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민중항쟁 37주년,
    강용주‧전두환‧임종석을 생각한다
    [기자칼럼] 보안관찰법과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2017년 05월 18일 09: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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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 5.18 광주민중항쟁 37주년이다. 광주항쟁은 그 당시를 살았던 이들이든 아니든 우리 모두에게 아픔이고, 슬픔이고, 분노이다. 희생된 이들을 생각하면 아픔이고 아직 항쟁의 그 정신이 온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 현실은 슬픔이고 전두환으로 대표되는 가해자 학살자들은 분노의 대상이다.

    강전임

    왼쪽부터 강용주 전두환 임종석

    강용주

    정권이 바뀌었다. 문재인 새 정부의 탄생으로 모두들 한껏 기대가 부풀어 있다. 이번 광주항쟁 기념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참가 규모도 역대 최대가 될 거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과거의 슬픔이 그렇듯이 기억과 기념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행사로 다 채워지지 않으며 모두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을 뿐이다. 그 과거는 현재의 삶과 실천 속에서 기억되고 기념된다.

    지금 또 한 명의 사람, 강용주라는 사람이 그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강용주는 1980년 광주항쟁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시민군에 참여했고 1982년 전남대 의대에 진학한 이후 85년에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국정원의 전신)에 의해 이름도 무시무시한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돼 1999년까지 14년을 복역한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 출신이다. 그런데 그가 최근 다시 경찰에 체포되고 검찰에 의해 기소되어 장미대선을 앞둔 4월 28일 법정에 섰다. 소위 ‘보안관찰법’의 신고의무 불이행 때문이다.

    보안관찰법은 유신시대 사회안전법의 후신으로 1989년 6월부터 시행된 법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음모, 반란예비죄 등의 혐의로 3년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을 다시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보안관찰처분 대상자’로 규정하고 있다. 보안관찰법과 사회안전법의 유례는 일제시대 조선의 사상범에 대한 ‘보호관찰령’의 보호관찰제도와 치안유지법의 예방구금제도에서 유래한다. 슬픈 역사는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보안관찰 대상자 처분을 받으면 3개월마다 주요 활동과 이동에 대해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해야 하고 대상자 처분은 법무부 보안관찰처분심의위원회에서 2년마다 갱신 여부를 결정한다. 사실상 형사처벌을 하면서 법원이 아니라 행정부인 법무부가 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강용주는 1999년 출소 이후 보안관찰 처분을 받고 18년째인 지금까지 처분이 갱신되고 있다. 지금 강용주의 기소 이유는 3개월 단위의 뭘 하고 있는지 신고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강용주는 보안관찰법에 대해 양심과 사상, 신체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신념으로 18년 동안 신고 의무를 단 한 차례도 이행하지 않았다. 그는 신고의무 위반으로 2002년과 2010년에도 각각 벌금 50만원과 150만원을 약식선고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검찰이 그를 정식 기소한 상황에서 그 또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보안관찰법은 저지르지 않은 범죄의 가능성, 재범의 위험성이 처벌의 대상이 된다. 당연히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결정이 나올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법률이다. 일제시대 사상범에 대한 관찰, 예비구금 제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가장 반민주적인 법이고, 독재시대의 유산이자 대표적인 적폐이기도 하다. 강용주는 이런 불의의 법률에 굴복하지 않았고 18년째인 지금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재판에 임하고 있다.

    전두환

    강용주는 한편에서는 보안관찰법의 위헌과 부당함을 주장하면서 또 한편에서는 광주항쟁의 학살자 전두환을 호명한다. 엄연히 전두환 및 노태우 정호용 장세동 허화평 황영시 등 군사반란의 주범 14명은 12․12, 5․18 사건으로 군형법상 반란죄와 형법상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았고, 이들은 더 중한 보안관찰 처분의 대상이지만 처분 결정을 받고 있지 않다.

