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졌지만 ‘지지 않은’
    제러미 코빈과 노동당 그리고 우리
    [기고] 매일 나는 나의 당 탈당을 궁리하고 있다
        2017년 06월 21일 08: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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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다란 이변을 낳았고, 영국과 유럽 정치의 미래에 상당한 변수를 만들었던 지난 6월 8일 영국 총선 결과, 특히 노동당 제레미 코빈의 부각에 대한 서영표 교수의 기고 글이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도 포함하고 있는 글이다. 다소 길지만 나누지 않고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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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레사 메이의 오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투표일 3주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집권 보수당이 하원 650석 중 400석 이상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둘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 내에서조차 노동당을 파괴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던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 지도부에게 희망은 없어 보였다. 테레사 메이 총리(Theresa May)가 3년이나 남은 선거를 앞당겨 조기 총선을 발표한 4월 18일 전후, 노동당의 지지율은 40퍼센트 중반을 넘나드는 보수당에 20퍼센트나 뒤져 있었다. 지방선거와 보궐 선거의 결과는 언론과 주류정치인들의 코빈을 향한 비아냥을 현실화시키고 있었다.

    과반에서 겨우 5석 많은 330석만을 가진 메이가 유럽연합과의 신속한 결별(hard Brexit)을 추진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조기 총선을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녀의 전임자인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이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쳐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확고히 하는 도박을 했던 것처럼 메이도 정치적 도박을 한 것이다. 캐머런보다는 이길 확률이 높다가 생각했겠지만, 결과는 총리직을 물러나야 했던 캐머런처럼 메이의 선택도 실패로 돌아갔다.

    지난 4월 메이의 선택은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코빈은 노동당 내에서도 인기가 없었다. 노동당 전체가 아니라 의원단 내에서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의원단 바깥의 평당원들, 특히 코빈의 당대표 선거운동 과정에서 입당한 청년층의 코빈에 대한 지지는 절대적이었다. 명사들도 동참했다. 노엄 촘스키(Noam Chomsky)가 공개적으로 코빈을 지지했고(링크),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감독 켄 로치(Ken Loach)는 그를 홍보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링크).

    그에 대한 지지의 이유는 ‘정치인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지난 12월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Hilary Clinton)에 반대했던(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표를 던졌던) 미국 유권자들의 감정 상태는 ‘워싱턴’에 대한 혐오였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유권자들은 ‘웨스트민스터’를 혐오했다. 한때 극우파 영국 독립당(UKIP)이 주목을 받고 2015년 총선에서 스코틀랜드 민족당(SNP)이 56석을 얻으며 약진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은 코빈이 그들이 혐오하는 웨스트민스터 스타일이 아니라서 지지한 것이다.

    다시 노동당 내부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노동당 당권파들은 코빈의 노선으로는 결코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확신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코빈은 평화주의자였다. 영국의 해외파병과 무력개입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해 온 인물이다. 그 스스로 평생 동안 ‘일방적 핵폐기 운동’(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 CND) 회원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당권파들에게 이러한 평화주의적 태도는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무능함의 표현이었다.

    신노동당 노선과 결별한 코빈

    노동당 당권파들을 비롯한 엘리트집단이 코빈을 불편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1970~80년대 ‘파탄 난’(그들의 그렇게 생각하는) 사회민주주의를 복원하려한다는 것이었다. 사회민주주의 좌파의 기획을 복원하려는 코빈의 초점은 보수당이 집권한 2010년 이후의 긴축(austerity) 반대에 맞추어져 있었지만 그의 입장은 토니 블레어(Tony Blair)와 고든 브라운(Gordon Brown)이 주도한 신노동당 노선과도 결별하는 것이다. 신노동당 노선은 사회민주주의를 버리고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배에 올라탐으로써, 1979년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에 의해 공식적으로 시작된 시장맹신주의를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 블레어가 보수당 정치인보다 더 신랄하게 코빈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 이 둘 사이의 간극이 매우 크다는 것을 뜻한다.

    정치평론가들의 눈에 코빈은 대처, 블레어, 브라운, 캐머런이 가졌던 카리스마가 전혀 없는 정치인이었다. 매주 수요일 방송에 생중계되는 총리질의시간(Prime Minister Question Time)에서, 일개 평의원으로 영국의 빈곤과 부도덕한 무력 개입을 질타하는 연설은 할 수 있지만 수권정당인 노동당에게 권력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지도력은 없다는 것이었다.

