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급 히어로의 성장
[영화 이야기] ‘스파이더맨 : 홈커밍’
    2017년 07월 13일 10: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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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의 어마어마한 건물 붕괴 사고 현장. 공공의 안전과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한 재활용업체와 노동자들이 사고 처리 현장에 들어갑니다. 노련한 현장감독이기도 한 업체 사장과 그가 고용한 노동자들은 뉴욕시와 폐기물 수거와 재활용에 관한 계약을 맺은 듯 차근차근 잔해를 치우기 시작하죠.

그들은 이번 재난으로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는 것을 통해 상당한 이득을 얻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사업을 위해 트럭도 새로 장만하고 장비도 새로 주문을 했을 것이고 새로운 노동자들을 고용했겠죠. 하지만 이들은 정부와 밀약을 맺은 초국적 군수자본이 이권을 차지하면서 이 사업에서 강제로 밀려나게 됩니다.

대기업의 횡포 앞에 작은 재활용업체 고용주는 그가 고용한 노동자들과 함께 길거리로 나앉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이죠. 아마도 한 명 한 명이 각각의 가족 경제를 부양하고 있을 이 고용주와 노동자들은 그렇게 치타우리 종족의 침공과 그를 막아내기 위한 어벤져스의 전투(어벤져스 1편)로 난장판이 된 뉴욕시의 재건 사업에서 배제되고 맙니다.

무산계급 히어로 VS 무산계급 빌런

외계인의 침공으로 인한 재난 현장이라는 점만 빼면 이 오프닝은 소시민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의 초입부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벌쳐’라는 스파이더맨의 숙적 중 한 명인 슈퍼 빌런의 탄생기입니다.

벌쳐라는 악당은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들과 자신의 가족을 경제적 낙오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슈퍼 빌런이 되는 길을 택하게 되죠. 벌쳐는 어벤져스 1, 2편, 캡틴아메리카 2, 3편이 진행되는 동안 슈퍼 히어로와 빌런들의 격돌을 통해 발생한 여러 부산물들을 시체 수집하듯(벌쳐는 시체를 주로 먹고 사는 대머리 독수리죠) 긁어모아 조악하지만 강력한 무기들을 만들어 범죄자들에게 팔아넘기며 생활하는 생계형 악당입니다.

그에겐 책임져야 할 직원들이 있고 자신의 범죄수익으로 겨우 유지할 수 있는 미국 턱걸이 중산층 가족들이 있습니다. 물론 벌쳐는 자신의 사업적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입이 싼 부하직원을 잿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무지막지한 사이코패스이기도 합니다만 자신의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고용주로서의 책임감을 가진 중소기업 사장이고 자상한 남편, 아빠의 역할을 다하고 싶은 평범한 가장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슈퍼 빌런에 대한 소시민적인 설정은 영화에 묘한 심도를 부여합니다. 아마도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등장한 빌런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악당인 이 블루컬러 빌런에 맞서는 히어로가 대표적인 노동계급 히어로(이 작명은 제가 붙인 것이 아니고 아이언맨인 토니 스타크가 존 레논의 ‘Working Class Hero’라는 곡을 패러디해 스파이더맨에게 붙인 별명입니다) 스파이더맨이라는 점 때문에 생기는 긴장감 때문이겠죠. 간단히 얘기하면 이번 ‘스파이더맨:홈커밍’은 프롤레타리아 히어로(스파이더맨)가 부르주아 히어로(아이언맨)의 조언을 받아 프롤레타리아 빌런(벌쳐)과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금수저 아버지 VS 흙수저 아버지

또 다른 측면에서 이번 MCU 버전의 스파이더맨은 청소년 피터 파커의 성장기이면서 스파이더맨이라는 영웅이 각성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전 세대의 스파이더맨인 샘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3연작 또한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의 고독한 성장기이기도 했습니다만 이번에는 소년의 성장이라는 모티브와 미숙한 영웅이 완성돼 가는 과정이라는 두 가지 성격의 성장담이 뒤섞여 있습니다.

피터 파커는 아이언맨이 상징하는 화려한 어른 히어로들의 세계를 동경하는 소년입니다. 그가 처음으로 등장했던 시빌워의 공항 전투 시퀀스는 그 어른의 세계를 잠깐 맛본 일탈의 경험이었습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소년의 욕망은 자신의 히어로로서의 역량을 유사 아버지인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에게 인정받아 어벤져스의 멤버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조급함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서의 액션 장면들은 모두 피터 파커의 조급증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기능합니다.

홈커밍에 대해 액션이 화려하지 않다고 비판하는 것은 어쩌면 이 영화의 주제상 무의미한 비판일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히어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미숙한 소년이지만 어른의 흉내를 내고 싶은 아이기 때문이죠.

이러한 미숙한 소년에게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닥치게 됩니다. 바로 벌쳐라는 악당의 등장입니다. 이 악당은 피터 파커 자신이 동경하는 유사 아버지 아이언맨의 과보호와 통제라는 교육방식의 반대편에 서있는 또 다른 유사 아버지입니다. 벌쳐는 피터를 동등한 인격으로, 자신의 적수로 인정하고 그에게 ‘세상이란 말이야 그렇게 샤방샤방하지 않아’라고 어른의 세계를 알려주는 아버지이죠.

다 아시는 것처럼 스파이더맨은 아버지란 존재를 모르고 숙모의 손에 길러진 소년입니다. 그래서 저 유명한 숙부의 임종을 지키며 ‘큰 힘에는 큰 책임이..’어쩌고 하는 그 스파이더맨의 대표 장면을 삭제한 판단은 이제 관객들이 식상해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이 금수저 아버지와 흙수저 아버지의 대립이라는 소년의 성장을 위한 설정이기도 합니다.

소년의 성장, 유예된 실패

소년은 아이언맨을 통해 수트나 코스튬이 아닌 피터 파커라는 본인의 정체성이 스파이더맨이라는 히어로의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배우기도 하고 벌쳐를 통해 사적 욕망과 히어로의 사명이 충돌할 때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배우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의 실수와 좌충우돌은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다만 그 모험과 성장의 끝에서 보여준 스파이더맨의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한 선택은 소년이 ‘어른’이 아닌 ‘조금 더 큰 소년’이 됐음을 증명하는 흐뭇한 상징입니다.

피터 파커가 거절한 그 번쩍번쩍한 수트가 상징하는 것은 어벤져스 멤버로서의 명예와 자부심이기도 하지만 어른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 버려야 할 노동자계급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장면은 어찌 보면 퀸즈의 무산계급 소년이라는 피터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시민의 곁에 남겠다는 노동계급 영웅의 각성 장면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한시적인 각성 장면은 매우 불안한 결론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결론을 위해 소년은 블루컬러 노동자 아버지를 제압하고 거대 군수 자본가 아버지의 인정을 받았으니까요. 그래서 이 보수적인 스토리의 마지막이 소년의 거절로 끝난다는 것을 소년성의 승리로 읽어내는 것에는 무리가 있을 듯합니다. 오히려 유예된 실패일 뿐이죠.

물론 이 영화의 가장 큰 목적은 스파이더맨을 MCU에 안전하게 착지시키는 작업일 것입니다. 아마도 속편이나 다른 MCU의 영화에서 스파이더맨은 어벤져스의 일원으로 활약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소년은 어른이 되겠죠. 그때 약간은 서운한 마음이 들 것 같습니다. 헐리웃과 마블과 디즈니는 이 소년이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프롤레타리아의 영웅으로 남아있길 원치 않을 것 같기 때문에요.

필자소개
공공운수노조 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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