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덥지근한 8월
    딸, 스마트폰을 조르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⑱]버티기
        2017년 06월 23일 09: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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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4일(일)

    딸은 어제 혜정이랑 지영이 집에서 잤다. 며칠 전 예고한 일정이었다. 셋이 홍대 앞에서 밤 10시까지 보드게임도 할 거라 했다. 아내는 조심하라면서 허락했다. 지영과 혜정 부모도 허락했단다. 그때 딸은 내게 물었다.

    “지영이 집에서 맥주도 마실 건데, 외국 맥주 한 번 마셔 볼 거야. 호가든이 맛있어? 아사히는? 칭따오나 하이네켄은 어때”

    태생적으로 미각이 없는데다, 독주나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 터라 맥주 맛을 잘 몰랐다.

    “아사히도 맛있고 칭따오도 맛있어.”

    대충 대답했다.

    “아빠, 지영이 집에 가는 날에 맥주 3캔 사 줘.”

    나는 그러겠다고 해 놓곤, 어제 딸과 대면하지 못해 들어주지 못했다.

    8월 5일(월)

    얼마 전부터 딸이 아내에게 영어 과외 시켜달라고 졸랐단다. 아내는 자기나 나나 벌이가 없는 상황에서 얘기해 봐야 답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한동안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었다. 딸애나 아내나 답답했을 것을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8월 7일(수)

    아내가 머뭇대며 입을 열었다. 딸이 스마트폰 사 달라고 졸랐단다. 친구들은 다 있는데 자기만 없다고 했단다. 현재 쓰고 있는 휴대폰은 2G였다. 지금껏 잘 참아 왔는데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했나 싶었다. 나는 말했다.

    “안 된다고 하지 그랬어.”

    “이제 그럴 수 없어. 이미 가격대와 기종을 상의한 상태야.”

    아내가 대답했다. 딸은 좀 더 좋은 것으로, 아내는 보다 싼 것으로, 입장 차이가 있다 했다. 내가 얘기해 보겠다고 했다. 영어 과외, 스마트폰, 어느 하나도 감당하기 버거운 처지였다.

    8월 8일(목)

    등교 준비와 출근 준비로 분주한 사이, 딸에게 말했다.

    “엄마한테 스마트폰 사 달라 했냐. 고등학교 졸업하고 장만하기로 약속했잖아.”

    딸은 시무룩하게 대꾸했다.

    “친구들은 다 있단 말이야. 사 줘.”

    “돈 없는데, 영어 과외와 스마트폰 둘 다 하면 힘들어.”

    나는 빈궁한 내 처지를 얘기했다. 딸은 고집했다.

    “영어 과외는 안 해도 되니까, 스마트폰 사 줘.”

    “그래도 안 돼.”

    딸은 풀 죽어 등굣길에 나섰다. 마음이 착잡했다.

    8월 10일(토)

    할매는 2박3일 일정으로 강원도에 놀러갔다. 민주 할머니 형제들의 여행에 따라갔다. 민주·민혁 엄마 이지은과 아내 황혜원은 성신여대에서 학생운동을 함께한 벗이었다. 이지은 남편 양기환은 영화운동을 했다. 우리는 형제처럼 어울렸다. 양쪽 집에 아이들이 태어난 뒤엔 아이들뿐 아니라 할머니들도 친해졌다. 공교롭게도 민혁의 집은 갈월동이었다. 가까운 위치였다.

    오늘은 할매 없이 송추계곡으로 가서 물놀이하고 닭백숙 시켜 먹기로 했다. 한데 취소됐다. 아침에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

    “서너 시간 물속에서 놀면서 공부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고 했는데, 그게 안 돼서 속상해.”

    딸애는 눈물을 짰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웃기는 가시나네.”

    한마디 던지곤 달래지 않았다. 외식하고 영화 보자며 아내가 달랬다.

    “아빠 똥꼬 찢을 거야.”

    눈물 멈춘 딸의 말에 박장대소가 터졌다.

