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영속패전 체제,
    패전 부인과 대미 종속의 악순환
    [책소개] 『영속패전론』(시라이 사토시/ 이숲)
        2017년 07월 29일 12: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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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70년 전에 패전국이 되었지만 여전히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전승국 미국에 복종하는 일본 지배층의 모순된 이념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주목받는 젊은 사회학자인 저자 시라이 사토시는 이 책에서 그들 이념의 특징을 ‘영속패전’으로 규정하고, 국수주의에 함몰된 일본 보수층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치밀하게 파헤친다.

    영속패전 이데올로기의 분열증적인 징후들을 통해 아베 신조 집권 이후 점점 더 우경화하는 일본 정치 세력의 성격뿐 아니라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 벌이는 영토분쟁의 기원도 대미 종속 구조에서 찾는 이 책은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역사 왜곡 문제 등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을 제대로 이해할 단초를 제공한다. 기존의 일본 사회정치학의 틀을 깨고 신기원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대 일본 사회와 한일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필독서가 되어 이케루혼 대상, 이시바시단잔 상, 가도카와재단 학예상 등을 받으며 꾸준히 화제가 되고 있다.

    영속패전 체제란 무엇인가

    영속패전 체제의 핵심 구조는 패전의 부인과 대미 종속이다. 일본 보수 세력은 왜 패전을 부인해야 했을까? 저자가 말하는 이유는 허망할 정도로 단순하다. 태평양전쟁을 주도했던 제국주의자들이 전후에도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려면 패전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야 했는데, 상황을 ‘패전’이 아니라 ‘종전’이라고 애매하게 규정함으로써 책임을 부인하고 회피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속임수와 기만이 통했던 이유를 대미 종속 구조에서 찾는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하자 미국은 일본을 점령하고 탈국군주의로 개혁할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소련을 맹주로 공산 세력이 확대되자 미국은 이에 대항하여 일본에 강력한 반공 정부를 세우고자 했다. 그렇게 미국은 일본의 천황제를 인정하고 전범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었으며, 전전(戰前) 보수 지배 세력에 전후 일본의 통치를 맡겼다. 공산주의에 호의적인 좌익이 권력을 잡는다면 일본이 소련 진영에 포섭될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저자는 바로 이런 계기로 군국주의 일본 보수 세력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전전의 권력을 되찾을 수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전후 일본에는 미국이 어떤 요구를 하든지 무조건 들어줄 수밖에 없는 대미 종속 구조가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다고 말한다. 패전 자체를 부정하고 대미 종속 구조에 포섭된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은 현재 일본이 ‘패전이 아니라 종전’ 상태에 있다는 수준에 머물러 있고, 자신들이 얼마나 미국에 종속되어 있는지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대미 종속’과 ‘패전의 부인’은 상호 보완관계로 아베 정권이 그 실례를 보여주듯이 점점 더 극우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패전을 부인할수록 미국에 더욱 종속되고, 미국에 종속될수록 패전을 더욱 강력하게 부인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일본의 ‘영속패전’ 이데올로기 핵심 구조다. 그렇다면 같은 맥락에서 미국의 도움으로 독립하여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정권을 유지해온 한국의 우익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는 일본의 ‘영속패전’ 이데올로기와 과연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른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스스로 묻게 된다.

    영속패전 체제에서 비롯한 영토 분쟁, 북한 문제

    저자는 일본이 주변국과 일으키는 영토 분쟁, 쟁점화한 북한 문제에도 영속패전의 기만적 구조가 작동한다고 말한다. 특히 일본이 중국과의 센카쿠 열도 분쟁, 러시아와의 북방 영토 분쟁, 한국과의 독도 분쟁을 통해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명한다.

    저자는 일본의 지배 권력이 패전 사실을 떳떳이 인정하지 못하므로 영토 문제의 합리적 해결 능력도 애초부터 결여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각각의 영토 분쟁뿐 아니라 북한 문제도 역사적 배경과 국가 간 조약 관계를 꼼꼼히 살피며 실증적으로 파헤친다. 그리고 거기에 미국의 존재, 즉 일본의 대미 종속 구조와 영속패전 체제가 작동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다시 말해 미국이 세계 전략 차원에서 일본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라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일본의 영토 문제를 비롯한 외교·안보 문제를 말할 때 대미 종속 관계를 빼놓고 말하기 어렵다면서 냉전 구조를 전제로 했던 영속패전 체제가 지금까지 존속한 탓에 일본은 세계정세 변화에 대처하지 못했고, 그 차질로 ‘평화의 균열’이 일어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미국에 최악의 구도는 중국과 일본이 협력해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도전하는 경우이므로 일본과 중국 사이에 갈등의 불씨를 남겨놓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이는 군산복합체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미국은 중국이 군사적·경제적·정치적으로 세계무대에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상황을 막을 수 없게 되자 동아시아 지역에서 이를 억제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그때까지 ‘동반자’라고 추어주던 일본에 떠넘겼다고 비판한다.

