모듈을 조립하여 최종재를 생산하는 것이다. 현지의 LG전자가 하는 것은 모듈을 조립하고 껍데기를 씌우는 일이다. 기술숙련도가 필요하지 않은 공정이며 생산의 자동화 수준도 높다.

    LG 관계자는 평면TV 생산 공정도 베트남으로 이전하려다가 인도네시아의 잠재성을 보고 남겨두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인구 2억 5천만의 국가이기 때문에 성장잠재력은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노동자들이 매우 순종적이며 작업지시를 잘 따른다고 한다. 이슬람 국가로서 하루 5번의 기도시간 보장, 8시간 이상 노동의 금지, 금요일 오후 사원 방문을 위한 단축 조업 등 현지 노동자들은 이곳의 문화를 인정하기만 하면 기업들의 지시에 매우 잘 따른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성장이 더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4.

    중국은 이와 뚜렷이 대조된다. 장쩌민이 당 총서기로 있던 1991년 중국은 해외직접투자를 위한 문호를 개방한다. 투자지역도 연해도시만이 아니라 청두, 시안, 충칭 등 2선 도시들로 확장한다. 이 시기만 해도 등소평이 설파한 ‘흑묘-백묘’론으로 알려진 ‘선부론’이 공산당의 보편적 의제였다. 특정기업, 특정지역이 먼저 성장하면 그 효과가 다른 기업, 지역으로 확산된다는 점에 착안된 논리였다. 불평등을 수용하되 성장을 촉진한다는 전략이다.

    장쩌민 시대가 저물고 후진타오 시대가 열렸다. 이 시기의 성장 기조는 조화사회였다. 균부론의 시대가 된 것이다. 개방화 이후 급속하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불균형, 빈부격차, 국영기업과 민영기업의 격차, 해안지방과 내륙 지방의 격차, 도시와 농촌의 격차로 인해 중국 사회 내의 불만이 고조되고 중국공산당의 통치성의 위기가 동시에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이다. 새로운 성장모델이 필요한 시점에 중국공산당은 조화사회를 제시했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내륙을 개발하고 농촌을 활성화시킨다. 엄청난 규모의 인프라 투자도 동반된다.

    주목할 만한 변화는 중국의 노동정책의 변화이다. 1994년 노동법이 통과되고 단체교섭이 점차 제도화 되어간 이후, 2000년대에 들어와서 단체교섭은 점차 중앙정부, 중국 노총이기도 한 공회의 공식적인 지도 하에서 진행되어 왔다. 2008년도에 도입된 노동계약법은 단기고용보다 장기고용의 비중을 높이는 전략에서 비롯된 노동 및 고용정책이었다.

    공회는 공산당 하부조직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공산당의 통제 하에 있는 노총이라는 점에서 독립노총은 아니다. 그러므로 공회가 중심이 되어 이뤄지는 단체교섭은 근원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공산당의 통제 하에 노조운동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공회체제 하에서도 중국 정부의 기조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를 제도적으로 수렴하고 이에 부응하지 못하는 한계기업들은 퇴출시킨다는 목표 하에 산업전략을 짜고 있다. 공회는 한편으로 공산당의 지도를 받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조합이 기업으로부터 독립성을 획득하고, 중국공산당이 노동자들의 협조를 받고자 할 때 공회의 입장을 반영하도록 만드는 장치였다.

    이는 중국이 저임금 노동에만 의존하는 전략에서 탈피하여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기업의 기술력 향상, 임금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줄이고자 하는 정책의지가 반영된 결과이다.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임금인상을 수용할 수 없는 중국 내 기업들, 저임금 노동의 활용을 위해 중국에 투자한 기업들은 퇴출시키고 중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노동자들의 소비력을 확대시키려는 것이다. 이렇게 전략적 목표에 따라 성장률을 조정하고 구조조정을 주도해 온 것이 중국 정부였다.

    노동관계법의 변화가 중국 내 노동자 내부의 불평등을 조정하고 노동조합의 협상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환경기준 강화는 중국 내 환경 오염 및 환경 악화를 막기 위한 처방이었다. 중국은 도시규모별로 오염수 처리율, 오염수 침전물 무해화 처리율 등을 제시하고 이를 준수하지 못하는 기업을 퇴출시킨다. 환경기준을 엄격히 하고 이를 준수하지 못하는 기업들의 명단을 공표하여 퇴출시킴으로써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전략이다. 반면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는 첨단산업 유치를 위해서는 특혜를 제공한다.

    삼성디스플레이가 2013년 10월 준공한 중국 장쑤성 쑤저우 8세대 LCD 공장(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계열사 기업들이 소주에 투자를 한 이유는 중국의 관세장벽을 넘어서기 위해서였다. 삼성 관계자에 따르면 첨단산업 수입품의 관세율은 8%였다. 삼성전자라 해도 영업이익률이 10% 내외인 상황에서 중간재(부품)에 붙는 관세율이 8%이면 중국 내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ICT산업(반도체, 스마트 폰, LCD, 전자 등) 현지투자기업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법인세 면제 등)을 제공하는 반면 국내로 수입되는 제품에는 8%의 관세를 부과한다. 이는 LCD 기판이든 반도체든 중국 내에서 팔려면 중국에 들어와 생산하라는 것이다.

