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신당의 사회연대 대선운동 제안,
    도대체 누구와 함께 추진할 것인가?
    [기고] 나의 당이 구경꾼 아닌 적극적 정치주체가 되기를
        2012년 08월 23일 10: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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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보신당이 21일 사회연대 후보를 통해 2012대선을 대응하자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제안의 의미와 현실성, 그 전후 맥락에 대해 애정과 비판을 담은 글을 김민우 진보신당 당원이 투고를 해왔다. 논란이 된 기자회견문 보다는 제안의 의미와 진보신당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의견이 중심인 투고 글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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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기자회견문이 등장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길이 남을 기자회견문이 지난 21일 진보신당에서 발표됐다. 지난 총선 결과 당의 등록이 취소되고 재창당을 준비 중인 진보신당은 2012년 대선을 ‘피할 수 없는 도전’이라 규정하고 ‘사회연대를 위한 대선운동’을 제안했다.

    회견문은 읽는 이로 하여금 정독을 요구하는 다소 어려운 언어로 기존 회견문의 관성을 깼다. 그러나 총선 이후 거의 몇 달 만에 던져진 진보신당의 정치적 메시지인 이 제안의 골격은 간단하다. 진보신당의 제안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대선을 진보좌파세력의 연대를 통해 진행하며 그 성과로 새로운 좌파정당을 건설하자
    2. 사회연대후보 경선을 위해 진보신당의 자체 후보는 선출하지 않겠다
    3. 경선 과정에서 진보신당은 불안정노동자의 정치주체화를 위해 노력하겠다
    4. 대선운동에 민주노총 등 조직노동자의 참여를 촉구한다
    5. 대선 경선 과정은 사회진보플랜이라는 대안적 의제를 제출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6. 선거연대, 연합정치에 대한 배제로 사회연대후보의 출현을 성사시키겠다
    7. 희망버스 참가자, 촛불시민, 비정규노동자들의 적극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 날 진보신당의 제안은 과거 언젠가 들어봤음직한 민중경선제와 동일하다. 선거인단을 모집하고 그 안에서 각 세력 및 개인이 경선 후보로 출마해 민중후보를 만들어 내자는 것이다. ‘민중후보’라는 백기완 선본 시절의 언어가 20세기의 이름이었다면 ‘사회연대후보’는 그것의 21세기 버전인 듯하다.

    조용한 진보신당 마을에 논쟁이 시작됐다

    헌데 이 제안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자. 트위터 등의 대중공간에서는 그닥 탐탁지 않다는 것이 대부분이며, 진보신당 당내에선 회견문 내용으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진보신당 사회연대 대선 대응 제안 기자회견

    문제제기의 내용은 ‘진보신당이 조직노동 없이 어떻게 대선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이냐’, ‘민주노총과 아예 선을 긋고 있는 것인가’, ‘통합진보당의 파산이라는 새로운 조건에 대한 고려는 왜 없는가’ 등이다.

    ‘노동자는 이미 하나가 아니다’, ‘진보정치 파탄의 책임은 관료화된 조직운동에게 있다’ 등 굳이 말할 필요 없이 모두가 알고 있는 부정적 상황인식에 대한 설명이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진보신당은 민주노총 등 조직노동자의 참여도 촉구했다는 점에서 그 비판은 핵심을 빗겨간 듯하기도 하다.

    ‘관료화된 조직운동은 주체가 될 수 없다’면서도 민주노총에 손을 내밀다니, 문장 그대로 해석하면 ‘민주노총은 주체는 될 수 없지만 주체적 역할은 안 했으면 좋겠다’로 귀결된다.

    어찌 이런 역설적인 제안이 있을 수 있나 싶기도 하지만, 그동안 좌파들이 노동운동의 중심이 대공장 정규직 남성노동자에서 비정규직 등 더욱 배제된 노동으로 이동해야함을 주장했던 점을 감안하면 아예 말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진보신당이 지적한 대로 관료화된 조직운동이 문제라는 인식에는 동의할 지라도 관료화되지 않은 활동가들,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만남은 그저 ‘조직노동운동’이란 이름 때문에 도매급으로 취급 받아야 하나 라는 의문이 머리를 맴돈다.

    더불어 누군가에게 함께하자 손을 내밀려면 얼굴에 미소 정도 머금는 예의가 필요했다는 점에서 굳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는 것은 명확한 것 같다.

    민주노총의 통진당 지지철회, 진보신당은 왜 ‘구경꾼’으로 전락했나

    통합진보당 두 구당권파 의원의 제명 부결 이후, 강기갑 통합진보당 대표는 바로 민주노총으로, 울산으로 달려갔다. 이 때 홍세화 대표 및 진보신당 지도부가 바로 민주노총을 만났어야 했다는 나 같은 당원의 바램은 과욕인 것인가.

