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총선 압승,
    마크롱이 중도파라고?
    [총선 1차투표] 노조 무력화 등 목표
        2017년 06월 12일 05:49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11일 프랑스 총선 1차 투표결과 입소스와 르 몽드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의 ‘전진하는 공화국(LRM/MoDEM)’이 총 577석 중에 415~455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둘 것으로 예측됐다. 공화당(LR)은 70~110석, 사회당(PS)는 20~30석, 불굴의 프랑스(LFI)는 8~18석, 국민전선(FI)는 3~10석을 차지할 것으로 나타났다. 330석을 차지하고 있던 사회당은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당의 존폐를 고민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사회당의 장 크리스토프 캉바델리 당수는 결선에 오르지 못하는 득표율을 올리며 낙선이 확정됐고, 대선후보였던 브누아 아몽은 6%를 득표하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났다는 것이 언론의 공통된 지적이다. 또한 마티아스 페클 전 내무장관, 오렐리 필리페티 전 문화장관 등 사회당의 거물 정치인들도 모두 낙선함에 따라 당을 재건할 마땅한 대안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LRM의 당선자 대부분이 정치경력이 전무한 신예들이기 때문에 정부가 의회를 대리하는 “마크롱 1인 정치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에두아르 필리페 총리도 공화당 출신인 탓에 당내 마땅한 견제세력도 없는 실정이다. 공천자 중에 현역 의원이나 공직자는 전체의 5% 수준인 24명에 불과할 정도다. 프랑수아 올랑드 현 대통령 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마뉘엘 발스도 사회당을 탈당하고 공천을 희망했으나 이미 3선이나 했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다. 이에 따라 사회당과 공화당 등은 마크롱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결선에서 자신들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여론조사에 의하면 결선투표에서도 큰 변동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번에 기록한 49%의 투표율은 프랑스 총선 사상 최저의 투표율이다. 마크롱 정당의 압승이 마크롱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지표로 읽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엘리제궁으로 입성하느 마크롱

    산별체계를 와해시키려는 철저히 우파적인 마크롱의 신 노동법

    총선을 앞두고 마크롱이 내세운 공약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가 포퓰리즘 성격의 공약들이다.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공무원 숫자의 축소다. 공무원의 신규 채용을 억제하고 퇴직하는 공무원들로 인해 발생하는 빈자리를 채우지 않는 방법으로 공무원 숫자를 대폭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전체 가구의 80%에 해당하는 주택세를 폐지하겠다는 공약도 유권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공화당의 피용 대선후보가 부인과 자녀들을 보좌관으로 채용한 것을 다분히 의식한 것이기는 하지만 선출직 공직자들이 가족을 보좌관 등으로 채용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 공약은 LRM이 자발적으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법을 제정해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내용이다.

    나머지 두 가지는 재정과 세제, 그리고 노동법을 대폭 손질하는 것이다. 재정공약은 현재 GDP 대비 55%에 달하는 정부예산을 집권기간 동안 52% 수준으로 낮추고 이 비용을 직업훈련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투자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세제는 33%인 법인세를 25%까지 낮춰 투자를 촉진해 신규채용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우파정당들의 전통처방인 법인세 인하로 22%에 이르는 청년실업률을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다.

    노동법 개정은 마크롱의 표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3500페이지에 이르는 노동법을 150페이지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1%대로 추락하고 있는 경제성장률의 모든 원인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노동법”이라고 마크롱은 일갈하고 있다. 마크롱의 신 노동법은 이번에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라 사회당 올랑드 대통령 밑에서 경제산업장관을 하고 있을 때 추진하려던 내용과 거의 차이가 없다.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로 올랑드 대통령이 한발 후퇴하면서 노동법 개정이 좌절되자 장관직을 사임하고 이후 탈당과 신당을 창당한 계기가 됐다.

    노동법 개정은 산별협상을 폐지하고 기업이 개별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프랑스 노동계급의 강력한 무기인 산별노조를 전면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전략이다. 산별노조를 무력화시킨 후 구조조정 등 노동유연화를 기업이 쉽게 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해고)퇴직금의 상한선을 설정해 구조조정 등을 할 때 기업의 추가부담금을 줄여 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마크롱이 산별노조를 무력화시키려는 노동법 개정의 처리방식이 극우적이고 의회독재에 가깝다는 것이 좌파정당들만이 아니라 극우정당인 국민전선과 중도우파들의 공통된 경고다. 마크롱은 과반의석을 확보할 경우 노동법 개정을 법안의 형태로 처리하지 않겠다고 선거과정에서 공언해 왔다. 총선결과 LEM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면 노동법의 개정을 대통령에게 위임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마크롱은 9월까지 그 내용을 행정명령(일종의 대통령령)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의회에서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위임법안을 통해 대통령이 노동법 개정의 내용을 결정해 공표하겠다는 발상이다. 급진좌파정당인 불굴의 프랑스의 멜랑숑이 “마크롱은 중도파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마크롱이 사회당의 경제장관시절 노동법 개정을 들고 나왔을 때 산별노조들은 거리에서 전투적으로 반대하면서 올랑드 대통령을 후퇴시켰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 최대산별노조인 프랑스민주노동동맹(CFDT)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논의를 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반대만을 고집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마크롱과 단독으로 면담한 로랑 베르제 위원장의 코멘트여서 산별노조 내부가 들끓고 있다.