    2017년 6월 8일 투표가 종료된 직후 발표된 출구조사는 이 모든 편견을 뒤흔들어 놓았다. 보수당은 과반을 얻는데 실패했고 150석 정도로 쪼그라들 수도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노동당은 기존의 232석에서 30석을 늘리는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도대체 3주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맨 왼쪽이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

    성공 또는 패배하지 않은 선거의 요인

    분명 노동당은 승리하지 못했다. 비록 과반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보수당은 317석으로 여전히 제1당이었다. 극우적인 성향의 아일랜드 민주통합당(Democratic Unionist Party)과의 연합을 통해 유지될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정부이지만 테레사 메이는 여전히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비록 보수당원들조차 우려하는 민주통합당의 극우적 노선 때문에 연정 수준의 강력한 연합은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누구도 이번 총선의 결과가 보수당의 승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노동당은 졌지만 ‘지지 않은’ 선거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우선 언론과 정치권에서 지적한 코빈 스타일은 약점이기보다는 강점이었다. 제대로 된 정책 없이 브렉시트 협상을 위한 힘을 달라는 말만 반복했던 보수당의 선거운동과 달리 코빈은 거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멋진 연설과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이 아니라 소탈하지만 진솔하고 친근한, 전혀 웨스트민스터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코빈의 스타일을 과소평가하고 트럼프 지지자들이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근거 없는, 그래서 열광적인 지지를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코빈 스타일은 트럼프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코빈은 인종주의에 호소하지도 않았고 혐오를 부추기지도 않았다. 그가 말한 것은 민주주의였고, 기본적인 권리였으며, 이것을 가로막는 정치적 현실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코빈 스타일은 그 자체로 정치적 힘을 가질 수 없었다. 코빈은 언론을 조작할 수도, 영국의 지배엘리트들의 부와 권력을 동원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코빈의 적이었다. 그렇다고 대중 앞에서 무언가를 선동하는 멋진 연설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보통사람들이 마음에 품고 있었지만 그 어떤 정치인도 들어주지 않았던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고 그 이야기들이 들리게 해 주었을 뿐이다. 어떤 이야기들일까? 총선 직후 실린 <가디언>의 기사에 등장한 한 사람의 사연을 들어보자.

    이 사람은 다이앤이라는 가명으로 소개되었다. 다이앤은 혼자 네 아들을 키워야 했다. 그녀는 학교에서 급식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유급휴가는커녕 아파서 결근하면 수당을 받지 못하는 제로아워계약(zero-hours contract) 아래서 일했다. 많은 영국의 노동자들이 그런 것처럼, 어떤 이유에서도 결근을 하면 돈을 받지 못했다. 하루는 그녀는 출근할 수 없었다. 큰 아들이 자살했기 때문이었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결근하는 동안 수입은 없었고 집세가 쌓여갔다. 설상가상으로 가족 수에 비해 더 많은 침실을 가지면 적용되는 주거 수당 삭감(bedroom tax) 대상자가 되었다. 죽은 아들의 방이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빚은 쌓여갔고 다이앤은 법정에 출두해야만 했다.(링크)

    먼 나라 이야기지만 우린 이미 켄 로치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해 영국 사회가 직면한 빈곤, 빈부격차, 낙인과 무관심, 그리고 시장과 관료제의 폭력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정말 저 정도일까? 과장이 아닐까? 라고 생각할 정도의 당혹감을 느꼈을 관객도 있을 것이다. 심장병을 앓지만 질병수당을 받기 위해서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관료적 장벽들과 차별적 시선을 견뎌야 하는 마음씨 좋은 다니엘과 아들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한 다이앤의 얘기가 예외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코빈이 ‘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을 대변하고, 이들과 함께 호흡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코빈 스타일은 이들의 삶과 접속할 수 있는, 정치인답지 않은 소통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번 총선을 위해 발표된 노동당의 공약집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하여”(For the Many, Not the Few)가 울림이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청년세대의 높은 투표율

    코빈의 노동당이 보수당의 꿈을 산산조각 낼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동력은 높은 투표율이었다. 전체 투표율은 68.7퍼센트로 지난 번 총선보다 2.3퍼센트 높은 정도였지만 정치적 관심이 낮아 투표장에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던 18-24세의 투표율이 72퍼센트에 달했다. 정치과정의 탈정치화(정강과 이념의 대결이 아닌 광고 전략과 시장 조사가 전부가 되어 버린 정치)와 좌파 정당의 우경화는 많은 유권자들이 더 이상 투표할 이유를 찾기 어렵게 했다. 오른쪽으로 이동해서 경쟁하는 노동당과 보수당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없었고, 두 정당 모두 런던의 금융가들의 이야기만 들을 뿐이었다.