    이미 이석기 김재연 의원 제명 부결이후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의 명분을 잃어버린 민주노총에게 더 강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기회에 진보신당은 마치 멀리서 관망하는 듯했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의 통진당 지지 철회의 성과는 통진당 신당권파가 그대로 가져갔다. 아무리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이 “신당권파 지지의 의미가 아니”라고 강조해도 정치적 성과는 신당권파로 대세가 기울었음을 느끼게 했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그 기회를 자신의 성과로 만든 통진당 신당권파의 적극적인 정치행보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진보신당은 보이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민주노총 중집을 앞두고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고민을 함께 나누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과 같으며 어떤 임팩트도 없는 진보신당의 논평에서 나는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그 말밖에 할 말이 없다면 그 대단한 고민을 함께 나눌 계획과 제안을 제출하든가 했어야 했다.

    사실은 중집 논의 과정에서 통진당 지지에 대한 선을 긋고 지지철회를 결정한 중집위원들의 다양한 입장이 언론에 의해 ‘신당권파 힘 실어주기’로 왜곡될 때, 진보신당 지도부가 환영받지 못하더라도 중집 전에 민주노총 방문이라도 해 “통진당 지지철회와 함께 진보신당에 대한 고려 요청”이라도 있었더라면 진보신당은 이 전쟁판의 ‘구경꾼’으로 전락하진 않았을 것이다.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에 대한 증오, 여전히 소아병이 발병한다

    통합진보당의 좌초, 진보신당 통합파의 프로젝트 실패, 통합진보당 신당권파의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여기저기서 ‘신당권파와 진보신당이 만나야 하지 않느냐’는 제기가 시작됐다.

    이런 제기는 진보신당 내부 분위기를 잘 알지 못하는 당 외부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당원들도 ‘패권주의’와 ‘종북’이라는 진보통합을 방해했던 요소가 어느 정도 해소된 상황에서 이제는 신당권파와 만나야 하지 않냐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진보신당 지도부의 입장은 단호하고도 매우 심플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김종철 부대표는 “섣불리 통합하면 이런 상황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며 “신당권파도 틀렸다”며 선을 그었고, 박은지 대변인은 “야권연대와 연립정부에 대한 입장이 달라 만날 수 없다”며 더 이상의 질문을 봉쇄했다.

    이런 의문이 든다. 연립정부론이 모든 정세에서 ‘악’이 아닌 이상 현 시기 연립정부 전술에 대한 논쟁을 시작할 수는 없었는지, 신당권파와의 단순하기 그지없는 선긋기 앞에서, 나는 언제나 타 세력에 대한 비판으로 울타리치기에 익숙한 한국 좌파의 실력없음을 다시 목격한다.

    재편의 시기, 재편의 주체로 나서는 것을 거부하고 마치 외부 공격에 팔다리 머리를 등껍질 속에 집어넣고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겁먹은 거북이의 모습 같다.

    이는 노회찬, 심상정 등 과거 진보신당 출신의 정치인에 대한 배격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도저히 감정적으로 그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한 활동당원의 솔직한 고백은 전형적인 소아병에 불과하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되는 게 정치라는 옛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가장 정치적으로 가까운 명망정치인에 대한 이 같은 증오감은 그저 분풀이일 뿐이다.

    한 때 같은 당에서 활동했던 이들이 혼돈의 시기 당을 같이 만들진 않더라도 교류할 이유는 더욱 분명하지 않은가.

    또한 통합-독자 논쟁 당시 심상정 전 대표를 빼고 통합파 중 누가 연립정부에 대해 역설했었는가. 이미 스스로 정치적 입장을 밀고 나아가기 불가능해진 통합파 기층활동가들은 노.심.조를 따라 탈당을 선택함과 동시에 엉겁결에 ‘연립정부론자’가 되고 말았다.

    연립정부뿐만 아니라 참여당 세력과의 통합 문제도 마찬가지다. 통합 부결 이후 그들이 지도자를 따라 당을 떠나는 과정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구심인 심상정 전 대표의 입장은 마치 이들의 입장을 대표하는 듯 되어버렸다.

    같은 날 진행된 진보신당 기자회견과 민주노총 토론회, 왜 둘은 만날 수 없는가

    22일 민주노총이 “민주노총은 대선 독자후보 방침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민주노총은 “새정치특위 토론회 발제자료는 민주노총의 공식방침이 아니며 의견수렴을 위한 토론용”이라며 “독자후보 방침을 공식 결정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어 바로잡는다”고 했다.

    ‘독자후보’가 민주노총의 공식방침으로 결정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보도자료는 중집 조차 9월 6일에 잡혀 있으니 그 전에 입장이 정해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두고 민주노총이 논쟁 중인 것만은 명징하다.

    언론에 발제문을 뿌리고도 그것이 공식입장이 아니라며 발끈하는 모습은 이 문제가 아주 예민하고 첨예하게 논쟁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공교롭게도 민주노총 새정치특위 토론회와 진보신당의 사회연대 후보 제안 기자회견은 21일 같은 날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두 입장의 공통분모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만나지 못했다. 진보신당의 책임이다. 민주노총은 진보신당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에게 진보신당이 진정 ‘손을 내밀고자’한다면 한 번의 기자회견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인 행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새정치특위 토론회에서 양성윤 부위원장은 △노동자민중 대선 독자후보 옹립 △독자후보 전술운용으로 노동중심의 새 진보정당 건설의 힘 확보 △민중경선제 후보선출 제안했다.

