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큰롤 발상지를 가다①
    [텍사스 일기]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2017년 07월 10일 10: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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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회의 글 [텍사스 일기] 미국의 총기문화③

    1.

    고등학교 때 빽판(해적판 LP음반) 열심히 듣는 친구가 있었다. 비틀스에서 롤링 스톤스, 심지어 악마 분장하고 날름거리는 혓바닥 붉게 칠한 헤비메탈 밴드 키스(Kiss)까지(사진 1). 스스로 팝송 전문가라 으스대며 가수들 이름 읊어대던 녀석 얼굴이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록을 몰랐고 큰롤은 더욱 몰랐다. 우선 음반 들을 수 있는 전축이 집에 없었다. 무엇보다 서양 대중음악 자체에 관심이 전무했다. 그런데도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로큰롤(rock’n’roll)이다. 왜냐고?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시카고로 향하는 도중 우연히 들른 한 도시에서 스스로도 깜짝 놀랄만한 자각을 했기 때문이다.

    헤비메탈 밴드 ‘키스’

    2.

    물을 흠뻑 젖은 채 나이아가라 폭포 구경을 마친 시각이 늦은 오후, 북적대는 싸구려 중국음식점에서 저녁 먹고 차의 시동을 건 시각이 9시 15분. 폭포에 인접한 도시 버펄로에서 시카고까지는 I-90 고속도로로 9시간 정도 걸린다. 밤새 이렇게 오래 운전하기는 어렵다. 중간에 하루 묵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차를 세우고 구글맵에서 잠 잘 도시를 찾아본다. 중간 지점쯤에 톨레도(Tolredo)란 지명이 보인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한 달 전 수돗물에서 독성 균이 검출되어 사람이 죽는 사고가 났단다. 급포기.

    더 서쪽으로 눈을 돌려보니 들어본 도시 이름이 보인다. 클리블랜드다. 금방 머리에 떠오르는 건 추추 트레인(choo-choo train). 기차 경적 소리를 뜻하는 ‘Choo-Choo’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지금은 텍사스 레인저스 팀에서 활약하는 야구선수 추신수 선수 말이다. 부산고 시절 초고교급 투수이자 강타자였던 그를(사진) 계약금 135만 달러에 스카웃한 팀은 시애틀 매리너스. 추신수는 5년간 마이너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다가 2005년에야 비로소 메이저리그에 데뷔한다.

    고교시절의 추신수

    하지만 불행하게도 같은 팀에 최다 안타 행진으로 그 당시 메이저리그를 뒤흔들던 스즈키 이치로가 있었다. 같은 우익수 포지션이었다. 대타 혹은 대수비로 출전하던 추신수가 결국 미래를 찾아 1년 만에 트레이드된 곳, 그리고 마침내 기량이 만개한 팀이 바로 이 도시의 프랜차이즈 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였던 게다(사진).

    메이저리그의 추신수

    도로가 매우 어둡다. 대부분 고속도로에 가로등이 없으니 길이 어둡다는 건 교통량이 없다는 뜻이다. 미국의 주간(州間, inter-state) 고속도로는 동서 횡단이 남북 종단에 비해 확실히 차량 흐름이 적다. 물류 흐름과 사람의 이동이 주로 상하로 이뤄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고 보니 영호남 사이에 교류가 적고 주로 아래 위로 통하는 한국과 비슷한 면이 있다. 클리블랜드 가는 길에는 오대호 가운데 맨 아래 위치한 이리호수(湖水)가 있다. 하지만 캄캄한 밤이니 호수 구경은 언감생심, 그저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서 고요한 도로를 달리고 달린다. 그렇게 클리블랜드 교외의 모텔에 도착한 것이 새벽 1시.

