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수형, 잘 가”
    철도노동자 김창수 영면
    [기고]인력 부족이 죽음의 벼랑으로
        2017년 06월 30일 01: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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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으로 58세, 남편이자 두 자녀의 아버지, 기찻길 안전 관리 24년, 철도노조 시설국장, 두 번의 지부장, 파업으로 해고 그리고 복직, 사측에겐 엄정하고 조합원에게는 언제나 다정다감했던 김창수 동지가 30일 영면했다. 그를 기억하는 동료들은 “조용한 말투와 나이 어린 후배에게도 쉽게 말을 놓지 않았던 친구이자 형이었다”며 고인이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30일 오전 8시 영등포역 인근에 있는 영등포시설사업소 집단반 마당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함께 일하던 동료와 강철 위원장 등 노조 간부, 공사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장 옆에는 김창수 동지를 기리는 20m 길이의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유족들의 모습(이하 사진은 철도노조)

    한 달 남짓 또다시 동료를 보내야 하는 조합원들은 영결식 내내 하늘을 응시하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강철 위원장은 조사를 통해 “지켜내지 못해 미안하다”며 흐느꼈다. 강철 위원장은 “위험한 외주화를 막아야 한다며 서울과 대전, 상록수역에서 함께했던 나날을 어찌 잊을 수 있겠냐”고 했다. 이어 “정권이 바꿔 그나마 다소 시간이 생기는가 했더니 아무런 준비도 없이 형님을 보내게 되었다”며 “형이 사랑한 철도, 염원했던 세상을 지키고 만들어가기 위해서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철도공사 정인수 기술본부장은 고인을 시설인 중의 시설인, 최고의 철도인으로 치켜세웠다. 시설유지보수업무를 가장 어렵고 힘들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토록 힘겨운 노동에 내몰려야 했던 근본원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잇따르는 참사를 방지하거나 막기 위한 그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김창수 조합원은 1960년 4월 경기도에서 태어나 1993년 9월 철도청에 입사해 24년간 근무해왔다. 재직기간 동안 철도청장 표창과 철도공사장 표장을 받았다. 홍순만 사장은 철도 발전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해 동지를 표창하고, 4급에서 3급으로 추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한편 이번 참사도 지난 5월 광운대역과 비슷한 구조적 문제였음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영등포시설의 인원은 해마다 줄어 2005년 13명이던 정원은 현재 9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현원은 8명밖에 안 된다. 참사가 일어난 28일 당시 인원은 고작 7명밖에 없었다. 인력 부족이 철도노동자를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고스란히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구조적 문제도 있다. 고인과 함께 선로유지보수업무를 담당했던 최세형 조합원은 한 방송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철도건설규칙에 따르면 선로 중심 간격(선로의 중심과 인접 선로의 중심 간 거리)이 최소 4미터 30센티는 돼야 하지만 동지가 걸었던 자갈길은 상선과 하선 사이 선로 중심 간격이 4미터가 채 안 됐다”며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또한 열차 운행을 차단하고 작업하지 못하고 운행 중 작업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비판했다.

    상황의 심각성은 노동청의 작업 중지명령으로 나타났다. 광운대역에 이어 불과 30일 만에 또 다시 작업 중지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현장 관리감독의 부실과 열차 운행 중 작업을 개시하는 등 안전 관리 시스템의 문제로 유사 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높다” 며 열차궤도 보수 작업 일체에 대해 부분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다. 노동청은 열차감시원은 감시 외의 업무에 종사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필자소개
    철도노조 선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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