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도시 프라이부르크를 방문하다
    [세계녹색당대회 참가기⑤] 우리 삶의 진정한 가치
        2017년 06월 20일 11: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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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말 세계녹색당 총회가 영국 리버풀에서 열렸다. 한국녹색당에서도 여러 명의 당원이 참석했다. 한국녹색당은 총회뿐 아니라 녹색정치와 활동이 활성화된 유럽의 몇몇 지역을 탐방하기도 했다. 녹색당 세계총회 참석자들과 레디앙은 총회 참석기 및 유럽 탐방기를 함께 기획하여 게재한다. <편집자> ——————–

    지난 4월, 5년마다 열리는 세계 녹색당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나를 비롯한 스무 명에 가까운 녹색당원들이 유럽으로 향했다. 총회 전후로 독일의 베를린, 프라이부르크와 영국의 스트라우드까지 방문하는 긴 여정이었다.

    녹색당원에게 독일은 흥미로운 사례다. 독일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2022년 탈핵을 선언했고, 그를 위한 준비 절차를 차근차근 밟고 있다. 독일 녹색당인 ‘동맹 90’은 오랜 역사와 더불어 지금까지 장관, 국회의원 등 여러 정치인을 배출해 세계 녹색당에서도 높이 평가 받는다.

    지방정부의 녹색 행보도 눈여겨볼만하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서남부에 위치한 프라이부르크가 그렇다. 프라이부르크는 ‘환경수도’ ‘태양의 도시’ 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독일 거대 도시 중 최초로 녹색당 시장이 선출되었고, 현 시장 또한 녹색당 출신이다. 1980년대에는 독일 최초로 시에 환경국을 설립했고, 90년대에는 환경 부시장도 두었다. 그만큼 지역의 정서 뿐 아니라 정책 또한 친환경적이다. 고양이가 생선가게 지나치지 못한다고, 독일 가는데 프라이부르크 한 번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솔라타워

    비일지역 핵발전소 반대 시위

    에너지 자립도시, 프라이부르크

    미세먼지 잔뜩 낀 서울 하늘을 뒤로 하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거쳐 프라이부르크 역에 도착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60m 규모의 거대한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솔라 타워가 나를 반겼다. 지역 홍보 문구나 거대한 기념물이 아닌 태양광 패널 건물 자체가 도시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태양광 패널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관공서, 일반 주택 등 1,000여 개의 건물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프라이부르크의 솔라 에너지에 대한 관심은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핵발전소 반대 운동이 큰 계기였다. 당시 독일 정부는 전력 수급 계획의 일환으로 프라이부르크에서 약 20km 떨어진 비일 지역에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 비일 지역은 전통적으로 포도 농장이 많고 일조량이 높은 비옥한 토지다. 초기에는 농민을 중심으로 반핵 투쟁이 진행되다가 곧 지역 시민들, 학생, 활동가 등이 참여하며 저항⦁평화운동으로까지 발전했다.

    몇 년의 싸움 끝에 프라이부르크는 독일 최초로 원전 폐쇄라는 쾌거를 이룬다. 이 사건은 자칫하면 공허한 구호가 될 수 있는 환경 보호와 에너지 전환을 도시 차원의 실천으로까지 이끄는 계기가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발생하자 프라이부르크 시의회는 에너지 자립을 기본으로 하는 ‘시 에너지 공급 기본 컨셉’ 에 합의하고 ‘에너지 자립도시’를 선언했다.

    에너지 제로 건축물 ‘태양의 배’

    패시브하우스

    저에너지 건축을 통한 에너지 절감

    프라이부르크 에너지 자립 정책의 주된 핵심으로 ‘에너지 절감 및 다변화’, ‘자원순환’, ‘녹색교통’ 등이 꼽힌다. “원전이 없으면 전 세계가 블랙아웃 된다”는 원전 마피아들의 주장이 무색하게 실용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에너지 소비 절감 제도를 실천 중이다. 각 가정과 건물에서 에너지 절약을 할 수 있도록 저에너지 건축 기준을 독일 정부 기준보다 30% 낮게 책정했다.

