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사법원 끝내
    동성애자 A대위에 "유죄"
    개인 성적 지향, 정체성도 형사처벌
        2017년 05월 24일 12: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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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자 색출·처벌 논란’ 속에서 군사법원이 동성애자 육군 대위에게 24일 끝내 징역형을 선고했다. 법원의 이번 판결로 성적 지향, 정체성만으로 개인을 처벌하는 세간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24일 오전 10시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군사법원은 동성과 성관계를 해 군형법 제92조의6(추행)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 A 대위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A대위는 법원의 판결을 받은 후 충격으로 쓰러지면서 머리를 다쳐 병원으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형이 확정되면 25일 전역을 앞둔 A대위는 군인사법 제40조에 따라 현역에서 제적된다.

    이번 법원 판결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군인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의 군형법 제92조의6을 따른 것이다. 이 법은 개인의 성적 지향, 정체성 등만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 인권단체 등에선 이 조항이 위헌적이며 사라져야 할 적폐로 꼽고 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A대위는 영외에서 업무상 관련 없는 상대와 합의한 성관계를 했고, 그 이유로 A대위는 부대 지휘관이 승인한 서울 출장 중 체포돼 17일 구속됐다.

    앞서 정중규 육군참모총장이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 형사처벌하고 지시한 사실이 군인권센터를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장 총장의 지시를 받은 수사팀은 지난 2월부터 3월까지 전 부대를 대상으로 함정수사 등 강압 수사를 벌여왔다.

    군인권센터는 지난달 1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약 한 달 전부터 장 총장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추행죄로 처벌하라’고 지시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지시를 받은 육군 중앙수사단(중수단)은 40~50여명의 신원을 확보해 수사 선상에 올려놓고 있으며 입건 목표를 20~30명으로 잡고 있다”고 밝혔다.

    중수단이 추행죄 처벌이 아닌 동성애자 색출에 목표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는 게 군인권센터 주장이다. 동성애자 식별 활동, 동성애자 병사에 대한 사생활 관련 질문, 동성애자 입증 취지의 관련 자료 제출 요구 등은 부대관리훈령으로 금지돼 있다.

    피해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한 센터에 설명에 따르면, 중수단은 압수수색영장 없이 수사 대상자가 사용하는 휴대전화를 빼앗아 휴대전화에 저장된 지인들 중에서 ‘동성애자 군인을 지목할 것’을 강요했다. 특히 장 총장의 지시를 받은 수사관들이 게이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에 위장 잠입해 동성애자 군인을 찾아다닌 정황도 확인됐다. 수사에 비협조적일 경우 부대 내에서 동성애자임을 강제로 알리는 표현인 ‘아웃팅’이 될 수 있다는 협박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육군본부는 “장 총장이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SNS에 현역 군인이 동성 군인과 성관계하는 동영상을 게재한 것을 인지해 수사했으며 인권과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법적 절차를 준수하고 있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군검찰은 지난 16일 “장교로서 모범을 보여야 함에도 적극적으로 추행행위를 했고 게이 데이트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 무분별하게 동성애자를 만나 군 기강을 저해했다”며 A대위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군검찰의 구형 직후 A대위의 무죄석방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탄원은 쏟아졌다. 22일까지 4만605명이 탄원서에 서명했고, 법률지원금 후원에도 2621만원이 모였다. 더불어민주당 4인, 국민의당 1인, 정의당 6인, 무소속 1인 등 국회의원 12명도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서명에 동참한 시민들은 탄원서에서 “유죄가 선고된다면 군형법이 개별 군인의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간섭하고 처벌하게 돼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히 침해하는 결과”라면서 “건국 이래 국가 권력이 이와 같이 전면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자행한 적은 없었다. 비뚤어진 권력이 법의 이름을 빌어 혐오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유죄 판결은 국가가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하여 국민을 탄압하고 인권을 유린해도 괜찮다는 전례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사람의 행위가 아닌 존재를 처벌할 수 있다는 사법 역사의 오점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부 정치권은 A대위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징역형을 내린 법원의 판결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추혜선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군사법원의 반인권적인 판결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추 대변인은 “오늘 군사법정에 선 A대위는 근무시간 외, 영외에서 자신의 파트너와 합의된 관계를 가졌을 뿐이다. 이성애자들의 동일한 행위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듯이 A대위의 행위 역시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의 근거가 된 군형법 제92조의6에 대해서도 “개인의 성적지향을 근거로 처벌을 내리는 시대착오적인 악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법 적용을 고수하고 있는 군 내부의 낡은 인권의식 역시 반드시 혁파되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추 대변인은 “이번과 같은 비상식적인 일들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법안 통과에 사력을 다할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기간 중 ‘동성애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며 차별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소수자들의 인권이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는 나라야말로 나라다운 나라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2010년 미 연방법원은 동성애자 인권단체가 제기한 소송에서 사실상 동성애자의 군복무를 금지하는 정책에 대해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이후 2011년 오바마 대통령의 최종 서명으로 동성애자 군복무가 제한 없이 이뤄졌다. 나아가서 2012년 6월 미 국방부는 군복을 입고 ‘게이 퍼레이드’(동성애자 행진)에 참가할 수 있도록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2016년에는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에릭 패닝이 육군장관으로 임명되기도 했으며 현 주한 미8군 부사령관인 테미 스미스 준장은 커밍아웃을 한 레즈비언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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