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내기 전투를 끝내고
    [낭만파 농부의 시골살이] 가뭄
        2017년 06월 20일 03: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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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모내기 ‘전투’가 끝났다. 무릇 큰일이라는 게 다 그렇듯이 시작 전에는 걱정이 한 짐이지만 막상 닥치면 어떻게든 해내게 되어 있다. 올해도 그랬다.

    무엇보다 짧은 기간에 많은 걸 해치워야 하는 부담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모판 1천5백 개를 사방 60마지기 논에 옮겨 심어야 한다. 우리가 이앙기를 쓸 수 있는 기간은 사흘. 친절히 설명하자고 숫자를 동원했지만 벼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역시 그림의 떡일 게다. 그저 전투라 이를 만큼 벅차다는 것만 알아두시라.

    그런 상황에서 일을 잘 풀어가려면 작업공정을 잘 짜야 하는 법. 인력과 장비를 최대한 끌어대고, 물 흐르듯 작업이 이어질 수 있도록 배치하는 게 핵심이다. 무엇보다 일꾼을 많이 끌어모으는 게 키포인트.

    60마지기 논배미에 모를 낼 ‘우리’란 벼농사모임을 말한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 벼농사를 짓고 있거나 관심 있는 이들이 함께 한다. 60마지기 가운데 40마지기를 내가, 나머지 20마지기는 너 댓 명이 짓는다. 전업농은 나 혼자고, 다른 이들은 직장을 다니면서 ‘주식자급’을 목표로 저마다 한 두 배미를 부친다. 그런 사정 때문에 나를 빼고는 모든 공정에 참여할 수 있는 이가 거의 없다. 모내기 기간 중 내리 비번이거나 휴가를 낼 수 없는 탓이다. 실상 경작 면적을 연동하자면 모두가 전 공정에 참여하는 게 합리적이지도 않다. 어쨌거나.

    모판 나르기

    모내기 이틀 전부터 모판을 날랐다. 못자리는 한 곳이고, 논배미는 사방에 흩어져 있으니 트럭에 실어 나를 수밖에 없다. 모판을 못자리에서 떼어 트럭에 차곡차곡 실어 옮긴 다음 다시 한 판, 한 판 내려서 논배미에 늘어놓는 작업이니 품과 시간이 많이 든다. 첫날은 세 명이서 저녁 무렵 두어 시간 동안 3백50판을 날랐다. 나머지는 1천2백판은 다음날 아침부터 작업인력을 ‘총동원’하고, 트럭을 한 대 더 빌렸다. ‘상차조’와 ‘하차조’로 나눠 효율을 높였더니 못자리 뒷정리까지 해거름에 끝낼 수 있었다.

    드디어 모내기. 달포 전에 ‘포트모 시스템’으로 유기농 벼농사를 짓는 농가들이 모여 순번을 정했다. 포트모판에 모를 기르고, 전용 이앙기로 모를 내는 방식이다. 전용 이앙기가 군 농업기술센터에 한 대밖에 없어 농가별 작업 일정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다. 어쨌거나.

    요즘 모내기는 따분하기 짝이 없다. 언젠가도 얘기했듯이 와글와글한 손 모내기가 아니다. 이앙기 조작자와 보조자 단 둘이서 하는 작업이다. 동네의 숙련된 이앙기 조작자를 고용하는 대신 우리는 보조역을 맡았다. 이앙기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모판을 들어 조작자에게 넘겨주는 일이다. 그리고 다시 긴 침묵. 그러니 따분할 밖에.

    모내기 모습

    동네 아낙이 머리에 이고 오는 점심 광주리도, 아이가 들고 따라오는 막걸리 주전자도 없다. 새참은 빵 부스러기와 음료, 캔맥주가 고작이고 점심은 읍내 식당에서 사 먹는다. 둘째 날과 셋째 날은 그나마 다른 이의 작업 일정도 틈틈이 섞여 있어서 그나마 좀 나았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제 ‘모내기의 추억’ 따위는 사라졌다.

    문단 맨 뒤에 붙는 ‘어쨌거나’가 눈에 거슬렸는지 모르겠다. 명색이 ‘농부의 시골살이’니 농사짓는 얘기가 빠질 수 없다. 그런데, 농사를 잘 모르는 이들한테 농작업 공정이나 일머리를 따위를 자세히 설명한다고 알아들을까? 설령 이해한다 쳐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꼬리를 무는 거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하던 얘기를 서둘러 마무리 짓게 되더라는 얘기다. 어쨌거나.