    3.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원래 계획은 부리나케 다시 시카고를 향해 떠나는 것. 하지만 환한 햇살을 접하니 잠만 자고 떠나는 게 아쉽다. 텍사스를 떠나 워싱턴, 뉴욕, 보스턴을 거치는 두 주 동안 몸과 마음이 지치기도 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하루만 더 묵기로 했다. 가보고 싶은 명소를 하나 발견했기 때문이다.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는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진 도시가 아니다. 우리말 관광안내 책자에도 클리블랜드 소개는 없다. 혹시 미국 프로농구(NBA)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다. 작년 NBA에서 우승했고 올해는 준우승한 <르브론 제임스>의 원맨 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본거지니까(사진). 하지만 일반 한국 여행자들은 나이아가라를 구경한 다음 바로 시카고로 직행하는 게 보편적 코스다(혹은 그 역순).

    르브론 제임스

    클리블랜드 도심의 인구는 2010년 기준으로 40만 명. 생각보다 작다. 그렇지만 신시내티, 콜럼버스와 함께 오하이오 주에서 가장 큰 3개 도시에 속한다(서로 자기들이 제일 큰 도시라 다툰다고 한다^^ 좁은 땅에 복닥대며 살아가는 한국 사람은 이럴 때 자부심을 느껴야 하나?^^). 다운타운으로 차를 몬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홈구장인 프로그레시브 필드(Progressive Field) 뒷편에 자리 잡은 도심은 그저 썰렁하다. 비슷한 규모의 도시들에 비해 유난히 활기가 없고 쇠락한 분위기다. 내가 1년 동안 사는 텍사스 오스틴은 이보다 인구가 많기도 하지만, 들썩들썩하는 도시의 에너지 자체가 다르다. 말로만 듣던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분위기가 짙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게다.

    영어로 녹을 의미하는 러스트. 그러니까 녹이 쓴 지역이란 뜻의 러스트 벨트는 중북부 5대호 주변의 쇠락한 공장지대를 말한다. 오하이오도 그 일원이다. 19세기 말 이래 이 지역은 자동차·철강·기계·석탄·방직 등 이른바 굴뚝산업의 최정예 요새였다. 2차 대전이 끝난 5년째인 1950년도에 이들 지역 노동자 고용률이 미국 전체의 43%를 차지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레이건 등장 이후 금융자본주의 확산과 미국 공장들의 해외이전으로 제조업이 기울어지면서 인구가 줄어들고 범죄율이 치솟는 퇴행지대로 변해버린 게다. 클리블랜드의 경우 2000년대 이후 인구가 가장 빨리 줄어든 미국 10개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다.

    최근 몇 년간은 신산업 유치로 도시 활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예를 들어 문재인 새 정부의 핵심사업 가운데 하나가 ‘도시재생 뉴딜’인데 그 모델이 바로 클리블랜드다. “클리블랜드 모델”이라 불리는 이 정책은 지역 원주민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이를 통해 자본 집중으로 비싼 월세를 감당 못하는 원주민이 도심에서 다른 곳을 밀려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막는 유효한 방안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웬걸, 직접 가서 보니 뉴스와 팩트(fact)는 많이 다르다. 도시 북쪽으로 요트 몇 척 둥둥 떠 있는 호수와 도심에 높은 빌딩 몇 개가 우뚝 솟아있을 뿐. 아무리 평일이라도 그렇지, 거리를 왕래하는 사람조차 드물 정도로 분위기가 썰렁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군계일학이 없을 손가. 숙소의 도시 안내 책자에서 우연히 발견한 바로 그곳, 로큰롤의 발상지가 이 도시에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로큰롤 명예의 전당 박물관, The Rock and Roll Hall of Fame and Museum> 말이다(사진).

    로큰롤 박물관 표지판

    4.

