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와 엉망진창
[한국말로 하는 인문학] '털'의 변화
    2017년 06월 21일 02: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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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에서는 무엇을 이르는 말에 ‘-다’를 결합하여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나타내는 말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신-신다’, ‘빗-빗다’, ‘배-배다’와 마치 한 가지로 ‘털’에서 ‘털다’가 나왔다.

동식물의 털은 벌레가 달려드는 것을 막고 체온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잘 관리해야 한다. 보통은 털의 윤기나 정리 상태로 건강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동물들은 핥아서 가지런하게 하거나 기름을 바르기도 하고 근본적으로는 정기적으로 털갈이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손쉬운 수단은 이물질을 털어내는 것이다.

동물들의 털(EBS)

‘엉터리’는 ‘엉키거나 헝클어진 털’이라는 뜻이다. 자고 일어난 사람의 머리카락이 뜨거나 새집을 지은 것과 같이 되면 흉하기도 하지만 자연 속에서는 일반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터무니없는 말이나 행동 혹은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 오늘날과 같이 외모를 가꾸고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는 시대에는 이 말의 원래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다.

자연에서 깨끗한 털이 건강을 방증하는 것이라면 반대로 사람의 세상에서는 재산이 전혀 없거나 실속이 없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빈 털은 아무리 털어봐야 나올 것이 없기에 이런 경우를 두고 ‘빈털터리’라고 불렀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질이 떨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인 ‘개-’를 결합하여 ‘개털’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빈털’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옥살이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범털’이 생겨났는데 돈이 많거나 지적 수준이 높아 일반적인 죄수와는 다른 사람을 부르는 말로 쓰기도 하였다.

한국말은 같은 말을 반복하여 의미를 강조하거나 새로운 말을 만들어낸다. ‘털털’은 털기 위해 가볍게 때리는 소리나 모양 혹은 가벼운 충격으로 털리는 소리나 모양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탈탈’로 소리를 바꾸면 더 의미가 세지고 ‘털털거리다’로 활용한다. 그리고 ‘-하다’를 결합한 ‘털털하다’는 (1) 겨우 걷거나 달리는 것을 의미하거나 (2) 관련된 것들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이나 행동을 나타내는 말로 쓴다.

사전 상에서 ‘엉망’은 일이나 사물이 헝클어져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결딴이 나거나 어수선한 상태이고 ‘진창’은 물이 많아서 질퍽질퍽하게 된 땅을 뜻한다. ‘엉’이 서로 다른 것이 가까워지거나 달라붙는 것의 의미가 분명한 반면 ‘망’은 (1) 새끼를 그물처럼 얽어 만든 큰 망태기, (2) 작고 납작한 돌, (3) 밭고랑을 나누어 놓은 구획을 의미한다. 그런데 ‘엉망진창’에서 ‘진창’이 땅을 가리키는 것을 볼 때 ‘엉망’ 또한 땅의 특수한 상태일 것이다. 그러므로 ‘엉망진창’은 구획이 구분되지 않고 물이 많아 농사를 짓기에 매우 어려운 땅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말에는 ‘엉터리’가 많아 ‘엉망진창’의 상태가 되었다.

필자소개
최새힘
우리는 아직도 뜻이 서로 맞지 않는 한문이나 그리스-로마의 말을 가져다 학문을 하기에 점차 말과 삶은 동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이는 말의 뜻을 따지고 풀어 책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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