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린 기다리지 않는다”
    6.30 사회적 총파업 개최
    5만여 비정규직 노동자들 “최저임금 1만원, 우리 힘으로 쟁취한다”
        2017년 06월 30일 10: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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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학교의 유령으로 저임금에 고용불안을 느끼며 살았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엔 안 해 본 것 없이 싸웠다. 목숨을 건 단식부터 딸의 결혼식 열흘 앞두고 삭발도 했고, 100일 넘게 농성도 해봤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고, 우리에게 또 기다리라고 한다. 기다리라면 알아서 해준다고 … 분명하게 얘기한다. 우린 이미 충분히 우리는 기다렸고 우린 여전히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저는 그래서 오늘 사회적 총파업에 나왔다. 가만히 기다려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의 후배에게 알려주기 위해 나왔다. 정년을 6개월 남긴 오늘, 제 꿈은 퇴직하기 전 후배들에게 정규직 전환을 남겨주는 것이다. 그 꿈을 위해 저는 기다리지 않고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표명순 학교비정규직노조 경북지부 조합원)

    사회적 총파업 대회 모습(이하 사진은 유하라)

    “기다리라”, “떼쓰지 말라”고 새 정부는, 여당은, 그리고 그 지지자들은 사회적 총파업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정년 6개월을 앞두고 광장에 나온 표명순 조합원은 그들의 주장에 이렇게 답한 것이다. 표 조합원은 초전중학교에서 20년째 근무한 급식실 조리노동자이다.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1만원 당장 실현’, ‘비정규직 철폐’, ‘노조할 권리 보장’을 내걸고 지난 28일부터 8일까지 사회적 총파업 주간을 선언했을 때, 곧바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문재인 정부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으니 기다려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다. 포털 뉴스에 게재된 총파업 기사의 댓글엔 “귀족노조”, “강성노조” 등의 보수언론과 정치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들이 난무했고, 일부 중엔 “단순노무직이니 무기계약직도 감사해라”라는 댓글도 있었다.

    그리고 30일, 오후 사회적 총파업을 위해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운 5만 명은 여성, 청년, 장년 노동자들이었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도 이들 뒤에 앉아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다. 모두가 비정규직이고, 저임금 노동자들이고, 사회의 약자들이다. 장애인들도 무대에 올라 최저임금은 우리의 임금이라고 말했다. 학교 스포츠 강사 노동자들은 광장 한 쪽에서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 10년째 쪼개기 계약으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해 온 사람들이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대회사를 통해 “오늘 사회적 총파업은 국민 모두의 삶을 지키는 파업이자,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것”이라며 “무시와 차별, 유령 취급을 받아왔던 노동자들이 당당하게 주인임을 선포하는 총파업”이라고 규정했다.

    정부여당에선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노사정 대화의 한 축인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학교에선 여전히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고도 교장이 바뀌면 단숨에 해고 당하는 사례들이 있다. 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안명자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 본부장은 “학교 비정규직 대다수의 시급이 6360원이다. 올해 최저임금 6470원보다 110원 모자란다. 우리는 1년을 일하나 10년을 일하나 기본급이 같다. 이러다 보니 진짜 정규직과 비교해서 오래 일하면 일할수록 임금 차별은 더 커진다”며 “우리는 상한선 없는 근속수당 5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5만원 짜리 근속수당이 생겨도 20년 일해야 월급이 100만원 정도 오르는 것이다. 20년 세월의 가치로 100만원 인정해달라는 것이 그리 무리한 요구인가”라고 말했다.

    안 본부장은 “저는 학교에서 7년을 일하고 무기계약직이 됐지만 학교장이 바뀌면서 그 해에 해고를 당했다. 허울뿐인 무기계약직이라는 신분은 저의 보호막이 되지 못했다”며 “저의 해고를 막아준 것이 바로 노동조합이었다.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설사 진짜 정규직이 됐다 한들 그것은 모래성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존중이라는 것은 저를 여사님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아니다. 존중이라는 것은 내가 잘못하지 않는 이상 해고될 걱정이 없고, 먹고 살만큼 임금을 받고, 다치지 않고, 인간적인 무시당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우리들은 누군가에게 존중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노동조건은 나 스스로 결정하는 노동자가 되겠다고 사회적 총파업으로 모인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없는 세상, 우리 힘으로 직접 쟁취하자”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회적 총파업이 조급하고, 무리한 요구라는 부정적인 분위기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을지로위원회 위원장 출신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했던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29일 정책조정회의에서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마치 문재인 정부의 개혁에 발목이라도 잡는 것처럼 말했다.

    우 원내대표는 “민주노총의 파업 의제인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소득 양극화 문제 해소 등은 문재인 정부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실현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 이행을 위한 세부 대책 수립으로 활발하게 진행 중에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사회적 총파업은 아직 체계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문재인 정부에 부담을 안겨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민심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 해내야 할 일자리, 노사관계, 최저임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자칫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태도는 3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나왔다.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시점에 민주노총 총파업에 대해 많은 분들이 우려하는 시각을 갖고 있다”며 “민주노총 지도부에게 ‘총파업 하지 말라’고 얘기라도 해보셨나”라고 조대엽 후보자를 질책했다.

    이에 조 후보자가 “민주노초의 파업은 합법”이라는 취지로 답하자 신 의원은 “합법적이라도 파장이 적지 않다고 생각할 때는 ‘털어놓고 밤샘 토론하자’, ‘왜 굳이 거리로, 광장으로 나가느냐’고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회적 총파업에 맹비난하며 노동을 천시하는 천박한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현재 정책위의장은 28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학교 급식마저 중단시킬 만큼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지 매우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이 정책위의장은 또한 “더 심각한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노동계에 큰 기대를 준 것”이라며 “최근 노총 대표자들에게 ‘경영계와 마찬가지로 국정의 주요파트너로 인정하고 대접하겠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총파업을 벌일 때가 아니라 노사정 모두의 양보와 배려,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이날 총파업 대회사에서 “왜 기다리고 지켜보지 않고 시끄럽게 하느냐, 총파업을 하느냐고 묻는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오지 않는 적폐 청산과 사회 대개혁의 골든타임이기 때문”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친노동 정부를 표방하고 있지만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자유한국당, 재벌과 경총, 수구언론과 같은 수구적폐 세력들의 반격이 시작될 것은 불 보듯 명확하다. 그래서 우리는 투쟁을 멈출 수 없다”며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우리는 더 빠른 속도로, 더 과감하게, 더 올바른 방향으로 노동적폐 청산과 대개혁을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건설, 청소, 하청 노동자들도 무대에 올라 총파업 선언문을 통해 “인간답게 살 권리는 결코 연기하거나 가만히 기다려야 하는 권리가 아니다”라며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이었던, 주면 주는 대로 받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던 노동을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총파업에 참여한 5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본대회를 마친 후 시민들에게 사회적 총파업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세종로 사거리, 종로3가, 청계3가까지 도심 행진을 벌였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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