    코빈은 탈정치화와 정치의 우경화가 만들어 놓은 정치적 공백을 채워주었다. 드디어 ‘우리의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정치인을 만난 것이다. 젊은이들이 느끼고 있는 문제, 즉 높아만 가는 학비, 취업난, 불안정한 일자리, 주택난 등을 정치적 의제로 제시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곧 우리 모두의 번영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블레어와 브라운의 사탕발림이 아니라 소수의 주머니를 채워주기 위해 유지되는 긴축, 민영화, 시장의 독재를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천문학적 돈을 벌지만 세금을 회피하는 부유층을 공격하고 공정한 분배를 천명한 것이다. 이윤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공공서비스의 목적으로 내세운 것이다.

    위기는 곧 도전의 기회

    코빈의 주장은 새롭지 않다. 1970-80년대 노동당 좌파가 추진했던 사회민주주의의 급진화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74년과 1983년 선거공약집에 담긴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우파들이 ‘역사상 가장 긴 자살노트’라고 불렀던 그 공약집 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성정치권은 코빈이 내세우는 사회주의 영국의 미래를 시대착오적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총선 결과로 한풀 꺾이기는 하겠지만 80년대에 붙들려 진화하지 못한 낡은 좌파의 귀환이라는 냉소적 비난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비난과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코빈 지지층 내부의 문제도 있다. 코빈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청년층은 1980년대와는 완전히 단절된 신자유주의 시대의 ‘아이들’이다. 이들에게는 노조의 경험도, 그래서 파업과 단결의 기억도 없다. 공동체의 유대와 ‘자랑스러운’ 노동자계급의 연대의식도 사라진 지 오래다. 이 젊은이들에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거대한 대의를 향해 가는 80년대식 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 ‘엄마와 아빠의 회고담에나 존재하는’ 과거일 뿐이다. 그래서 이들의 코빈에 대한 지지는 안정적이지 못하다. 무정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쌓여 있는 불만은 코빈을 통해 투사될 수도 있지만 아직 그것은 ‘사회주의적 실천’이 아니다. 억눌려 있는 불만과 좌절의 에너지가 정치적 출구를 찾아 헤매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같은 에너지가 극우파시즘의 인종주의적 편견에 동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보자. 비록 코빈의 사회주의가 80년대 노동당좌파의 그것과 큰 차별을 가지지 못한다고 해도 대처의 권위주의와 노동당의 기회주의에 의해 억눌렸던 민중의 열망은 낡은 것이 아니었다고 말이다. 보다 나은 삶,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향한 노동하는 민중의 투쟁은 최종적으로 역사의 진보를 결정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들의 가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변화를 두려워하는 지배자들을 밀어붙일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관건은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힘이 코빈의 노동당, 코빈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전략을 얼마나 현대화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 코빈 스타일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아이들의 정치적 에너지가 필요한 것처럼, 새로운 세대의 불만은 21세기형 사회주의적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질서가 붕괴하고 있다는 징표

    코빈이 이끄는 노동당의 출현은 우발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우발성은 필연적 성격을 띤다.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더 이상 기존의 방식으로는 통치할 수 없는 정치적 위기를 목격하고 있다. 한 편에서는 프랑스 민족전선과 같은 극우파가가 인기를 얻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포데모스 같은 새로운 좌파운동이 주목받는다. 아무런 정치적 기반이 없는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이 20세기 후반부 수십 년 동안 유지되어 오던 기존 정치질서를 깨뜨리고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그것은 극단적인 정치적 무관심과 혼란의 징표일 뿐이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현상은 하나의 질서가 붕괴되고 있음을 드러내 주고 있다. 2008-9년 세계 금융위기가 신자유주체제의 시효만료, 최소한 하나의 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패러다임으로서는 파탄났다는 징표였듯이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혼란은 당연한 것으로 믿어졌던 대의민주주의가 역사적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웅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정치과정에 반영되며, 소수의 전문가가 아닌 다수의 참여로 지식이 생산되고 통치가 이루어지는 그런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가 원초적 형태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코빈은 노동당은 이런 사회적 위기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코빈이 마치 새로운 정치의 방향을 제시한 것처럼 호들갑 떨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표현을 빌자면 코빈 현상은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역사적 경로의 특정 시점이 ‘유기적 위기’(organic crisis) 국면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사건’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건이 또 다른 사건으로 전화되고 발전하는 것은 순전히 정치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유기적 위기의 한 현상으로서의 ‘코빈’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사회주의적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창이기도 한 것이다. 이미 진부한 표현이 되어 버린 ‘사회주의’를 2017년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충족되지 않은 필요(needs)와 접속하고, 그것이 정치의 장으로 풀려나와 아직 있어보지 못한 새로운 정치를 향해 분출하게 하는 도래할 ‘사건’을 기획할 여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영국 켄싱턴 지역의 그렌펠 타워 화재 모습

