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마모토 요시타카와 전공투
    그 60년대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
    [책] 「나의 1960년대」(야마모토 요시타카/ 돌베개)
        2017년 07월 08일 11: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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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1960년대

    ―장래를 촉망받던 물리학도는 왜 투쟁에 뛰어들었고, 대학사회를 떠나 재야로 향했나

    왜 ‘나의 1960년대’인가? 『나의 1960년대』의 저자 야마모토 요시타카에게 그 시간은 안보 투쟁(미일안보조약 개정 반대 투쟁)이 한창인 캠퍼스에 갓 입학했던 1960년부터, 베트남 반전 운동, 전공투 운동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끝에 박사과정을 중단하고 학교를 떠난 1969년까지의 십 년이다.

    수학과 물리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도쿄대에 입학해, 학생운동 중에도 줄곧 학문에 대한 추구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면서도 국책 엘리트 대학이라는 시스템 자체와 그 안에서 공부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어 마침내는 대학사회와 결별하기까지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는 어쨌든 엄청나게 뛰어난 사람이라서 모두가 우러러봤다. 이대로 쭉 가면 도쿄대 이론물리를 짊어질 인물이라는 데 대해선 우리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동일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 그가 운동에 뛰어든다는 건 장래를 버린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커다란 쇼크였다. 야마모토가 나왔기 때문에, ‘이건 [섹트 등의] 직업적 혁명가가 지도하는 학생운동이 아니다’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408쪽)

    ―사이슈 사토루(생물학자, 1968년 당시 도쿄대 교양학부 조수)

    야스다강당의 함락과 전공투 운동의 종결 이후로 그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미디어와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뒤로한 채, 입시학원 물리과 강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과학사 관련 저술 작업과 전공투 운동 관련 자료집 편찬 등에 몰두해 왔다.

    이른바 ‘운동권’ 출신들의 흔한 행보인 주류화와 현실정치 참여, 각종 사회ㆍ문화 문제들을 둘러싼 대중투쟁이나 의회 안팎의 정당정치를 추구하지도 않았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학계의 일원으로 남지도 않았으며, 정치평론 등으로 매스컴에 이름을 팔지도 않았다. 본래의 급진성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철저히 음지에 몸을 두었던 그는 왜 거의 반세기 만에 운동을 회고하는 책을 내게 되었을까. 그 이유 속에 세계적 1968의 흐름 속에 있던 일본 전공투가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의 핵심이 담겨 있다.

    그들의 뜨거운 1960년대를, 그리고 이제는 노년이 된 저자와 동료들의 삶을 관통해 온 것은 대학에 대한 개혁과 해체의 요구를 넘어 전후 일본이라는 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자기 자신들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었다.

    전공투는 무엇을 문제 삼았나

    ―자극적 이미지 뒤에 가려져 있던 전공투에 대한 생생한 증언

    전공투라 하면, 한국에서는 전공투는 이후 ‘적군파’로 이어지는 과격한 극좌 학생운동의 대명사로, 또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작품들에서 묘사되는 특정 시대의 사회문화적 상징 같은 것으로 연상되곤 한다.

    60년대의 일본 대학생들이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도쿄대에서는 학생들이 야스다강당 건물을 점거하고 약 7개월에 걸쳐 학교와 대치하며 농성을 벌인 일이 특히 유명하다. 이에 대해 일본 내의 각종 매체는 진압과정 중계나 후대 세력의 폭력성에 초점을 맞춘 선정적인 보도로 일관해 왔고, 당사자들은 지난 세월 극히 말을 아껴 왔다. 그 자극적인 이미지 이면에서 정말로 전공투 운동의 실제가 어떠했는지, 그들이 자기 시대 속에서 문제 삼은 것은 무엇이었고 어떠한 지향점을 꿈꾸었는지를 제대로 알기는 어려웠다.

    전공투 운동의 상징적 존재이자 도쿄대 농성투쟁의 주도자였던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당시의 경험을 ‘지금 여기’의 시점에서 회고하며 자신들이 품었던 근본적인 이상과 그 현재적 의미를 다각도에서 서술하고 있다.