    더욱이 재범의 우려를 가장 중요한 보안관찰 처분의 이유로 삼고 있는 보안관찰법에 의하면 군사반란과 내란죄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전두환은 최근 회고록을 내면서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내란으로 판정됐던 광주사태는 어느 날 ‘민주화 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비난하고 자신이 5.18의 가해자가 아니라 희생자라고 규정하는 등 자신의 죄를 반성하기는커녕, 여전히 재범의 우려가 누구보다 큰 사람이다.

    그래서 ‘강용주 보안관찰 처분, 전두환 보안관찰 면제’는 최소한의 법률적 형평성도 없는 행위이다. 물론 전두환이든, 강용주든 보안관찰법 자체가 민주주의 사회와 공존할 수 없는 낡은 시대의 대표적 반민주 악법이다.

    90년대에 일부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이 이들 군사반란 주동자들이 보안관찰 처분을 받지 않은 이유를 밝히라는 정보공개를 청구한 적이 있었지만 당시 정부의 입장은 국가보안상의 이유로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어이없는 답변을 했을 뿐이다.

    전두환을 생각하면 그가 95년 대법원에서 내란죄 등으로 무기징역형이 최종 확정되지만 일부 정치인(형식적으로 김영삼 정부 시절이지만 사실상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의향이 반영)들에 의해 97년 12월 사면을 받았던 그 시간이 다시 생각난다. 가해자가 최소한의 반성은커녕 오히려 자신의 과거를 정당화하고 오히려 광주항쟁을 욕보이는 행태를 보면, 용서와 화해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게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임종석

    강용주를 생각하면 전두환뿐 아니라 최근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임종석 의원이 떠오르기도 한다. 문재인 새 정부 출범 이후 그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전격 발표되자 자유한국당 등 수구 극우파 세력들은 “임 실장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을 지냈으며, 주사파 출신으로 알려졌다”며 “1989년 임수경 전 의원 방북 사건을 진두지휘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 6개월간 복역한 바 있다”고 그의 임명을 재고하라는 색깔론을 펼치기도 했다.

    임종석 의원이 28년 전에 전대협의 의장으로 학생운동을 주도했고, 전대협의 주도세력이 통일 지향의 NL그룹이었다는 것, 임수경씨를 방북시켜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시킨 주도 인물이고 그가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임종석의 과오이거나 지워야 될 부도덕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우파 일부 외에는 없다.

    80년의 광주시민들이 그러했고, 80년대의 학생운동이 그리고 90년대 이후에는 노동운동이 그러했듯이 권력의 부당함과 불의에 가장 비타협적으로 투쟁하고 저항한 것이 죄가 될 수는 없다. 그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급진적 이념과 사상을 접하면서 앞으로의 시대와 미래를 고민 고뇌하는 것은 국가와 권력이 간섭하거나 탄압할 수 없는 자유로운 인간의 권리이고 양심의 문제이다.

    그가 갑자기 강용주와 함께 떠오른 것은 80년대 한국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가장 강경한 반정부 학생운동세력의 지도자였던 임종석의 현재 처지와 고등학생으로 광주 시민군에 참여했고 정부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된 그리고 14년을 복역하고 18년을 보안관찰 처분을 받고 있는 평범한 생활인이자 과거 광주항쟁의 트라우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강용주가 대비되기 때문이다.

    임종석뿐 아니라 그와 같은 86 정치인들에게 과거의 반정부 학생운동 경력이 그들이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자 기반이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문재인 새 정부에서 중용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는 시대라면, 적어도 강용주가 보안관찰법의 신고의무 위반으로 검찰에 의해 기소되고 법정에 서야 하는 이 야만의 현실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는 강용주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강용주의 저항과 불복종으로 드러난(아니 우리가 잠시 잊어 있었던) 보안관찰법이라는 야만의 제도를 끝내는 게 광주항쟁 37주년인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한다.

    필자소개
    정종권
    레디앙 편집국장, 전 진보신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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