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글의 법칙’ 그리고 김병만
    '정글의 법칙' 아닌 '인간의 법칙' 보여주는 프로그램
        2012년 08월 21일 10: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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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끈 따끈 햇살이 좋은, 시퍼렇다 못해 속이 다 비치는 남태평양의 야자수 있는 섬에 가서 드러누워 있고 싶어.’라는 생각. 누구나 한번쯤 한다. 빌딩사이로 햇살을 피해 다니며 타박타박 콘트리트 길을 걸으며 그런 생각 안해 본 사람이 어디 있을까. 물론 여기서의 ‘섬’은 풀 서비스의 리조트일테고, 나는 돈 걱정 따위는 한량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무인도에서 혼자 쥐나 뱀을 잡아 먹는다는 생각은 해본적도 없으며,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뭐든 잘하는 ‘달인’족장과 운동 잘하는 동생, 뭐든 잘 못할 것 같은 후배, 철딱서니 없는 막내가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어떤 섬, 남태평양 한가운데의 화보같은 섬, 생각만 해도 손끝이 시려운 시베리아에 갔다. 그들에게 지급된 것은 최고급 아웃도어 풀세트(!)가 전부(?)다. 먹을 것을 구해야 하는 당장의 과제 앞에서 ‘족장’님은 새총으로 뱀을 잡고, 통발을 즉석에서 제작하고, 작살을 들고 바다를 헤멘다. 살아 돌아다니는 것과 섭취 가능해 보이는 열매를 따기 위해 온몸을 던지기도 한다. 물에 젖지 않게 짐을 나르기 위해 덩굴로 도르레를 만들고, 집도 짓는다. 그리고 인간은 역시 유희의 동물이다. 의식주가 해결되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농담을 한다.

    이쯤 되면 눈치채겠지만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이야기다. 다른 예능에 출연하지 않고, 개그 콘서트의 ‘달인’코너를 통해 그가 몸을 쓰는데 능하다는 것을 각인시키더니 어느날 다른 연예인들과 무인도로 간다고 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새총 쏘고, 냇가에서 물고기 잡으며 보냈다는 영락없는 ‘시골출신’ 김병만은 <정글의 법칙 1 – 악어섬>편에서 시청자들을 다시한번 놀라게 했다. 그는 집을 짓고, 새를 잡고, 뱀을 잡고, 물고기를 잡았다. 바누아투 편에서는 현지 원주민들을 위해 그네도 만들었다! 내일 먹을 식량을 대비하겠다며 통발도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작은 음식도 – 꼬꼬마 도마뱀 마저도! – 함께 나누어 먹었다.

    뚝닥뚝닥 손재주 많은 그를 보면서 역시나 나같은 인간은 저런데 낙오되면 꼼짝없이 죽을 수 밖에 없는걸까 라는 회의가 밀려왔다. 그는 정말 개그맨이 맞는걸까. 악어섬 탈출을 위한 뗏목만들기 미션에서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감탄했다. 나무를 얽는 것도 모자라 사이에 잔 가지를 넣어 부력을 확보하고 삿대를 만들었다. 단 한번도 힘들다는 말도 하지 않았던 그가 섬을 탈출하자마자 동생들을 끌어안고 울었다. 너무 힘들었다고, 정말이지 너무 무거웠다고. 그는 함께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먹이고 재우는 일에 대한 책임으로 똘똘뭉쳐 있었고, 단 한순간도 이 책임감을 놓아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무인도에 있는 동안 철없는 막내도 몸이 둔한 후배에게도 각자의 자리를 찾아주었다. 무인도에서 살아남기엔 그리 강인해보지 않았던 누군가는 하나의 팀 속에서 스스로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이 있는 팀웍의 공간을 만들어내었다. 그의 리더쉽은 그렇게 빛났다.

