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심자 당원, 독일에 가다
    [세계녹색당대회 참가기④] 베를린
        2017년 06월 13일 01: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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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말 세계녹색당 총회가 영국 리버풀에서 열렸다. 한국녹색당에서도 여러 명의 당원이 참석했다. 한국녹색당은 총회뿐 아니라 녹색정치와 활동이 활성화된 유럽의 몇몇 지역을 탐방하기도 했다. 녹색당 세계총회 참석자들과 레디앙은 총회 참석기 및 유럽 탐방기를 함께 기획하여 게재한다. <편집자> ——————–

    세계녹색당 총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독일로 출발한 지 2주 전이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후쿠시마 3주기 행사가 끝나고 녹색당원들과 시청 근처에서 함께 저녁을 먹는데, 이유진 전 녹색당 공동위원장이 세계녹색당 총회가 곧 열린다고 말했다. 해외로 간다는 말에 솔깃한 마음에, 순두부가 식어가는 것도 잊은 채 총회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독일에 있는 한국 당원들을 만났다가 영국 리버풀로 넘어갈 건데요, 5년마다 열리는 것이라 이번에 못 가면 오래 기다려야 해요.”

    그 뒤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직 학기 중이라 수업을 빼고 가야 한다는 것, 갈 경비도 턱 없이 부족하다는 것, 총회에 참가할 자격이 되는가 등등… 그러나 정치외교학과 2학년 학부생인 지금, 녹색당에 입당한 지 갓 1년이 되는 초심자 당원인 나에게 총회 경험은 그 어느 시기보다 더 의미있게 다가올 것 같았다. 독일행 비행기가 뜨기 일주일 전, 듣고 있는 모든 수업의 교수님들께 양해를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 부모님을 설득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십시일반으로 후원을 받았다. 이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으며, 나는 이후, 이렇게 빠른 결정과 준비과정을 마친 나 자신에게 두고두고 감사하게 되었다.

    3월 25일 함께 베를린으로 떠난 일행은 총 7명으로, 다른 일행들은 이미 독일에 도착해있었다. 3월 28일까지 3일간, 영국 리버풀, 스트라우드로 이어질 긴 여정 중에서 우리는 첫 일정을 베를린에서 시작했다. 베를린 공항에 도착해 숙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바깥의 광활한 노을을 마주했다. 베를린과의 첫 조우는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의 모습으로 시작했다. 여행을 다니며 꼭 하는 나의 취미인 스케치도 여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도현 독일에 도착해서 처음 마주한 노을 풍경

    3월 26일 베를린 일정의 첫날을 독일 내 한국녹색당원들이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이날 우리는 녹색당원들이 꼭 가보면 좋을 장소 두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앞으로 쓸 기사는 이 기관들을 설명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파파브릭 International Culture Centre ufaFabrik Berlin
    활기가 넘치는 예술의 ‘오아시스’

    우리 일행은 시차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아침부터 숙소를 나섰다. 처음 일정은 예술 공동체 공간인 ‘우파파브릭(International Culture Centre ufaFabrik Berlin)’ 방문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울스테인 거리(Ullsteinstraße) 정류장에서 내려 5분 여 정도 걸어가다 보니, 독일에 살고 있는 유재현 당원이 우파파브릭 정문 앞에서 우리를 반겼다. 유 당원은 우파파브릭 소개 표지판 앞에서 공간에 대해 설명했다.

    ⓒ유한혜진 우파파브릭 정문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우파파브릭은 원래 ‘South Berlin UFA film lab’이라는 이름으로, 1921년 설립되어 1970년대 중반까지 유지된 영화 제작소였다. 영화사인 우파(UFA, Universum-Film AG)는 세계 2차대전 전까지 독일 내 최대 영화제작사였다. 1918년 당시의 주요한 영화제작사를 합병하여 유력한 금융자본·공업자본의 협력 아래 발족하였다. 나치스 정권이 성립되기 전까지는 유대계의 E. 포머가 제작의 실권을 쥐고 많은 세계적 명작을 낳게 하였으나, 나치스 정권에 의한 유대인 추방 후로는 나치스의 정책 선전을 위한 독점적인 국책회사로 전환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분리, 해체되어 제작을 중지하고, 수뇌부는 추방되었다. 그 후 제작을 일시 재개하였으나 경제적 여건 때문에 도산하였다.

    ⓒ유한혜진 우파파브릭 안에 있는 소극장 마당의 모습이다.

    1979년 5월에 공장이라는 뜻의 ‘‘파브릭(fabrik)’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붙이고 개장한 우파파브릭의 설립 배경은 이렇다. 독일까지 영향을 미친 프랑스 ‘68 혁명’ 이후 시민들은 예술 문화 중심으로, 폭력 없는 평화적인 삶에 대한 기대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런 시민의 요구를 독일 정부가 받아들여, 이러한 삶을 실현할 수 있는 문화 기관들을 다수 설립하고 그 기관들을 생태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최지안 우파파브릭 내 전원주택 앞. 공동체 안에 사람 사는 공간이 있어서 더 생기를 느꼈다.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폐허가 된 우파파브릭을 재건하기로 했다. 이들의 생각에 동의한 지역주민 30명과 200여명의 사람들이 18,500제곱미터의 면적의 버려진 공간에 모여들었다. 공간을 구성하기 위해 지역 내에서 펀딩도 받았다. 그들은 이곳을 지역사회 기반, 환경 친화적인 삶을 실현하는 공간으로서 재구성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이어 다양하고 새로운 생각들이 고안되었다. 회의를 통해 그들은 생태적인 파일럿 프로젝트, 에너지 효율적인 건물, 혁신적인 공동체 컨셉트, 나이를 불문한 사회적 연결망 등을 이 공간에서 실현시키기로 결정했다.

