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수단 또는 공공재,
‘지식’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과 길
[책소개]『도서관과 작업장』(옌뉘 안데르센/ 책세상)
    2017년 06월 17일 01: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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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스타일이 유행이다.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편안한 북유럽 스타일이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북유럽 스타일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그들이 누리는 풍요와 복지,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회민주주의’이다.

이 책은 영국과 스웨덴에서 출현한 지식경제와 사회민주주의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담고 있다. 특히 지식정보 시대 자본으로서의 지식과 이를 바라보는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관점을 스웨덴과 영국의 두 가지 상반된 사례를 통해 드러낸다. 지식을 서로 나누어야 할 공공재로 바라본 스웨덴과 개인들이 더 많이 획득해야 할 경쟁재로 바라본 영국의 사회민주주의는 여러 가지 의미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저자 옌뉘 안데르손은 두 나라의 사회민주주의를 비교·분석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민주주의의 발전 과정과 한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적’이라는 비판에 정면으로 맞선다. 저자는 지적·문화적·사회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와 동일시되는 지식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모색하기 위해서 사회민주주의를 돌아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것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영국의 신노동당과 스웨덴의 사회민주당에 관한 광범위한 사례와 배경을 정리하고 통찰함으로써 이들 국가에서 일어난 정치·문화적 변화를 분석한다.

사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제3의 길

양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에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와 함께 보편적 복지가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어서 미국의 레이건 정부와 영국의 대처 수상은 이러한 보편적 복지에 대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면서 보편적 복지 축소와 함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 실업과 빈곤, 부의 양극화 같은 부작용이 심화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제3의 길’을 들고 나오면서 새로운 정치사상으로서 사회민주주의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사회민주주의는 태생부터 자본주의와 현대성을 기반으로 탄생한 정치 체제다. 폭력혁명 대신 민주적 절차에 따라 사회주의의 급진적인 사상들을 이룩하고자 했다. 역사적으로 사회민주주의는 진보사상과 현대성을 중심에 놓고 강령을 수립했으며, 이렇게 수립된 강령이 자신들을 미래로 이끌어줄 추동력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사이의 어딘가에서 처음 탄생했을 때부터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가 현대성을 이끌어낼 핵심이라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전복을 우선적으로 고민한 적이 없다. 당연히 폭력혁명과 같은 급진적인 대안에도 부정적이었다. 사회민주주의는 오히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자본주의의 점진적 개선 사이에 자리 잡은 사상이었다.

얼핏 충돌하는 듯 보이는 이 두 정치 전략이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에서는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사회민주주의는 여러 차례 노선을 수정하면서 유토피아적 이상을 실용적 태도로 화합시키려 한 노력의 역사다. 이후 사회민주주의는 자신을 정치적 대안으로 내세우면서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단절을 선언했다. 이런 배경을 지닌 사회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서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지식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도서관이냐 작업장이냐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산업자본주의가 저물고 전 세계는 점차 지식자본주의로 변화해갔다. 기존 물질적 형태의 생산물과 연결된 ‘일반적 노동’의 개념이 정보와 지식, 이를 활용하는 기능의 형태로 변모했다. 쉽게 말해, 빌 게이츠나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이의 창의적인 두뇌 활동을 기존의 노동 개념으로 설명이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다. 창의적인 두뇌 활동은 양적 계량이 불가능한, 전통적 숙련·비숙련 노동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유형의 ‘창조 활동’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 정신적 창조 활동은 때로는 1초의 영감으로 새로운 것을 발명해내고, 때로는 퀴리 부인의 경우처럼 수십 년의 허탕 끝에 갑자기 새로운 것을 발견해 세계를 뒤덮는 엄청난 가치를 창출하기도 한다.

