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아키를 위한 변명(?)
    [기고] 출발은 일상에서 겪는 불안과 문제인식
        2017년 05월 31일 04: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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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주 동안 스테로이드를 먹었더니 몸에서 힘이 난다. 스테로이드는 내게 친숙한 약물이다. 조혈모세포이식 이후 면역반응을 막기 위해 내 몸에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치의 스테로이드를 맞은 적이 있다. 얼굴이 동그래지고, 몸도 동그래지고, 각질이 심하게 일어나고, 설사도 하고, 근육이 다 빠져나간다. 그런 와중에 머릿속에서는 생각이 쉬지 않고,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 같은 과장된 기분이 생겨난다.

    요즘 갑자기 힘이 나고, 생각이 많아지고, 약하지만 갑작스러운 신체증상들이 나타났다. 신체적, 정신적 증상은 항상 개인의 경험, 인생역정 속에서 해석된다. 같은 증상이라도 어떨 때는 무척 두렵고, 어떨 때는 ‘아 이래서 생기는 거구나’ 싶어서 두렵지 않다. 지금은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잘 알고, 약을 꾸준히 잘 복용하면서, (스테로이드 약물은 의사 지시가 있는 동안 꾸준히 잘 복용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정신적 에너지는 더 큰 일 벌리지 않고 주어진 일에 집중하고, 생활 속에서 집안일 등을 잘 계획하고 실천하고 있다.

    ‘안아키’(관련 레디앙 칼럼)를 보면서 화가 많이 났다. 정확히는 부모들 – 아니 공정히 말하자면 ‘엄마’들의 불안을 이용해 장사를 하는 사람에 대해서 화가 났다. 안아키 한의사가 하는 말이 현대의학의 시선에 봤을 때 왜 문제인지는 스켑틱 7호에 실린 강병철 님의 글 ‘[의학]무엇이 아이의 건강을 위협하는가 – ‘안아키’를 비판한다‘에 잘 나와 있다. 세계 여러 곳에 비슷한 사례들도 있다. ([정리뉴스]공동체 건강 위협하는 세계의 ‘안아키’들)

    ‘자연’은 다루기 어려운 개념이다. ‘자연주의’라는 말은 힘이 세다. 사람들은 무엇이 좋은지 정확히 몰라도 ‘자연스러운’ 것에 대해서 큰 가치를 두곤 한다. 여기에 더해 현대의 전문가 체계에 대한 불신도 심각하다. 이는 여러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이 두 가지의 결합은 소위 ‘자연주의적 대안’이라는 틈새를 만들어낸다. 이게 항상 문제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소박한 믿음’은 어느 정도는 일상에서 겪는 불안과 문제인식을 반영하는 것이고, 나는 이러한 소박한 믿음들을 재합리화해서 풀어나가는 기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게 녹색정치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유기농과 GMO 문제만 해도 그렇다. GMO나 유기농에 대해 처음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는 보통 이러한 건강에 대한 ‘소박한 인식’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논의를 쫓아가고 이야기를 해보면, 개인의 건강 문제보다도, 현대 농식품 체계에서 GMO나 유기농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농식품 체계에서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부담을 지고 있는지, 이것이 사회적/경제적/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지, 모두에게 양질의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이러한 맥락 속에서 GMO와 같은 기술이 일으킬 수 있는 생태계/건강에 대한 불확실성은 어떻게 고민하고 다루어야 하는지 질문이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일반인’들은 추상적으로 과학이라는 것 자체의 권위를 인정하지만, 일상에서 마주치는 전문가 체계에 대해서는 불신을 가진다.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이는 어떤 면에서는 합리적이다. ‘일반인’이 일상의 맥락에서 부딪히는 문제에 있어 과학자(의사)가 건네주는 충고는 너무나 탈맥락적이고, 때로 이해관계에 복무하기도 한다(오해방지!!강조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과학자(의사)가 대중에게 어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대부분 ‘권위에 따른 확실성’을 내세우며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하지만 일상의 맥락은 복잡하고 때로 모순되어 보이는 지식들이 제시되고는 한다. (건강에 대한 신문기사를 보라.)

    스텝틱 7호의 강병철 님의 글에서 이야기되듯이 과학 제도 내에서 연구를 하고 지식을 생산하는 이들은 이것이 얼마나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다만 이를 ‘일반인’에게 전달할 때는 ‘확실성’과 ‘권위’가 더 주요한 코드가 되고는 한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더욱 더 불신을 부추긴다.

    그런 점에서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주요한 질문은 대중이 과학을 이해하고 있는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학이 대중을 이해하고 있는가이다.

    안아키를 보면서 ‘엄마’들에게 주어진 과도한 짐을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마치 ‘맘충’을 까듯이 엄마들에게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들이 왜 고민을 하고 이런 곳까지 흘러들어갔는지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러한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제 2의 안아키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 이에 대해서는 앨런 어윈의 ‘시민과학 – 과학은 시민에게 복무하고 있는가‘를 참고하면 좋다.

    * 사족으로, ‘자연적인 것’과 ‘질병’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진화와 관련해,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 다윈 의학의 새로운 세계

    아파야 산다 – 인간의 질병, 진화, 건강의 놀라운 삼각관계

    같은 책을 참고해보자. 예를 들어 우리 몸의 열이 방어기제이고 ‘자연스러운’ 것은 맞으며, 이는 진화론적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 다윈의학은 우리 몸이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를 진화론적으로 이해하고, 더 나은 처방에 대해서 고민한다. 우리 몸이 질병에 대항하는 기제를 더 잘 이해하면서, 더 나은 개입으로 어떻게 잘 치료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무조건 약을 쓰면 안된다.’는 결론과는 전혀 다르다.

    * 의학에 대해서는 스켑틱 말미에 소개된 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를 나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

    필자소개
    환경.과학기술사회학 전공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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