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신의 추억 ④ - 반공 웅변대회 등
        2012년 08월 22일 04: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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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 되어야 한다.”

    이 당연한 말을 그것도 국회에서 대정부질의를 하는 과정에서 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는 등 수난을 당했던 유성환 의원(신한민주당)의 “통일국시발언 사건”이 있었던 해가 1986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이다.

    어른들의 반공 웅변대회 모습

    우리 사회에서 반공이데올로기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확인시켜준 사건이었다. 우리같이 끊임없이 주변사람들을 간첩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 것을 강요받으며 살아온 세대에게는 ‘반공’은 생명과도 같은 그 무엇이었다.

    그렇다면 초딩 시절 우리는 어떻게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국민교육헌장)임을 배우면서 살아 왔을까?

    그것은 교과서에서만이 아니라 선생님이나 외부인사들이 하는 주기적인 반공 강연이나 반공영화 관람 같은 것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해서 배우는 것을 통해 주입되었으며,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반공포스터 그리기, 반공 글짓기, 반공웅변대회 같은 것으로 초딩들의 상상력을 꽁꽁 묶어놓는 작업에 의해 강제되고 있었다.

    70년대에 자주 볼 수 있었던 반공포스터

    나는 그림에는 젬병이었지만, 그래도 포스터는 단순하게 그리는 것이다 보니 단지 그리기가 수월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역시 그림은 희망이 없었던지 초딩 시절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을 뛰어넘을 수 있는 표어 제작 능력조차 없어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나마 글짓기는 좀 하는 편이었는데, 소년00일보같은 데서 주최하는 무슨 글짓기 대회에서 한두 번 상도 탄 적도 있다.

    그래도 역시 초딩 시절의 백미는 반공 웅변대회였다. 나는 목소리도 별로였던 데다 다행히도 뛰어난 반공 글짓기 작품을 만들지 못해 반공 웅변대회에는 나서 볼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반공 웅변대회는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초딩이 뭘 알겠나마는, 연단에 오른 꼬마 연사들이 하나같이 북괴 공산당의 만행을 폭로하며 반공, 승공, 멸공의 결의를 다지는 사자후를 토할 때면 ‘소름 돋는 감동’이 가슴으로 전해오기도 했다.

    꼬마 연사들은 공산당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기 위해 가능한 한 김일성에 대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 대목이 있는데, 한 연사가 “김일성은 겁이 많아 눈은 황소 눈 만하고, 북한 동포를 굶기면서 혼자 다 먹다보니 돼지같이 살이 쪘고….”운운 하던 장면이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며 죽었다고 알려졌던 이승복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도 반공웅변대회의 단골메뉴였다.

    유신시절 해마다 5~6월이 되면 전국은 “대통령상패 쟁탈 전국웅변대회”니 “00어린이 반공 웅변대회”니 하는 것으로 꼬마 반공연사들이 토해내는 열변이 쩌렁쩌렁 울려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초딩이었던 우리는 6․25때 죽은 민간인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그 중 북한 인민군이나 중공군에 의해 죽은 사람보다 한국군이나 미군에 의해 죽은 민간인이 훨씬 많았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당연히 우리는 어른들의 말만 믿고 ‘북괴의 6․25 만행’만을 규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유신정권이 파견한 북파공작원이 북으로 가서 파괴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어찌 알 턱이 있었겠는가. 당연히 우리는 북괴 무장간첩의 만행에 대해서만 폭로하고 규탄하면서 ‘반공 어린이’로 자신을 단련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는 통일문제와 관련해서 남과 북의 합작방식과 같은 평화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북괴는 타도의 대상이었지, 대화와 협상의 대상일 수 없었다. 통일은 ‘북괴를 몰아내고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동포를 해방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박정희 유신정권의 ‘선건설, 후통일’노선에 충직한 소년병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소개
    민주노동당 의정지원단장, 진보신당 동작당협 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친구였던 고 박종철 열사의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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