    오후 느지막 모녀가 먼저 나간다며 채비했다. 스마트폰 알아보러 간다는 거였다. 내겐 틈을 주지 않고 합의를 마친 상태였다.

    “스마트폰은 대학 가서 하자 했잖아. 단말기 보조금도 중단됐는데 할부로 샀다가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나머지 다 물어야 하잖아.”

    나는 만류했다.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

    딸은 기어드는 목소리였다. 아내가 딸을 거들었다.

    “할부 포함해 한 달 4만 원 내는 기종이야. 누리가 용돈 1만 원 줄이기로 했어.”

    또다시 속이 쓰렸다. 아이 용돈은 겨우 4만 원이었다. 더는 만류하지 않았다. 가서 잘 알아보라 했다. 딸은 환하게 풀려서 나갔다.

    전화를 받고 후암동 종점으로 갔다. 나는 반바지에 샌들에 양말 차림이었다. 시내 나갈 때도 종종 즐기는 차림이었다. 모녀를 만났다.

    “기분 좋아”

    물었는데, 딸은 시무룩했다. 아내가 대신 말했다.

    “안 샀어. 사려던 기종이 품절이야. 대리점에서 그러는데 새로운 기종 나오면 단말기 보조금 살아날 수 있다고 기다려 보래.”

    나는 딸을 달랬다.

    “아빠 동창이 대리점 하니까 알아볼게.”

    딸의 표정이 확 펴졌다.

    “아빠, 꼭 알아봐야 돼. 아빠, 꼭!”

    딸은 수차 다짐받았다.

    8월 11일(일)

    오늘도 혼자 산에 갔다. 딸은 소논문 방학 숙제로 바빴다. 혜정엄마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다. 산을 타고 있는데, 딸에게서 전화가 오고 문자가 왔다. 동창에게 스마트폰 알아봤냐는 독촉이었다. 1분 뒤, 또 3분 뒤, 연속으로 재촉했다. 나는 알아보지 않고 있었다.

    8월 12일(월)

    결국 새로운 사무실로 출근을 시작했다. 오지 않으려고 한 달 넘게 버텼다. 민주노총 사무총국은 규모가 크고 일하는 사람이 많아 구태여 내가 안 와도 무방했다. 전태일재단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노총 신임위원장 신승철의 거듭되는 제안을 비껴갈 수 없었다. 얼마 전에 당선됐는데, 내가 등 떠밀어 출마한 측면이 컸다.

    신승철은 동지이자 벗이었다. 우리는 바닥으로 추락한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을 되살리고 싶었다. 조합원의 임금과 복지에만 매몰된 노동조합을 사회와 손잡는 노동조합으로 바꾸고 싶었다. 나는 연대 사업을 담당키로 했고, 국장 역할만 할 거라는 조건을 걸었다. 실장 이상의 역할을 떠맡게 되면 상임집행위, 실장 점검회의, 중앙집행위 등의 온갖 회의에 에너지를 소비해야 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신승철이 윽박지르듯 나를 닦달한 이유엔 생활비라도 안정적으로 받으며 활동하라는 뜻도 있었다. 1년 가까이 활동비 없이 활동하는 나의 처지를 알고 있었다.

    8월 19일(월)

    아침을 먹으며 딸이 말했다.

    “스트레스 받아. 가기 싫어.”

    집을 나서기 전엔 한숨도 쉬었다.

    “그래도 기분 좋게 학교에 가.”

    나는 응원했다.

    “알았어.”

    힘없이 대답하곤 학교로 향했다. 개학이었다. 그나저나 난감했다. 민주노총은 주말마다 집회 등의 일정이 많았다. 동반산행에 심대한 차질이 빚어졌다. 날짜 잡는 게 만만치 않았다.

    8월 21일(수)

    방에서 딸과 셋이서 잤다. 안쪽부터 아내, 딸, 나의 순서였다. 선풍기 1대가 월초에 고장 났는데 아직도 새로 사지 못해서였다. 어차피 올여름 다 지나가고 있었다. 그냥 버티다가 나중에 형편 좋아지면 구입해도 될 것 같았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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