    92년부터는 시의 공공건물이나 시유지에 건축되는 모든 건물에 대해 저에너지 건축물만을 허가하는 조례를 제정 시행했다. 현재는 일반 신축건물에도 낮은 에너지 표준 규격이 적용되어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한다. 또한 저에너지 건축물보다 에너지 효율이 좋은 패시브 하우스 건축에 재정 지원 정책을 진행했다. 패시브 하우스는 단열 시스템을 통해 에너지 사용량을 최소화한 집이다. 한발 더 나아가 20011년부터는 패시브 공법을 사용하는 건물에만 신축 허가를 내주고 있다. 독일에 거주하는 녹색당원의 패시브하우스에 며칠 묵을 수 있었는데 별다른 난방기를 쓰지 않아도 집 안은 쾌적하고 따뜻했다.

    뿐만 아니라 태양에너지 산업과 연구에 대한 장려를 치밀하게 계획하고 진행하여 태양에너지 기술을 중심으로 한 기업과 연구소 등이 프라이부르크에 자리를 잡았다. 1000개가 넘는 일자리가 창출되어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주택협동조합 주택

    놀이터

    생태 주거단지 보봉

    생태 주거단지인 보봉 또한 좋은 사례다. 보봉은 두 번째 유엔 해비타트 회의에서 모범적인 협치 사례로 소개되기도 할 만큼 시민과 관이 협력하여 만든 친환경적인 주거단지다. 보봉에는 패시브 공법도 적용하면서 태양광, 태양열,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제로에너지 주택을 많이 볼 수 있다. 플러스 에너지 주택도 있어 일부 가구는 전기 판매로 연평균 4,000유로의 소득도 발생한다고 한다. 단지 안에 들어 가보니 빌라형 주택이 많았다. 독일인은 단독형 주택을 선호하지만 보봉 단지 주민들은 에너지 효율을 위해 연립주택형 주택을 선택했다.

    도로 또한 자동차가 아닌 사람과 어린이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주민의 자동차 보유율도 20%에 불과하다. 보봉뿐 아니라 프라이부르크의 많은 시민들은 트램이나 자전거를 애용한다. 주택들 사이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있었는데 플라스틱이나 철로 만든 기구가 아니라 나무, 돌, 펠렛 등을 활용하여 자연 그대로를 재현한 모습이었다. 주거단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커뮤니티 텃밭, 환경체험센터 등이 존재해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친환경 생활과 문화를 배울 수 있다.

    보봉의 건설과 운영에는 주민 참여가 큰 역할을 했다. 여러 주택협동조합이 보봉 단지를 함께 건설했고 지역 커뮤니티가 카페, 슈퍼마켓 등을 운영하고 있다. 단지가 조성될 때 녹색당 등 60인의 주민이 ‘소셜 에콜로지’라는 개념을 만들어 보봉의 중요 이념으로 만들었다. ‘소셜 에콜로지’는 생태와 사회복지, 토지와 지역 경제, 여성과 어린이 등 중요 가치를 담고 있다.

    거리 쓰레기통

    중고물품 정거장

    자원의 순환 => 쓰레기의 절감

    프라이부르크에서 내 눈을 사로잡았던 물건은 다름 아닌 쓰레기통이었다. 종이, 플라스틱, 유리병, 알류미늄 등으로 분류되어 있는 쓰레기통을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현재 프라이부르크의 자원 재활용률은 70~80%에 오가고 재활용되지 않는 쓰레기들은 모두 소각된다. 매립되는 것은 없다. 바이오가스 생산에 활용되거나 소각쓰레기조차 에너지를 생산에 쓰인다. 여기에는 독일의 강한 쓰레기 규제 정책이 있다. 친환경적 쓰레기 처리의 가장 좋은 방법은 아예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 것과 재사용, 그리고 재활용이 뒤를 잇는다.