    켄싱턴과 핀즈버리

    총선 직후인 6월 14일 런던의 켄싱턴에 위치한 그렌펠타워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가 익히 알아왔던 긴축과 이윤논리, 그리고 사회적 양극화가 나은 비극이었다. 그리고 또 며칠 후 6월 19일 런던 북부 핀즈버리 공원의 무슬림 사원을 승합차 한 대가 덮치는 테러가 발생했다. IS테러에 대해 반감을 가진 혐오범죄일 가능성이 높다. 위기의 증상은 끊이지 않고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보수당이 다시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요청할 때가지 혼란은 지속될 것이다.

    유럽연합과의 브렉시트 협상을 둘러싼 논쟁까지 덧붙여진다면 걷잡을 수 없는 정치적 혼란이 올 수도 있다. 금융가들과 조세회피자들의 위한 완전한 탈퇴에 반대해 유럽연합 수준의 노동권과 인권, 생존권을 보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협력과 협조를 주장하는 노동당의 입장은 팽팽하게 맞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럴 수 있을 만큼 코빈이 이끄는 노동당의 발언권이 세졌고, 또 그만큼 과반을 상실한 메이 총리의 입지가 협소해졌음을 의미한다. 노동당 내의 상황은 코빈에게 숨 쉴 틈을 주고 있다. 총선의 결과는 최소한 당분간 노동당내 우파가 코빈을 제거하려는 쿠데타를 일으킬 명분을 갖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번 총선 결과에 고무되어 다음 번 총선까지 웨스트민스터 정치에 갇혀 있다면 결과는 절망적일 것이다. 코빈 지지자의 풀뿌리 조직인 모멘텀(Momentum)이 확장되어 긴축반대,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확대, 인종주의적 혐오범죄 반대 등의 대대적인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지 않는다면 일시적으로 코빈을 향한 기대는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불만과 저항은 정치적 실천과 개입을 통해 정치적 에너지로 보아져야 할 ‘무정형’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코빈 노동당의 진짜 시험은 지금부터인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많은 사건들과 말들은 곧 ‘지금-여기’에서 ‘살아내기’ 위해 해석되고 의미가 부여되는 자원일 뿐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담론적 실천이라고 부르는 것 말이다. 하지만 담론적 실천에도 넘어설 수 없는 경계는 있다. 그리고 잘못된 해석과 의미 부여는 부정적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몇몇 사람들은 코빈을 영국의 노무현으로, 그러니까 노무현을 한국의 코빈으로 의미화하고 싶은 모양이다. 이건 분명 오해이자 과장이다. 어찌 보면 코빈에 대한 ‘저주’일 수 있다. 노무현이라는 개인은 인간적으로 매력 있는 사람이었고 그가 품었던 꿈과 열정에 대해서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는 실패한 정치인이었다. 지금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익숙한 핑계를 댔었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코빈이 직면한 과제는 80년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좌절된 사회주의를 21세기 새롭게 실현하는 것이다. 여전히 유효한 사회주의적 열망을 신자유주의 시대에 성장했던 새로운 세대의 감각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 그가 이끄는 좌파 노동당이 떠 앉아야할 과제다. 여기에 노무현을 투사하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코빈에게 노무현을 투사하는 것이 오해요 과장이라면 지금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는 중요한 국면에서 노무현을 불러 오는 것은 그 자체로 퇴행적이다. 코빈 현상과 마찬가지로 2016~17년 전국의 광장을 가득 매웠던 촛불은 대의민주주의가 이미 너무 낡아버려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제 우리는 신자유주의 이후, 그리고 자본주의 이후의 경제체계를 기획해야 하며, 보다 넓고 깊은 민주주의를 구상해야 한다. 그것은 실패한 대통령, 낡은 대의민주주의와 시장맹신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던 한 사람의 자유주의자를 불러낸다고 해결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상징은 우리를 과거에 붙들어 매어 앞을 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퇴행이 발생한 원인을 찾을 수는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 9년 동안 체험했던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가 착시효과를 불러온 것이다. 이제 극복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 대의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 자체가 ‘혁명’으로 오인되는 효과를 가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이제 겨우 ‘낡은’ 패러다임의 ‘정상성’을 회복했을 뿐이지만, 그래서 거기에 그대로 멈추어 설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것을 시민혁명으로 착각하는 순간 퇴행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퇴행의 상징이 부정되고 극복되어야 할 ‘노무현’에 집착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다.