오늘날 경제적 가치의 대부분은 창조적 두뇌 활동으로부터 나온다. 이와 같은 변화로 인해 마르크스의 노동 철학은 이중적 이유에서 가치론적 토대를 상실했다. 우선 오늘날의 ‘지식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지식 노동자들’의 ‘일반적 노동’과 비물질적 두뇌 생산 활동은 노동 시간을 기준으로 한 양적 계산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경제적 가치의 대부분이 ‘물질대사’가 아니라 정신적 ‘의미 대사’이다. 따라서 노동이 아닌 새로운 비물질적 두뇌 생산 활동으로부터 나오고 있기 때문에 노동 가치론이 안에서부터 무너져 내린다. 오래도록 신성시 되었던 ‘노동’의 자리를 ‘지식’이 대체하게 된 것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이러한 상황에 주목했다. 지식으로의 접근성을 확보해준다면 누구나 지식을 축적하고 이를 자본화하여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정책적으로 지원해준다면 오래도록 꿈꿔온 사회주의의 유토피아를 현실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만인을 위한 번영’을 약속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영역이 펼쳐진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제3의 길은 지식 정보화에 맞게 사회민주주의를 개조하려 했던 진지한 시도다. 그러나 그 시도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발발하자 너무나 허망하게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저자 옌뉘 안데르손은 제3의 길이 실패한 원인을 자기 혁신의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는데, ‘도서관’으로 상징되는 스웨덴의 사회민주당과 ‘작업장’으로 상징되는 영국의 노동당의 사례를 비교, 검토함으로써 이를 논증한다.

두 당이 지식정보화에 주목했다는 점은 비슷해도 강조점의 차이가 크다. 노동당의 담론에서 지식은 경쟁재다. 개인들이 서로 더 많이 획득하기 위해 경합해야 하는 대상이다. 더 풍부한 지식의 소유자가 시장의 승자가 된다. 국가는 승자가 되기 위해 열의를 불태우는 시민들을 도와야 한다. 반면 사회민주당의 담론에서 지식은 공공재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게 이 공유 자산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지식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시민으로서의 덕을 함양한다는 것을 뜻한다. 국가는 이러한 지식 생산 및 유통의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제3의 길의 종말 이후 사회민주주의의 미래

영국에서 제3의 길을 종식시킨 정치세력은 젊은 세대였다. 제3의 길이 그토록 강조했던 지식정보화의 세례를 받아 역사상 어떠한 세대보다 풍부한 지식과 능력, 기능을 체득한 그들이었지만 2008년 경제 위기 이후의 경제 침체와 긴축정책으로 가장 고통받는 집단이기도 했다. 이들은 금융자본주의의 사다리를 통해 언젠가는 중산층에 진입하리라는 약속을 믿으며 학자금 대출을 받아 지식정보사회에 필요한 각종 능력을 힘들게 학습했다. 그런데 갑자기 계층 이동을 연결해줄 사다리는 더 이상 없다는 선고를 들었다. 사다리는 사라졌지만, 부채는 남아 있었다. 이후 몇 년간 이런 뼈저린 체험을 한 젊은 세대는 노동당 내 제3의 길 정치인들이 아니라 그에 맞서왔던 ‘구식’ 사회주의자에게서 대안을 찾았다. 제3의 길이 낳은 아이들이 제3의 길 정치에 사망 선고를 내린 셈이다. 이런 역설은 제3의 길이 역사에 남긴 흔적이 결코 간단치 않음을 보여준다.

제3의 길은 종식되었다. 그러나 앞서 영국에서의 실패 과정에도 불구하고 지식을 공공재로서 바라보고 접근했던 스웨덴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제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매서운 광풍 속에서도 스웨덴은 가장 피해를 덜 입었다. 그들의 도전은 새로운 시대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일정 부분 입증한 셈이다. 사회민주주의가 기회를 평등주의 의제로 밀어붙이거나 사회민주주의 프로젝트의 독창성을 지키는 데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혹독한 비판을 받아야 할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의 새로운 가능성과 유토피아적 지향을 생각하면 우리는 사회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주의 깊게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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