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로소득 토론'의 전제들
    다른 생각의 폭력적 배제, 토론 아냐
        2017년 05월 25일 01: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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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의 허준우 씨 글 링크

    칼럼니스트 황교익씨의 반박에 재반박을 드립니다. 토론에 응해주신 황교익씨께 감사하단 인사를 드립니다. 다만 한겨레신문사에 “기레기”라고 욕부터 하시기 전에 지금처럼 토론에 임해주셨으면 어땠을까, 아쉽다는 생각은 듭니다.

    논쟁의 맥락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배경 설명 드린 다음 본론(재반박)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배경을 아시는 분들은 스크롤을 쭉쭉 내리셔서 본론부터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본 논쟁의 배경1 – 황교익씨의 한겨레신문 논평

    지난 19일 한겨레신문은 “[단독]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부인, 상가 점포 6곳서 월세 1250만원”이라는 보도를 했습니다. 기사의 요지는 주요 공직 후보자의 가족이 자녀 양육과 노후생활 목적으로 임대사업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황교익씨는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해당 보도를 한 한겨레신문 소속 기자를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라고 모욕하셨는데, 이와 같은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두 가지 근거를 드셨습니다. 첫째 한겨레신문이 “그 어떤 불법이나 윤리적인 흠결을 확인한 바 없”다는 주장, 둘째 “단지 임대업으로 돈을 많이 번다고 비”꼰다는 주장입니다.

    본 논쟁의 배경2 – 허준우의 반박

    저 허준우는 숙박업소에서 매니저로 일을 하는 20대 청년으로 황교익씨의 글을 우연히 읽었습니다. 제 직장 생활 경험에 비추어볼 때 도저히 황교익씨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고, 또한 그가 특정 이슈에 관해 문제제기를 하는 태도가 공론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장문의 반박 글을 작성했습니다.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저는 임대사업이 현행법상․사회통념상 합법인 것은 맞지만 윤리적 흠결까지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 게스트하우스의 업무 90%를 도맡아 월 1500만 원 이상의 매출을 생산하지만 월 급여는 총생산 가치의 9%에도 못 미치는 130만원을 수령하고 있고,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사장(세입자)은 매달 600~700만원의 순수익을 올리고 얼굴조차 한 번 비치는 적 없는 건물주는 매달 500만원의 월세를 챙겨갑니다. 저는 이 상황이 ‘착취’이며, 일반적인 임대업자들이 이들처럼 불로소득 즉 지대(Rent) 추구행위를 일삼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 이상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일반적으로 임대업은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판단합니다.

    둘째, 그렇다면 주요 공직 후보자 가족의 소득원이 임대사업임을 알리는 한겨레신문의 보도는 저와 같은 계급적 이해를 공유하는 독자들에게 중요한 정보 값을 가집니다. 반면에 “윤리적인 흠결”이 없는데도 한겨레신문이 “단지 임대업으로 돈을 많이 번다고 비”꼰다는 황교익씨의 주장은, 임대사업이 일반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행위라는 전제를 증명할 책임을 망각한 ‘가정 망각의 오류’입니다. 저는 임대업이 갖는 불로소득 추구 성격을 지적함으로써 임대업이 일반적으로 비윤리적 행위라는 주장을 증명하려 노력했는데 반해(제 증명이 실제로 얼마만큼 성공했느냐와 별개로), 황교익씨는 임대업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증명하려는 노력의 과정을 건너뛰셨기 때문입니다.

    ‘임대업은 윤리적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따라서 이 보도는 문제다’식의 접근을 하셨어야 했음에도, ‘임대업은 윤리적 문제가 없는데, 왜 이런 보도를 내느냐?’는 식으로 접근하신 게 첫 단추를 잘못 꿰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셋째, 또한 한겨레신문이 “단지 임대업으로 돈을 많이 번다고 비”꼬려고 보도를 냈다는 주장 역시 억측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속마음에 직접 접근할 수가 없으므로 (관심법을 쓰지 않는 이상) 주위 정황이나 평소 우리가 사회생활을 할 때 쓰는 언어 용법이나 제스처 등을 고려해, 서로의 속마음을 이 고려한 바와 유비 추론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이해하는 대안을 취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기사는 기사를 쓴 기자를 독자들이 직접 대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목과 본문처럼 매우 제한된 정보만을 갖고 기자의 속마음을 추론하는 것은 불확실성이 큽니다.

