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하다 죽는 사회,
    병든 사회를 파헤치다
    [책소개]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강동묵 외/ 나름북스)
        2017년 07월 02일 01: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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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재해와 직업병을 넘어 일하는 사람의 건강을 관리하는 직업의학과 유해한 환경으로 인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환경의학을 직업환경의학이라 한다. 따라서 직업환경의학 의사는 환자의 직업과 작업환경에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들은 가까운 곳에서 노동과정과 일터 환경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일하는 사람이 왜 아픈지, 일하는 곳의 유해요인은 무엇인지,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연구하고 조언한다. 그래서 이들이 환자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직접 현장을 조사하고, 아픈 원인을 진단하는 과정은 마치 노련한 탐정이 끈질긴 수사로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과도 같다.

    직업환경의학 의사를 찾아오는 환자의 사연이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직업병 사건들이 워낙 안타깝고 허망할 정도로 심각하기 때문에 이를 파헤치는 것은 때로 의사들에게 무겁고 고통스럽다. 이 책은 산업재해와 직업성 질환을 담당하며 이의 배경을 추적한 직업환경의학 의사들이 직접 그 과정과 소회를 낱낱이 밝힌 최초의 기록이다.

    직업성 질환, 산업재해 발생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이 의사들은 “굴뚝 속으로 들어가 질병을 번역하는 수고로운 번역가들”(전주희)이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환자의 증상, 진단명, 질환의 치료뿐만이 아니다. 노동자들을 다치고 병들게 한 총체적인 환경, 즉 자본주의에서의 노동 환경과 과정을 필연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산업재해와 직업병 사례들은 어느 의사의 회고로만 끝나지 않는다.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던 부실한 관리감독이 있었고, 아픈 사람을 방치한 구멍난 제도가 있었다. 사람의 생명보다 비용 절감과 이윤을 중시했고, 노동자를 쥐어짜는 시스템과 노조 탄압에 다수가 무관심했다. 직업환경의학 의사들은 아픈 노동자들의 몸과 작업 현장을 보며 이런 사실들을 처절하게 깨닫고 있었다. 따라서 이 의사들의 증언은 우리 사회의 노동현실에 관한 생생한 고발이자 건강권과 생명권을 수호하려는 실천이 된다.

    공장의 유해물질과 근골격계 질환, 과로와 스트레스, 백혈병…
    병들고 다치는 한국사회 노동현장에 관한 생생한 다큐멘터리

    1장 ‘산업재해 혹은 노동권을 뒤흔든 일곱 개의 장면’에선 산업재해와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역사에서 회자되는 사건들을 다뤘다. 특히 1990년 제일화학 방직공장의 ‘죽음의 먼지, 석면’ 보도에 주목해 2006년 공장 주변 주민들을 수소문하고, 그들 대부분이 폐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사회에 드러낸 것은 2009년 석면 생산 금지까지 이끌어낸 중요한 사례다. 이는 환경성 석면질환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자괴감을 넘어,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석면의 유해성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린 전문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외에도 진폐증을 앓는 광부, 가학적 노무관리에 의한 최초의 집단 정신질환 사례, 유해 화학물질 중독, 기관사 공황장애와 자살, 근골격계 질환의 산재신청 사례 등 이후의 직업병 논의와 산재 인정 여부에 중요 분기가 된 사례를 가려 실었다. 참담한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현재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똑바로 지적하며 사회의 역할을 주문하는 서술도 새겨 읽어야 할 부분이다.

    수십 년 전에 일어난 일이 아닐까 착각할 만큼 현재의 산업재해를 다룬 2장의 내용은 뼈아프다. 한여름 조선소에서 쓰러진 20대 청년의 죽음은 심근경색 때문이 아니라 열사병으로 기력이 없는 상태에서 구토물이 기도를 막았기 때문이었다. 공장 안에서 지게차에 치인 노동자는 회사가 이를 숨기고 119 구급차를 돌려보낸 탓에 빠른 조치를 받지 못하고 숨졌다. ‘산업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급박한 위험’ 상황에서 ‘작업중지권’을 쓸 수 없어 유해물질을 알지 못하고 계속 일하거나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다 추락하고 만다. 산업재해 추방 운동을 하던 활동가가 파쇄기에 휘말려 세상을 떠난 사례도 변화가 더딘 노동환경의 굴레를 보여주는 듯하다. 의사가 들어간 ‘관계자 외 출입금지’인 공장 안에선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필사의 노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고인의 작업환경을 되짚어 보며 ‘죽음 이후’에 대처할 수밖에 없는 의사들은 ‘일 때문에 죽었다’는 결론을 끌어내기까지 현장 점검과 분석, 연구 등 그들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노동자를 추모한다.

