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 현실주의 정치사상의 초석
    [책소개] 《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 평사리)
        2017년 05월 27일 11: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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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2년 3월,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두 달 뒤, 오늘날 외교안보수석쯤 되는 제2행정위원회 서기장으로 있던 마키아벨리도 자리에서 해임된다. 이듬해 2월, 마키아벨리는 반(反) 메디치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되어 투옥되고, 지독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마키아벨리가 감옥에 있는 동안 받은 ‘스트라파도(strappado)’라는 고문(일명 ‘날개꺾어 거꾸로 매달기’)은 가죽끈으로 두 팔을 뒤로 묶어서 공중으로 들어올렸다가 갑자기 떨어뜨려 땅에 닿기 전에 멈추는 것을 반복한다. 그런데 이 고문은 여러 차례 받기 힘든 고문이다. 이 고문을 두 번 정도 받으면 어깨와 팔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서 어깨가 부서지고 기가 꺾이면서 정신을 잃고 만다. 탈골이 되면 줄을 확 풀어서 맨바닥에 처박아버린다. 그 정도 되면 어깨와 팔의 기능이 마비될 뿐만 아니라, 머리가 깨져서 죽거나 결국 폐인이 된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이 고문을 여섯 차례 당하고 살아남았다. 그해 3월, 마키아벨리는 레오 10세 교황이 선출된 뒤 단행된 특별사면으로 출옥, 피렌체 외곽에 은둔하며 장작을 패고 새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면서 《군주론》을 썼다. 1513년에 집필을 마친 《군주론》은 필사본으로 사람들에게 읽히다가 20년이 지난 1532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1559년 교황 파울루스 4세에 의해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들어가게 되었다.

    군주론

    마키아벨리가 태어나고 살았던(1469~1527) 시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같은 거장들을 배출하는 등 그의 조국 피렌체에서 꽃피웠던 르네상스가 저물어가던 때이자,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분열을 겪으며 자체 군대도 없이 외교술과 용병에 안보를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마지막 장인 26장에서 당시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유대인들보다 더 노예 생활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페르시아인들보다 더 종살이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아테네인들보다 더 흩어져 살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지도자가 없고 질서도 없었던 이탈리아인들은 이리저리 치이고, 약탈당하고, 괴롭힘당하고, 유린당하고, 갖가지 몰락을 다 당해야 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조국이 놓인 바로 이 참담한 현실 인식으로부터 《군주론》을 집필했다.

    “나는 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공화국을 꿈꾸며 이 책을 썼다.” 마키아벨리가 뒷날 친구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에게 《군주론》을 쓰게 된 이유를 밝힌 편지 내용처럼, 암담한 조국의 현실을 극복할 뿐 아니라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평등이 보장될 수 있는, 역량 있는 정체로서의 공화국’에 대한 꿈과 이를 이루어낼 수 있는 ‘역량 있는 군주’에 대한 절절한 바람을 담아 전하고자 썼던 것이다.

    근대 현실주의 정치사상의 초석을 놓은 《군주론》

    시민을 위한 정치, 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공화국을 위한 조건. 이 책은 마키아벨리가 꿈꿨던 “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공화국”의 조건을 논증한다.

    1) 군주의 권력 기반은 반드시 인민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인민에 바탕을 두고 있는 그가 명령할 수 있는 군주라고 한다면, 역경의 시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었다면, 용기와 통치로 대중의 정신을 견인하고 있다면, 그는 인민에게 배신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토대들을 강력하게 만들었다고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342쪽)

    2) 권력의 안전과 유지를 위해서는 인민의 지지가 절대적이다

    “인민의 지지를 받아 군주에 오른 자는 인민을 확실하게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억압하기를 원하지만 인민은 억압받지 않기를 원할 뿐이므로, 인민의 목적은 부자들의 목적보다 믿을 만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부자들의 지지를 받아 군주에 오른 자는 적대적인 인민에게서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민은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인민의 지지를 받아 군주에 오른 자는 부자들에게서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그 수가 적기 때문입니다.”(326쪽)

    3) 어떠한 군대나 무기도 인민의 호의가 함께하지 않는다면 권력을 지킬 수 없다

    “어떤 경우이든 당신에게 가장 좋은 요새는 당신의 신민이 당신을 증오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록 당신이 요새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인민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요새는 당신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민이 무기를 든다면 인민은 자신들을 도와줄 외국 세력을 반드시 찾아내기 때문입니다.”(705~706쪽)

    4)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는 인민이 아니라 부자와 귀족(오늘날의 기득권층)이다

    “부자들의 도움으로 군주의 지위에 오른 자는 인민의 도움을 받아 군주의 지위에 오른 자보다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군주와 동등한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다수의 부자들에게 포위되어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부자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도 없고 부자들을 마음대로 다루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326쪽)

    5) 《군주론》이 꿈꾸는 군주(오늘날의 최고권력자)는 철저히 자신의 역량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누군가 당신을 계속 구조해 주러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서 몰락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뿐더러 발생한다 해도 당신에게 안전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문제 해결 능력은 비열할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의 역량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과 당신 자신의 역량에 의존하는 방책만이 훌륭하며, 확실하며, 지속을 보장합니다.”(784~785쪽)