    도쿄대 투쟁은 지금 회고하면 전술적인 문제가 여러 가지 있기는 했지만 (…)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 하나는 바리케이드 안에 해방공간을 형성하여 일시적이나마 학생 간의 새로운 공동성을 창출하고 보잘것없으나마 자기 권력으로 한 걸음을 내디딘 점, 그리고 또 하나는 과학 혹은 과학기술에 대해, 그리고 그 진보에 대해 그것이 절대적인 선이라는 메이지 이래 일본의 근대화를 뒷받침하고 대일본제국이 패배에도 상처 없이 계승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대중적인 수준에서 시작한 점에 있다. (128쪽)

    요컨대 60년대 전공투 운동이란 고도경제성장과 대중소비 시대의 일본에서 전후 민주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젊은 세대가 그 ‘전후 민주주의’의 모순적 현장이었던 대학의 개혁과 해체를 내걸었던 투쟁, 동시에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여전한 ‘총력전 체제’적 국가에 대한 본질적 의문을 제기하고 타파해 나가려 한 투쟁이었다.

    ‘대동아전쟁 승리’의 자리에 ‘경제성장’이 들어왔을 뿐 국가는 여전히 국민을, 특히 젊은이들을 동원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대학은 취업 교육과 산학 협동 추구의 장으로 바뀌어 갔고 패전 이전부터 이어진 권위주의 체제는 계속 유지되는 한편으로 학생들은 교육을 거쳐 체제의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학생들은 그러한 기성 대학제도에 반기를 들어 분노했고,. 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전공투)는 바로 그 흐름 속에서 결성되어 ‘대학 해체’ 또는 ‘자기부정’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투쟁을 이끌었다.

    그 변혁의 신념과 의지는 나아가 1960년대에 세계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기성의 시스템을 혁파하고자 발생한 다양한 혁명(프랑스 5월혁명,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베트남 반전 운동 등)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비록 역사적으로 패배하고 단절된 것처럼 보였어도, 그 움직임은 분명히 기성의 가치관을 뒤흔들었고 오늘날의 시점에 대단히 큰 영향과 과제를 남겨 두었다. 이 책은 1968세대가 제기했던 중요한 문제의식을 이해하고 공유하기 위한 최적의 길잡이인 동시에, 우리가 가진 전공투 운동에 대한 고정관념에 상당한 수정을 촉구할 것이다.

    전쟁 뒤로도 이어진 ‘총력전 체제’, 그 연장이었던 이공계 붐

    ―전후 일본의 폭발적 고도성장과 과학기술 발전의 실상

    60년대 도쿄대학 전공투를 이끌었던 야먀모토 요시타카는 운동가 이전에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어 했던 과학도였다. 그가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베트남전 반대 운동과 학내민주화 투쟁은 전쟁에 동원되는 과학에 대한 치열한 반대 운동이기도 했다. 이 책은 요시타카의 눈을 통해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 과학과 고도성장의 민낯을 보여준다. 일본은 강력한 국가 주도로 오로지 군사정치적 목적으로 서구 과학을 받아들였고, 전쟁 과정에는 기라성 같은 과학자들이 나서서 제국주의 침략을 옹호하고 군학(軍學) 협동을 외쳤다. 패전 후에도 일본의 과학은 반성하지 않았고, 전범(戰犯)학과였던 도쿄대 제2공학부는 오히려 전후 일본산업 발전을 이끈 원동력으로 칭송되었다. 저자는 자신들의 세대가 3.11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막지 못한 통한을 토로하며, 그 원인을 과학기술의 자기성찰 부족에서 찾는다. 이 책에서 일관되게 비판되는 국가주도의 발전주의와 산업 자본에 포섭된 과학의 문제점은 우리의 과학에도 같은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김동광(과학사회학자, 고려대 과학기술학연구소 소장)

    전공투는 단순히 대학이라는 공간을 사회로부터 떼어내서 변혁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예컨대 도쿄대 전공투 운동은 애초에는 학생 처분에 반발하여 전개된 반권위주의 운동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도쿄대라는 특권적인 위치에서 연구하고 교육하는 자의 권리요구 운동을 넘어 일본의 과학기술 자체와 그 과정을 중심적으로 담당해 온 도쿄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제국주의 시대부터 엘리트 지식인을 배출해 온 ‘전 제국대학’이자 국책대학인 도쿄대, 그중에서도 저자가 몸담고 있었던 도쿄대 이공계 대학은 그 체제에서 핵심적 위상을 점하고 있었다. 국가체제와의 긴밀한 관련 하에 그곳은 ‘과학입국’을 위한 인재를 공급하는 시스템이었고 갈수록 노골화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독점자본의 요구 앞에 ‘학문의 자유’, ‘대학 자치’ 같은 관념은 빈말을 넘어 무비판적 체제 복무를 변호하는 슬로건으로까지 영락하고 말았다. 그 실상은 도쿄대에서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절감한 것이기도 했다.