    해외직접투자는 중국 기업과의 합작투자를 기본으로 한다. 기업들이 중국 노동자들을 활용하도록 함으로써 숙련 및 기능공을 양성한다. 삼성반도체나 삼성SDS, 삼성디스플레이 등은 중국 노동자들을 국내 생산현장으로 보내어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8개월 동안 생산 공정에 대한 지식과 숙련을 쌓게 한 후 현지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활용한다. 기술 숙련이 된 중국 노동자들 통해 그렇지 못한 저숙련 노동자들을 지도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시장을 내어주되 노동자들 고용을 촉진하여 공정에 대한 이해능력을 키우고 있다. 기술습득 과정이다. 더 나아가 자국 내의 첨단산업 기업들에 대해서는 엄청난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삼성이나 LG, 일본 기업들에 대한 경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예컨대 전략산업으로 선정될 경우 제조원가 1200원 원가의 제품을 1000원에 팔아도 기업 경영이 유지되도록 지원한다. 새로운 산업에 투자한 기업들을 자기 발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지원하는 것이다.

    중국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는 공산당 관료의 부패가 얼마나 심각한지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해왔다. 한국 산업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이 돌아가는 국가들에서의 부패와 일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에서의 부패는 의미가 다르다. 인도네시아와 중국의 차이는 그런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정부의 정책 목표, 실행할 체계가 없고 엘리트 집단은 기득권에 안주하며, 관료들은 이해관계자들에 매수되어 있다. 정부가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자본분파가 정부 관료들을 매수하여 국가를 농락하고 있다. 그 결과 인도네시아는 부존자원이 그렇게 풍부하지만 이를 자국 제조업의 성장을 위해 활용하지 못한다.

    5.

    크라카타우포스코 법인장의 설명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서 국영 철강기업인 크라카타우사는 1968년도에 설립되었다. 국내 철강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철강산업 진출이었다. 이 당시 크라카타우사의 생산능력은 250만톤 생산규모였다고 한다. 1970년 한국은 포항제철이 100만톤 규모의 생산능력으로 출발했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자체 철강 생산능력은 300만 톤인 반면 한국은 4000만 톤 생산 능력을 갖고 있다. 이 명암을 가른 것이 바로 국가의 정책과 제도의 역능이다.

    앞 절에서는 우리는 중국공산당이 중국 산업화를 위해 단계적인 개방화와 주요 산업의 구조고도화를 추진해 왔으며, 그에 따른 관세정책, 투자유치, 노사관계, 환경기준을 적절히 활용해 왔다는 것을 보았다. 선부론에서 균부론, 일대일로에 이르기까지 중국공산당은 산업발전과 국내적, 국제적 정세적 맥락에 따라 전략적 판단 및 집행체계를 일관되게 유지해온 것이다. 그 결과 중국은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다.

    경제성장은 수많은 모순을 포함하며, 부패, 갈등, 빈부격차, 환경파괴, 지역격차 등을 유발한다. 이 많은 모순들 속에서 정부는 사회 전체의 어젠다를 만들고, 정책 방향을 제시하며, 개별기업들에 대해 충분한 인센티브와 벌칙을 부여할 수 있다. 그 많은 모순과 갈등 속에서도 성장을 꾸준히 이끌 수 있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성과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앞 장에서 필자는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비교를 통해 정부 및 제도, 사회적 역능이 어떤 결과의 차이를 나타낼 수 있는가를 보이고자 했다.

    6.

    IMF 이후 한국 정부는 전략적, 장기적인 성장 목표에 따른 산업정책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IMF의 요구에 따라 전략 산업을 민영화하고 경제의 금융화를 통해 선진국으로 도약하고자 했다. 그러나 산업전략의 포기, 금융세계화, 서비스업 중심의 산업구조 개편으로는 결코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한다. 탄탄한 제조업 기반 위에서 서비스업이 덧붙여질 때 경제 및 사회는 안정화된다. 소득의 측면에서도, 형평성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산업정책은 고사하고 부패의 확산을 통해 시스템의 부정적 기능을 더 강화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은 초국적화된 재벌기업들의 선도적인 투자를 통해 가능했다. 한국 대기업들은 국내에서 기술혁신과 해외직접투자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세계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왔으며, 그 결과 여타 선진국들에 비해 한국 제조업은 고용비중, 총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 모든 면에서 성장해왔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의 성과를 착취하고, 저임금 노동자를 활용하여 노동비용을 절감했으며,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노동을 분할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성장목표에 노동을 효과적으로 동원했다. 그들은 투자자로서, 착취자로서 말하자면 자본가로서의 유능함을 보여준 셈이다. 그 과정에서 대기업들의 과잉성장과 대-중소기업 간 격차 심화, 노동자 내부의 격차 심화 등 대기업 중심의 과잉성장의 모순을 축적해 왔다.

    그러나 권력이 결코 시장에 완전히 넘어간 것은 아니다. 정부는 엄청난 재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개별 기업들의 행동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 정부 발주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성장기회가 매우 적다. 인프라 건설이든 군수품 생산이든, 여타 조달체계이든, 정부는 시장에 개입할 많은 수단을 지니고 있으며, 이 수단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따라 국가의 경제적 성취도는 달라진다.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고 책임방기를 정당화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시장이 공동체의 이익에 복무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를 정부는 고민해야 한다.

    * 기사의 사실관계에서 일부 오류를 지적해주신 김성민 동서대 교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필자소개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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