    마키아벨리는 “인민을 중시하라”(1부)는 혁명적인 선언과, “좋은 법보다는 훌륭한 군대가 더 중요하다”(2부)는 폭탄 발언을 한다. 아무런 단서도 달지 않고 한 이 선언과 발언은 마키아벨리 이전의 상식과 충돌하고, 마키아벨리 당대의 지성·종교와 충돌하고, 마키아벨리 이후의 우리 교양과도 상충한다. 마키아벨리는 또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3부, 4부)라는 연구 방법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시도한다. 과거의 모든 연구 방법, 이에 영향을 받은 모든 종교적 사유, 그리고 대부분의 사회과학·철학 등에 적용되는 연구 방법을 세계 밖으로 밀쳐내 버린다.

    《군주론》은 인간의 상식에 도전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구석구석에서 인간의 흔한 상식을 뒤집어엎는다. 우리가 《군주론》을 읽으면서 전율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기존의 가치관, 통념으로 유포되는 생각,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도덕관을 그는 가차 없이 전복한다. 이 책은 고대로부터 마키아벨리 당대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실례와 의미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마키아벨리가 꿈꿨던 ‘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공화국’과 이를 이루기 위한 지도자(군주)의 상(像)을 ‘다면적 심층 독서법’을 통해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책의 구성

    이 책은 《군주론》의 구조를 입체적으로 살피는 재미를 느끼며 읽을 수 있도록 쓰여졌다. 《군주론》의 구조가 《천일야화》처럼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는 형식인 ‘액자식’으로 되어있어, 그 구조를 파악하며 읽어갈 때, 마키아벨리가 말한 ‘이탈리아의 통일과 그 목적을 달성할 군주’, 그리고 ‘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공화국’의 조건들이 눈에 보인다.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올리는 헌정사와 모두 26개 장으로 쓰여진 《군주론》의 각 장마다 핵심 내용과 개요, 그리고 옮긴이가 논문과 에세이 형식에 맞게 재구성한 목차, 그리고 《군주론》 원문의 의미를 최대한 살린 번역, 본문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과 맥락, 의미에 대한 풍부하고 비판적인 주석을 통해 근대 현실주의 정치사상의 최고 고전으로 평가되는 《군주론》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한다.

    헌정사: 최고의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올리는 글

    마키아벨리는 “위대한 인간들의 행적에 관한 저의 이해만큼 소중하고 귀한 가치가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자신의 글을) 읽고 실천한다면, 행동하면서 되새김질한다면 경험과 이론 양자의 균형을 놓치지 않을 것이고, 군주로서 성공할 것이다”라고 헌정의 의미를 밝힌다.

    1부(1~11장): 군주와 인민의 관계

    1부의 주제는 ‘인민’이다. 겉말은 ‘군주국의 종류’이지만 마키아벨리의 속말은 새로운 군주국, 곧 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공화국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군주는 인민(시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군주가 권력을 유지하는 데 가장 확실한 통치 기반은 바로 ‘인민의 지지’임을 논증한다. 마키아벨리의 ‘인민 중시’는 대단히 혁명적인 사상이다. 이는 당대의 권력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무서운 사상이었다. 어떤 신학자의 말에 따르면, 예수가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가르친 기도 내용 가운데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했던 것과 다름없다. 로마의 정치?종교 권력자들은 예수가 그 말을 한 때로부터 예수를 죽일 생각을 했다.

    2부(12~14장) 군주와 군대

    2부의 주제는 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훌륭한 군대’와 ‘군대의 유지’이다. 마키아벨리의 인민 중시 사상은 2부에서도 중요하게 얘기된다. 그 핵심은 ‘자국군을 갖춰라’이다. 인민이 없다면 자국군은 이루어질 수 없다. 자국군의 토대가 인민이 되기 때문에 군주가 인민을 사랑하지 않으면 인민도 군대에 충성을 다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3부(15~23장) 군주의 역량

    3부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군주는 신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군주는 대외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군주의 역량을 이야기한다. 마키아벨리는 3부 곳곳에서 군주가 인민의 호감을 잃어서는 안 되고, 인민이 잘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4부(24~26장)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제언

    4부는 ‘이탈리아를 통일하는 데 필요한 군주의 조건’을 밝힌 글이다. 이탈리아를 통일할 군주는 인민의 지지, 자신의 군대, 자신의 역량, 그리고 운명에 맞서 싸울 용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새로운 시대를 이끌 새로운 군주상을 제시한다.

    책에는 26개 개별 장마다 글과 단락의 구조에 대한 치밀한 분석, 등장하는 역사 인물과 사건에 대한 명쾌하고 풍부한 해설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와 주변국 지도를 비롯하여, 로마와 그리스 시대 지도 등, 마키아벨리와 옮긴이가 언급하고 있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활동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모두 45컷의 역사 지도를 실었다. 또한 인물들의 관계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계보도와 내용 이해를 위한 다이어그램 등 총 40여 컷의 도표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15컷의 사진과 그림을 통하여 당대의 분위기를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다면적 심층 독서법’, ‘구조분석 독법’을 잘 구현한 ‘《군주론》 구조도’를 특별부록으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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