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서비스공단, 어디로
    가장 열악한 재가노동자들은 배제?
        2017년 06월 20일 11: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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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의 겨울과 2017년의 봄.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라며 촛불을 들고 거리와 광장에서 겨울을 보낸 국민들은 봄이 만개하는 5월에 정권을 교체시켰다. 국가의 일정에 따라 치러진 선거가 아니라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낸 정권교체였기에 어느 때보다도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아가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는 것으로 임기의 첫 단추를 채웠다.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을 약속했고, 사회서비스공단의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에 대한 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고,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은 불안정하고 열악한 처지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사회서비스 시장화의 폐해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살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이라는 소식은 정권교체를 현실로 느끼게 해주는 소식이다. 그러나 사회서비스공단 대상에 보육과 요양(시설)만 포함하고, 사회서비스의 한축을 담당하는 재가서비스는 제외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동시에 퍼지고 있다. 사회서비스공단, 정확히는 사회서비스 공적 전달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주장하면서 함께 활동을 해 온 노동자들이 이제는 사회서비스공단의 문 앞에서 누구는 그 문을 통과하고 누구는 코앞에서 문이 닫혀버리는 상황을 맞고 있다.

    그동안 공단 설립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논의에 대해서 할 말이 참 많았다. 설계의 키를 쥐고 있는 사람들(정당의 정책담당자들과 전문가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답변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논의 중이다. 의견을 수렴하겠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풍문으로 돌아다니던 이야기들이 결정이 되어 돌아오려 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결정된 것이 없다는 이야기는 되풀이된다. 결정된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견을 차단하려는 것이겠지.

    이런 상황이다보니 아무도 공단이 어떻게 설계가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묻지 못하고 있다. “결정된 것이 없다” 작전은 일단 성공한 것 같다. 그런 까닭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과녁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심정이다.

    ‘서울시 사회서비스재단 설립 타당성 검토연구’와 사회서비스공단

    3월 6일 더불어민주당과 남인순의원이 ‘사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사회서비스공단, 어떻게 설립할 것인가?’(이하 ‘사회서비스공단 토론회’)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에 발제로 올라온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및 운영방안」에는 공단의 필요성과 주요기능, 기대효과 정도만 언급되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가 없고 다만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사진=최도자 의원실

    발제자인 김연명 교수(중앙대 사회복지학과)는 서울시가 2016년에 실시한 「사회서비스재단 설립 타당성 검토연구」(이하 ‘서울시재단연구’) 용역의 책임연구원이다.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하니, 이 두 연구의 공통점이 지금 공단의 설계도가 아닐까 짐작하면서 이에 대한 의견을 정리하려고 한다.

    지금보다 예산이 별로 많이 들지 않는다?

    ‘서울시재단연구’는 재단을 현재 예산에서 크게 늘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를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노동자들의 임금 등 처우가 현재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거나 혹은 처우개선의 방식이 “서비스 수급자 수를 일정 수준으로 늘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수급자를 많이 유치해서 노동자의 일을 늘려주면 임금이 현재보다 늘어난다는 것인데, 전문가들이 보기에 지금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은 이유가 노동강도가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이 연구보고서에 등장하는 몇 개의 직접운영 사례가 있다. 그 중 광산구복지재단이 있는데 활보노조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여기서 일하는 장애인활동보조인들의 시급이 다른 민간기관과 차이가 나지 않았고 그나마 수익이 안 된다고 작년에 사업을 접었다. 정부가 정해놓은 예산 안에서 해결을 하려고 하면 결과는 이렇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사회서비스공단이 보육과 요양(시설) 중심으로 설계되고, 재가노동자들이 제외되는 이유로도 끊임없이 예산 문제를 언급한다. 재가노동자들을 공단에서 직접고용할 경우 그 예산을 예측하기 어렵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지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예산을 늘리지 않고 실현하기 어렵다. 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이지만, 대한민국의 복지예산은 OECD 국가 중에서 꼴찌를 달리고 있다. 공공성이 실현되려면 공단이건 재단이건 예산 확충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필요한 부문에 공단을 설립하기 위한 예산 계획을 세우는 것이 두려울 이유가 무엇인가?

    작년 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와 사회서비스시장화저지를위한공대위가 간담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서울시재단연구’에 대해 의견을 전했다. 예산을 지금 수준으로 하면 처우개선이 힘들고 예산 확충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참여연대 복지위원으로 참석한 교수는, 시가 예산을 더 투입하면 공정경쟁이 아니니 현재 예산 수준에서 설계를 하라는 민간기관들의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은 문제는 예산이 아니라 정부가 양산한 민간기관들의 저항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정부나 시민단체는 왜 민간업자들을 의견은 그토록 잘 수용하면서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가? 노동자의 저항이 너무 약했던 것일까?

