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농사일,
혼자서 하기 힘든 일들
[낭만파 농부의 시골살이] 못자리
    2017년 05월 17일 09: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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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대선’은 끝났고 민주당 정권이 탄생했다. 집권에 이르기까지 별로 보태준 건 없지만 축하를 보낸다. 아울러 하나같이 실패로 끝난 역대 정권의 길을 걷지 말고 성공한 정권으로 역사에 기록되길 바란다. 그 전조라도 되는 양 거침없이 이어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여러 개혁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역사가 일러주듯 그리고 물이 찼을 때 배를 띄워야 하듯 여론의 기대가 한껏 높을 때 묵은 과제를 해치워야 하는 법이니 더욱 그렇다.

나아가 개혁을 지속하려면 동력이 끊이지 말아야 할 터. 그 에너지는 다름 아닌 개혁을 갈망하는 곳에서 나온다. 결국 ‘인민대중’과 더불어 가는 것이 성공하는 길임을 환기하고 싶다. 마침 집권정당 이름도 ‘더불어’민주당. 현대정치를 흔히 정당정치라 한다. 실제 문재인 정권의 집권 프로그램도, 국정 청사진도 민주당 차원에서 마련한 것 아닌가. 이 점에서 민주당이 개혁적 보수정당이고, 내가 바라는 ‘급진적 개혁’은 기대하기 어려움을 잘 안다. 다만 대중과 멀어지지 말고 지금의 개혁의지가 이어졌으면 한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정치 얘기로 말문을 텄지만 사실 시골살이야말로 더불어 가는 삶이다. ‘익명사회’인 도시에서야 굳이 더불어 살지 않아도 그때그때, 여기저기서 필요를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시골은 다르다. 워낙 판이 좁으니 일상생활의 테두리도 뻔하다. 다양하게 삶을 꾸린다고 해도 관계망은 한정돼 있다. 어제 강연회에서 만난 사람과 오늘 독서토론 모임에서 만난 사람, 내일 술자리에서 만날 사람이 거기서 거기라는 얘기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 공동체를 이룰 수밖에 없고, 더불어 사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겉돌기 십상이다.

농사는 더더욱 혼자서 하기 힘든 일이다. 대선국면이 펼쳐지고 새 정권이 들어설 즈음 우리 벼농사도 새로 시작됐다. 벼농사의 첫 국면은 모를 키워내는 모농사다. 볍씨를 담가 싹을 틔워 모판에 파종해 숙성시킨 뒤 못자리에 앉히고 성모로 자랄 때까지 잘 보살피는 일이다. 흔히 ‘모농사가 반(半)농사’라 할 만큼 중요한 공정이다. 그만큼 많은 품을 집중해야 한다.

벼농사 하면 아직도 모내기와 가을걷이를 떠올리는 이가 많을 것이다. 논배미에 나래비 서 모를 심거나 낫질로 황금들녘을 조금씩 먹어 들어가는 풍경 말이다. 더러 아낙네가 이고 온 새참 함지박을 생각하며 군침을 삼킬 이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기계농업이 들어서기 이전 얘기다. 요즘 모내기는 이앙기가 다 알아서 하고 농사꾼은 모판 대주는 노릇이 끝이다. 가을걷이 또한 수확기(콤바인)가 다 해치우고 농부는 나락가마(톤백)나 나르는 짐꾼일 뿐이다.

기계 벼농사에서는 못자리다. 모농사 공정에서 볍씨 담그기는 작업이 간단한 편이고, 파종작업은 기계가 대신해주니 품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못자리를 만들어 모판을 앉히는 일은 벼농사 공정에서 일손이 가장 많이 필요하다. 크게 어우르지 않으면 일이 무척 어려워진다. 기계화 이전의 모내기와 가을걷이에 견줄 만하다.

