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틴아메리카 좌파,
    ‘분홍 물결’과 집권 후 전략
    [책소개] 『21세기 사회주의』 (배리 캐넌 외/삼천리)
        2017년 05월 14일 02: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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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촛불 시민항쟁 이후, 시민사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몇 달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띠고 훗날 역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까?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의 촛불 물결은 1960년 4월혁명과 1987년 6월항쟁 이후 30년 만에 다시 한 번 국가권력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다. 한국현대사에서 대략 30년, 한 세대를 주기로 폭발해 왔으나 시민들은 번번이 기성 정당에게 정치권력을 맡겨 두어야 했다. 어쩌면 정치사회(국가, 정부, 정당)와 직접 연결 고리를 만들어 내지 못한 시민사회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또 한 번 광장의 정치는 대의민주주의와 정당정치에 자리를 내어주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데 머물고 말 것인가? 좌절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21세기 사회주의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분홍 물결’과 집권 후 전략

    이 책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국제정치의 이슈가 되고 전 세계 진보 세력의 관심을 집중시킨 라틴아메리가 좌파 ‘분홍 물결’의 전모를 담고 있다. 집권 과정보다는 집권 이후 전략과 정책, 시민사회의 움직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각 나라별로 방대한 데이터와 구체적인 지표를 바탕으로 짚어 보는 흔치 않다. 특히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정치적 격변과 좌파 정부의 집권 이후 민주주의와 경제적 평등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는지 분석하는 대목에 이르면 한국 사회의 현실이 겹쳐 보인다.

    나라 안팎으로 신자유주의 지구화와 대의민주주의라는 거대한 힘을 돌파하며 직접정치와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은 갈기갈기 찢어진 공동체를 복원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동안 정치를 지배해 온 기성 정당과 외국 자본, 기득권 적폐 세력에 맞서 노동자, 농민, 원주민, 여성, 성소수자(LGBT), 환경 운동가들이 목소리를 냈고, 지방정부는 물론 중앙정부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1998년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 대통령 당선된 뒤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칠레(2000), 브라질(2003), 아르헨티나(2003), 우루과이(2005), 볼리비아(2006), 니카라과(2006), 에콰도르(2007), 파라과이(2008), 과테말라(2008), 엘살바도르(2009), 페루(2011)에서 좌파 내지 중도좌파 정부가 속속 들어섰다.

    민중들의 지지를 받아 집권했지만, 우고 차베스, 룰라 다 실바, 에보 모랄레스, 라파엘 코레아, 오얀타 우말라, 미첼레 바첼레트 등 정치 지도자들이 집권 후 정책을 펴나간 방식은 나라마다 달랐다. 사회운동이나 시민사회의 역량에 따라 정부의 운명이 결정되기도 했다.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사회 세력을 동원하는 정치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받기도 했고, 심지어 노동조합이나 원주민운동 세력의 저항에 직면했다.

    국가를 다시 생각하고, 시민 직접정치를 상상한다!

    이 책을 집필한 전 세계 18명의 정치학자들은 라틴아메리카의 ‘분홍 물결’을 이끌어 온 좌파 정부의 전략과 시민사회의 실천을 ‘혁명적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본다. 이런 ‘21세기 사회주의’는 현실 사회주의와 달리 다원주의적 대의민주주의에 직접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를 결합한 형태이다. 하지만 이런 민주주의는 최종 상태라기보다는 진행 중인 역동적 과정으로서 국가와 시민사회의 변증법적 상호관계에 규정을 받게 된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그람시주의, 하버마스주의 등 다양한 정치 이론을 검토하면서도, 특히 낸시 프레이저의 ‘강한 공공성’ 개념을 기본적인 관점으로 채용하고 있다. ‘강한 공공성’이란 “강한 결사체적 역동성과 포용적 비판적 토론에 대한 헌신”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는 시민사회와 국가를 분리하여 시민사회에 “단순한 여론 형성과 감시자 역할”을 부여하는 자유주의적 ‘약한 공공성’ 개념과 구분된다.

    국가를 넘어서는 대안적 세계화의 가능성과 한계

    한편 라틴아메리카 대륙 주요 국가에서 좌파가 집권한 배경에는 1980년대 이후 추진된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모순을 드러낸 측면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미국과 중국, 유럽이 주도하는 세계 전략과 초국적 자본의 전략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우리 아메리카 민중을 위한 볼리바르동맹-민중무역협정’(ALBA-TCP), 남부원뿔노동조합총연맹조정위원회’(CCSCS), ‘새로운’ 메르코수르(Mercosur) 등 국가를 뛰어넘는 대안적인 지역 연대 틀도 모색하고 있다. 좌파 정권 아래에서 국내적으로는 시민사회가 정치사회에서 중요한 행위자로 떠올랐지만, 세계 무역이나 원자재 가격, 기후변화, 빈곤과 불평등, 실업 문제 등은 국가 단위를 뛰어 넘는 과제인 것도 현실이다.

    이 책은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펼쳐지는 세계경제 상황이 라틴아메리카 정부들에 양날의 칼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의 호황은 ‘채굴 경제’에 의존하는 라틴아메리카 경제에 유리한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지역 경제가 생산 기반을 전환하는 데 장애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국가 경제에서 석유 비중이 큰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광물자원 채취의 비중이 큰 칠레와 브라질 같은 국가의 구체적인 경제지표를 보여 주며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토론과 숙의, 더 많은 참여와 의사결정권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좀 더 참여적인 국가-시민사회 관계를 만들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를 보여 주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런 과정에 나타나는 몇몇 한계도 제시하고 있다. 대부분 지구화의 맥락에 서 국가와 시민사회가 상호작용하는 방식, 국가의 개입과 시민의 참여, 정부 정책에 대해 주민이 의사결정권을 확대해 가는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미래 이 지역 신좌파 정부의 행보나 민주화에 대한 전망을 섣불리 단정하지는 않지만, 서장에서 제기한 핵심 문제와 잠정적 결론을 각 장에서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가 사망하고 브라질에서 룰라의 뒤를 이은 호세프가 탄핵되면서 최근 들어 ‘분홍 물결’이 한풀 꺾이고 있다. 그럼에도 낸시 프레이저의 ‘강한 공공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분명히 과거보다 진보하고 있다. 무엇보다 더 많은 참여와 시민의 의사결정권이 보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비록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시민사회의 역할이 단순히 여론 형성을 넘어, 숙의를 통하건 반대를 통하건 간에 의사결정 과정에 더 많이 개입하는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점을 이 책은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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