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동조합기본법으로 할 수 있는 것들
    [협동조합의 역사 의미 미래 ④] 실행 의지와 실행력 중요
        2012년 08월 21일 12: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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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회사의 이야기

    지역농업네트워크라는 곳이 있다. 농민단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과 대학원을 마치고 실천적인 연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1998년 ‘한국농업의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기 위해 한국 농업계에서는 최초로 컨설팅 사업을 주사업으로 추진했다.

    사회적인 목표를 사업을 통해 지향하려 했기 때문에 당연히 주식시장에 상장을 해서 떼돈을 벌려는 생각도 없었다. 구성원들은 대부분 협동조합을 열심히 공부했던 사람들이다. 대표는 석사논문을 협동조합을 주제로 썼다.

    한 개인이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도 않아 8명이 8분의 1씩 나눠서 출자했다. 당연히 지역농업네트워크는 ‘노동자협동조합’을 지향했다.

    하지만 당시 노동자협동조합은 만들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주식회사의 껍데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형식이 어떤 경우에는 내용을 규정하기도 한다. 회사는 발전하게 되고 사무실 공간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자본금이 더 필요했다.

    5천만원으로 시작한 자본금은 10억원으로 늘어나야만 했다. 여건이 되는 사람들이 계속 출자를 하다보니 어느 사이엔가 40여명의 직원 가운데 상위 3명의 주식 지분이 절반을 넘어서게 되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목적을 이야기해도 ‘주식회사’인지라 “돈을 벌려고 별 좋은 얘기는 다가져다 붙이네……”라는 눈길을 받아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새로 들어오는 컨설턴트들에게 아무리 노동자협동조합을 지향한다고 해도 주식지분을 임원과 지사장급 이상의 간부 직원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자신이 이 회사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회사의 직원’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조직의 문화는 점차 주식회사를 닮아가기 시작했다.

    작년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되고 난 후 주식회사 지역농업네트워크는 올해초 총회에서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지난 10년을 청산하고 사회적 목표에 맞는 회사의 지배구조를 정비하려 하고 있다.

    무엇이 더 좋아질까? 어떤 실익을 위해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의 직원들이 주인이 되고 난 후 점차 변화될 것을 희망하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의 주요 내용

    협동조합기본법의 제정으로 인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법적인 제한은 거의 없어졌다. 이것이 가장 큰 의의라고 할 수 있다.

    협동조합은 5명 이상의 발기인이 모여 창립 총회와 등록을 하면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다. 자본금의 제한 규정도 없으며, 신용사업과 보험(공제)사업을 빼면 어떤 사업이든 할 수 있다.

    사회적협동조합을 기본법에 반영한 것도 매우 큰 의의를 지닌다. 일반협동조합이 ‘협동조합법인격’을 갖는다면 사회적 협동조합은 ‘협동조합법인’이면서도 ‘비영리법인’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협동조합 상담교육을 하고 있는 김기태 소장

    사회적협동조합이란 소비자, 생산자, 노동자, 후원조합원 등 여러 이해관계자 중에서 둘 이상의 조합원이 모여 공익적 목적의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고, 사업의 성과를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나누는 협동조합을 말한다.

    1991년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사회적협동조합법이 제정되었으며, 우리나라의 사회적기업육성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복지사업이나 낙후지역의 개발사업, 의료사업 등 공익법인이 ‘시혜의 형태’로 추진하던 사업을 이제는 사회적협동조합을 통해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단법인 등이 주로 회비를 재원으로 소규모로 하던 사업들을 조합원의 출자라는 방식을 통해 더 큰 규모로 할 수 있게 되었다.

    협동조합기본법의 제정으로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업적 방식’을 도입할 수 있는 아주 큰 마당이 열렸다.

    협동조합기본법을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 정부 부처의 담당자들이 모인 시행 태스크포스팀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정리하다 농담삼아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사고 친 것 아냐?”

    실제 협동조합기본법은 모든 사업을 다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법이나 상법과 거의 동등한 수준의 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문제는 이런 제도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가 되었다.

