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가 끝나고 남는 것들
    심상정 선거운동 실무자의 넑두리
        2017년 05월 16일 08: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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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기간 심상정 대선 후보 선거운동에 참여했던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한성욱 연구위원이 선거가 끝난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선거운동 과정에서의 고민과 느낌이 잊히는 것이 아니라 선거 이후의 활동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공유하는 것이 의미 있을 듯하여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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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장미대선은 끝났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수준 높은 평가와 분석 글이 많이 나온다.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약간 각색한 것이다. 선거의 일선 현장에서 뛰었던 실무자의 넋두리와 같은 글임을 양해바란다.

    단상1. 심히 성찰한다.

    6.2%. 어려운 조건에서 당원, 지지자 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과분한 결과를 받았다.

    그런데,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최종 결과가 나와도 개의치 말자고 여러 차례 다짐하였건만 내 자신의 역할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다.

    4월 28일부터 5월 2일까지 각종 언론사에서 조사한 30개의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하면 평균 9% 정도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었다.(5월 1일~2일, 서울경제와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1.2%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5월 3일 여론조사부터 공표는 불가하나 조사는 가능하기에 어느 정도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5월 2일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심상정 후보 지지층의 40~50%는 지지후보를 바꿀 수도 있다는 응답이 많았다.

    선거 막판이 되면 제3정당 후보들의 지지율은 빠지는 게 일상적인 일이다. 이런 여러 상황을 예측하고 있었음에도 방어할 수 있는 기획과 제안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성찰한다. 낮에는 일하고 시간을 내서 짬짬이 선거운동을 하였던 운동원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눈 뜨고 표가 이동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나의 무능에 깊은 성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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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표는 선거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조사하였던 JTBC와 한국리서치 조사 결과이다. 심상정 후보 지지층에서 후보 교체 의향을 물어본 결과로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50% 내외는 언제든지 다른 후보로 바꿀 의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심상정 후보에 대한 지지충성도가 높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 한편으로는 대세론이 흔들리면 언제든지 갈아 탈 수 있다는 소수 정당 후보의 비애이기도 하다.

    단상2.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치다.

    대선전략 초초안을 제출할 때 나는 개인적으로 5% 이상을 목표로 작성하였다. 물론, 공식회의에 올리지 못했지만 그때는 5%도 벅찬 목표였다. 정의당 후보는 아예 여론조사에 잡히지도 않았다. 심상정 후보가 여론조사에 처음 잡힌 것은 리얼미터의 정기조사로 12월 4째주로 1.2%였다. 그것도 다자구도에서가 아니라 반기문 후보를 무소속으로 가정한 6자 대결이었다(당시 바른정당은 창당전이라 개혁보수신당 유승민 후보로 조사). 역대 투표결과를 참조하여 아무리 목표치를 잡아도 5% 이상은 무리였다. 여러 문서에서 20대~30대/여성을 타켓층으로 하는 것이 지지층 확대에 유리하다고 제안하였으나 그 방식에 대해서는 제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상상만으로도 그리기 힘들었던 그림을 국민들이 그려줬다. 책상에 앉아 아무리 수치를 맞춰 봐도 할 수 없었던 것을 국민들이 해낸 것이다. 20대, 여성, 정치에 관심없었던 층들이 심상정 후보에게 관심을 가졌고 정의당에 힘을 주었다. 정치인들이 안될 거라고 낙담하는 순간에 국민들이 우리에게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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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말 7개 지방신문-리얼미터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심상정 후보 지지층의 비율을 계층별로 재구성하면 유의미한 변화가 보인다. 20대와 무당층, 여성이 심상정 지지층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단상3. 정말로 사표가 존재할까

    이번 정의당의 성과는 새로운 지지층을 발견하고 확장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정치에 관심 있는 유권자들은 이것저것 전략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선거라는 것이 인물 좋고 정책만 좋다고 선택받는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그래서, 나는 사표심리가 발동될 수 있고 선거캠페인을 주도하는 정당 입장에서 사표심리를 이용할 수 있다고 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왔다. 나도 1등이 아닌 모든 표는 사표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나는 이번 선거를 통해 사표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 던진 표들은 死(사)표가 아니라 絲(사)표라고 생각한다. 실을 하나하나 꿰어 옷을 완성하듯 사람들 속에 가지고 있는 희망을 하나하나 엮을 소중한 표라고.. 심상정이 없었다면 투표장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많은 사람들이 투표장에 나섰다.

    이번 선거기간 사표론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 등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표론을 언급하였고 선거 이후 사과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 원내대표의 사과가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선거제도 개혁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것이다. 지금의 사표논란은 불합리한 제도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번에도 1등 후보에 투표한 표보다 나머지 후보들에 투표한 표가 더 많지 않은가. 이는 대선보다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불합리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더불어민주당이 선거 때마다 사표론을 이용할 게 아니라면 정당명부비례대표제, 결선투표제 도입에 앞장서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단상4. 당당하게, 진솔하게

    선거 마지막날. 필리버스킹 12시간 유세를 진행하였다. 중간에 여성들과 후보의 대담이 있었다. 중증장애인 어머님, 수퍼우먼 여성, 여성노동운동가, 헬조선에 절망해있던 대학생, 이제 막 정의당에 가입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수많은 선거운동을 하였지만 그렇게 애절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중학생 딸을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도 너무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변한다고 했지만 제대로 경청하기는 한 걸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나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막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우리에게 도움되는 이야기만 들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해 보았다. 심 후보를 만나면 울었던 청년들의 이야기, 울먹이면서 얘기했던 수퍼우먼의 이야기 속에서 나왔던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정치일 게다.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몫도 있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을 것 같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감동해서 열정적으로 나서는 그들에게 정당이 화답해야 하지 않을까. 좀 더 당당해져도 될 것 같다. 그러나, 진솔하게 국민들을 대하자.

    선거기간 토론에서 가장 화두가 되었던 것은 심 후보의 ‘홍준표와 토론 거부’, ‘성소수자에 대한 1분 발언’이었을 것이다. 특히, 성소수자에 대한 1분 발언 이후 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심상정 후보를 만나면 끌어안고 울었다. 성소수자 얘기 등은 선거기간에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후보와 정당의 입장에서는 매우 고민스러운 주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심상정 후보는 자신의 견해를 당당히 밝혔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부끄러운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진보정당은 수많은 정책을 내왔지만 선거 때마다 대중성 등을 이유로 수많은 자기검열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 정책의 급진성 여부는 정치인들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단상5. 선거는 끝났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대선에서 6% 정도 얻은 걸로 너무 정신승리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비슷한 6%대의 득표를 올리고도 바른정당과 정의당의 분위기는 약간 다른 것 같다. 선거 때마다 우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하곤 했다. 2004년 13%의 득표로(민주노동당) 277만이 넘는 국민들이 지지했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 그 이후 277만이 넘는 국민들 중 상당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진보정당에 실망하게 되었다. 그때의 277만표도 의미 있었고 지금의 200만표도 의미 있다.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힘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예전의 실패를 거울삼아 준비를 잘 해야 한다. 비록 이번에는 심상정을 찍지 않았지만 마음속의 빚을 안고 수많은 격려와 후원을 해주고 계시는 국민들에게 더 이상 실망을 드리지 않기 위해서도.. 그래, 지금부터가 다시 시작이다.

    필자소개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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