    전공투, 그리고 젊은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도쿄대 공동체를 뒷받침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그를 통해 국가와 자본의 과학정책 부속품으로 기능하는 주체의 자기소외를 극복하고자 했다. 전공투 운동은 체제의 바닥을 직시하고자 하는 치열한 의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전공투 과학도들은 ‘과학의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닌 ‘과학은 진보한다는 이데올로기’ 자체를 비판했다. 이러한 정신은 마침내 저자로 하여금 대학사회를 떠나 평생 독립적인 비판 지식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여전히 재야 물리학 연구자이자 과학사가인 자신의 특기를 한껏 발휘해, 근대화와 제국주의의 싹이 트던 19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 사회가 어떻게 과학기술사를 체제를 위해 이용해 왔고 그로 인해 자유, 자연, 인간 등 수많은 것을 희생시켜 왔는지를 분석적으로 폭로해 낸다.

    총력전으로서의 근대화와 경제성장, 그리고 탈핵의 시대로

    ―한국 사회에 띄우는 메시지

    저자가 이 책을 쓰고자 결심하는 계기가 된 것은 무엇보다도 2011년에 발생했던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세계 각국에서 그랬듯이 일본에서도 원전은 2차대전이 끝난 뒤 이룬 고도경제성장과 첨단 과학기술의 상징이었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패전 직후 일본 사회는 아시아 각국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는 대신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패배했으니 이제는 노력해서 과학전에서 승리하자’는 인식과 분위기로 나아갔다. 원자력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일본의 근대화를 뒷받침하고 대일본제국의 전쟁 패배에도 상처 없이 계승된, 과학기술의 진보를 절대적인 선으로 여기는 이데올로기가 낳은 산물이었다. 도쿄대 내부에서 이러한 흐름은 60년대에는 발빠른 ‘원자력공학과’의 신설로도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첨단 과학기술에 의한 대규모 공업화는 그 수혜를 입은 수익자들의 공간 외부에 그 폐해를 떠맡으며 생존을 위협당하는 소수자들을 낳았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인구과소지에 원전을 밀집시켜 오염과 위험을 떠맡기고 혜택은 도시가 독점하는 구조는 그 대표적 사례였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저자는 일본의 ‘첨단 과학기술’이 보증하는 예컨대 원자력발전 등이 얼마나 역설적으로 취약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대단히 쉽게, 그러나 과학자다운 엄정한 기준과 태도로 지적하고 있다.

    일본의 1960년대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희생을 강요당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체제에 저항을 시작한 시대이기도 했다. 바리케이드 안에 해방공간을 확보하고 새로운 공동성을 창출하여 자기권력으로 나아가려 했던 도쿄대 투쟁 또한 그 연장선에 있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전투성 때문에 좌익적인 급진성이나 극단적인 과격함 등의 특이성이 더 주목받곤 하지만, 그것은 기존의 투쟁 방식이나 사상에서 이탈해 유토피아의 계기를 내포한 새로운 사회운동 형태로 진화해 간 과정이라고도 할 만한 것이었다.

    지식과 학문의 권력 종속, 경제성장 제일주의 속에서 형식화된 민주주의, 출구전략 없는 원자력에너지 확대 계획, 과학기술이 가져올 리스크들에 대한 무방비함 등 이 책에 담겨 있는 문제의식들은 고스란히 한국 상황에도 적용된다.

    제국주의 일본의 피식민 국가이자 체제경쟁의 쇼윈도 국가였던 한국이 일본과 유사성이 많은 일그러진 근대화 과정을 밟아 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일각에서 ‘과학대통령’으로 추앙받기도 하는 박정희 시대부터 가열차게 이루어진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이나 과학기술대 및 과학기술처의 설립, 과학입국 담론은 일본에서 이루어진 국가 주도 과학기술 발전 모델의 복사판과 같다. 이는 과학기술이라는 학문-산업의 체제 복무를 상징하는 존재인 원전의 적극적 설치로도 이어졌다. 그로 인한 수많은 착오와 희생을 거쳐 새 대통령이 탈핵 시대를 선언하고 그 첫 단추로서 고리원전 1호기의 영구정지가 실현되기 시작한 오늘날의 한국에서, 평생을 통해 전후 일본에 대한 통절한 반성을 관철시켜온 저자의 정수가 담긴 『나의 1960년대』은 커다란 울림과 시사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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