    협동조합기본법의 한계? 혹은 실행력의 부족?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된 후 ‘협동조합기본법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또 협동조합기본법의 한계나 미비점에 대해 지적하는 내용도 다양한 측면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과정이 너무 짧아 민간진영의 의견이 다양하게 반영되지 않았다거나, 협동조합을 악용할 수 있는 가짜 협동조합에 대한 대책이 법조문에 부족하다거나, 기존의 개별법을 포괄하지 않아 반쪽짜리 기본법에 머물렀다거나, 지원제도가 없어 실효성이 없는 법이라거나 등등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기본법을 제정하는 데 참여한 필자도 이번 협동조합기본법의 한계에 대해 여러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지적할 사항은 국제기구의 권고사항은 모든 협동조합을 하나의 법으로 통괄하는 ‘협동조합공통법’인데 반해 이번 기본법은 기존의 협동조합관련법을 두고 별도의 포괄적인 기본법으로 정의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과 이에 따라 협동조합의 다양한 유형의 특징을 법에 반영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앞으로 보완 개선해야 할 사항을 얼마든지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을 만들 때에는 언제나 파트너가 있기 마련이며, 법 제정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역관계가 작동할 수 밖에 없다.

    이번 기본법의 제정은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우호적인 정치사회적 여건에 힘입어 민간진영의 역량을 넘어선 수준의 법조문으로 구성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평가가 기본법의 미비점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수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오히려 실제 실천을 저해하는 논리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오히려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지나친 걱정이 상황을 더 악화시켜버리는 것이다.

    협동조합의 가치를 고민하는 착한 사람들은 이 법으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거나 실제 협동조합을 운영할 수 있는 사업역량을 갖추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선무당 장구 탓하고 있고’, 그 틈새를 비집고 협동조합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설치며 ‘마당 쓸어 놓으니 개가 먼저 지나가’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것조차 협동조합기본법의 문제라고 치부하면 할 말이 없지만….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법의 한계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기본법’이 펼쳐 놓은 마당에서 규칙을 숙지하고 얼마나 좋은 활동을 만들어 낼 것인지를 두고 착한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으는 것이다.

    풀뿌리민주주의의 공간으로 활용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딜레마를 잘 표현해 주는 말이라면, ‘노동 중심성 혹은 민중 중심성이 약화된 진보정치’는 우리나라 진보정치 운동의 딜레마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미 90년대 초반에 ‘생활진보’로 운동과 정치를 전개하자는 주장은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그 이유가 진보적인 활동가들이 생활진보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기보다 구체적인 실천방향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생활인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며, 그동안 자신의 생활을 지켜줄 경제영역에서는 실제 대부분의 권력을 보수적인 진영이 쥐고 있었다.

    직장생활이나 사업관계에서 ‘갑’과 ‘을’은 그 자체로 불평등한 관계가 되며, 이런 일상적인 공간에서 ‘갑’의 의식은 쉽게 ‘을’에게 감염된다.

    직장 상사는 술자리에서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자유롭게 하는 반면에 부하 직원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언제 얼마나 자연스럽게, 상사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꺼내 놓을 것인지를 두고 머리를 팽팽 굴려야 하고, 머뭇머뭇 몇마디 말을 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이탈리아 볼로냐 소비자협동조합 매장 COOP의 광경

    하루 밤 사이에만 이와 같은 수십만건에 이르는 저강도의 정치적 혹은 시민사회적 활동은 ‘영리사업자’가 운영하는 술집이나 카페에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비용을 지불하면서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세계 최고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사회는 저녁시간에도 시민활동을 하도록 자유롭게 풀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제적 영역에서 착한 사람들이 주도하는 경제 활동의 비율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시민사회나 진보정치가 시민 혹은 대중과 만나는 공간은 언제나 제한될 수 밖에 없다.

    협동조합은 다양한 사업을 통해 일상적으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이런 기회를 활용하는 것은 더 나은 세계를 만들려는 사람들에게는 의무가 되어야 한다.

    상대적인 약자들이 모여서 자신의 언어로 어떤 의미 있는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잘 이행하는 협동조합의 활동은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훈련시키는 학교가 된다.

    수출대기업을 육성하는 정부 정책이 오히려 자신이 주인인 협동조합에게 불평등한 정책이라는 점을 자신의 직업 속에서 느끼게 된다.

