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듦에 대한 태도
    [세계녹색당대회 ⑦] 그린 시니어
        2017년 07월 04일 01: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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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말 세계녹색당 총회가 영국 리버풀에서 열렸다. 한국녹색당에서도 여러 명의 당원이 참석했다. 한국녹색당은 총회뿐 아니라 녹색정치와 활동이 활성화된 유럽의 몇몇 지역을 탐방하기도 했다. 녹색당 세계총회 참석자들과 레디앙은 총회 참석기 및 유럽 탐방기를 함께 기획하여 게재한다. 이번 글이 마지막 연재 글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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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세계녹색당총회 그 한 켠에 ‘나이 듦에 대한 태도‘라는, 제목조차 모호한, 별다른 시선을 끌지 않는 세션이 열렸다. 나이 든 이들에 대한 전 세계, 유럽, 영국의 태도를 비교한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이 세션에 들어간 건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다. 오랜만에 찬찬히 본 거울 속에서 몇 가닥의 흰머리를 발견한 후 급격하게 마음에 들어온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은 무엇에 기인한 것일까? 나이 듦에 대해 가져야 할 적절한 태도를 누군가 말해줄 수 있을까?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문을 열었다.

    사진은 필자

    총회 장소가 영국의 리버풀이었기에 대부분 유럽과 영국에서 온, 열 명 남짓한 이들이 둥글게 앉아 돌아가며 자신의 나이 듦에 대하여, 이 사회가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어떻게 느끼게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젊어서는 쉴 새도 없이 일하고, 퇴직하고서는 자식들이 일하러 간 사이 손자 둘을 돌보고 있죠. 커뮤니티에서 해야 할 봉사활동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하려고 합니다. 이 사회가 알아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우리 같은 노인들이 물심양면으로 보이지 않게 가꾸고 보살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기여하고 있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데요. 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 겁니까? 왜 우리를 멍청하고 의존적인, 복지나 갉아먹는 그런 존재로 매번 묘사하냐구요! 나이 드는 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내가 활동하던 당에서는 몇 살 이상이 되니까 나서지 않았음 하더군요.. 지방선거 후보로도 못나간다니까요.”

    “저희 엄마는 암으로 투병하다 모르핀을 스스로 과다투약하고 돌아가셨어요. 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에 그 후 노인들의 치료시설들을 많이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그렇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게 축복으로 느껴졌습니다. 시설의 이름을 말하지 않기로 서약한 곳이 있는데, 그 곳에서 본 노인들의 삶은 눈뜨고 볼 수가 없더군요. 그들은 이미 생을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니었어요. 말도 못하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삶을 억지로 약으로 연명하고만 있었어요. 시설에서는 보호라는 명목 아래 그들을 모아서 가둬둔 대가로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고 있었고, 제약회사들은 마찬가지로 약을 소비할 돈벌이 대상으로만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죠.”

    “우리는 존엄을 지키며 죽어갈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집에서 말이죠.”

    “저는 아마도 복지혜택을 받는 첫 세대에 속할 겁니다. 그래서 혜택을 많이 받지요. 종종 그게 미안합니다. 저는 제 아이들 세대가 저와 같은 혜택을 받길 바라지, 그들의 것을 빼앗아서 제 배를 불리고 싶은 게 아닌데..(울음) 언론에서는 자꾸만 우리를 그렇게 나쁘게 묘사해요.”

    “표지판 같은 걸 만들 때 우리를 좀 고려해줬으면 좋겠어요. 잘 보이게 말이죠. 원래는 그렇게 하지 않았나요? 공공시설을 설치할 때는 아이도, 노인도, 장애인도 모두가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없게 당사자에게 좀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노인들은 사회가 꼭 필요로 하는 노동(돌봄 노동, 자원 활동 등)을 제공하고 있으면서도 사회의 짐, 비용,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존재로 치부되고 있다. 사회는 노인들을 자꾸만 사회의 경계 밖으로,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공간에 몰아넣으려 한다. 빈부가 아닌 나이라는 기준으로 나뉘어 싸움을 붙이는 이 사회에 화가 나고 서럽지만, 그런 얘기를 털어놓을 공간도 마땅치 않다. 정치적 공동체에서마저 뒷방 늙은이로 물러나있길 암묵적으로 강요당하고, 대학에 들어가 못 이룬 학문의 꿈을 이뤄볼까 싶지만 연금으로 빠듯하게 생활하는 마당에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도 없다.

