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 사귀고
    사랑하고 싸우는 사이
    [한국말로 하는 인문학] '사'의 뜻
        2017년 07월 21일 10: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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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사는 일은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 가장 크고 무겁다. 이 말들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ᄉᆞ’와 ‘사’의 사이의 관계를 정리해야 하지만 말들이 서로 오고가기 때문에 깔끔히 떨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시·공간의 틈이 계속해서 벌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된다.

    훈민정음을 보면 ‘ㅏ’나 ‘ㅓ’는 ‘ㆍ’와 ‘ㅣ’의 결합이고 ‘ㅗ’와 ‘ㅜ’는 ‘ㆍ’와 ‘ㅡ’의 결합이므로 ‘ㆍ’는 이론상 앞의 여섯 소리로 모두 뻗어갈 수 있다. 그래서 타임머신이 없는 현재로서는 증명할 방법도 없고 표기와 상관없이 의미가 서로 맞으면 뿌리가 같은 것으로 보고 동을 지었다.(‘동떨어지다’의 반대)

    ‘사’는 단추 따위를 옷에 달기 위해 연결한 실이 풀리지 않도록 휘갑치거나 감친 것이다. ‘사’를 만드는 작업을 ‘사하다’라고 한다. 또 ‘사’가 두 번 반복되고 ‘–ㄹ’이 결합한 ‘사슬’은 서로가 서로를 물고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사이’는 사물이나 시간의 거리, 사람 간의 관계를 나타낸다. ‘사다’는 좀 복잡하여 사이에서 일어나는 맞바꿈을 말한다. 마음이나 미움 같은 보이지 않는 것도 살 수 있는데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러므로 ‘사’는 ‘사슬’, ‘사이’, ‘사다’와 부분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물건을 살 때 우리는 ‘싸다’ 혹은 ‘비싸다’고 하는데 교환가치가 서로 잘 맞는 것을 ‘싸다’라고 한다. 응당한 일을 두고 우리는 ‘죽어도 싸다’, ‘욕먹어도 싸다’, ‘맞아도 싸다’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반대로 거래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 한쪽이 더 보태야 하거나 거슬러 주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데 대가를 더 치러야 하는 쪽에서 ‘비싸다’고 한다. 여기에서 ‘비’는 ‘빚’을 의미한다.

    이렇게 ‘사’는 ‘서로’ 정도로 풀이를 하면 좋을 것 같다. ‘사귀다’는 ‘사괴다’에서 온 말인데 ‘괴다’는 ‘고이다’이다. ‘고이다’는 액체/기체 혹은 사람이 한 곳으로 모이거나 제사나 잔치를 위해 음식을 모아서 봉양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모은 것을 뜻하는 ‘고’에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사귄다는 말은 서로 사람들이 모여 가져온 음식을 먹으면서 사이를 돈독하게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말도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흔히 사용하는 말은 아니지만 물이나 불로 ‘사르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한쪽이 다른 것을 없애는 것을 가리킨다. 소금이나 설탕은 물에 ‘사르르’ 녹아 ‘사라진다’.

    한편 양쪽이 모두 사라지는 경우는 ‘사무치다’라고 하는데 이는 ‘사’와 ‘마치다’를 결합하여 만든 말이다. 서로 마치니 그 얼마나 안타까움이 남겠는가. 부사형은 ‘사뭇’이다. 사르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강한 일을 나타내는 말 중에는 ‘사오다’와 ‘사호다’가 있는데 오늘날 각각 ‘사납다’와 ‘싸우다’이다.

    의태어나 의성어로 알고 있는 ‘사뿐사뿐’과 ‘사각사각’도 서로 닿아서 소리가 나지 않거나 매우 작은 경우를 ‘사뿐사뿐’이라고 하고 소리가 크게 나는 경우를 ‘사각사각’이라고 한다. 만약 ‘사’가 ‘서로’의 뜻이라고 하면 이 말들도 단순히 소리나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분명한 뜻을 가진 말일 것이다.

    [한국말로 하는 인문학] 전 회의 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필자소개
    우리는 아직도 뜻이 서로 맞지 않는 한문이나 그리스-로마의 말을 가져다 학문을 하기에 점차 말과 삶은 동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이는 말의 뜻을 따지고 풀어 책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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