    따라서 모호하면 일단 ‘선의의 해석 원칙’을 적용한 다음 의뭉스러운 점을 문의해야 현명한데, 황교익씨처럼 스스로의 불신을 멋대로 사실로 확정짓고 “기레기”라고 쌍욕부터 하고 보는 것은 전혀 논리적인 추론도 아닐뿐더러 공론장을 파괴하고 상대의 인격을 부당하게 뭉개는 행위인 것 같습니다.

    (정황을 고려해본다면 진보언론들은 임대업에 관해 최근 일관되게 “윤리적인 흠결”이 있다는 판단하는데 가까운 관점을 보여 왔다고 해석하는 편이 차라리 합리적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몇 년 전부터 임대사업의 부정적인 면들을 고발하는/비판하는 보도를 내왔으니까요. 궁금하시면 포털에서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특히 ‘프레시안’과, ‘건물주’를 키워드로 관련 기사들을 검색해 읽어보시지요.)

    넷째, 결국 황교익씨는 자신이 별로 알고 싶지 않는 정보일지라도 다른 생각을 가진 독자에게는 중요한 정보일 수 있다는 점과, 한겨레신문의 의도를 사려있게 고려하지 않은 채 (한겨레신문이) “기레기”라는 결론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이 의견을 페이스북에 공개함으로써 현재 시각 23일 23시 42분 기준 1275명의 ‘좋아요’, 35명의 ‘최고예요’, 2명의 ‘멋져요’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요컨대 한겨레신문을 상대로 부당하게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대중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한 언론의 명예가 실추되고 앞으로의 기사 작성에 있어서 저와 같은 사람이 알고 싶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려고 자기검열을 할 수도 있게 됐습니다. 따라서 저는 “퇴출” 운운하며 부당한 공격을 가한 황교익씨가 자신과 다른 생각들을 존중하지 않으며, 마치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저를 해고한 사장과 비슷한 행동을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잠식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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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교익씨의 관련 페이스북 글 캡처

    본 논쟁의 배경3 – 황교익씨의 반박

    이 지적에 대해 황교익씨는 23일 두 차례 페이스북에 글을 남겨 반박을 남기셨습니다. 그가 남긴 첫 번째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도) 자본주의가 싫고 일부 임대업자들이 비상식적인 일을 벌인다는 것을 알지만 (1) 자본주의는 ‘주어진’ 현실이다. (2) 사회주의 사회에는 사회주의 사회에 맞는 윤리가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는 자본주의 사회에 맞는 윤리가 있다. (3) 그러므로 주어진 조건 하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윤리적이라고 하는 것은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임대업은 일반적으로 윤리적이다).

    이어서 그는 글을 하나 더 써 논리 하나를 더 제시했습니다: (4) 자본가이기만 하면 비윤리적이라는 잣대만큼 폭력적인 사고는 없다. (5) 자본 소득의 허용 범위를 결정하는 사회체제는 시민이 선택한다. (6) 윤리 타령으로는 사회 체제를 변혁하지 못한다. (7) 그러므로 자본소득을 윤리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본론: 허준우의 재반박

    저는 황교익씨가 23일에 페이스북에 올리신 반박 글들이 제가 지적한 논점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주장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22일 반박 글을 통해 숙박업소에서 일을 해오면서 겪은 부조리들을 장황하게 말씀드린 이유는, 사장과 건물주의 불로소득의 정당성에 대해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이 고민의 결과 일반적으로 임대업을 통한 불로소득 추구 행위는 착취이며, 따라서 비윤리적이라는 잠정결론을 내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고민의 결과가 성공적이었느냐를 차치하더라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쨌든 존재하고, 이들에게 한겨레신문의 19일자 보도는 정보 값이 충분히 있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겁니다. 하지만 황교익씨는 이러한 맥락을 깡그리 무시한 채 해당 언론을 “기레기 정신”으로 너무 쉽게 매도해버리셔서, 저는 그러한 태도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라고 비판한 것입니다.