    일상의 사회적 혹은 경제적 경험은 자연스럽게 제도적 혹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지향하게 하는 거름이 될 것이다. 일상적인 경제 영역에서도 진보적인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협동조합은 진보진영에게 또다른 도구를 쥐어줄 수 있다.

    시민운동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데 좋은 도구가 된다

    그동안 외부에서 들어오는 대자본에 의한 토목사업을 반대해 왔던 ‘지역사회 시민운동’은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 대안으로서 지역의 협동조합을 꿈꿀 수 있다. 스페인의 몬드라곤을 필두로 캐나다의 퀘벡을 비롯한 많은 지역공동체운동, 멕시코의 사례 등이 그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꼭 협동조합이란 법인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미얀마의 주택 공동체 운동이나 필리핀 빈민촌의 사회적기업 등 협동조합이 아닌 방식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모든 지역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대안운동들은 협동조합의 사상과 가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개별 사업만으로도 다양한 대안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높이려 할 때에도 협동조합 방식은 기존의 정책 중심 시민운동과 함께 할 수 있다. 풍력발전소를 지역주민의 협동조합으로 건립하는 것은 영리기업이 하는 것보다 지역의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다.

    민중 혹은 시민의 일상적 삶과 연결되어 있는 지역공동체의 대안적 개발에 가장 적합한 법인격이 협동조합이다.

    생활 정치의 발전에 기여

    협동조합이 자체적으로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없도록 기본법에 정해져 있다. 이를 한계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필자는 현재 상황에서는 정치 중립성을 강조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협동조합 자체가 정당에 참여하는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이지, 제도적 개선을 위한 활동까지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역량있는 협동조합의 지도자들은 언제나 지역주민의 여론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사회적협동조합은 신뢰와 믿음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으며, 성공적인 사회적협동조합을 주도하는 지도자는 지역사회의 지도자로서 안정적이고 일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시민 있는 시민운동을 위해서는 많은 시민들에게 시민 교육과 민주주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소비자협동조합이나 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 활동과 홍보, 교육은 공간은 시민 교육과 민주주의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된다.

    이런 비옥한 토양, 많은 대중들이 어떻게 정치적 각성을 높여나갈 수 있는가는 이후의 문제이며 협동조합 지도자들의 구성에 달린 문제가 된다.

    실제 일본의 지역 협동조합운동의 네트워크인 가나가와 네트워크는 협동조합운동으로 연결된 다양한 지역주민들의 지지를 받아 많은 지자체 의원과 참의원까지 배출하고 있다.

    문제는 실행력이다

    협동조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운동’과 ‘사업’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연히 먼저 ‘협동조합으로 사업을 해야 한다’.

    사업을 하면서 점차 균형을 이뤄나가는 것이지, 균형점을 맞춰놓고 사업을 하겠다고 정하면 실제 협동조합을 시작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내외부의 변화에 금방 무너지고 만다. 정치가 생물이라는 말처럼 협동조합도 생물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실행하겠다는 의지와 실행력’이다. 앞에서 말한 기본법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은 가능성일 뿐이다. 오히려 더 나은 세계를 큰 시각으로 보는 지도자들의 육성이 제대로 안되고 협소한 시각의 지도자들만 양산된다면 협동조합은 오히려 보수적인 아이콘으로 변할 수도 있다. 협동조합은 ‘사상의 틀’이 아니라 ‘활동의 틀’이기 때문이다.

    문학예술로 비유하자면 좋은 문학예술작품은 작가의 세계관과 기능이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세계관이 없는 ‘기능의 숙련자’들도 많고, 좋은 세계관을 미숙한 역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작가도 있다.

    시장은 전자를 후자보다 더 쳐주기 마련이다. 바둑으로 치면 꼼수 1단이 기풍 좋은 5급을 이기는 것과 같다. 하지만 문학예술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세계관, 낯설게하기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위대한 작가는 좋은 세계관을 필수 요소로 가지고 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사람들은 협동조합이란 좋은 도구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역량과 실행력을 쌓아가는 노력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협동조합기본법의 미비점은 충분히 보완되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현재 사단법인 한국협동조합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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