    무너지는 ‘평화와 번영’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저자는 패전 후 국체(國體), 즉 천황이 퇴장하고 남은 빈자리를 영속패전 체제가 차지한 배경에도 대미 종속 구조가 있었고, 영속패전 체제가 전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도 냉전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일본 경제는 한국전쟁으로 전쟁 특수로 되살아났고, 베트남전쟁까지 일어나면서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이 과정에서 일본 국민은 전례 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렸으며 대미 종속 전범들도 전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패전을 부인해도 되는 구조가 정착된 셈이었다. 그러나 이런 평화와 번영은 지정학적 이유로 냉전의 최전선이 다른 나라들로 넘어간 덕분에 얻은 결과였다.

    그러나 냉전 구조가 무너지고 경제 거품이 걷힌 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 침체가 계속되자 영속패전 이데올로기는 한계를 드러냈고 미국은 2008년 리먼 쇼크 이후 일본을 동반자라기보다 수탈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런데도 굴욕적인 대미 종속의 굴레를 벗지 못한 일본 지배층은 ‘영속패전’이라는 유사 천황 체계를 가동하며 체제를 연명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 일본의 상황을 천황제 붕괴 과정에 비유한다. 즉 천황제의 현교적인 부분이 밀교적인 부분을 집어삼켰던 바로 그런 형국이라는 것이다. 대중에게 현교로 내걸었던 ‘우리는 패배하지 않았다’는 심리적 각인이 봉인을 풀고 거만한 국수주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데 그 정점이 바로 아베 신조 정권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영속패전 체제의 주역들이야말로 ‘우리는 패배하지 않았다’는 기만 심리를 국민에게 심어주고 자신의 전쟁 책임을 회피한 극우파의 후예들이다. 더구나 영속패전 체제의 현교적 영역을 부정하는 일은 그들의 정치적 정통성뿐 아니라 전후 체제의 총체적 정통성에 치명타를 날리는 일이어서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특히 저자는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에서 일본 기술력과 변영의 상징이었던 원자력 발전소가 붕괴되는 장면을 목도하며 전후 70년을 구가했던 ‘평화와 번영’의 종말을 감지한다. 그리고 거짓과 무능으로 일관된 사고 수습 과정을 지켜보면서 과거 온 국민을 악몽 같은 전쟁으로 몰아넣었던 전범 세력의 ‘무책임의 체계’와 전쟁에서 무참히 패하고서도 이를 부정하는 ‘패전의 부인’과 똑같은 구조가 되풀이 되고 있음을 새삼 확인한다.

    동아시아의 미래를 위하여

    저자는 이 책을 쓴 동기가 ‘전후’를 인식하고 종식하자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과 역사 감각을 진지하게 살펴보고,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고, 낡은 것을 쇄신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싶었다고 한다.

    저자는 구소련 붕괴를 예로 들면서 역사 인식의 변화는 결국 현실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독재자는 정보를 통제하고 자기 입맛에 맞는 역사의 서사를 국민에게 강제하지만, 그 서사가 효력을 잃을 때 권력도 역사 지배력을 잃고 현실에서도 지배력을 잃게 되는 현상을 우리는 가깝게 멀게 목격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 인식은 정치 전쟁의 장이기도 하다.

    저자는 아베 정권이 ‘패전의 부인’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부인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지금도 일본의 극우 지배자들은 ‘전쟁에서 이겼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전쟁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일본이 그렇게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함으로써 과거의 지배 세력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중이 이런 경향을 지지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그 이유가 영속패전 체제가 계속되기 때문이며, 동시에 체제에 위기가 닥쳤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저자는 오래전에 시효 만료된, 존립 조건을 잃은 ‘영속패전 체제’를 억지로 유지하려고 지금 일본이 기울이는 무모한 노력은 ‘패전의 부인’에 바탕을 둔 역사 인식의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영속패전 체계를 무너뜨리려면 패전을 직시하고 그 의미를 끝까지 파헤쳐서 ‘전후’에 대한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저자는 특히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식민 지배를 피하려고 몸부림치다가 파국을 맞은 역사’로 규정하는데, 이는 결국 일본이 온전한 독립국이 아니라는 뜻이다. 정치 엘리트들이 영속패전 체제의 영향권에서 대미 종속으로 정치 생명을 유지해온 한국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국민 각자가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게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한국과 일본을 대치 구도로만 바라보는 관점을 고수한다면 일본도 한국도 온전한 독립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며, 동아시아의 미래도 밝지 못하리라고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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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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