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항쟁 단상들의 단상
    [기고] 회고담 아닌 새로운 모색을
        2017년 06월 12일 11: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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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원래 눈물이 적은 편은 아니다. 여기에 더해 이런 울음보가 크게 터지는 건 민중 항쟁 이야기를 다룬 그림, 영상, 글을 볼 때이다. 이상하게 눈물이 펑펑 난다. 최규석의 100도씨를 보면서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번에 나온 100도씨의 30주년 한정판 책도 결국 샀다. 두고두고 보면서 울 것 같다.

    최규석의 <100℃>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최근 봇물 터지듯 나오는 87년 6월 항쟁에 대한 이야기는 내 마음을 끌지 못한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그저 회고담이 넘실대는 것이 불편하다. 뭐라고 해야 하나, 이제 이 이야기는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항쟁의 주역들이 이끄는 정권이 다시 들어섰을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를 포함해 사회 곳곳에서 이들이 중요한 위치에 있다. 나는 이들의 업적보다는 한계에 대한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무릇 정치 참여란 혹은 시민으로서의 사회 참여란 현시대를 살아가며 시대의 상황과 조응하며 바뀌어 가야 한다. 독재정권 타도/호헌 철폐/직선제 쟁취의 역사적 의의는 다했다. 여전히 이 시대의 추억과 이 시대의 렌즈로 세상을 살아가는 분들도 여러 곳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이제 87년을 넘어서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생태적, 페미니즘적 기획과 실천이 필요하다. 6월 항쟁의 정치적 결과물도 이제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다. 대통령 직선제는 쟁취했지만 정말 우리 사회의 정치적 기회 구조가 열려있는가? 여전히 많은 소수자 약자들의 목소리가 묻히고 있지 않은가?

    문재인 대통령도 한 번 언급했고, 요즘 비례민주주의연대가 열렬히 이야기하는 ‘표의 비례성’을 높이고 다당제 구도로 가는 기회를 줄 선거제도 개혁이 절실하다. 그렇게 해야 이번 대선이 한 사회의 정치지형을 바꾸는 ‘정초선거(foundation election)’가 될 수 있다. 그런 기반 하에서 정치적 효능감이 늘어나야 비제도적인 시민 참여도 선순환하며 더 증가할 수 있지 않을까.

    6월항쟁 당시 명동성당의 시국토론회 모습(사진=6월항쟁 30주년 공식 홈페이지)

    과거에 대한 향수 아닌 새로운 30년 모색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 민주주의를 언급하며 경제적 불평등과 부정의 하에서 결국 사회적 정치적 시민권이 침해된다는 걸 인식하는 발언을 한 것도 반갑다.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을 줄일 경제개혁이 너무나 필요하다. 소위 말하는 1 대 99가 아닌 20 대 80의 문제다. 경험 연구들은 1%가 아니라 20% 혹은 넓게 잡으면 50%의 소득은 증가했는데, 하위 50% 특히 최하위 10%의 소득은 심하게 정체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소위 중산층의 양보 곧 소득세 간접세 등 증세가 너무나 절실하다. 사실 모두가 더 내야 한다. 개인별 근로소득의 중위값 정도에 속하는 내게도 적용되는 면세구간을 줄이고 모두가 상징적이라도 더 내야한다. 이런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과세해야 하는 건 지대에 대해서다. 특히 토지에 대한 과세를 강력하게 해야 한다. 토지에 대한 과세는 대기업에 대해서도 법인세 아닌 방식으로 강한 과세를 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게 시작이다. 한국 사회 자산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건 온갖 통계에 다 나와 있어서 더 들이밀기도 싫을 정도다.

    한국 사회의 반생태적 경향도 뒤집어야 한다. 토목 건설은 계속 필요하지만 더이상 대규모 토목을 가득 벌리는 짓은 그만두어야 한다. 인프라의 유지 보수 리뉴얼과 소규모 도시 재생은 필요하지만 남아도는 도로를 경제성도 없는데 더 짓고, 4대강, 새만금, 케이블카 같은 누가 봐도 지역 토호와 건설사, 정권의 단기적 이익만 배불리는 짓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2013년 기준 세계 8위의 에너지 소비국이다. 이렇게 에너지를 써대면서 게다가 OECD 가입국 중에서 기후변화에 이 정도로 무관심한 나라는 한국 외에는 멕시코 정도가 유일할 테다. 니카라과, 시리아 정도가 불참한 파리협정에서 탈퇴한다고 하는 미국보다는 낫겠지만 이건 비교대상이 불공평한 거겠지. 고작 BAU(business as usual) 즉 지금처럼 경제가 성장하고 에너지 소비가 늘어난다면 예상되는 탄소배출량에 비해서 얼마 줄이겠다는 방식으로 파리협정에 자발적 목표치를 낸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적어도 2005년 기준, 혹은 2000년, 1995년, 1990년 기준 얼마를 줄이겠다고 공약해라. BAU는 계산하고 예측하기에 따라 고무줄 아닌가. 정말 부끄럽다.