    “한여름의 열기를 고스란히 품은 강철 구조물에 열을 또 가하고, 온갖 거추장스러운 보호구와 장비를 걸친 채로 이십대 장정의 몸을 쪼그리고 구부리고 비틀어야만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고인의 작업현장을 되짚어 보고 건조 중인 선체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마치 지옥도에서 벗어나는 길인 듯했다. (…) 다행히 산재로 인정되었다.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먼저 젊은 조선하청 노동자의 외로운 죽음이 업무와 관련된 것이었음을 입증한 것이 중요한 의미다. 남겨진 가족들에게 아주 작은 위안이라도 될 것이다. 한편으로 직업환경의학 의사로서의 보람을 일깨운 일이기도 하다.”(류현철)

    굴뚝 위에 함께 서서 노동권과 생명권을 직시하는 의사들,
    병든 사회의 민낯을 고발하다

    ‘소리 없는 살인자, 직업병’을 다룬 3장에선 작업장 내 유해물질뿐만 아니라 ‘골병’을 유발하는 노동강도, 스트레스와 자살로 이어지는 심리적 질환 사례들을 서술했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10년 전의 최초 의문으로부터 고 황유미 씨의 산재 인정을 받기까지 무려 10년 간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발병 문제를 제기한 의사이자 활동가의 기록도 담겼다.

    이 책에 드러난 여러 직업병/직업성질환의 원인이 단일한 유해물질인 경우도 있지만 복합적인 경우도 많아 이를 다각도로 파헤치는 의사들의 노력이 특히 주목된다. 간호사들이 연쇄적으로 유산과 기형아 출산을 겪으며 ‘제주의료원 괴담’으로 불린 사건의 진상을 조사한 의사는 항암제 흡입이나 전리방사선 노출뿐 아니라 장시간 노동, 스트레스까지 다양한 원인을 찾고 있다. “분명한 ‘주범’을 찾을 순 없지만, 시간, 장소, 사람의 공통점을 가진 역학관계에서 유산과 선천성 기형이 증가했으니 유력한 ‘공범’들이 있다고 본 것이다.”(김인아) 조리급식 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을 다룬 부분에선 이들의 노동이 차분한 요리가 아니라 중량물 운반과 반복 작업, 끓는 기름이 튀는 건설현장과 같다고 묘사해 우리가 외면했던 노동의 수고로움까지 공감하게 한다.

    노동자들이 겪는 심리적 문제와 정신질환도 여러 꼭지에서 다뤄진다. 이제는 일상의 용어가 된 ‘감정노동’의 문제를 비롯해 업무스트레스와 우울감을 야기하는 혹독한 일터 환경은 노동자를 자살이나 과로사로 내몰기도 한다. 가히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사회’라 할 정도로 직업적 요인에 따른 심리적 문제의 심각성이 곳곳에 나타난다. 의사들은 그들이 죽지 않았을 수도 있는 환경을 아쉬워하며 우리의 ‘너무 힘든 시간’을 지적하고 있다.

    “통신업체에서 일하던 청소년 노동자의 자살은 이제 막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청소년이 경험하기엔 너무 힘든 감정노동이 원인이 되었다. 파업투쟁 중이던 노동자의 자살, 해고 위협에 놓인 노동자의 자살, 월 300시간이 넘는 노동을 하며 며칠 동안 퇴근하지 못하고 일했던 게임 개발업체 노동자의 자살. 이들의 유서엔 죽지 않고는 지옥처럼 힘든 삶을 벗어날 수 없을 거란 절망이 담겼다. 노동자에게 이런 삶이 계속되는 한 죽음의 행렬을 막으려는 노력도 공허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김형렬)

    4장에는 용역?파견노동자, 이주노동자, 청소년노동자와 같은 불안정노동자들의 직업병 사례가 실렸다. 안전까지 외주화된 가장 위험하고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전구 생산설비를 철거하다 수은에 중독되고, 노트북 컴퓨터를 닦다 앉은뱅이병에 걸리고, 휴대전화 부품을 만들다 눈이 멀고, 현장실습 나가 취업한 직장에서 자살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최근의 일이자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라는 점에서 탄식을 자아낸다. 안전과 인권이 무시되는 현장에서 아슬아슬하게 생존의 길을 찾고 있는 이들 약자에게 더 가혹한 구조를 보는 의사들의 시선은 날카롭다.