    진지하지 않지만 <정글의 법칙>은 종종 내게 인류학적 고민을 던져주기도 했다. 문명에 길들여진 인간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집을 만들고, 음식을 찾아 헤매고, 불을 피우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쏟아지는 비를 피해 잠을 자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어쩐지 그렇게 기나긴 시간을 살아왔을 얼굴도 모를 선조 인류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까지 불러왔다. – 이 얼마나 문명적 사고 방식인가! – 살아가는 일이 어쩌면 별거 아니라는 회의도 들었다. 도시에서 아등바등 학원비 벌러 기저귀값 벌러 간다는 자조적 멘트와 함께 출근 지옥철에 몸을 싣는 사람이나 단지 비를 피해 잠한숨 자기 위해 이를 악물고 나무와 잎사귀를 구하는 모습이 뭐가 그리 다른가.

    그들은 그렇게 열대 우림을 시베리아를 헤매고 있다. 다투고, 토라지고, 화해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팀웍과 리더쉽을 보여주는 과정은 때론 경외감마저 들었다. 김병만이라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리더쉽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리더쉽일지도 모른다. 누구 하나 소외시키지 않고, 각각의 쓰임새를 찾아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주고 북돋아 주는 일. ‘먹이를 구하는데 필요 없으니 너는 낙오’라는 잔혹한 법칙은 없다. 사냥을 하지 못해도 그가 할 수 있는 캐릭터를 부여해주는 일. 우리 사회에서 보지 못한 일을 나는 티비속에서 보고 있다. 우린 언제부터 그렇게 잔혹해 진걸까. 거대한 피라미드이자 거대한 기계같은 이 도시에서 조금만 삐끗하면 언제든지 우리는 낙오될 수 있다. 개인은 사라지고 이 사회에 필요한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으로 구분된다. 본인의 잘못과 별 상관없이 ‘루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이들이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도록 돕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경쟁사회가 나쁜 것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 낙오된 사람들에게 두 번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 낙오가 당연한 사회, 낙오되면 버려지는 사회, 공정한 경쟁조차도 불가능한 사회가 나쁜 것이다.

    ‘정글의 법칙’이라는 프로그램 제목은 어쩌면 역설적이다. 종종 우리는 기준도 정의도 상식도 없는 사회를 빗대어 ‘동물의 왕국’이라고 하는데 이는 틀린 말이다. 동물의 생태계에도 법칙이 있고, 상생의 상태계가 작동한다. 인간과 달리 동물은 유희를 위해 사냥하지 않으며 배가 부르면 사냥하지 않는다. 필요한 만큼의 죽음과 필요한 만큼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 인간 만큼 탐욕스러운 짐승이 또 있을까. ‘정글의 법칙’은 정글안의 법칙이 아니라 인간의 법칙을 보여준다. 각기 다른 이들이 모여 각자의 자리에서 공동의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어떻게 나누고 연대하는지에 대한 고찰이다. 우리가 우리의 공간을 탐욕과 문명으로 뒤덮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바누아투에서 그들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김병만 족장이 말했다. “여기는 참 잔혹한 것 같아.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데 조금씩 사람을 미치게 하잖아.” 누르기만 하면 따뜻한 물이 나오고 찬바람이 생생 나오고 수십층 높이의 빌딩도 힘 안들이고 올라갈 수 있는 공간에 살고 있지만 진짜 우리는 미치게 하는 것은 이 세계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잔혹한 공간이 바로 이곳 아닌가. 현대판 사병이 사람을 두들겨 패도 경찰은 수수방관하고, 도심 한복판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어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한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연이어 자살을 해도 별 관심이 없다. 손위에서 빛나는 푸른 삼성마크를 위해 반도체에서 일했던 청춘들이 수 십 명씩 죽어도 산업재해가 아니란다. 그것이 세계일류 기업의 법칙이다. 도로를 깔고 자동차를 타고 초고층 빌딩 사이를 헤매는 우리와 정글로 간 연예인들의 삶의 모습이나 원주민들의 삶의 모습과 비교해 어느 한쪽이 더 우월해 보이는가?

    어쩌면 진짜 ‘정글’은 지금 나와 당신이 살고 있는 이 회색 숲인지도 모른다.

    필자소개
    [체르노빌 후쿠시마 한국]의 저자, 은근 공돌 덕후 기질의 AB형 사회부적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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