    좌측부터 자비에 니엘, 피에르 베르제, 마티외 피가스

    마크롱의 보이지 않는 배후자‘들’

    2010년 프랑스의 대표적인 진보적인 일간지인 르 몽드(Le Monde)가 파산 위기에 처하자 구원에 나설 백기사가 누가 될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미 르 몽드의 주식을 20%에 가까이 보유하고 있는 비행기 제조회사인 아르노 라가 르데르(Arnaud Laga rdère)가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오는 가운데, 스페인 최대 미디어기업인 프리사(SA)가 인수에 참여하는 논의를 시작했다는 기사까지 등장했다.

    인수전이 진흙탕 싸움으로 확산된 것은 중도우파정당인 대중운동연합(UMP) 소속의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 대통령이 르 몽드 사장을 엘리제 궁으로 불러 불온한 세력들이 인수에 참여하고 있는 것에 ‘강력한 우려’를 표명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정점으로 치달았다. 요컨대, 사르코지 대통령은 몇몇 ‘붉은 자본가’들이 르 몽드를 인수해 여론을 조작하해 사회당(PS)의 좌파들이 차기 대선에서 자신들의 후보를 내세워 정권을 장악하려는 음모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사르코지의 주장은 며칠 후 허위로 판명되는 듯 했다. 사르코지의 측근인 국영 통신회사 오랑주(Orange)의 사장이 르 몽드 인수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진보언론사의 하나인 르 몽드를 사르코지가 정부의 위성언론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유럽 전역에서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사르코지는 코너에 몰렸지만 상황은 곧 반전됐다. 붉은 자본가들이 르 몽드를 인수한 것이다.

    르 몽드를 인수한 사람들은 서로 출신과 태생이 특별하게 연관이 없는 세 사람이었다. 인수를 주도한 인물은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e)다. 베르제는 세계적인 패션브랜드인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의 공동창업자이자 동성 연인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3인방의 두 번째 인물은 마티외 피가스(Matthieu Pigasse)다. 르 몽드는 부채만 2천억을 넘고 있었고, 신문사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추가 자본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라자르(Lazzard) 투자은행의 CEO인 피가스가 적임자였다. 실탄이 넉넉한 자비에 니엘(Xavier Niel)이 동맹에 참여했다. 니엘은 성인물 사업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후, 메디아파르(Mediapart)와 같은 인터넷 진보언론을 창립해 그 돈을 투자하는 진정한 붉은 자본가였다. 3인방의 공통점은 사회당 지지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3인방의 실체는 붉은 자본가도, 사회당 ‘좌파’도 아니라는 것이다. 베르제는 2007년 사회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당의 가장 우파 블록의 후보인 세골렌 루아얄의 지지자이자 후원자였다. 세골렌은 지지도와 인기는 사르코지의 대항마로 손색이 없었지만, 사회당을 우회전시키려는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당의 분열과 노동계급의 외면을 자초하며 패배했다. 당의 좌파블록을 이끌던 멜랑숑이 탈당한 것은 사회당 몰락의 전조였다.

    프랑스 판(版) 제3의 길?

    르 몽드를 인수한 이들이 사회당의 차기 대선후보로 염두에 둔 인물은 IMF 총재를 맡고 있던 도미니크 칸이었다. 화려한 경력과 잘 포장된 칸이 지지율 1위를 달리며 기대에 부응하는 듯 했지만, 칸이 성 폭행 혐의로 체포되면서 이들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한때는 사회당의 좌파였던 올랑드가 대선 후보로 당선되자 가장 좌절한 것은 사회당 지지자인 베르제였다.

    예상을 깨고 올랑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1차 내각의 주요장관에는 브누아 아몽을 포함한 당내 좌파들이 다수 임명되었다. 사회당 우파를 중심으로 정권을 창출하려던 3인방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들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후 노동법 개정을 놓고 아몽 경제장관이 올랑드 대통령과 대립하다 실각했다. 새롭게 경제장관에 오른 인물은 이들의 입김으로 로이드 은행에서 근무하다 올랑드의 보좌관으로 입문한 마크롱이었다. 마크롱은 신 노동법의 도입을 전면적으로 밀어붙였지만 길거리로 나선 대규모 노동자들의 저항과 지지율 하락에 놀란 올랑드가 후퇴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사회당을 탈당한 마크롱이 신당인 앙 마르슈를 창당해 대통령 출마를 선언할 때만 하더라도 주목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개인적인 호감도는 높았지만 조직 기반이 없는 마크롱의 인기가 찻잔 속의 미풍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마크롱에게는 재정과 새로운 인물들을 수혈해 줄 유능한 배후가 있었다. 사회당 우파지만 뛰어난 선거전략가인 리샤르 페랑(Richard Ferrand)이 앙 마르슈에 합류해 사무총장을 맡은데 이어 총선선대본부장을 맡아 압승을 이끌어 냈다. 르 몽드의 논설위원인 알랭 맹(Alain Minc)도 합류해 언론과 홍보를 총괄했다. 베르제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다. 모래성에 불과할 것 같은 앙 마르슈는 단기간에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고, 사회당과 공화당의 자멸을 틈타 엘리제 궁을 접수하는 데 성공했다.

    18일 실시될 결선투표에서 커다란 이변이 없는 한 LRM이 절대의석을 차지할 전망이다. 1인 포괄정당에 가까운 LRM은 거의 모든 정치를 마크롱에게 의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프랑스 정치에 유례없는 5년이 시작된 것이다. LRM에 맞설 유일한 상대인 사회당은 존폐의 기로에 내몰렸고, 겨우 두 자리 수의 의석을 확보하는 데 만족해야 하는 불굴의 프랑스가 의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다. 마크롱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은 (중도)좌파정당들이 광장의 정치를 새롭게 시작하며 전열을 재정비하는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과 마르틴 오브리 등을 중심으로 불굴의 프랑스와 새로운 좌파정당을 건설해 노동자들을 다시 집으로 돌아오도록 호소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