    이를 위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육성하고, 에너지전환을 이루는 것도 절실하다. 인도 모디 총리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40%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30년까지 20%로 늘리겠다고 한다. 너무 약하다. 이미 2015-2016년 연속, 풍력, 태양광이 전세계 신규 전력 설비용량의 절반 넘게 차지했고, 그마저도 비용이 줄어들어 투자액은 오히려 감소했다. 한국이 일본을 갈라파고스 섬이니 비웃을 처지가 아니다. 이러한 세계 경제의 새로운 흐름에서 철저히 고립되어 있는 게 한국이다.

    이번 대선에서 젊은 여성과 남성이 소수이나마 분화되고 새로운 투표 행태를 보여준 것도 중요하게 봐야 한다. 각각 심상정과 유승민에게 간 여성과 남성 표는 앞으로 젠더와 관련된 갈등과 정치적 행동이 중요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이상 출산 지도니 출산율 제고를 위한 여성정책이니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그건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는 결과일지는 몰라도 그게 우선순위이자 지표가 되어서는 좋은 정책이 나올 수가 없다. 노동 시간을 줄이고, 여성의 경력 단절에 대한 강력한 대책이 나오고, 여성에 대한 폭력에 관대한 사법 시스템과 사회적 인식을 바꾸어나가는 제도적/비제도적 조치와 정치적 운동이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젠더에 대한 인식을 키우는 시민교육을 공교육 내에서 해야 한다. 제도적으로도 차별금지법을 당장 제정하고, 여성 외에도 성소수자, 장애인, 소수인종 등에 대한 차별을 처벌하고 구제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어야 한다. 앞으로 이러한 균열선들이 더욱 더 드러날텐데 과연 우리 사회와 정치가 이를 반영하고 해결할 역량이 있는지 걱정이 든다.

    시민사회단체에 젊은 활동가가 별로 없고 이제 광장의 눈에 맞는 활동가를 키우고 조직도 변해야 한다는 글도 봤다. 내 또래 활동가 몇몇을 인터뷰도 했고 내 또래 연구자의 관련 연구도 훑어봤다. 내 페친의 경험담도 페북에서 봤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는 왜 후진 양성에 실패하는지 소위 ‘386’세대는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이다. 어린 신입 활동가가 시키는 대로 안하고 어디서 뒷담화가 횡행하고, 직무교육 갔더니 그저 일손으로 취급해 캠페인에 내보내고, 내부 결제라인 하나 제대로 조직되어 있지 않아서 같은 일을 여러 사람에게 보고하고 다들 참견하고 하지만 누가 제대로 책임지기는 어려운 구조. 거기다 박봉에 사람들 인식도 차가우니 누가 버티겠는가.

    시민사회단체에는 새로운 활력이 필요하고, 여기에는 시민의 힘이 중요하다. 수만 명의 후원이 몰리는 멋져 보이는 소위 글로벌한 국제시민단체도 대안은 아니다. 이런 곳은 너무나 관료적이고 경직되어 있으며 몇 가지 크고 돌출된 주제에 집중한다. 대신에 나는 다양하고 작은 신생 단체가 많이 생겨나서 전문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게 시민사회운동이 더 성장하는 길이라 믿는다. 핫핑크돌핀스, 에너지정의행동, 민달팽이 유니온 같은 곳이 미래다. 작은 단체가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지속가능한 구조를 갖출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각 단체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시민의 안목과 행동 또한 필요한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6월 항쟁 외에도 기억되고 잊혀진 걸 불러와야 할 중요한 투쟁이 많다. 이제 70년대 여공들의 투쟁은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에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주제가 되었다. 이러한 재조명과 평가를 받지 못하는 투쟁들이 너무나 많다.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만 해도 훨씬 덜 조명받고 있다. 반말과 사소한 차별에서 부터 불타오른 노동자 대투쟁이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겼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거의 투쟁뿐만이 아니다. 가까운 과거에 그리고 현재에는 어떤 투쟁이 우리 사회에 경고를 주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강정에서, 밀양에서, 성주에서 누군가는 지금도 싸우고 있지 않은가.

    필자소개
    환경.과학기술사회학 전공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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