    분명 촛불 시민혁명은 위대한 역사적 성취였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새로운 시작이었어야 했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이제 진정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새로운 정부 출현 앞에 멈추어 섰다. 과연 문재인 정권이 자본주의 이후, 대의 민주주의 이후를 상상할 수 있을까? 이명박과 박근혜가 돌려놓은 역사의 시계를 정상으로 맞추어 놓는 것 이상으로 나갈 수 있을까?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을 출현시킨 것은 곧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실패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노무현을 개혁의 준거점으로 생각하는 문재인 정부는 처음부터 태생적인 한계를 가진 것이다. 그래서 촛불이 거리에서 사라질 때, 광장의 정치가 국회와 청와대로 축소되었을 때 우리는 이미 패러다임 전환의 기회를 상실 한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지난 4월 퇴진행동의 마지막 촛불집회 모습(노동과세계)

    나는 매일 탈당을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뜬금없는 얘기 하나. 나는 매일 내가 속한 정당에서 탈당할 궁리를 한다. 그 당의 이름은 ‘정의당’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정당은 지금 여러 가지 증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기존 시스템의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지금-여기의 실천 속에서 그것을 넘어서는 가능성을 예견하고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그럴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나 상상력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정형으로 존재하는 불만과 좌절의 에너지를 새로운 정치적 동력으로 전화시켜야 하는 도전에 응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정당은 미래를 예견하기는커녕 이제 의심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 낡은 질서의 ‘정상성’을 앞장서서 옹호하고 있지 않은가? 차라리 그럴 바에야 아마추어적 순수성이 더 낫다. 차라리 무능하지만 이념적 선명성을 부여잡고 있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문재인 정권에게는 처음부터 정상성을 회복하는 것 이상의 무엇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응원이라도 할 수 있다. 조금 더 잘 해 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미 합의된 정상성을 넘어 미래를 개척하기를 바랐던 ‘나의’ 당은 문재인 정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빈곤한 상상력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의 촛불, 영국의 코빈 현상, 아니 한국의 ‘태극기 집회’와 브렉시트까지도 포함해서 집합적 행동으로 드러난 사회적 불만과 저항은 더 이상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사회적 통합이 유지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좌파적으로 표현하든, 우파적으로 표현하든, 일상에서 체험하고 있는 떨림, 강요된 정상성의 이데올로기가 자신들의 몸과 마찰을 일으키며 ‘긁힘’의 흔적을 남길 때 느끼는 진동을 몸부림과 아우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기존 질서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세력은 그걸 애써 무시하거나 억누르거나 파괴적인 방식으로 동원하려 한다. 수구적 반공이데올로기에 이끌리는 ‘태극기 집회’와 인종주의적 선동에 동조한 브렉시트는 파괴적 동원이 아니겠는가? 그 엄청난 에너지의 표출이 투표소에서 해소되도록 유도하는, 스스로를 좌파라고 착각하는 시장자유주의자들의 태도는 의도적 무시가 아니겠는가?

    미래를 내다보는 진보세력은 그러한 몸부림과 아우성을 새롭게 도래할, 지금까지 있지 않았던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데 표출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나의 정당은 부여잡을 이념도, 좌파 정치가 보여주었던 순수성도, 그리고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상상력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평범한 사람들은 ‘다른 세상’에 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품고 있다.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면서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모였던 노인들이라면 나이가 들어도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않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그럼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세상을 원할 것이다.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나온 중고등학교 학생이라면 몸과 마음을 모두 피폐하게 하는 입시만을 위한 교육, 단 한 번의 기회로 인생의 경로를 결정하고 돌이킬 수 없게 만드는 경쟁체제에서 벗어나 놀고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상태을 원할 것이다.

    20-30대 청년이라면 국가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의 권리와 행복추구권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시장맹신주의를 넘어 최소한 인생을 계획하고,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쥐어짜서 소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바랄 것이다.

    40-50대 장년층이라면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져야 하는 재정적 부담과 자신들의 노후를 대비할 여유가 없는 조건에서 오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는가?

    코빈이 가려고 하는 길은 ‘사회주의’라는 이념 속에 우리들 모두가 열망하고 바라는 사회가 어떤 것인지 각자가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우리들 마음에 품고 있는 좋은 삶, 행복한 삶, 만족스러운 삶에 대한 바람 말이다.

    아직 희망은 있다. 그리고 아직은 늦지 않았다.

    필자소개
    제주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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