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은 참혹하고,
    사람들은 아름다운 곳
    [책소개] 「아이언 크로즈」 (김예신/ 박봉남/서해문집)
        2017년 07월 15일 04: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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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하라, 이름 없는 이들이었으되 최고의 노동자였다고

    방글라데시 남부의 항구도시, 치타공. 그곳 해변에는 거대한 선박 해체장들이 있다. 이른바 ‘배들의 무덤’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맨손으로 배를 부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철의 노동자’들이다.

    이 책은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맨몸으로 높이 25미터, 길이 3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쇳덩이를 부수고, 자르고, 녹여내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2009년 한국 최초로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중편부문 대상 수상작인 <Iron Crows(철까마귀)>(원작 박봉남PD)를 그래픽노블로 각색한 작품으로,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을 미화하지도, 동정하지도 않는 정직하고 겸손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갯벌 위에 유령처럼 서 있던 수많은 폐선박들, 코를 찌르는 기름 끓는 냄새와 연기와 폐기물로 뒤덮인 작업장, 가파르게 솟은 철판에 맨몸으로 위태로이 붙어 있는 노동자들, 그들의 쩍쩍 갈라진 맨발과 어깨에 깊이 팬 상처…. 그곳에는 비밀처럼 떠도는 소문이 많았다. 누구는 쇳조각이 뇌를 관통해서 죽었고, 누구는 가스통이 폭발해서 시신도 못 찾았고, 누구는 1톤짜리 철판을 나르다가 발목이 잘렸다는 이야기. 그러니 그곳은 ‘산 자들의 무덤’이기도 했다.

    이토록 힘들고 위험한 노동을 어떻게 견뎌내느냐 물었을 때 그들은 모두 같은 대답을 했다. “이 일은 신이 주신 선물이고,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라고. 땀과 기름이 뒤섞이고, 살과 쇠가 부딪히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초대형 선박을 해체하는 것이 이들에겐 빈곤을 벗어나기 위한 최대한의 투쟁이자, 운명을 향한 목숨 건 저항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한 시대를 만들어냈던 빛나는 노동, 호모 파베르의 위대함 아니겠는가.

    노동은 참혹하고, 사람들은 아름다운 곳

    1965년 강력한 사이클론이 치타공 해안을 강타하면서 한 선박이 해변에 좌초한 ‘우연한 사건’이 이 모든 역사의 시작이었다. 철광석이 전혀 매장되어 있지 않은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게 ‘거대한 고철덩이’인 폐선박은 ‘신이 내린 선물’이었으니, 이후 1980년대를 거치면서 치타공은 전 세계 선박해체산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선박해체소는 지금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데, 현재 100여 개 사업장에서 5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되어 있으며, 연관된 사업(제련소, 재활용 가게 등)까지 포함하면 약 15만 명이 선박해체산업으로 먹고산다.

    노동자 대부분은 젊은이들인데 18~22세 사이가 약 4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리고 18세 미만의 노동자들이 10퍼센트에 이른다. ‘신이 내린 해변’이라 불리는 시탈푸르 해변의 국도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거주지와 소규모 제련소, 재활용 가게 등이 분포해 있다. 이 국도를 따라 선박에서 재활용된 철을 비롯해 수많은 재활용 물자가 전국으로 운반된다.

    선박해체소에 온 폐선들은 완벽하게 해체되어 100퍼센트 재활용된다. 철은 잘라서 제련소로 보내고, 엔진은 소중히 뜯어내어 공장에서 사용한다. 목재와 낡은 전선은 물론이고 전구 한 알까지 빼낸다. 폐유도 소중히 모아 새 기름에다 섞어서 판다. 레이더, 구명보트, 심지어 화장실의 변기와 세면기마저 뜯어내 중고 물품으로 판매된다. 폐기된 선박에서 버리는 것은 딱 한 가지다. 화장실에 있는 사람의 똥. 그야말로 완벽한 재활용(Recycling) 과정이다.

    “1982년에는 6천 톤짜리 배를 부수는 데 1년 3개월이 걸렸어. 그런데 1992년에는 4만 톤짜리 배를 6개월 만에 끝내버렸지. 어떤 때는 2만 톤 배를 23일 만에 흔적도 없이 없애버린 적도 있고. 그런데 말이야,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 이 뻘밭이 피바다가 됐었으니까.”

    한 노동자의 말처럼 치타공 해안의 선박해체소에서는 매년 20여 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다(사실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합치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리고 10~20년 전만 해도 일하다 죽은 이가 있으면 그냥 바다에 버려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한 사람도 찡그리는 이가 없다. 단순하고 순진한 노동자들, 카메라만 대면 모두가 웃는다. 그리고 하루 1~2달러를 벌기 위해 온몸을 내던지며 거대한 폐선을 뚜벅뚜벅 잘라낸다.

    러픽, 벨랄, 악달, 알람, 모닐… 그곳에서 만난 노동자들을 기억한다. 숙련공 러픽은 늘그막에 아들을 얻었고, 수줍은 미소로 본인이 장가를 갔다는 고백을 했던 벨랄의 가슴 시린 사연은 여전히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 유난히 자부심이 강했던 악달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갔고, 몇몇 노동자들은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폐선박의 커다란 철판 위에 입체파 작품 같은 육감적인 그림을 그리던 모닐, 폐유와 석면덩이가 널브러진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맨발로 일하고 까불고 밥을 먹던 열두 살 막내 에끄라믈…. 그들의 선한 웃음이 그립다.

    “때로 그렇게 가난은 슬프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철까마귀들도 철사로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데 하물며 사람인 바에야, 아무리 척박한 곳이라도 버티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치타공에서 노동자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들의 육체였다. 노동으로 단련된 탄탄한 근육, 어깨에 깊게 팬 상처들, 검게 이글거리는 피부, 경이로운 육체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것이야말로 한 시대를 만들어냈던 빛나는 노동이었다고. 그 노동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 나의 작은 다큐멘터리와 이 그래픽노블이 조금이마나 기여를 한다면 행복할 것 같다.” _박봉남(원작자)

    “요즘 인기가 증가하고 있는 만화 저널리즘 장르다. 작화 스타일과 칸 분할, 견고한 대사, 까마귀의 비유가 매우 뛰어나다.” _ 조앤 힐티(메릴랜드 예술대학, 그래픽노블 독립 편집자)

    “이 고단한 삶들을 서술해가는 내레이션이 매우 강렬하다. 까마귀 비유도 전체 이야기를 아주 잘 감싸고 있다. 그림에서 조 사코(Joe Sacco)의 향기가 난다.” _하이디 맥도널드(《퍼블리셔스 위클리》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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