    독일은 2005년 대부분의 쓰레기 매립시설을 폐쇄했다. 그리고 주 내에서 발생한 쓰레기는 그 지역에서 처리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다른 법령으로는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한 소매점에게 포장 쓰레기의 수거의무를 주어 생산자가 비용절감을 위해 포장을 줄이도록 하는 “Duale System”이 있다. 대형 슈퍼마켓 등에는 재활용 기계가 있어 소비자가 캔과 병을 되가져와 현금으로 돌려받는다. 주민의 단순 선의로 쓰레기 재활용에 적극적이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주 정부와 시장이 쓰레기 절감을 위해 노력하도록 유도하고 시민에게는 인센티브로 독려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역에는 나눠 쓰고 다시 쓰는 문화가 퍼져있다. 지역 카페들이 연합하여 컵 다시쓰기 운동을 한다든지 공동체가 운영하는 중고물품 가게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보봉 지역에는 스팟이 있어 무료로 중고물품을 나누는 중고물품 정거장, 빵집 등에서 남는 음식을 갖다 두어 지역 주민 아무나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푸드 쉐어링 프로젝트도 활발했다. 카쉐어링 서비스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한 거대 기업이 전 지역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중소 기업이 지역 공동체를 대상으로 사업을 한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대학 도서관 앞의 수많은 자전거

    시가지 내 트램

    차보다 자전거

    많은 국가에서 고속도로를 건설할 당시 프라이부르크는 친환경적인 이동수단을 장려하는 정책을 실행했다. “Park & Ride” 시스템을 기본으로 하여 자동차는 시내 외곽에 주차하고 전차나 자전거를 이용하여 도심에 진입하도록 계획했다. 프라이부르크 전체에 500km에 달하는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트램 노선과 주거지역을 가깝게 연결했다. 시 주민의 65%가 전차 역에서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도로에서 자동차의 주행속도를 시속 30km 가 넘지 않도록 제한하고 주차요금을 강화했다. 주민들이 자동차보다 자전거나 트램이 편리하다고 느끼도록 세밀하게 계획한 것이다. 이 결과로 1982년과 2015년을 비교하면 자전거 교통 분담률은 15%에서 35%로 증가하고 승용차는 38%에서 20%로 감소했다. 프라이부르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차나 택시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고 오히려 트램이 발 노릇을 톡톡히 해줬다. 트램 선로는 트램이 지나지 않을 때는 사람도 편히 다닐 수 있어 차에게 빼앗겼던 길을 다시 찾은 기분도 들었다. 무엇보다 시가지인데도 불구하고 매연냄새를 맡지 않을 수 있어 행복했다. 그런데도 프라이부르크는 안주하지 않고 보행자 전용 구역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프라이부르크의 커뮤니티 가드닝

    프라이부르크의 시내 곳곳에는 실개천인 베히레가 있다. 전체 길이가 20km 가량 되는데 16세기 쯤 소방용 수로용으로 제작된 것이다. 동력 장치 없이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 도시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기도 하고 홍수 조절기능도 있다. 이 베히레처럼 하나의 큰 맥락이 프라이부르크를 흐르고 있었다. 생태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한 사회 내 세대에 걸친 노력과, 그것이 얼마나 유효하고 중요한 것인지 도시 곳곳에서 확인했다.

    얼마 전 매일경제에서 현 정부의 도시재생사업에 비판적인 기사를 냈다. 서울 도심 내 재건축을 해야 하는 노후 건축물이 많은데 도시재생으로 턱도 없다는 것이다. 슬럼화를 걱정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재개발, 재건축에 대한 욕망을 들어내는 기사였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이 탄생하기까지 중요 역할을 했던 개발논리는 아직까지도 작동하고 있다. 다른 전문가들은 도시재생사업의 가능성도 있지만 사람이 아닌 자본이 중심이 되어 시장 주도성 개발 사업이 될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개발에서 재생까지, 재생에서 생태까지 서로 다른 개념 속에서 한국 도시의 미래상은 흐릿하다. 삽을 들기 전 도시의 새로운 패러다임, 우리의 삶에서 흘러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봐야 할지 모른다.

    필자소개
    녹색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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