모농사

사진=필자 페이스북

올해도 어찌 일손을 모을지 머리를 싸매야 했다. 일손이 모자라 차량 전조등까지 켜고 야간작업을 했던 지난해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그나마 벼농사모임을 함께 하는 ‘동지’들이 있어 다행이지만 전업농은 실상 나 혼자다. 나머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식자급’ 차원에서 한 두 배미 짓는 수준이다. 다들 사정을 잘 아는지라 만사 제쳐놓고 달려왔지만 역부족이다.

여기저기 단체톡방에 읍소에 가까운 구원요청을 했더니 벼농사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이 찾아와 힘을 보탰다. 중간지원조직 활동가부터 원두커피 바리스타, 조경을 하는 이, 귀농을 준비하는 이까지 다양하다. 나랑 유기농 벼농사 멘토링을 하는 멘티 호철 씨도 당연히 팔을 걷어붙였다.

아침 일찍부터 물못자리 이랑 고르는 작업을 시작해 멍석망 깔고, 그 위에 모판을 앉히고, 부직포를 덮기까지 일이 착착 진행되었다. 비록 고랑을 너무 좁게 파는 바람에 막판에 애를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해거름에 마칠 수 있었다. 다들 버거웠던 지난해 일을 떠올리며 흐뭇해했고, 공정마다 인증샷을 찍는 여유까지 부렸다. 들녘 한켠에 경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레일에 먹거리가 빠질 수 없다. 함지박에 이고 온 걸진 들밥을 따라가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푸짐했다. 찬민이네가 새참으로 떡과 두릅나물, 오이를 내왔고, 나남 선생은 갖가지 막걸리와 김밥을 준비했다. 점심은 읍내 식당에 보리비빔밥을 시켰다. 막걸리 한 순배가 돌고나자 느티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시원한 동네 모정이 한 순간 왁자해졌다.

이제부터 모는 햇빛과 바람이 키워줄 것이다. 농부는 달포 남짓 못자리에 적당히 물을 대주고, 어떤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살피면서 모낼 날을 기다리면 된다.

더불어 짓는 건 농사만이 아니다. 지난번에 썼듯이 우리 집 또한 동네사람들과 더불어 지었더랬다. 이사한 지 보름 남짓 지났는데, 집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 게다가 못자리 일이 겹치는 바람에 쩔쩔매야 했다.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기저기 집들이를 하라고 성화다. 제대로 집단장하자면 시간이 더 필요하고, 6월로 넘어가면 모내기가 버티고 있어 고민 끝에 닥치기 전, 그러니까 이번 일요일에 해치워버리기로 했다. 농사철에 들어서기도 했거니와, 줄줄이 사탕으로 집들이를 할 처지도 못 돼 ‘완공축하 작은 음악회’를 콘셉트로 한 판에 몰기로 한 것. 출연진은 동네에서 한 가락하거나 의지가 충만한 이들로 꾸리고, 먹거리는 이 고장 로컬푸드 식당에 맡길 요량이었다.

집짓기에 도움을 줬던 이들이 이번에도 선뜻 나서주어 준비팀을 꾸렸다. 역시 다들 출연섭외에 기꺼이 응해주고,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다. 문제는 먹거리. 생각해두었던 로컬푸드 식당이 휴일에는 출장서비스를 하지 않는다지 않는가. 난처한 상황에서 믿을 건 역시 동네사람들. 동네 공동부엌 <모여라 땡땡땡> 운영진에 ‘읍소’했더니 녹록찮은 여건이지만 간단한 저녁밥상을 차려주겠노라 한다. 또 한 짐 덜었다.

생각해보니 백 명 가까이 북적일 행사를 열흘 전에야 준비를 시작한 건 이만저만 무모한 짓이 아니다. 그것도 집정리를 하면서. 그래도 아직 마음이 느긋한 걸 보면 별 탈은 없을 모양이다. 그게 다 더불어 짓고, 더불어 누리는 시골살이의 힘이지 싶다.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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