    그린 시니어

    벨기에는 2050년이 되면 60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45.6%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하고,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보니 이런 상황을 인정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타개해나가려는 움직임이 유럽 녹색당의 노년층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린시니어(The European Network of Green Seniors)가 그들이다. 인구통계학 상의 변화를 세대 간의 전쟁이라는 부정적인 관점에서 보는 대신, 공동의 미래를 위하여 노년층의 경험을 청년층의 열정과 함께 결합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보는 그들은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만들었다.

    하나. 노동시장에서의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 건강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조기퇴직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노년층에게도 업무 관련 트레이닝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둘. 경험이 전달되고 전 생애에 걸친 배움이 이뤄지길 바란다. 많은 시니어들이 오랜 활동을 통해 전략적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는 반면, (청년층이 훨씬 더 우수한 능력을 지닌) IT분야의 지원과 트레이닝을 필요로 한다. 이에 노년층과 청년층이 함께 활동하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셋. 개인적, 사회적 발전을 추구할 권리를 누구나 갖는다. 지적이고 감각적인 능력은 노년에도 역시 발전할 수 있으며 모든 세대, 모든 구성원이 개인적, 사회적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넷. 손쉽게 자원 활동에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시니어들은 은퇴 후 사회에 비용요인이 되기를 원치 않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는 사회적 활동에 사용하길 원한다. 자원 활동을 통해 “노동”과 “여가”라는 용어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사회는 자원 활동을 관장하는 에이전시 등 잘 조직된 시스템을 갖추어 보다 손쉽게 자원 활동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단, 이것이 기존의 일반적인 직업들을 무상의 자원 활동으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섯. 노년의 가난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모두에게 충분한 연금제도가 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여섯. 노인들에게 다양한 삶의 형태를 허용해야 한다. 우리는 가능한 한 우리 자신의 집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 더 큰 의존성을 양산시킬 뿐인 노인들만의 게토에서 살고 싶지 않다. 우리가 돌봄을 필요로 한다면, 가능한 다양한 형태들이 우선 이용 가능해야 한다. 다양한 세대가 이웃으로, 혹은 셰어하우스의 형태로 어울려 사는 여러 다른 형태의 삶이 노인들에게도 허락되어야 한다.

    일곱. 사회보장서비스의 민영화에 반대한다. 사회보장서비스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정의되길 거부하며 공공서비스로 법적인 보호 아래 있기를 요구한다. 사회보장서비스와 의료혜택은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여덟. 이주민 시니어들에게 지원이 필요하다. 다양한 이주민 그룹이 복지시스템에 그들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홉. 의료혜택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고, 존엄을 지키며 죽을 수 있게 해 달라.

    열. 대중교통은 모든 연령대의 그룹이 안전하고 번거롭지 않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동성을 보장해라.

    열하나. 청년층과 노년층 간에 새로운 사회적 약속이 필요하다. 전 유럽에 인구통계학적 변화가 생길 미래에, 노년층은 경제와 사회에 더 많은 기여를 해야만 할 것이다. 청년층과 노인층 사이의 협력이 필요하다.

    열둘. 노년층의 삶에 관한 모든 정치적 분야에서 시니어들의 활동을 보장하라. 열셋. 그린시니어들은 우리 사회와 관련된 모든 정치적 이슈들에 참여하고자 한다.

    (선언문 전문은 http://www.greenseniors.eu/manifesto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의 노년층

    최근 한국에서도 노년층을 향한 적개심을 곳곳에서 보게 된다. 전 정부의 집권과 탄핵 반대시위의 앞 줄에 노년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정말 분노를 터뜨려야 할 강자는 뒤로 한 채 그들이 약하기 때문에 공격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노년층의 이야기를 그들의 목소리로 정말 제대로 들어본 적이 있었을까. 여성으로서 겪어온 억압과 서러움을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고스란히 느꼈다면 과장일까.

    녹색전환연구소는 경기녹색당과 함께 <나이 듦에 대한 태도>라는 이름으로 좌담회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나이 듦에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나는 나이 듦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먼저 시니어들의 느끼는 나이 듦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며 세대 간 이해의 폭을 넓혀보고자 한다. 6월 30일 오후 2시, 그 이야기가 듣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서울시 NPO지원센터에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세계녹색당대회 참가기⓺] 다시 확인한 녹색 가치

    *이번 글이 행사보다 늦게 게재된 점에 대해 필자와 독자에게 사과 드린다-편집자

    필자소개
    녹색당원. 녹색전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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