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졸한 어머니의 샌드위치
    [밥하는 노동의 기록] 고귀한 노동?
        2017년 07월 14일 09: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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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하는 동네 아줌마”라는 등의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 발언으로 한동안 노동계와 정치권이 시끄러웠다. 이 의원의 노동 비하 발언이 비단 그 한 사람의 문제는 아닐 게다. 기득권과 권력자, 엘리트 등 소위 가진 사람들이 노동, 노동자를 어떻게 보는지 그 일면이 드러났을 뿐이다. 이 사건과 별개로 밥하는 노동, 엄마의 노동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꾸준히 글을 올리는 독자 서정명씨에게 부탁해 ‘밥하는 노동의 기록’이라는 이름의 연재를 새로 시작한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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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항상 바쁘고 힘든 사람이었다. 엄마는 주중에는 돈을 벌었고 주말에는 집을 치웠다. 돈을 버는 주중의 아침 화, 목요일 아침엔 냉장고 청소를 하고 월, 수, 금요일 아침엔 화장실 청소를 한 후 출근했다. 토요일 이른 오후에 직장에서 퇴근한 엄마는 집으로 본격 출근했다. 찬장을 닦고 천장을 닦고 장갑을 끼고 의자에 올라가 샹들리에 구슬 하나하나를 닦았다. 목장갑을 끼고 윈덱스를 든 엄마가 고개를 치켜들고 샹들리에를 닦고 있으면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리는 미칼란젤로가 겹쳐 보였다.

    방학이 되면 엄마는 더 바빴다. 학기 중에 미처 손이 가지 못한 창틀과 베란다, 창고, 옷장 속을 다듬고 나와 내 동생의 방학숙제를 점검하고 자신의 다음 학기 교안을 준비했다. 그 와중에도 엄마는 뭔가를 계속 배웠다.

    내가 기억하는 처음은 뜨개질이었다. 저녁 설거지를 마친 엄마는 우리를 외할머니에게 맡겨놓고 털실 바구니를 끼고 시장통 수예점에 가서 가디건이나 스웨터를 떴다. 그 후로 엄마는 우리와 함께 미술학원에 다녔고 교육공무원 대상 보수교육 과정에 대부분 출석했다. 방통대에 등록한 적도 있는데 교육장이 멀어 포기했고 대신 다음 해부터 집 근처에 있는 서울교육대의 계절대학 과정을 수강해 학사학위 하나를 더 받았다. 그 몇 학기 동안에도 가스렌지 상판과 렌지 후드는 반짝거렸고 냉장고, 화장실, 선반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우리에게는 ‘맛은 그닥 없었으나 양분을 맞춘’ 간식과 식사가 꼬박꼬박 제공되었다.

    자녀의 학원을 알아보고 태워다 주고 태워오는 동안에도 엄마는 돈을 벌었고 때때로 도배를 했고 화장실은 깨끗했고 보일러 기름이 떨어진 적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매일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갔다. 주말이 되면 엄마는 도시락 반찬을 대량으로 생산했다. 한 달에 몇 번, 골프 안 간 아버지가 합세했으나 대부분은 엄마의 몫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밥 차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해놓았다. 김밥은 대부분 아버지의 음식이었으나 샌드위치는 오롯이 어머니의 음식이었다. 마요네즈를 바른 식빵 사이에 스팸, 오이, 케챱을 바른 지단, 상추, 슬라이스 치즈를 겹겹이 확실하게 쌓아올린 엄마의 샌드위치는 명쾌하며 고졸했다.

    학교비정규직 파업을 비웃는 사람들과 매번 사람 속을 뒤집는 이언주의 발언이 이어지는 요 며칠을 견디기 힘들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밥하는 아줌마들’은 정말 ‘어머니’와 같은 의미일까? 또한 이언주를 비판하는 ‘정치하는 엄마들’의 성명 속의 고귀한 노동은 비단 돌봄노동 뿐일까?

    나는 밥하는 노동도 하고 돌보는 노동도 하지만 내 노동이 더 고귀하다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만 이 사회를 지탱하는데 나의 노동이 매우 쓸모 있다 생각하며 이에 합당한 대가를 원하는 것뿐이다. 단순히 표현의 문제라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엄마’라는 말이 ‘고귀한’이란 수사와 함께 쓰이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화나는 것은 나의 고귀한 노동이 밥하는 동네 아줌마의 소일거리로 폄하되어서가 아니라 아줌마라는 호칭을 후려치고 노동자를 갈라치려는 태도가 괘씸해서다.

    나의 노동이 고귀하니 낮추어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나의 노동도 다른 노동과 동일하며 모든 노동은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차곡차곡 쌓은 샌드위치는 파는 사람의 결정에 따라 연어니 달걀이니 치즈니 햄이니 하는 이름을 받는다. 그렇다고 빵 사이에 연어만 달걀만 치즈만 햄만 들어간 것도 아니다. 엄마는 밥만 하지도 돌봄만 하지도 않는다. 아이 낳아 돌보는 시민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고귀한 돌봄과 밥 속에 가두고 다른 욕망을 다 거세해버리는 세상이 참 지겹다.

    치즈, 상추, 돈까스, 토마토, 달걀부침, 양파를 넣은 샌드위치. 그 무엇도 아닌 그냥 샌드위치.

    필자소개
    독자. 밥하면서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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