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국주의 법정에서
    격렬한 사상전쟁 벌이다
    [책소개]『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안재성/인문서원)
        2017년 06월 03일 11: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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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려거든 죽여라. 그러나 나의 정신이야 어찌할 수 있겠는가?” – 사형 선고를 받은 박열이 한 말

    제국주의 법정을 뒤흔든, 그야말로 조선이 낳은 불온한 사상가다운 ‘사이다’ 발언이었다. 박열(朴烈). 압제와 억압, 그 어떤 것에도 순종하거나 굴종하지 않는 뜨거운 청년이었다.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월사금도 제대로 마련하기 힘든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 학문을 향한 열정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으나 시대의 공기가 책만 파고들도록 허락지 않았던 시대에 태어난 것이 죄라면 죄였던 조선의 청년이었다.

    이름부터 이글이글 불타오르듯 뜨거운 이 남자는 일본 제국주의의 아이콘인 왕세자와 일왕을 폭살을 계획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일본 제국주의 법정에서 자신의 사상을 선전하는 놀라운 기개로 식민지 조선 민중에게 희망을 심어준 열혈 항일투사였다. 재판을 맡은 판사가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그를 가두었던 형무소의 소장이 감화되어 훗날 참회하고 자신의 아들을 양자로 보내기까지 한 ‘무서운’ 조선인이었다.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는 패기만만한 청년 혁명가에서 북으로 간 항일투사로 마침표를 찍은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기록한 책이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한마디는 재판장에게 제출한 논문의 한 구절이 압축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들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 해도 우리들은 이처럼 잔인한 운명에 대하여 순종할 수는 없다.”

    역사는 박열의 삶을 일본 왕세자 결혼식에 폭탄을 던지려고 했다는 ‘대역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장장 8,000일, 22년 2개월에 이르는 기나긴 옥살이를 한 불굴의 항일투사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최후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삶을 마감한 곳이 북녘 땅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때 납북된 지 24년 만에 날아온 소식은 ‘부음’이었고, 대한민국은 뒤늦게 그의 공로를 재평가하여 추념했을 뿐이다.

    “우리는 이처럼 잔인한 운명에 대하여 순종할 수는 없다”

    박열은 윤봉길 의사나 이봉창 의사처럼 폭탄을 실제로 던진 실행범으로 체포된 것이 아니다. 실제로 폭탄을 입수한 것도, 계획서가 발각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머릿속에 계획을 세웠다는 누명(?)을 쓰고 법정에 섰으나, 박열은 기다렸다는 듯이 판사를 사상논쟁의 상대로, 법정을 사상을 펼치는 선전의 장으로 삼는다. 총 21회의 예심, 2년여에 걸친 긴 재판기간 동안 그는 일왕으로 대표되는 일본 제국주의를 마음껏 조롱하고, 정면으로 부정한다.

    박열의 치열한 삶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함께 나오는 이름이 있다. 가네코 후미코. 한국명 박문자인 이 여성은 박열의 동지이자 연인으로 함께 투쟁하다 옥중결혼식으로 정식 부인이 되었으나, 감옥에서 석연치 않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그야말로 불꽃의 생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23년의 짧지만 뜨겁고 치열한 삶을 산 그녀는 사형선고를 받고 “만세!”를 외치고, 무기징역으로 감한다는 은사장을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릴 정도로 두려움을 모르는 혁명가였다. 예심 재판정에서 판사를 향해 자신의 사상을 거침없이 전개하여 일왕 부자 폭살 계획의 정당성을 주장하던 당찬 여성이었다.

    “지상의 평등한 인간생활을 유린하고 있는 권력의 대표자는 천황이고 황태자이다. 내가 이제까지 황태자를 노린 이유는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열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의 카테고리에서는 ‘아나키스트’로 규정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박애주의자’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주의나 주장보다도 그들이 내세운 최고의 가치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었다. 평생의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꾸었던 혁명의 꿈과 재판정에서 함께 외쳤던 ‘자유와 평등’은 대한민국이 일구어낸 민주주의의 역사와 더불어 오래도록 기억될 가치다. 그러므로 일제에 맞서 싸운 수많은 항일투사들 가운데 박열이라는 투사의 존재가치에 대한 작가의 다음과 같은 평가는 참으로 적절하다.

    “박열이 유독 눈에 띄는 이유는 재판정에서 보여준 그의 기개 때문이다. 또한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민의 깊이 때문이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 투쟁과 굴종 등 인간의 본성에 뿌리박은 제 문제들을 고민하고 회의하고 또 질타하는 그의 연설문과 논문은 오늘의 현실에도 길을 안내하는 등불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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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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