    서울시재단에 비추어 보건대, 문재인 정부가 공단에서 대상을 축소하려는 것이 말 그대로 예산 때문인지, 민간의 저항이 두렵다고 말하기가 민망해서 예산을 핑계로 대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40-50대 여성은 유연한 고용형태를 원한다?

    ‘서울시재단연구’에서는 재가요양보호사의 고용형태에 대해서 “고용인력 전체를 ‘무기계약직’(공무직)으로 하되, 이중 20%를 상용형 일자리로 고용하고 나머지 인력은 급여의 안정성과 유연한 근무시간이 보장되는 상용형 파트타임의 형태로 고용”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 이유로 근로조건의 특수성 때문에 정규직화가 힘들다는 것과 ‘대부분의 노동자가 40-50대 여성인데 이들은 자신의 노동시간을 일상 속에서 유연하게 사용하기를 선호하는 노동수요군’이라고 말한다. 이는 현실을 거의 모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노동시간이 적고 원하는 시간에 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노동자가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여기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렇게 일해도 생계가 보장되고, 노동자의 법적 권리가 모두 보장되어야 한다. 장애인활동지원 노동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일하려면 그에 맞는 이용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이용자를 만나더라도 원하는 만큼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 이용자가 스케줄을 바꾸는 경우도 비일비재해서 짧은 시간을 일할수록 노동시간이 자주 바뀐다.

    그리고 남는 시간을 자유롭게 자기개발이나 사적인 활동에 쓸 것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 착각이다. 시간이 짧은 사람들은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두세 가지 직업을 가진다. 지난해 과로사한 활동보조인은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면서 부족한 생계비를 보충해야 했다. 노동시간이 짧은 활동보조인 중에는 파트타임으로 이어지는 일자리로 인해 노동시간은 긴데(무급의 이동시간이 포함됨) 수입이 적어서 전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

    연구자들이 말하는 자유로운 시간, 유연한 고용형태는 노동자들이 원하는 현실이 아니다. 정부가 일자리 설계를 고민 없이 해놓고 이제 와서 여성들이 이런 자리를 선호한다고 우기는 것 뿐이다. 이런 잘못된 전제 하에서 설계되는 노동형태라면 지금보다 임금이 조금 더 높고 고용이 조금 덜 불안한 형태가 될 위험이 높다.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월급제이다.

    사회(복지)서비스에서 공공성과 효율성이 공존할 수 있을까?

    ‘공단토론회’ 발제문에 공단 설립을 둘러싼 쟁점이 몇 가지 언급한다. 그 중 하나로 민간공급자와의 관계 설정에 대한 것이 있다. 공단 설립이 민간공급자를 완전히 구축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사회서비스공단은 한국의 사회서비스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공공시설 비중을 확보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라고 밝힌다. 사회서비스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해석하기가 힘들다. 돈을 적게 들이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효율성이라면 이것이 가능한 방법은 노동자를 쥐어짜는 것 외에 어떤 방법이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사회서비스시장의 효율적 작동을 위한 방법으로 서울시재단과 공단 모두 강조하는 것이 표준운영모델이다. 소규모기관들이 효율적인 운영방법, 인력관리 등에 대해 감당하기 어려우니 표준운영모델을 만들어서 민간기관들에 제공하고 이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민간시설운영의 효율화와 서비스질 향상에 도움을 주겠다고 하고 있다.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을 하는 기관들을 보면 소규모기관들이 운영에 문제가 많다는 분석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활보노조가 전국에 있는 장애인활동지원 기관의 수수료 비율에 대해 2년에 걸쳐 분석해본 적이 있다. 이를 위해 전국의 활동지원기관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다시피 하였다. 이 결과를 보면 규모가 큰 곳이 좋다고 볼 수가 없다.

    서비스제공시간은 제공기관의 규모를 의미한다. 서비스제공시간이 많을수록 기관의 수수료비율이 높다. 수수료비율이 낮은 곳은 전화를 통해 추가조사를 진행했다. 규모가 작을수록 이익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고, 이동비 지원, 연차수당 지급 등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위해 더 노력하고 있었다. 2015년의 결과도 거의 다르지 않았다.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을 하는 민간기관들을 보면 운영방법을 몰라서 어려움을 겪는 곳은 별로 없다. 활동지원기관들은 기관유형별로(복지관,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활센터, 사회적기업 등) 협의회 등 연합단체를 만들고, 자체적으로 운영방법을 연구해서 공유한다. 노동법을 둘러싸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 대응방법도 함께 찾는다. 2016년 복지관들은 노동자들에게 체불임금 포기각서를 받았고, 2017년은 계약기간을 개악하는 방식으로 법망을 피해나가는 방법을 공유했다. 표준운영모델은 민간기관들 스스로 이미 만들어 가고 있다. 운영의 문제는 낮은 수가와 이윤을 남기려는 욕망에 있지 운영방법이 서툴러서가 아니다. 장애인활동지원기관과 재가요양기관을 비교해보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보인다. 기관운영을 정부 감독범위 안에 두고 싶으면 신고제를 허가제(지정제)로 바꾸는 것이 더욱 확실한 방법이다. 표준운영모델이 기관이익을 높여주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될 공산이 크다.