    즉, 제가 제시한 논점의 핵심은 <임대업은 과연 윤리적이냐>라기 보다는 <나름의 치열한 고민을 거쳐 임대업이 비윤리적이라는 잠정결론을 내리며 살아가고 있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황교익씨 당신은 너무 쉽게 임대업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채 다른 생각을 가진 존재들을 마구 배제해버리지 않았는가>입니다.

    좀 더 쉽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임대업은 일반적으로 비윤리적’이라는 제 생각이 틀렸고 ‘임대업은 윤리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는 황교익씨의 생각이 맞을 가능성도 희박하게나마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키지 않더라도 저는 이 가능성을 인정하므로, 평소에 임대업 ‘재테크’ 정보를 공유하는 기사를 보고 “기레기”라고 쌍욕을 하며 언론사의 “퇴출”을 운운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황교익씨의 태도는 어땠나요.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한 톨만큼도 열어놓지 않은 채 기자에게 쉽게 쌍욕부터 하고 퇴출을 운운하시지 않으셨지 않습니까.

    이런 방약무인한 행태를 보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지 고민해보셨는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관점의 보도를 내는 것 자체에 왜 그렇게 몰관용적이신지. 왜 자신과 다른 관점의 ‘내용’이 아니라, 다른 관점의 ‘전달 행위’ 자체를 공격하시는지. 이 태도가 직원의 정치적 신념이 자신과 다르다고 해고하는 저희 업소 사장의 갑질과 뭐가 다른지.

    이것들이 제가 지적하는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황교익씨는 제가 공들여 지적한 핵심 논점을 이탈해, ‘임대업은 비윤리적이지 않다’(논증1의 결론) ‘자본소득을 윤리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논증2의 결론) 같은 논점들에 집중하셨습니다. 이렇게 논쟁이 산으로 가려는 전조는 비단 황교익씨 뿐만이 아니라 제가 처음 반박 글을 작성한 후 몇몇 댓글러들께서 계속 ‘임대업은 비윤리적이지 않다’며 주장을 펼치셨을 때도 나타났습니다.

    물론 ‘임대업은 윤리적이냐 비윤리적이냐’는 나름대로 정말 중요한 논점인 것은 맞습니다만, 정작 황교익씨는 제가 드린 핵심 질문에 하나도 답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반박 글에서 분명 “생각이 다른 자를 수용하지 못 하는 진짜 민주주의의 적은 한겨레와 일부 극성 문재인 지지자 중 누구입니까” “황교익씨가 진짜 알고 싶은 것은 이 사회에 관한 진실입니까, 혹은 그저 일부 극성 문재인 지지자들의 불안감을 달래줄 ‘대안적 진실’일 뿐입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정작 ‘임대업은 비윤리적이지 않다’ ‘자본소득은 윤리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라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제가 제시한 핵심 논점을 접수하지 못하셨거나,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가족의 지대추구행위를 옹호하려는 마음이 너무 급하셨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라도 제가 제시한 질문에 책임 있는 답변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문제부터 해결돼야 ‘임대업이 윤리적이냐 비윤리적이냐’라는 논점에 대한 토론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때 이 논점과 관련해 몇몇 댓글러 분들이 제기하신 질문도 종합적으로 따져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덧붙여, 황교익씨가 반박 글에서 제시하신 두 가지 논증에 동의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아서 좀 바로잡고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황교익씨의 논증1>

    (1) 자본주의는 ‘주어진’ 현실이다. (2) 사회주의 사회에는 사회주의 사회에 맞는 윤리가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는 자본주의 사회에 맞는 윤리가 있다. (3) 그러므로 주어진 조건 하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윤리적이라고 하는 것은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임대업은 일반적으로 윤리적이다).

