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시산책'을 연재하며
        2017년 06월 14일 11: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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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최경순씨의 「풀소리의 한시산책」 연재를 시작한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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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제가 한시 번역을 한다는 건 조금 무모한 감이 있습니다. 고전 번역 작업에 공역으로 한번 참가했을 정도로 초학자이기 때문입니다.

    한문(漢文)이 한자(漢字)와 다름은 한자 한자에 깊은 역사적, 인문학적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가 가장 압축적으로 담겨 있는 것이 한시(漢詩)입니다. 이러한 이면적 의미를 모르면 한시(漢詩)를 제대로 번역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시 번역은 고전번역 중에서 번역능력이 완숙할 때 하는 분야기도 합니다.

    동심초(同心草) – 김억 譯

    風花日將老(풍화일장로)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佳期猶渺渺(가기유묘묘)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不結同心人(불결동심인)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공결동심초)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그럼에도 제게 시 번역의 매력을 갖게 한 것은 위의 시입니다. 노래로도 불려서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시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 시가 당나라의 유명한 여류시인 설도(薛濤)가 쓴 시이고, 김소월의 스승 김억이 번역했다는 사실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가 한문에 관심을 갖고 어느 날 이 ‘동심초’를 원 시와 대조해보며 읽어보았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게도 번역하는구나 하구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게 번역하지? 나도 이렇게 번역할 수 있을까? 나도 이렇게 번역하고 싶다…

    김억의 번역은 저한테 강한 자극제가 되었는데, 반대로 제 발목을 잡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해도 김억만큼 잘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지난 봄 청계천을 갔다가 우연히 알을 낳으러 온 커다란 잉어떼를 만나는데 그때 문득 이하(李賀)의 大堤曲(대제곡)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문득 시를 읽고 싶어졌고, 틈틈이 한시도 번역해보았습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계절에 맞는 한시를 고를 거고요, 여러분들도 함께 번역한다는 마음으로 한시를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저의 선생님이시자 고전번역원 수석연구원으로 계신 정선용 선생님의 번역을 모범으로 삼고 있습니다. 정선용 선생님은 시는 운율이므로 운율을 살려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한시는 대개 5자, 7자로 된 정형시므로 번역도 될 수 있으면 글자 수를 맞추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정선용 선생님이 시 번역의 모범으로 삼으시는 분은 고전번역원의 송기채 선생님이십니다. 송기채 선생님은 초등학교도 안 나오신 분인데, 한문학계에서는 독보적인 업적으로 남기시고 계신 분입니다. 그분이 번역한 시를 보면 한글을 이렇게 아름답게 쓰기도 하는구나 하고 감탄이 나옵니다. 제도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으신 백기완 선생님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잘 쓰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도 두 선생님을 본받고자 노력하면서 번역을 하고자 합니다. 제 말에 동감하신다면 여러분들도 두 선생님들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각자 번역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제가 번역한 시 한 수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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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소리의 한시산책

    남들도 그러한가요? 저는 봄을 유난히 좋아합니다. 막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집에 너무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닥쳤더랬습니다.

    그때가 계절로는 늦가을 초겨울인지라 그 뒤론 가을과 초겨울을 유난히 싫어했고, 봄을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하지를 지나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면 조금씩 우울해졌습니다. 반면 해가 가장 짧기에, 해가 다시 길어지는 날이기도 한 동지가 되면 새롭게 마음을 다잡곤 했었죠.

    이제는 그 기억도, 아픔도 희미해졌지만, 봄을 좋아하는 것은 여전합니다.

    5월의 마지막 날..봄날의 마지막 날..지나는 봄을 추억하며 당나라 시인 우량사의 시 한 수를 읽습니다.

    春山夜月(춘산야월) 봄날 달 뜬 동산에서

                                                         – 于良史(우량사)

    春山多勝事(춘산다승사) 봄 동산엔 아름다운 일 너무도 많아

    賞玩夜忘歸(상완야망귀) 둘러보다 밤 되도록 돌아갈 줄 모르네

    掬水月在手(국수월재수) 물 한 움큼 떠보니 달이 손 안에 있고

    弄花香滿衣(농화향만의) 꽃밭을 누비니 꽃향기 옷깃에 가득해

    興來無遠近(흥래무원근) 이곳저곳 들뜨게 하지 않는 곳 없어

    欲去惜芳菲(욕거석방비) 돌아가고 싶지만 향기로운 꽃 어이해

    南望鐘鳴處(남망종명처) 남녁 산하에 문득 종소리 울리는 곳

    樓臺深翠微(누대심취미) 푸른 숲 멀리 누각 희미하게 보이네

    사진 : 봄 벚꽃이 활짝 핀 남산길에서.. 2017. 4. 13.

    于良史(우량사)는 당나라 시대의 시인이자 정치가입니다.

    그는 그 유명한 양귀비가 명성을 떨치던 바로 당 현종 때부터 활동하여 숙종, 대종, 덕종 때까지 활동했었답니다. 그러니까 이백과 두보의 후배 쯤 되는 거죠. 시인으로 유명하였다고 하지만, 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시어사(侍御史)라는 관직을 지냈다고 하는데, 그것도 확실한 건 아닌가 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하는 시 또한 그의 명성과 달리 7수밖에 안 된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이 ‘春山夜月(춘산야월)’입니다.

    이 시를 번역하면서 제가 다른 분들과 조금 다르게 한 부분은 ‘興來無遠近(흥래무원근)’입니다. ‘興來(흥래)’는 흥이 오는 것이니 ‘흥이 나다’ 쯤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無遠近(무원근)’ ‘먼 곳과 가까운 곳이 없다’라는 뜻이니 ‘여기저기’ ‘이곳저곳’ 모든 곳을 가리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구절을 ‘흥이 나서 이곳저곳을 다녔다’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저는 여기에 조금 더 나아가 ‘꽃이 가득 핀 동산에 와서 흥분되어 이곳저곳을 누비는데, 곳곳이 흥분시키지 않는 곳이 없다’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혹시 저만 차이를 느끼는 건가요? 하하..

    필자소개
    최경순
    민주노총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과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에서 일했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공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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