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한국말로 하는 인문학] 말의 뜻
        2017년 07월 14일 03: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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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속담에는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에서는 소리가 비슷할 수 있을 수 있지만 뜻이 다를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말하거나 들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하지만 정작 ‘아’와 ‘어’는 매우 유사한 뜻을 가지고 있으며 작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 말조차도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님에 깜짝 놀란다. ‘아’나 ‘어’는 모두 ‘갈라져 벌어진 것’을 공통적으로 가리킨다. ‘아귀’와 ‘어귀’의 관계처럼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지만 보통 ‘아’는 조금만 열려있거나 닫힌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어’는 열려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경우를 나타낸다.

    먼저 ‘아귀’는 옷의 옆을 터놓은 부분과 같이 사물의 갈라진 부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입이나 아궁이를 가리키는 옛말이기도 하였다. 입을 ‘아가리’라고도 부르며 물고기가 숨을 쉬기 위해 열리고 닫히는 부분은 ‘아가미’라고 한다. 또 ‘아귀다툼’이라는 말이 있는데 서로 입으로 싸우는 모습을 나타낸다. 입뿐만 아니라 손에서도 쥐는 부분을 ‘손아귀’라고 부른다. 또 상처가 나서 찢어진 부분에 새 살이 자라서 상처가 서로 붙는 것은 ‘아물다’라고 하고 난방을 위해 일부러 구멍을 낸 ‘아궁이’는 식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구멍을 막아둔다.

    반대로 ‘어귀’는 드나들기 위해 열려 있는 부분을 말한다. 그래서 마을이나 동네의 어귀는 한자어로 동구(洞口),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은 강어귀를 하구(河口)라고 하기도 했다. ‘어물다’는 ‘아물다’와 반대로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가 ‘어설프거나 어정쩡한 것’을 뜻한다. 특히 ‘어벙하다’는 어의 안이 벙벙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우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아’와 ‘어’는 그 뜻의 뻗어나감이 매우 다채롭다. ‘아’는 ‘안’으로 ‘어’는 ‘언’이나 ‘얼’로 발전해 나간 것으로 보이는데 그 활용이 너무 방대하여 여기에서는 다룰 수 없고 별도의 지면을 이용하여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렇게 ‘아’와 ‘어’를 이용한 말을 모아 갈래를 나누고 살펴보면 우리말이 얼마나 정교하게 뜻을 구분하고 이에 따라 추상적인 개념을 철두철미하게 조직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말의 뜻을 잃어버린 현대의 한국 사람들은 우리가 소리글자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중국의 그림글자와 비교하면서 큰 착오를 일으키는 것 같다. 일부에서는 ‘(우리말에는 뜻이 없으니) 아무 말이나 사용해서라도 서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필자소개
    우리는 아직도 뜻이 서로 맞지 않는 한문이나 그리스-로마의 말을 가져다 학문을 하기에 점차 말과 삶은 동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이는 말의 뜻을 따지고 풀어 책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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