    ⓒ도현 우파파브릭의 주택과 소극장 스케치. 우파파브릭에 대한 간단한 메모를 해놓았다.

    우파파브릭 안에는 다양한 시설들이 있다. 먼저 극장 건물인 국제문화센터에선 다양한 공연들이 기획되고 열리는데, 코미디, 춤, 음악, 어린이 프로그램 등 장르를 불문한다. Olé라는 카페도 있었는데, 간단한 브런치 뷔페나 차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지역주민들의 만남 장소인 듯 했는데, 꽤 사람이 많았다. The Sample Studios라는 곳은 아마추어와 프로 예술가들이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 서커스 학교, 가족 안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다루는 NUSZ 이웃 센터 그리고 35년의 역사를 가진 베이커리까지 갖추었다. 거의 모든 건물들의 지붕에는 태양열이나 풍력 발전기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옥상 정원이 있는 건물도 있었다.

    우리는 카페에서 뷔페를 먹고, 산책으로 우파파브릭 안을 거닐었다. 오두막 같은 주택 단지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빨래도 널고 커피도 마시며 여유롭게 일요일을 보내는 모습이 보였다. 언덕 하나 없는 도심인 이곳에선 새소리가 사방에서 끊이지 않고 들렸다. 서울 도심에서 이렇게 다양한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산자락 주변이라면 모를까, 베를린이라는 도심에서 평화롭고 조용한,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유진 우파파브릭 뒤켠에 있는 작은 마구간. 노새를 산책시키는 한 아이.

    지역을 배제한 예술가들만의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지역과의 공생을 꾀한 예술공동체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자연친화적인 에너지로 건물을 운영하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아이들이 많이 찾아오는 공동체 공간이 그 공간의 목적을 실현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동물과 자연을 그리고 여유를 어렸을 때부터 느끼며 자랄 수 있다니..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 Flughafen Berlin-Tempelhof
    시민의,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공간!

    우파파브릭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템펠호퍼 공항역에서 내렸다. 도심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과거엔 공항으로 쓰였던 템펠호프 공항이었다. 독일 베를린에 있던 독일 내 첫 번째 공항으로, 1923년 10월 8일에 개항했다. 1930년대 중반 나치 독일의 독재자인 아돌프 히틀러가 세계 수도 게르마니아를 건설하겠다는 망상으로 이왕에 공항도 크게 만들자는 뜻에서 비효율적인 거대한 크기로 만들어졌다. 건축은 로마식으로 만들어졌으며 독일이 동서로 분단된 이후에는 서독에 속하게 되면서 테겔 국제공항과 더불어 서독의 대표적인 관문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도현 구 템펠호퍼 공항 스케치

    동서독 통일 이후에 베를린에서는 한 도시에 무려 3개의 공항을 두고 있는 것에 대한 비효율성 및 소음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었으며, 2008년 10월 공항은 문을 닫았다. 비록 지금은 폐쇄되었지만, 시설들은 철거되지 않았으며, 시민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공항 내부는 독일 최대의 난민 수용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유한혜진 공항부지에서 독특한 사진을 찍어보았다.

    공항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에 대해 논란이 많았지만 결국 시민들의 힘으로 시민 중심의 공원이 만들어졌다. 템펠호프 지역은 사실 세 개의 지역구가 함께 맞물려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각 지역마다 공항부지에 대한 이해관계가 달랐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공항부지를 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함께 연합했고, ‘그룬’이라는 시민단체가 통합하여 이 공원화 사업을 관리하게 되었다. 지금은 베를린에 오면 꼭 들러야할 필수 관광지가 될 만큼 유명해진 곳이다.

    ⓒ유한혜진 넓은 공항부지에서 녹색당 당원들과 점프 사진을 찍었다.

    ⓒ유한혜진 템펠호퍼 정류장. 기다리는 동안 풍경 스케치를 했다.

    녹색당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두 곳을 방문하니 벌써 5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그 다음으로 독일에 있는 한국당원들을 만날 장소로 행하기 위해 템펠호퍼 공항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하루만의 일정이었지만 베를린을 둘러보며 느낀 것이 많았다. 나른한 오후의 햇살아래 서 있자니, 이러한 여유를 서울에서 느껴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게 되었다. 베를린 도심에서 느껴지는 낯선 여유는 내가 오히려 서울에서 찾고 싶은 것이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찾아내야 하는 여유이겠지, 이러한 여유를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하여 녹색당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녹색당이 앞으로 쟁취해낼 여유는 이렇게 따뜻한 오후 햇살을 느끼며 꾸벅꾸벅 졸기도 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버스 승강장 의자 위에서 나는 잠에 빠져 들어갔다.

    [세계녹색당대회 참가기③] ‘비례성 높은 제도 필요’

    필자소개
    녹색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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