    새참이나 점심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뭣 헐라고’ 그리 따분하게 농사를 짓느냐 이 말이다. 나는 아무 재미도 없이 아등바등 살다가 죽을 때가 되어 후회하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해서 일이 거의 끝나갈 즈음 ‘톡방’에 들러 ‘사발통문’을 돌린다. 그러면 회가 동한 이들이 해 떨어지기 무섭게 읍내 선술집으로 꾸역꾸역 몰려든다. 물론 우리 모내기 관련자들이다. 손톱만큼도 기여한 게 없지만 유기농 벼농사에 대한 애정만으로 자리를 함께 하는 이들도 더러 있긴 하다.

    모내기 완료 후의 술판

    예순을 바라보는 희선 언니, 한 배미 벼농사 짓고 싶은 마음만 굴뚝이라. 모내기 다 끝냈다니 애썼다며 장미꽃 한 다발을 건넨다.

    오로지 하늘만 바라보고 작은 둠벙에 기대 세 다랭이를 부치고 있는 병수 형님, 한 다랭이에만 기적처럼 모를 냈지만 여간 기쁘지가 않은 모양이라. OO집에서 아구찜으로 한 턱 내겠단다.

    “이 가뭄에 닷 마지기 중 두 마지기라도 모를 낸 게 어디여? 우리 아래 논배미는 여태 써레질 엄두도 못 낸다니께”

    “하이고~ 누가 아니래. 농수로 박박 긁고, 저 멀리까지 가서 이래저래 수문 조작해서 겨우 써레질 했잖아. 기분이 말이 아닐세. 한 턱 내지”

    딸랑 세 마지기 한 배미 부치는 근수 형님도 겨우 모내기를 할 수 있게 됐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온갖 무용담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고 나면 다시 놀 궁리다. 7월 중순으로 예정된 ‘양력백중놀이’를 올해는 어떻게 꾸밀지가 큰 관심사 중 하나다. 물론 놀 궁리만 하는 건 아니다. 벼농사 이태 째, 용감하게 세 배미 닷 마지기에 도전한 명호 씨는 10마지기로 늘려보겠단 포부를 털어놓는다. 하지만 “열 마지기에서 나온 쌀 소화하기가 쉬운 게 아니다”는 내 얘기에 표정이 시무룩해진다.

    아닌 게 아니라 갈수록 밥쌀 소비가 줄어드니 애써 지은 쌀 내다파는 일이 버겁기만 하다. 모내기를 마쳤으니 올해 절반 농사를 끝낸 셈인데, 지난해 거둬들인 나락은 여적 곳간에 쌓여 있다. 생산물량을 모두 직거래로 소화하고 있는데 그 속도가 예전 같지 않다.

    기후변화로 여름철이 일찍 시작되면서 쌀 보관에도 어려움이 크다. 날이 더워지면 쌀의 산화(변질)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저온저장고’를 갖추면 사정이 나아질 테지만 설치비용도 부담이고, 신선식품도 아닌 쌀까지 그래야 하나 싶어 거북스러운 게 사실이다. 더운 철에는 어차피 소비자들이 저마다 냉장보관하는 게 최선이기 때문이다.

    궁리 끝에 지난해부터 ‘갓찧은 쌀 서비스’라는 이름의 우회로를 찾았다. 직거래 소비자들에게 방아 찧을 날짜를 예고하고 미리 주문을 받아 최대한 신선한 쌀을 공급하자는 취지다. 그렇게라도 더위를 이길 수 있는 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날이 다시 선선해질 때 쯤 나락이 여물고 햅쌀이 나오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어쨌거나.

    그 햅쌀을 만들어내기 위해 아직 갈 길이 멀다. 제초일꾼 우렁이가 잡초를 잘 뜯어먹을 수 있도록 물을 넉넉히 대줘야 하고, 조만간 뜬 모 때우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우렁이가 제 구실을 못하면 사람 손으로 김을 매줘야 하는데, 제발 그럴 일이 없기를. 잡초가 올라오더라도 조금만 올라오기를.

    거친 노동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픈 농부의 열망은 이 여름 날씨만큼이나 뜨겁다.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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