    고민의 결이 다르고 토론회 현장에서도 야권연대나 구체적인 상에 대해 다양한 입장이 제출됐지만 기본적 골격은 진보신당의 사회연대 대선운동의 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진보신당이 ‘당으로서의 기득권을 내려 놓겠다’고 천명한 이상 ‘대선 독자후보 방침’에서 이 둘은 만난다.

    주인공도 시나리오도 없다면 공동제작자부터 구하라

    사회연대 2012년 대선운동에 대해 “얘기되는 후보가 있냐”, “5만 경선인단 모집이 가능하냐”, “구체적인 계획은 어떻냐”라는 질문에 진보신당은 아직 대답할 수가 없다.

    후보는 발굴할 것이고, 경선인단은 최선을 다해 모을 것이며, 구체적 계획은 제안에 응답하는 세력들과 함께 세우겠다는 대답이 아닌 대답밖에 할 수 없다.

    한마디로 영화를 만든다고 제작발표회는 했는데, 주인공도, 자본금도, 시나리오도 없는 상황이란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진보신당이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은 공동제작자다. 최대한 비슷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공동제작자를 찾는 것만이 이 영화를 엎어지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공동제작의 최대 관건은 공동으로 만들고자 하는 영화의 상이다.

    그 영화가 가능한 방식은 △그 이름을 뭐라고 사회연대후보라고 부르든 민중후보로 부르든 ‘노동’ 중심의 독자후보, △한국사회를 신자유주의 체제로 밀어 넣은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비판적 인식 △현 상황에서 한계가 명확한 연립정부론 배제라는 기조에 동의하는 모든 진보세력이 모여 만드는 공동제작이다. 이 기조에 합의된다면 진보신당이 ‘배제된 자들에게 그 문을 활짝 열겠다’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배제되어선 안 된다.

    진보신당 지도부는 하루 빨리 공동제작자를 구해야 한다. 통합진보당 신당권파는 야권연대를 목표로 달리고 있기에 대선후보를 배출하더라도 그 의미가 없으며, 민주노총은 정당이 아니기에 대통령선거가 ‘피할 수 없는 도전인’ 진보신당보다 덜 절박할 수 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지금 가장 목마른 자인 진보신당은 우물을 파야한다. 그 우물은 혼자 팔 수 없는 우물이니 어서 동지를 만드는 것은 당연한 목표다. 아사 직전인 이에게 우물을 같이 팔 동지를 구하는데는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외에 더 많은 조건이 필요치 않다.

    지금 이대로라면, 진보신당은 세력확장에 들뜬 이들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현재 진보신당에 남은 건 진보정치의 혼란 속에 그대로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1만5천명 당원들과 그들이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내는 당비, 그리고 진보신당이라는 그나마 대중들에게 지난 5년간 새겨놓은 인지도 정도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좌파진영에서 이 정도의 대중적 지분을 갖고 있는 세력은 없다.

    개인 활동가들의 모임, 타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으로만 근근히 먹고 살았던 소위 스스로 ‘변혁적 좌파’를 자칭하는 이들에게 진보신당은 좋은 먹잇감이다. 1만 여 명의 당원은 있지만 조직은 허술하고, 사상적 통일성도 떨어진다. 그만큼 흔들기 쉽고 당내 권력을 획득하기도 쉬운 곳이다.

    진보신당 지도부가 지금과 같이 정치적 판단과 행위를 게을리하고 ‘당위’로서 대선 치르기위해 스스로의 말대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면 진보신당의 소중한 자산은 자세력 확장의 탐욕에 들뜬 이들의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할 것이다.

    진보신당이 ‘착한 사람들’로 소멸하는 건 역사의 비극이다

    이 공동제작자를 만드는 과정이 만약에 실패하더라도, 진보신당이 손해 볼 건 없다. 이후 물꼬를 찾는 기반이 될 것이며, 혼란스런 진보정치의 정국의 구경꾼에서 주요인물로 도약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현재 민주노총에는 희망이 없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관료화된 지도부를 두고 대중조직을 판단하는 섣부르고 어리석은 오류는 우리를 후퇴시킬 뿐이다. 더욱이 ‘노동’ 중심 후보를 주장하며 민주노총을 염두하지 않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일이다.

    진보신당의 사회연대 2012년 대선운동 프로젝트가 좌초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진보신당도, 이 진보정치의 위기도 새 길을 찾기를 바란다. 진보신당이 지금 가장 경계할 것은 대선이라는 블록버스터들의 경쟁에서 C급영화 한편으로 만족하는 안일함이다.

    내가 사랑하는 내 당이 비록 지금은 저예산밖에 갖고 있는 것이 없지만 치밀한 기획과 공동제작으로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것은 헛된 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이는 헛된 꿈이어선 안 된다. 한국사회 모든 정치세력 중 가장 올바른 사람들이 그저 ‘착한 사람들’로 소멸하는 것은 한국 정치사의 비극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진보신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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