    정부가 애초에 사회서비스를 시장화 방식으로 설계한 것이 문제이니 그들의 어려움을 계속 케어하겠다는 것인가? 시장화로 인해 고통을 더욱 크게 겪고 있는 부류는 운영기관들이 아니라 노동자들이다.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다. 민간기관은 공단이 걱정해 주지 않아도 알아서 ‘효율적’으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재단 대표 연봉은 1억1300만원, 재가방문요양사 연봉은 1700만원?

    임금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누군가 임금을 높게 받는다면 불평할 것이 아니라 나의 임금수준을 높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정석일 테니까. 그래도 이건 좀 거론해야 할 것 같다. 서울시재단의 보수 수준을 보면 대표의 연봉을 “서울시의 유사 재단의 연봉을 고려하여 연간 약 113백만원 수준으로 책정”한다고 돼 있다. 그 외 직급별 임금표도 있다.

    저 직급별 보수표에는 현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은 빠져 있다. 연구서에는 재가방문요양사의 임금에 대해 “재단이 직접고용하고 4대 보험을 적용시키면 연간 1700만원의 인건비가 발생”한다고 잡고 있다.

    같은 조직 안에서 임금격차는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온다. 대표가 내 연봉의 7배나 더 높고, 사무직노동자들과 서비스제공 노동자들의 임금격차가 심하다면 현장에서 힘들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 입장에서 도대체 이 재단을 누굴 위해서 만드는 걸까 고민하게 될 것이다. 파리코뮨은 공무원의 임금을 노동자 평균임금에 맞춰 지급하도록 했다.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재단 내에서 임금차이가 저렇게 많이 나야 할까?

    그마저도 배제되는 재가서비스 노동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노동자들은 어떻게라도 좋으니 공단의 구조 안에 편입되기를 바란다. 그만큼 민간기관들의 운영이 폭압적이고 정부의 무책임이 극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보육과 요양의 일부를 공단으로 설립하고, 장애인활동지원 등 재가(在家)서비스는 제외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가서비스가 제외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예산을 확충할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보육과 요양도 국민연금에서 2조원을 가져다가 세우겠다고 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회서비스공단, 즉 사회서비스의 공적 전달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예산계획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연금기금 같은 일시적 비용으로 사회서비스 공공성을 안정적으로 담보할 수는 없다.

    재가서비스에 예산이 많이 든다는 이야기는 재가노동자들의 처우가 얼마나 열악한가를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정부는 민간에 노동자들을 고용하게 만들고 그들에 의해 불법이 저질러지도록 방조하거나 혹은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재가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적용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잘릴까봐 겁나서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기도 힘들다. 건강을 상해도 위탁기관들이 산재신청을 꺼리기 때문에 쉬지 못하고 일한다. 그러다가 더 이상 일하기가 어려울 만큼 몸이 망가지면 해고당한다. 이런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을 두고 예산을 핑계로 삼는 것은 촛불정부가 취할 바가 아니다.

    재가노동자들을 공적구조에 포함해야 하는 이유는 노동자의 처우를 위해서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사회서비스의 시대적 요구와도 같은 방향을 향한다. 사람은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가는 존재가 아니다. 나이가 많고 병이 있는 노인도, 장애인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인 것이다. 시설은 사람의 자유를 상실케 하는 것 뿐 아니라 네 삶의 종착역이 어디인가를 끊임없이 확인시켜 주는 곳이다. 장애인이 탈시설을 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을 시설이 아닌 집에서 보살피고 싶어하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그들에게 꼭 필요한 노동자들의 문제를 시장에 맡겨놓은 채로 언제까지 기다리라고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예산이 부족하니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 문재인대통령 임기내에 이 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별로 없다는 것과 다르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 성소수자들에게 “나중에”를 외친 것이 조금 있다가 발언할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를 반대하고 동성애자들 때문에 군전력이 약화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는 것이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나중에 라고 말하려면 그 나중이 언제인지 시점을 명확히 밝혀야 하고,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방안도 함께 내놓아야 한다.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는 말은 밥 먹지 말자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정말 밥을 같이 먹고 싶으면 “이번 주 금요일 저녁6시에 종로3가에 있는 종로생고기집에서 만나자”라고 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명확함이다.

    필자소개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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