    우선 이 논증은 (1)은 참인데, (2)와 (3)은 의문의 여지가 있는 주장들입니다. 우선 (2) ‘사회주의 사회에는 사회주의 사회에 맞는 윤리가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는 자본주의 사회에 맞는 윤리가 있다’는 주장이 무슨 함의가 있는지 불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사회에도 자본주의 사회에도 각각 윤리가 있을 수 있지만, 두 가지가 ‘다른 것’이라고 볼만한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자본주의적으로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속삭이겠지만, 윤리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미래의 방향제시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고로 (1), (2)를 결합해 (3)을 이끌어내는 것은 사실로부터 당위를 부당하게 이끌어낸 오류 즉 ‘자연주의 오류’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따져보면, 이런 식의 논리는 돈도 법도 기득권 편으로 해주고 이제는 윤리적 비판까지 피하게 해달라는 말과 별로 다르지 않게 느껴집니다. 이제는 자본주의가 윤리까지 독점하려는 시대가 왔나 서글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윤리는 사회규범입니다. ‘사회’의 존재를 전제로 합니다. ‘사회’는 ‘나’와 ‘너’로 구성된 ‘우리’를 필요로 합니다. ‘나’의 존재는 ‘나’와 구분되는 ‘너’의 존재를 전제합니다. ‘나’의 욕심 때문에 ‘너’의 생존을 어렵게 만든다면, 결국 ‘나’도 같이 없애는 자기모순에 빠집니다.

    ‘나’도 ‘너’도 없애는 행위라면, 사회도 없애는 것이고, 사회 규범인 윤리도 없애는 것이니 논리적으로 “비윤리적” 행위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익 추구를 통제하지 못 하다가 ‘너’를 어렵게 만들고 ‘나’의 점포도 텅텅 빈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 상가들의 꼴을 보십시오. 이들 건물주들은 한국 경제의 소비활동만 위축시키는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이게 윤리적인 행위의 결과입니까. 황교익씨 주장대로라면 “주어진 조건 하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든 결과인데요.

    <황교익씨의 논증2>

    (4) 자본가이기만 하면 비윤리적이라는 잣대만큼 폭력적인 사고는 없다. (5) 자본 소득의 허용 범위를 결정하는 사회 체제는 시민이 선택한다. (6) 윤리 타령으로는 사회 체제를 변혁하지 못한다. (7) 그러므로 자본소득을 윤리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우선 저는 (4) ‘자본가이기만 하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본가가 비윤리적인 게 아니라, 자본가이면서 불로소득을 추구할 때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을 잘못 파악하신 것 같습니다 자본가가 자본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노동/생산성만큼만 분배 받으면 비윤리적이라고 비판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5) 또한 사회체제를 시민이 선택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이 옳다/그르다/좋다/나쁘다 가치판단하고, 그렇게 선택을 해야 한다/하지 말아야 한다 당위판단하는 게 윤리의 몫입니다. (6) 물론 말씀하신 대로 윤리 타령만으로 사회체제를 바꾸지 못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윤리적 고민을 통해 보다 나은 체제도 상상해볼 수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미리부터 답을 정해둬야 하는 근거가 황교익씨에게 있습니까?

    (7) 설사 그런 근거가 있더라도 왜 자본소득을 윤리의 관점에서 봐서는 안 됩니까? 왜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안 된다고만 말씀하십니까? 말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이 사회에 다른 존재를 드러낼 수 있으며 의견을 낼 수 있습니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없고 의견을 낼 수 없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가 맞습니까? 일반적인 임대업에 대한 제 개인의 의견을 드러냈다고 그 의견을 누구처럼 진지한 성찰 없이 “쓰레기” “퇴출” 운운하며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고 깃발부터 들고 대중을 선동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 물음들에 황교익씨가 해명을 꼭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때 비로소 ‘임대업은 과연 윤리적인가?’라는 사후적인(그러나 중요한) 논점도 심도 있게 토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필자소개
    임대업에서 일한 청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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