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극기가 바닥에 퍼덕입니다?
    [아트살롱]드레드 스캇 타일러 작품을 둘러싼 파동
        2017년 07월 07일 09: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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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카고 미대(SAIC)에 다시 한 번 소동이 일어났다. 데이비드 넬슨이 이미 고인이 된 시카고의 워싱턴 시장을 모욕한 그림을 전시한 지 9개월 뒤였다. 드레드 스캇 타일러(Dread Scott Tyler)라는 학생이 <미국 국기를 설치하는 적절한 방법이란 무엇인가? (What is th Proper Way to Display th U.S. Flag?)>라는 작품을 교내 전시회에 걸었던 것이다. 그의 나이는 고작 24세였다. 이번 소동은 넬슨 때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스캇 타일러의 작품

    이처럼 당돌한 일을 벌인 스캇 타일러는 사진 작가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그는 시카고 예술대학을 졸업한 후 현재 주로 뉴욕에서 자신의 경력을 쌓고 있는 중이다. 그의 예명, 드레드(Dread: 공포 불안 두려움)는 흑인 노예의 억압을 표현하고 있고, 아프리카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자메이카 흑인(Rastafarians)의 헤어스타일(dreadlocks)을 암시한다.

    드레드라는 예명에서 보듯이, 스캇 타일러는 흑인 정체성과 흑인으로서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을 자신의 작업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타일러는 맑시스트 예술가로서 자신의 예술이 사회에 논쟁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영향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예술가이다.

    이 작품은 드레드 스캇 타일러라는 신예작가의 참신하고 도발적인 작업 의도를 거의 그대로 드러낸 초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업은 벽면에 작은 사진을 붙여두었고, 그 아래 그 작품에 대해 관객이 자신의 소감을 적을 수 있도록 작은 수첩을 선반 위에 펼쳐두었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보고 자신의 소감을 적으려면, 관객은 미국 국기를 반드시 밟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 국기가 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작품의 구성요소 중 벽면에 조그맣게 부착된 사진은 한 장의 사진에 아래/위로 두 장면이 서로 병치된 이미지였다. 그 이미지 상단에는 미국 국기를 불태우며 양키 고 홈을 외치는 한국 대학생의 이미지가 있었고, 그 이미지 하단에는 베트남에서 전사한 미군의 관을 미국 국기로 감싸놓은 이미지가 있었다.

    한국의 반미 성향과, 베트남에서 의미 없고 부정의한 전쟁을 치르면서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미국 국민의 죽음을 병치함으로써, 타일러는 미국 국기에 대한 충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애국이라는 것이 과연 의문의 여지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국기를 밟는 것은 그 의문에 대한 최종적 선고를 관객이 직접 내리도록 한 것이었다. 아니, 국기를 먼저 밟는 시도(실천)을 해야, 자랑스런 미국의 실상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기도 했다.

    벽 면에 부착된 사진의 확대

    이렇게 불온한 작업에 비판과 저항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고, 9개월 전 넬슨이 시카고 시장을 모독한 것에 비하면, 그 저항의 규모는 훨씬 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도전은 미국 전체를 향한 도전이자 전 세계를 향한 도전이었다. 부시 미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 일을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정부가 시카고 미대의 예산 지원을 삭감한다거나 폐지하겠다는 식으로 협박할 것이라는 예상이 오히려 합리적이다 싶을 정도로 그 파장은 실로 대단했다.

    그렇다면 정작 미국 국기를 밟고 아래 선반에 놓인 수첩에 글을 쓸 수밖에 없던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작품에 대한 부정적 반응들

    이 작품은 89년 2월 17일 전시한 지 일주일 만에 항의와 위협이 시작되었다. 언론은 사람들이 미국 국기를 밟고 있다는 사실을 미니 캠으로 보도했고, 앞서 언급한 바 있듯이,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이 일을 수치스러운(disgraceful) 일이라고 했으며, 맥화이트호그(Macwhitehog)와 같은 상원의원을 비롯한 주요 정치 인사들이 이 전시회를 비난했다. 실제로 재향군인회 등 퇴역 군인들의 대표들이 단체를 조직하여 이 학교를 공격하기도 했다.

    작품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불평

    그렇다면 수첩에는 어떤 내용의 글이 담겨 있었을까? 실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하게 그를 욕했다. 어떤 시카고 경찰은 타일러를 살해하고 그에게 폭행을 가하겠다는 글을 남겼다. 심지어 살해의 위협을 하면서 살해된 권총의 총알 값도 아까우니 스캇의 유가족이 총알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언급까지 있었다. 또 다른 이는 스캇이 미국의 가장 높은 국기 게양대에 거세된 채 매달려 있어야 한다고 비난했다. 이와 유사하게 어떤 이는 스캇의 목을 매달되, 그의 목을 걸 목줄로 미국 국기를 써야 한다고 적었다.

    어떤 군인 출신의 시민은 관을 미국 국기로 덮는 이유를 작가가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비난하고 있었고, 베트남 전쟁에서 삼촌을 잃은 한 미국시민 역시도 이런 작품을 쓰레기라고 비난하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은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보이면서 자유를 위해 죽은 사진 속 군인(국기로 둘러싸인 관 속의 군인)을 모욕하지 말라고 적기도 했다. 심지어 스캇더러 미국을 떠나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언급한 수정헌법 1조보다 국기가 더 우월하다고 쓰면서,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스캇을 대중의 관심에 목말라 있는 사람(관종)이라 치부하면서 그에게 예술이나 타인의 관심에 목말라하기보다 애국이 우선이라고 종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다른 이는 이런 것은 예술이 아니라며 예술의 자격을 문제 삼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작품을 찬성한 사람들이 과연 있기나 했을까?