    로큰롤이라… 사전에서 로큰롤(rock ‘n’ roll)을 찾아보면 미국의 대중음악을 그렇게 통칭한단다(영국은 포함 안 되냐고? 물론 된다. 전설의 스타 비틀즈나 롤링스톤즈가 다 영국 출신이니.) 사람들이 즐겨 듣는 대중음악이야 그 전에도 있었다. 예를 들어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 된 1920년대에는 재즈가 최고 인기였다. 당대를 재즈의 시대라 불리게 할 만큼 문화경제적으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반면에 로큰롤이란 이름은 1950년대 이전에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흑인음악 블루스와 재즈, 컨트리 음악, 가스펠 등이 수십 년간 서서히 섞여가면서 또는 격렬히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진화한 것이 로큰롤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컵라면으로 아침을 떼우고 느지막이 숙소를 나선 것이 오후 1시. 미국 3대 세프(chef)라는 마이클 사이먼이 운영하는 롤리타(lolita)란 유명 레스토랑이 다운타운 근처에 있다(사진). 검색을 해보니 그곳에서 음식 싸게 파는 해피아워(happy hour)가 5시부터 6시 반까지란다. 옳지 박물관 가서 서너 시간 휙 둘러보면 되겠다. 그리고 맛있는 밥 먹으러(사진에서 보듯이 자그마한 식당인데, 명성대로 가격 대비 맛이 탁월했다. 클리블랜드 가실 분은 꼭 한번 들러보시기를^^) 휙 달려가자, 이렇게 계산을 하고 숙소를 나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평소에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던 로큰롤에, 그 폭발하는 음악 박물관 분위기에 나는 오금이 저릴 정도로 감전되어버린 것이다. 나중에 밥 먹으러 가는 발걸음이 차마 떼어지지 않을 정도로 임팩트를 받은 게다.

     

    5.

    박물관 주변은 아주 몰풍경하다. 주위가 온통 평범한 회색 콘크리트 구조물로 둘러싸여 있다(사진). 하지만 멋지게 펄럭이는 깃발을 거쳐 벽을 돌아서면 완전히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푸른색 유리로 천장을 만든 거대한 피라미드형 건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사진) 건물 앞의 광장 바닥에 로큰롤 광(狂)팬들이 기증한 벽돌장식이 박혀있다(사진). 종일 구경하는 비용이 22달러.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렇게 입장료를 지불하면 파란색의 팔목띠를 준다(사진).

    입구를 지나면 에스컬레이터가 지하 1층으로 바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곳에 미국과 전 세계의 전설적 로큰론 스타들을 기념하는 초대형 전시실이 있다. 그리고 2층부터 5층까지에 <명예의 전당 헌액 가수> 영상관, 무대 공연 재현 공간 등을 설치해 놓았다. 건물 구조가 묘하다. 매표소가 있는 1층 로비가 이들 양대 공간을 완전히 단절하도록 설계해놓은 거다. 그래서 지하를 구경하고 나오면 다시 표 검사를 해야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왜 이렇게 만들어놓았을까.

    깊은 뜻이 숨어있다. “너 로큰롤 관심 있지? 이곳을 구경 다 하려면 시간이 엄청 걸려. 그러니까 1층을 통해 건물 밖으로 편하게 나갈 수 있어. 그렇게 왔다 갔다 하고 밖에 나가 밥도 사먹고 하면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기 바래. 들어올 때 팔목 띠 보여주고”라는 의미였던 게다.

    그만큼 볼 게 많다. 당신이 단 한 소절이라도 팝송 가사를 흥얼거릴 줄 안다면, 한나절 구경으로는 부족하다. 만약 미국 대중음악을 매우 좋아한다면? 하루로는 안 된다. 다음날 또 다시 와야 한다. 무심코 들른 방문객의 혼을 쏙 잡아 빼는 매력이 넘치는 공간. 그곳이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었던 것이다. 여기는 로큰롤의 성지(聖地)니까!

    필자소개
    동명대 교수. 언론광고학. 저서로 ‘카피라이팅론’, ‘10명의 천재 카피라이터’, ‘미디어 사회(공저)’, ‘ 계획행동이론, 미디어와 수용자의 이해(공저)’, ‘여성 이야기주머니(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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