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역 여혐 살해사건 1년
    “여자라 죽인 사회 우리가 바꾼다”
        2017년 05월 18일 02: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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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1년, 무엇이 바뀌었는가. 여성과 소수자는 여전히 차별과 혐오로 삶을 억압당하고 있다. 바뀐 단 하나가 있다면 침묵하지 않고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마이크를 들고 젠더 폭력을 이야기하고 성평등을 외치겠다. 용기를 말하고, 용기들이 용기를 불러일으켜 차별과 혐오 씻어내는 사회 만들겠다. 마침내 성평등 사회에서 날 좋은 날,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혼자 밤길에 산책하는 그 날을 꿈꿔본다” (‘독방을 부수며’ 발언대회에서 한 여성)

    여성혐오로 인해 벌어진 강남역 10번 출구 여성 살해 사건 1주기인 17일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10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검정색 옷차림을 한 이들은 “여자라서 죽인 사회, 우리가 바꾼다”며 여성혐오와 여성차별에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며 강남역 일대를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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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사진은 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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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개 여성·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범페미네트워크는 이날 오후 7시 신논현역 6번 출구 앞에서 추모 문화제를 가졌다. 이 자리엔 살해된 여성의 부모도 참석했다. 사회자는 추모문화제를 시작하며 “‘단 한명의 자매도 잃을 수 없다’는 말을 기억하며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다. 여성혐오에 의해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며 우리는 잘못됐다고, 바꿔야 한다고 화내고, 떠들고, 목소리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추모시 낭독 등 문화제가 끝난 후엔 신논현역에서 사건이 벌어진 강남역 10번 출구까지 침묵행진을 이어갔다. 행진에 참여하는 이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국화꽃을 손에 들며 고인이 된 여성을 기렸다. 바쁜 발걸음으로 길을 지나던 시민들도 한동안 서서 침묵행진을 지켜보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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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평범한 여성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살해당했던 장소에 선 1000여명의 시민들은 추모의 묵념을 했다. 이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은 아직까지도 변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맞거나, 성폭력 당하거나, 죽어갔던 많은 자매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런 죽음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후 8시경,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도착한 시민들은 추모 포스트잇을 붙이고 국화를 헌화한 후 강남대로 쪽으로 나가 “사랑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는 구호와 함께 착용하고 있던 마스크를 하늘 위로 던졌다. 살아남은 자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을 담은 퍼포먼스다.

    마스크를 벗은 이들은 다시 강남대로 일대를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기 시작했다. ‘정의는 저절로 실현되지 않는다’, ‘여자라서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 ‘여자라서 죽인 사회, 우리가 바뿐다’, ‘우리의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등의 여성이 주체가 돼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남대로 일대를 채웠다.

    나아가 ‘성별 임금격차 해소하라’ 등의 여성 노동에 관한 문제부터 ‘낙태죄를 당장 폐지하라’는 성적 자기결정권 보장을 촉구하는 구호도 등장했다. 한 육군 대위가 동성과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상황을 겨냥해 ‘퀴어 라서 감옥가지 않는 군대를 만들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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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진을 마친 오후 9시 10분경엔 다시 추모문화제가 있었던 신논현역에서 ‘독방을 부수며’라는 주제로 발언대회가 이어졌다. 이 대회에선 무려 9명의 여성이 발언을 신청해 연대와 투쟁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들이 자신이 겪은 성차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상적으로 느끼는 공포에 관한 무수한 경험들을 쏟아내고 강남역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페미니즘 행동들을 공유했다.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 서한솔 씨는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이후, 초등교사 커뮤니티부터 시작했다. 스스로를 페미로 정의하고 모임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이 사건이었다”며 “교사이지만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닌, 여성으로서 교사로서 살아가는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며 운을 뗐다.

    서 씨는 “교생 실습 때에 매주 금요일 담당 부장이 자취 중인 제 근처로 찾아와 새벽 3시까지 술을 먹다가 갔다. 술시중을 들었고 사회성 좋다는 칭찬을 받았다. 실습이 끝나 축하하는 행사에선 나이 많은 교감과 블루스도 췄다”며 “남성이었던 교장, 교감들은 당시 교생이었던 저를 교사로서,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았다. 저는 싸울 수도 있었지만 피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이후 인정하기 싫었던 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 세상은 나를 약자로 만들었고 싸움은 피할 수 없고 내가 피하더라도 같은 자리에선 다른 누군가가 괴로워하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는 여전히 제가 약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괴롭지만, 싸우는 약자임을 인정하며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존재함에도 학교 현장에선 존재조차 지워져버린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페미니즘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국내 첫 트렌스젠더 변호사인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유럽 트랜스젠더 단체에 따르면, 증오 범죄로 희생된 피해자 명단을 만들고 있는데 2008년부터 2016년 말까지 2000명 이상이 살해당했다. 그 중 많은 피해자가 트랜스젠더 여성이나 시스젠더 여성”이라며 “여성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성적 대상이 되고 폭력과 살인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변호사는 “이런 일은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국내 한 트렌스젠더 여성은 주유비를 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인인 남자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 남성은 법원에서 트레스젠더 여성인 걸 알게 돼서 화가 나서 죽였다고 했다. 언론은 또 이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살해를 저질러도 되는 것처럼 기사를 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과 강남역 1주기의 날에 정부에 요구한다”며 “특정 병력, 특정 상황, 장소를 강조해선 이런 범죄 해결하지 못한다. 성별·성적 지향, 성적 정체성에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을 누리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지영 전국디바협회 대표는 “게임이든 현실이든 존재하는 여혐을 서로 연결하지 못한 채 게임 속에서 겪는 성희롱, 젠더 폭력을 ‘나만 겪는 일이겠지’하며 개인의 문제로 알고 살았다”고 털어놨다.

    김 대표는 “그러나 우리는 지금 2017년, 사이버 성폭력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고 있다. 82년생 김지영들이 93년생 김지영들을 위해, 2070년의 김지영들을 위해 서로가 각자의 현실 내에서 최전방에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다”며 “이 시대 모든 김지영들이 이 세상을 바꿀 거라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강남역 살해사건 피해자 어머니는 주최 측에 “많은 분들이 추모제에 함께해줘 놀랍고 고맙다. 1000명 모두 댁으로 안전하게 돌아가시길 기도하겠다”고 문자를 남겼다고 주최 측은 전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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