    긍정적 반응들

    가장 기본적으로 이 작업에 찬성을 보낸 사람들은 예술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국기와 민족주의의 연관성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 역시 이 작업에 동조의 메시지를 보냈다. 어떤 이는 중앙아메리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폭력에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동시에 미국 노숙인에 대해 정부가 가혹한 처우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하면서, 이 문제들이 개선될 때, 미국 국기가 제대로 전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떤 이는 동생이 경찰의 총에 억울하게 살해당했으며, 심지어 죽은 동생의 시체를 발로 툭툭 차면서 비인간적으로 다루었던 미국 경찰에 대해 항의하며, 미국 국기가 밟혀도 싸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또 다른 이는 범아프리카 깃발(Pan-African flag)을 언급하면서 이것은 밟으면 안 되지만, 미국 국기인 흰색, 붉은색, 청색으로 된 깃발은 밟아도 된다고 언급하고 있었다. 미국은 유색인종을 착취하고 죽이고 억압한 침략국이라는 언급도 있었다. 어떤 이는 인디언 대량학살, 흑인 노예화, 현재의 악덕 백인 민족주의적 애국심을 비판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이 작업을 관람하는 사람 주변에서 어떤 군인이 위협적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보고하기도 했으며, 또 다른 이는 자신의 견해를 표현한 스캇을 지지하면서, 그가 파시스트 돼지가 아니라면, 자신도 충분히 미국 국기에 침을 뱉을 수도 있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왼쪽 범아프리카 국기, 오른쪽은 범아프리카 국기의 미국 국기 버전

    사건의 결말

    이 작품이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애국주의, 국가주의, 백인우월주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사회변화와 무관한 예술의 고립적이고 사적인 특성 등이다. 심지어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전개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한계를 실험하고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토록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던 이 작품은 학교 폭파 위협과 작가에 대한 린치 위협으로 사복경찰들이 학교의 보완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분위기를 몰아갔고, 결국 이 문제 때문에 안전을 위해 갤러리 방문객을 1회당 8명으로 제한해서 관람을 실시하기까지 했다.

    물론 이 작품이 국기를 훼손하고 국격을 공공연히 훼손했기 때문에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법정은 최종적으로 학교나 작가가 국기에 대한 주의 법이나 연방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길리스(Gillis) 판사는 수정 헌법 제 1조를 들어 이 전시가 표현의 자유권에 의해 보호되어야 한다고 판결했던 것이다. 판결의 이유를 들자면, 미국 국기를 모욕한다고 한 사람의 표현을 처벌한다면, 이는 정작 미국 국기가 상징하는 ‘자유’를 해치는 것이므로, 미국 시민은 ‘자유’의 이름으로 미국 국기를 모욕하거나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판결에 찬성하는 국민과 의원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래서 미국 의회와 의원들은 새로운 국기 보호법을 입안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것은 계속해서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수정헌법 1조와 부딪힌다는 이유로 국기보호법제정은 무산되고 만다. 실제로 국기 보호법이 미국에서 세 번이나 입안되었지만, 세 번 모두 무산된다. 그러나 정부의 방해와 폭력은 이 판결로 일단락되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다음해에 시카고 미대(SAIC)에 자금지원을 7만 달러(약 8천 400만원)에서 1달러로 줄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부의 이러한 처사에 저항하는 의미로 시카고 미대를 위해 후원자를 모집하고 기부금을 모금하였다.

    그런데 이쯤 되니 궁금한 게 생겼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어떤 작가가 태극기를 바닥에 깔고 밟게 만들었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법은 어떤 판결을 내리고, 시민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이며, 시민단체들은 어떻게 움직이게 될까? 입법부나 행정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 같은가?

    미 상원에서 미국 국기 바닥 전시 방지 투표에 찬성97 대 반대0으로 표결이 이루어졌다.

    참고: 미국 국기 보호법에 대해

    미국 국기보호법을 제정하려던 움직임의 가장 첫 번째 시도는 월남전 반대가 심하던 1967년이었다. 당시 반전세력들은 미국 국기를 불태우기도 했기 때문에, 의회는 미국 국기를 불태우거나 훼손하고, 심지어 미국 국기를 깔고 앉는 행위에 대해 1,000달러 이하의 벌금이나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던 것이다. 그러나 1974년 연방대법원은 그러한 모욕이나 훼손 역시 정치적 표현의 한 방법이므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 후 미국 국기 소각이 다시 문제가 된 것은 1984년 8월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 전당대회 때였다. 텍사스주 댈러스 시에서 공화당에 항의하던 시위가 어느 빌딩의 국기 게양대에 걸린 미국 국기를 끌어내려 불태운 것이다. 여기서 구속된 공산당 활동가 그레고리 존슨(Gregory L. Johnson)은 텍사스주 지방법원에서 1년의 징역형과 2,00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해 미 연방대법원은 1989년 6월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면 국기를 불태워도 무방하다”며 5대 4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텍사스대 존슨, Texas v. Johnson) 바로 이 판결이 내려지는 기간 중 스캇 타일러의 작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언론사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대부분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반대하고 있었다. 이에 편승하여 89년 10월 의원들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새로운 미국 국기 보호법이 제정되었지만, 1990년 6월, 연방대법원은 미국 국기 소각을 금지하는 법을 재차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 뒤 의회는 헌법 개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내지 못하기를 반복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이에 대한 자세한 참고는 다음을 참고.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54XX72900019

    * 아트살롱 전 회의 글 [아트살롱] Mirth and Girth 사건③

    필자소개
    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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