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틈새를 관찰하다
[영화] 마이크 니콜스의 <클로저>
    2017년 05월 12일 10:0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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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인생을 소재로 ‘사랑’에 관한 영화를 딱 한 편 만들어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다고 생각해보죠. 여러분은 인생의 어느 순간을 잘라내어 영화로 만드실 건가요? 떠오르는 순간이 있나요? 풋풋한 고교 시절, 아니면 새내기 대학생 시절? 또는 결혼을 앞둔 시점인가요? 황혼의 어느 시점일 수도 있겠네요. 설마 초등학생 시절은 아니시죠? 그 시절이 각자에게 아름다운 추억이라 해도 ‘이런 연애는 나만이 한 것이다’ 하고 말할 만한 어떤 사랑은 아니지 않나요? 이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연애스토리가 존재합니다만 이 모든 이야기들은 사실 이렇게 정리할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만나서 갈등하다 사랑하고 헤어지는 이야기’

여러분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러브스토리는 이야기의 가지 부분을 소거하는 방식으로 줄여나가다 보면 종국에 저 한 문장으로 축약되겠죠. 그래서 우리가 어떤 종류의 멜로 드라마를 볼 때 ‘진부한 사랑 이야기’라고 합니다만 진부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서두에 제가 제안한 여러분 인생의 러브스토리도 결국은 저 문장에 살을 붙인 이야기 아닌가요? 사랑에 관한 이야기, 더 정확하게는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볼 때 우리는 저 문장 안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이크 니콜스의 2004년 작 클로저는 우리에게 저 문장 밖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바로 사랑이 끝나는 순간과 다른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사이의 이야기, 바로 사랑의 ‘틈새’에 관한 이야기죠.

클로저

영화는 런던의 번화가,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미국인 여성 알리스와 영국인 소설가 댄이 첫눈에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됩니다. 사고처럼 이들에게 닥친 사랑은(수사적 표현이긴 합니다만 실제로 사고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기절해있던 알리스가 자기 눈앞에 있는 댄을 바라보며 말한 ‘안녕, 낯선 사람’ 이라는 멋진 대사와 함께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이들의 사랑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이미 사랑이 끝나버린 시점으로 바로 점프하죠.

댄이 새로이 사랑을 느낀 안나의 등장과 함께 알리스의 슬픈 눈(안나의 사진 속)으로 관객이 기대한 이 둘의 사랑은 이미 끝났다고 선언해버림과 동시에 바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자신을 거절한 안나에 대한 복수를 위해 댄이 속임수로 꾀어낸 래리는, 오해에 의해 안나를 만나지만 이내 안나와 연인관계가 됩니다. 이들이 결국 결혼했다는 것을 관객들이 알게 될 즈음엔 이미 안나와 댄은 외도를 하고 있죠. 이러한 점프들이 영화 내내 이어집니다. 이들의 관계가 아직도 유지 중인가 관객이 의심할 때 이미 다른 사랑이 시작되거나 관계의 파국이 와있음을 알려주는 편집과 컷은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는 연애 그 자체가 아니라 연애의 시작과 끝, 또는 연애와 새로운 연애 사이에 일어나는 이야기들임을 말해줍니다.

관객은 러닝타임 내내 네 명의 등장인물이 계속해서 상대를 교환해가며 구애하고 거절하고, 유혹하고 배신하며, 상처주고 상처받고, 진실을 말하거나 거짓을 말하는 과정을 바라보게 됩니다. 연애에 관한한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뭐있나 할 관객들에게도 이들의 배배꼬인 관계도와 그것을 다루는 형식은 신선하게 다가올 듯합니다. 최근에 재개봉을 하긴 했지만 2004년 작인 이 영화의 제작 시기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연애를 바라보는 방식이 세련되고 날카롭기도 하죠. 이 영화가 십 수 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임을 느끼게 해주는 건 오로지 주드로의 아직 사라지지 않은 앞머리와 나탈리 포트먼의 젖살이 빠지지 않은 얼굴 정도뿐입니다.

사실 네 명의 주요 인물들의 만남과 헤어짐은 표면적으로 막장드라마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아주 지긋지긋하죠. 하지만 이 영화에 막장드라마가 가지지 못한 품격을 부여하는 것은 이 관계들에 대한 감독의 태도가 만들어주는 서늘한 감성입니다. 보통 이런 장르의 영화를 로맨틱 코미디라고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 영화에는 사실 로맨스적 요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로맨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정 성분 이상의 로맨스 즉, 사랑이라는 것의 진정성 또는 환상을 용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클로저는 의도적으로 로맨스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사랑의 피부를 벗기고 해부한 다음 사랑의 장기라는 것이 있다면 그 장기를 마치 전시하듯 적나라하게 관객 앞에 내어 놓습니다. 사랑이라 것은 결국은 이러한 피와 뼈와 장기로 구성돼 있다고 보여주는 것이죠. 이러한 연애 해부학적 시도는 연극적 형식(영화의 원작은 브로드웨이 연극입니다)과 결합돼 묘한 이질적 감정을 가지게 합니다. 이 색다른 정서는 관객으로 하여금 사랑이라는 신화화된 관념에 대해 재해석을 하도록 강요하죠. 네 아주 불편합니다만 맨 처음 생각해봤던 당신의 인생 러브스토리, 그 순간으로 돌아가 볼까요.

당신의 사랑은 아름다웠나요?

필자소개
공공운수노조 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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