    “기본적인 인권 감수성이 없어도 너무 없다. 개인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른 사업장에 비해 잘해주었다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이주노동자의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끔찍한 수준이 바로 우리 사회의 평균이다.“(이혜은)

    건강하고 행복한 일터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장난 쓰레기’가 아닌 노동자로서의 권리 찾기

    산업재해와 직업병을 예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안전 수칙을 준수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것, 노동강도를 낮추는 것, 아프면 쉬거나 치료받는 것이다. 간단한 해법이 쉬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도 쉽다. 사람보다 돈이 중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산업재해와 직업병은 돈보다 안전과 생명을 중히 여겼다면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에탄올을 사용한다고 감독기관에 신고하고 실제론 노동자들에게 메탄올을 취급하게 한 이유는 메탄올이 더 싸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일한 파견노동자들은 메탄올 때문에 실명했다. 하청의 재하청까지 내려오는 과정에서 철거용역 노동자들은 공장 안 물질이 뭔지도 모른 채 일하다 수은에 중독됐다. 1인 승무 기관사들은 2인 승무 체계에서보다 공황장애 비율이 높고 훨씬 많이 자살한다. 삼성반도체의 방진복은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제품을 위한 것이었다. 비정규직과 현장실습생들은 가혹한 작업환경을 감내해야 했다. 더불어 인력 부족에 따른 노동강도 강화와 장시간 노동,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는 일터 등은 모두 직업환경의학 의사들이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는 ‘주적’으로 지목하는 요인들이다.

    이 책의 사례들을 통해 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 체계와 관리감독의 허점도 드러난다. 독성간염을 일으키는 DMF(디메틸포름아미드)에 중독된 노동자는 특수건강진단을 받았는데도 계속 일하다 사망했다. “몇 번의 기회를 모두 놓쳐버렸다. 제때 배치전건강진단을 받고 또 제때에 첫 특수건강진단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처음 간 기능 저하가 확인된 때에 작업을 중단했다면, 하다못해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라도 일을 그만뒀더라면 결과는 어땠을까.”(이혜은) 이를 계기로 특수건강진단기관 일제점검을 벌인 결과 120곳 중 119곳에서 법 위반사항이 발견됐다. 이는 의사들에게 우리나라 직업환경의학계의 가장 부끄러운 역사로 여겨지기도 한다.

    산재 요양 도중 근로복지공단에 의해 치료 중단 요구를 받자 비관해 자살한 노동자도 있었다. 산업재해 인정 여부는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절실한 투쟁중 하나다. 처벌 수준이 미약해 기업의 산업재해 은폐 시도는 계속 벌어지고, 어느 기업에선 산재보험료를 더 내지 않으려고 공장 안에서 사고를 당해 죽어가는 사람을 담요로 덮어두고 숨겼다. 시민사회는 이런 ‘범죄’를 막기 위해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특정한 일의 적임자를 찾기 위한 취지의 ‘배치전건강진단’이 현실에선 오히려 차별과 배제를 낳기도 한다.

    저자는 이와 관련해 “노동자 건강진단은 어떤 사람을 골라서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일을 골라서 해야 하는가의 문제”(류현철)라고 지적한다. 법에 명시돼 있지만 사용이 어려운 ‘작업중지권’도 있다.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라는 모호한 조건은 차치하더라도, 유해물질을 다루거나 아파트 외벽에 매달려야 하는 노동자들이 일을 거부하고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현실에서 작업중지권은 자꾸 사문화된 권리가 된다. 작업중지권을 실제로 쓸 수 있고, 써 본 적이 있고, 특히나 이를 통해 사고를 예방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는 줄고 있다. 노동조합의 노동안전보건 교육에서도 작업중지권은 점차 다루지 않는 주제가 된다. 이러면서 작업을 거부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 대해 우리의 ‘합리적’인 판단은 자꾸만 무뎌진다.”(최민)

    이처럼 직업환경의학 의사들의 진단은 환자의 ‘몸’에만 머물지 않았다. 병든 사회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폭로했다. 에필로그인 ‘굴뚝 밖으로 나온 노동자들’(전주희)에서 저자는 환자가 된 노동자는 생산 능력을 잃어버린 ‘산업 폐기물’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한 시민으로 보았다. “직업병이란 자본의 기계 시스템과 인간 노동의 결합 능력이 약화되었거나 잘못 관계 맺었다는 신호”이므로 고통을 공유하고 이를 치료하면서 사회적 권리를 획득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만나는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노동자와의 연결망이 된다. 스스로 ‘노동안전보건활동가’가 되고자 하는 이 의사들은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일을 통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일하는 사람이 온전한 주체가 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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