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기민당, ‘미니총선’에서 완승
    사민당 텃밭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선거
        2017년 05월 16일 08: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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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4일(현지시간)에 실시된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선거에서 집권 기민당(CDU)가 사민당(SPD)과 접전 끝에 승리했다. 출구조사 결과 총 181석 중에 기민당은 72석(33%), 사민당은 69석(31.2%), 자민당은 28석(12.6%), 독일을 위한 대안(AfD)는 16석(7.4%), 녹색당은 14석(6.4%)을 각각 차지했다. 지난 선거에서 20석(7.8%)을 얻으며 돌풍을 일으켰던 해적당은 1%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원외정당으로 밀려났다. 좌파당(Left)은 4.9%의 지지율을 얻으며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지만 의회진출 기준인 5%에 미달해 또다시 원내진출에 실패했다. 기민당 부당수 겸 주 대표를 맡고 있는 아민 라셰트(Armin Laschet)는 자민당과 연정을 구성할 예정이다. 자민당은 역대 최고득표율을 올리면서 9월에 실시될 연방총선에서 기민당과의 연정 가능성에 한발 더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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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켈 총리 4연임 ‘청신호’ 켜져

    기민당은 3월 자를란트 주의회선거와 일주일 전에 실시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회 선거에서 연거푸 승리한데 이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에서도 승리함으로써 9월 총선에서 재집권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는 인구 1천800만 명의 독일 최대주로 전체 유권자의 20%가 넘는 표심을 미리 확인한다는 의미가 있는 곳이어서 흔히 ‘미니총선’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는 단 한 번을 제외하고 사민당이 계속해서 집권해왔기 때문에 이번 패배는 사민당에게 충격적인 결과였다. 한 번의 패배인 2005년의 선거는 사민당의 슈뢰더 총리가 대대적인 노동유연화를 단행하자 노동자들이 일시적으로 등을 돌린 특별한 경우였다.

    사민당은 가브리엘 당수가 물러나고 국민들에게 인기가 높은 마르틴 슐츠 전 유럽연합(EU)의장으로 교체한 후 지속적으로 당 지지율이 오르면서 12년 만에 집권을 꿈꿨지만 이번 패배로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특히 슐츠 총리후보는 자신의 고향인 사민당의 텃밭에서 패배함에 따라 입지가 급격히 좁아졌다. 인구가 100만 명인 자를란트와 300만 명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와 달리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은 최대의석이 걸린 곳이라는 점 때문에 9월 총선에서 기민당의 재집권은 한층 더 높아졌다. 2005년부터 집권한 기민당의 메르켈 총리는 독일 최장기 총리라는 기록을 눈앞에 두게 됐다.

    사민당은 ‘슐츠 효과’로 한때 기민당의 지지율을 오차범위까지 추격하자, 좌파당과 녹색당을 포함하는 ‘적적녹연정’이라는 집권시나리오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좌파당이 이번 선거에서도 한계를 확인한데다 지지율이 반등의 여지가 보이지 않자 연정 파트너로 좌파당 대신에 자민당을 끌어들이자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사민당과 자민당 그리고 녹색당이 참여하는 ‘적황녹연정’, 소위 말하는 ‘신호등연정’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 약진하고 녹색당 지지율은 반 토막 난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3월 라인란트-팔츠주 선거에서 좌파당이 원내진출에 실패하고 극우정당인 AfD가 14석(12.6%)을 차지하며 3당으로 급부상하자 선거에서 승리한 사민당은 기민당과의 연정 대신에 자민당과 녹색당을 끌어들여 신호등연정을 구성했다. 사민당의 말루 드라이어(Malu Dreyer)주총리는 신호등연정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연방 차원에서도 신호등연정이 성공할 것”이라며 새로운 시나리오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크리스티안 린트너(Christian Lindner) 자민당 대표는 “검토할 가치가 없는 주장”이라며 일축하고 있지만 당내 분위기는 총선 결과에 따라 열어놓고 판단하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린트너 당수가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위기를 수습한 AfD, 위기의 녹색당

    AfD는 3월에 실시된 자를란트 주의회 선거에서 3석(6.2%), 5월 7일에 실시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회선거에서 5석(5.9%)을 얻으며 비교적 약체지역에서도 원내에 진입하는 성적표를 손에 넣었다. 친기업 정당인 자민당의 약진으로 고전이 예상되었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서도 원내진출 기준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AfD는 당 대회를 앞두고 당내 권력투쟁으로 분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등장했다. 사건의 발단은 비요른 회케 튀링겐 주의회 원내대표가 드레스덴에서 열린 연설에서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치욕의 기념물’이라고 발언하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프라우케 페트리 당수는 즉각 비요른 회케의 발언을 비판하고 당기위원회를 개최했지만 징계를 하는 데는 실패했다.

    4월 당 대회를 앞두고 비요른 회케는 30대 경제학 박사이자 동성애자인 알리체 바이델을 여성 총리후보(남녀 2인 선출)로 밀면서 프라우케 페트리 당수에게 정면으로 대응했다. 연방의회 진출을 눈앞에 두자, 프라우케 페트리 당수는 극우정당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AfD는 더 이상 극우정당이 아니”라는 말을 반복하고 홀로코스트를 인정(부정하지 않는)하는 태도를 취해왔다. 또한 당내 강경극우(far far right)들을 진압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쏟아 부었다. 강경극우들의 돌발행동으로 당의 지지율이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였다.

    회케의 정면도전에 당이 노선대립으로 급격하게 양분되자 프라우케 페트리 당수가 여성 총리후보 출마를 포기하면서 사태를 봉합했다. 당내 지지도는 프라우케 페트리 당수가 앞서지만 비요른 회케는 지역조직의 상당수를 장악하고 있는 실세라는 것도 이유로 작용했다. 당의 분란에도 불구하고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과 최대 의석인 걸린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선거에서 선전함으로써 창당이후 최대 위기를 벗어났다.

    녹색당은 강세지역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회선거에 10석(12.9%)을 얻으며 현상유지에 성공했지만 자를란트에서는 원내진입에 실패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에서도 지지율이 대거 추락하는 등 전국적인 지지율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유권자들이 녹색당도 이제는 기성정당처럼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새로운 지도자와 인물의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당의 간판인 카트린 괴링-에카르트 녹색당 원내대표가 사민당과의 적록연정 당시에 노동유연화의 주범이라는 것도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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