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나라에
    혐오가 설 자리는 없다"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공동행동 회견
        2017년 05월 17일 05: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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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여성이나 남성 사이엔 차별이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주류 기독교인은 성소수자들을 철저히 타자화해서 성소수자들이 자신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여기고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을 교회에서 배제하고 성적지향과 정체성을 멋대로 죄악시하고 모든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남용하고 있다.

    이런 양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교회는 과거로부터도 권력집단에 결탁하고 소수자의 차별과 혐오를 수호했다. 일제강점기, 독재시대, 군사정권 시대에 권력에 결탁한 교회가 그랬고 수많은 여성을 마녀라는 누명을 씌워 살해하고 재산을 강탈했던 시대의 교회가 그랬고, 백인우월주의를 교리로 옹호했던 교회가 그랬다. 우리는 이런 것들이 결코 예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예수는 당대 약자요 배척받는 아이들, 사회적 약자, 병든 이들, 사마리아인, 성노동자들과 함께 하길 주저하지 않았고 잘못된 교회의 권력구도를 뒤집기 위해 적극 행동했다.

    우리는 한국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고 군형법 92조에 폐지에 반대하고 동성혼 법제화에 반대하고 이를 정치권에 압박하는 것이 예수의 뜻에 위배된다고 단호히 선언한다. 우리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동성혼 법제화 촉구하며 무죄 판결 촉구, 다양한 가족구성권이 보장되길 촉구한다. 아직도 많은 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전환치료 근절을 촉구한다. 다양한 성적 지향과 정체성이 있는 그대로 존중되고 모든 이들이 살고자하는 삶을 그대로 살아낼 수 있는 그날이 우리가 꿈꾸는 사회이며 우리의 인권이 존중되는 때임을 우리는 믿고 행동하겠다”(이종혁 무지개예수 활동가)

    국제 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 공동행동은 17일 이날을 기념에 오전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에서 ‘성소수자 혐오 없는 나라를 바라는 시민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어떤 성별의 사람을 사랑하든, 자신의 성별이 무엇이라고 느끼고 표현하든,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에 예외나 유예는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다양성이 공존하고 연대하는 삶을 원한다”며 “이를 위해 국가는 혐오에 맞서고 차별을 해소할 책무가 있다. 새로운 나라에 혐오가 설 자리는 없다”고 선언했다.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은 1990년 세계보건기구(WTO)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한 날이다. 국제 성소수자 운동은 이날을 동성애를 정신병이나 전염병으로 보는 동성애 혐오에 대항하기 위해 2004년부터 국제 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30년이 흘렀지만 한국에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구속된 육군 대위는 바로 전날, 동성간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징역 2년을 구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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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 기자회견(사진=유하라)

    국내 첫 트렌스젠더 변호사인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회견에서 “미국 정신의학협회는 20년 전 이미 1973년 동성애는 더 이상 정신질환이 아니라고 명시했고, 세계정신의학회는 이미 트렌스젠더 정체성 그 자체는 어떤 질병도 아니며 치료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성소수자는 불법적인, 병적인, 비정상적 존재가 아니다”라며 “다양한 성적지향 정체성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인권이고, 국제사회에 확립된 가치 규범이다. 그런데 왜, 2017년 대한민국에선 성소수자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박 변호사는 동성애자 육군 대위에게 징역 2년이 구형된 것에 대해 “개인의 인권이 존중되는 민주주의 사회라면 결코 있어선 안 될 일”이라고 비판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사회적 낙인은 실제 그들의 건강과 삶을 뒤흔들고 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배제 당하며 최악의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벌어진다. 성소수자 청소년 5명 중 1명이 자살시도를 한 경험이 있다는 통계도 있다. 이는 성소수자가 아닌 청소년의 자살시도율의 5배에 달한다.

    우석균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일부 기독교 보수세력부터, 단순히 ‘동성애를 반대할 권리가 있다’, ‘동성애가 하느님의 섭리에 반대한다’는 식의 자기합리화는 국제적 상식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 동성애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혐오표현에 관한 피해실태를 조사·연구해온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또한 “피해실태 조사에서 만난 많은 이들에게 학교를 전학, 중단하거나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이직해야 하는 고통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정신적 고통을 넘어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 어렵게 한다. 그것이 혐오표현의 중요한 해악”이라고 지적했다.

    역대 대선에서 이번처럼 성소수자 의제가 이토록 이슈가 된 적이 없었다. 이로 인해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깊은 논의가 진전된 반면 한 대통령 후보가 성소수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그의 지지들로 하여금 감히 내보이지 못했던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부끄러움 없이 꺼낼 수 있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TV 대선토론에서 성소수자 이슈가 제기됐지만 그 논의는 오히려 성소수자들을 고통스럽게 했다”며,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당시 TV토론회에서 ‘성소수자를 차별해선 안 되지만 동성애엔 반대한다’는 주장에 대해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 부정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권의 성소수자에 대한 무지와 혐오는 지난 10년간 보수정부 하에서 정부가 얼마나 차별과 혐오 용인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10년 째 제정되지 못하고 있고 동성커플 가족 구성원 트렌스젠더 자기 결정권 등 기본적 인권을 위한 법제도 전무하다.

    박 변호사는 “새로운 시대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과 노력의 결과이고, 그 안에는 지난 10년간 보수정권 하에서 꾾임 없이 사회의 혐오와 차별에 저항하고 항의하며 싸운 성소수자 있었다”며 “그런 소수자들이 또다시 정부의 혐오와 무관심 속에서 차별과 혐오 속에 노출되고 배제되고 잊히는 일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촛불의 힘으로 이룩한 새로운 시대를 외치는 새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군형법시행제 폐지하라. 불법적 존재로 낙인찍이지 않고 혐오와 차별에 노출되지 않고 민주사회 시민으로 누려야할 권리 보장될 수 있는 당연한 사회 만들어달라”며 “이것은 결코 사회적 합의가 도리 일고 아니고 나중으로 될 일도 아니고 말하며 뒤로 미룰 일이 아니고 지금 당장 새 정부가 해야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5시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성소수자 혐오에 반대하는 시민 버스킹을 밤까지 진행한다. 릴레이 발언대와 공연 등이 있을 예정이다. 또 서울 키어문화축제가 열리는 7월 15일까지 공동행동 참여 단체들은 지역, 일터, 단체 등에서 혐오에 반대하는 캠페인, 학교 성교육 표준안 폐지 서명운동 등을 이어간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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