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강터널의 질식사고
    [철도이야기] 1949년. 51명 사망
    By 유균
        2017년 05월 11일 11: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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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가슴 아픈 사고를 쓰려 합니다. 예전에 선배기관사님께 구술을 받을 때 ‘증기기관차가 굴에 들어가기 전에 기관사와 기관조사는 수건을 물에 적셔 기관차가 굴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얼굴을 감싼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야 뜨거운 증기가 얼굴로 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물론 기관차 앞에 유리창이 있지만 사실 있으나 마나랍니다. 그렇다면 ‘연기로 문제가 된 경우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자료를 한 번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있네요. 그리고 ‘예전의 선배들은 참 어렵게 일을 했구나!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신문을 검색해서 사고 내용을 죽 읽어보니 조금 황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고도 있었구나!’ 지금 시대는 이러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월호’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합니다. 어떤 사고든지 사고는 언제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네요.

    사고 내용을 정리하면 1949년 8월 18일 505열차(서울-안동)로 편성은 객차 6량, 승객 380여명을 태우고 서울역을 오전 6시에 출발하였습니다. 단양역을 3시간 정도 늦게 도착하여 오후 6시경 대강터널(길이/2㎞, 23/1000구배)에서 30분 정도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다 결국 대강터널 내 500미터 지점에서 연결핀 파손으로 인하여 연결기 분리, 공기호스 파열로 후부객차 3량이 분리된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여객은 석탄가스로 인한 중독으로 ‘총 51명이 사망하고 360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동아일보는 보도했습니다. 결과조치는 죽령터널 부근 전철화사업을 계획, 그러나 배전기와 전력부족으로 어려움이 있다, 정도입니다.

    아래 글은 1967년 9월 ‘월간철도’에 실린 글로 대강터널 간수로 계시던 이필종씨를 취재하며 당시의 사고 상황을 정리한 글입니다. 현장을 직접 목격한 분이기에 신문 내용보다 더욱 생생할 것으로 생각하여 발췌하였습니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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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도 뒤도 오른쪽도 왼편도 산, 산, 산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턴넬인 죽령(竹嶺)턴넬의 북쪽, 첫째번의 턴넬이 죽령의 대강(大岡)턴넬이다. 대강턴넬이라면 우리 철도직원들 간에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 분이 드물 것이다. 우리들이 흔히들 죽령의 똬리(루프)굴이라고들 하는데, 그 굴이 바로 죽령턴넬로 잘못 알았던 대강턴넬인 것이다. 다음으로 1949년 8월 18일 턴넬내 질식사고로서 우리나라 철도 사상 최초이며 가장 큰 인명의 희생을 낸 사고로 기억할 것이다. 이 사고가 바로 이 대강턴넬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중앙선에서 가장 험악한 굴 증기기관차를 몰고 이 굴을 지났던 과거의 기관차 승무원들은 남으로 가는 길 중 이 굴을 무사히 통과하게 되면 이제는 살았다고 깊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는 곳이다. 디젤기관차가 도입되고부터는 기관차 승무원들도 그런 사고를 한갓 기억으로만 되새길 수 있는 지난날의 화제에 불과하게 되었다.

    질식사고로서 또 우리나라에서 두 곳밖에 없는 루프식턴넬로서 우리 철도직원은 물론 일반 사람들에게까지도 알려져 있는 이 턴넬-

    이 턴넬을 지키는 간수(看守)의 처소를 찾아간 것은 여름도 한 고비인 7월 말이었다.

    소백산맥이 흘러내린 험준한 산골, 인가도 없는 적료한 곳, 처소 앞은 태산이 깎아질러 눈앞을 막는다. 뒤도 절벽 같은 산, 다만 북쪽으로 트인 곳으로 보이는 것은 하늘로 치솟은 산, 산, 산.

    위로는 산령에 둘러싸인 동그란 푸른 하늘이 흡사 조그마하고 고요한 호수가 걸려 있는 것 같다.

    괴롭고 슬픈 대화 시체의 더미… 그 날 분하게도 뭇매 맞고

    『사고 당일, 그날은 몹시 비가 내렸죠. 서울서 내려오는 여객열차는 8량의 편성이었는데, 열차는 대만원이었고 이 열차가 턴넬을 통과한 것은 오후 6시 20분이었읍니다.』

    간수(看守) 이씨는 자그마한 얼굴의 조그마한 눈을 잠시 감는다. 지난날을 다시 회상해 보는 것 같다. 표정이 굳어간다. 처참했던 환상이 그의 뇌리를 스치는가 보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굴속으로 들어간 열차가 잠시 후 되려 꼬리를 내리밀고 퇴행해 왔죠. 이 굴은 20/1000의 구배를 가진 굴입니다. 이 구배는 굴의 출구까지 그대로 지속됩니다. 열차는 흔히 다른 때와 같이 단숨에 이 굴을 빠져나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짓을 서너 차례 했읍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열차는 새까만 연기를 토하면서 마지막으로 굴 안으로 들어갔읍니다.

    그리고는 30분이 가고 한 시간이 지나도 상수도로 빠져나오는 기척이 없었읍니다. 나는 속으로 불길한 예감이 자꾸 듭디다. 웬일일까? 몇 차례 굴 안을 들여다 보았읍니다. 그러나 그 속이 보일 까닭이 없읍니다. 똬리처럼 감아 돌아간 굴속은 곧 앞에서부터 칠흑이었으니까. 굴속은 끔찍할 정도로 정적을 안고 있었읍니다. 그 때 누가 한 사람 허둥거리며 걸어 나오는 사람이 있었읍니다. 철도국원의 옷차림이었읍니다. 그는 굴 앞에 선 나를 보더니 그대로 굴 벽에 기대서려다가 푹석 고꾸라집니다. 나는 그에게로 달려갔죠. 그는 간신히 입을 열더군요.』

    『굴 안에서 사람이 질식해서 모두 죽었오.』

    『나는 간이 떨어지도록 놀랐읍니다. 그때 차장이 휘청거리며 걸어 나왔죠. 그도 같은 말을 합디다.』

    어느덧 그의 표정은 더욱 굳어 팽팽했다. 처절한 순간을 보는 침울하고 어두운 그늘이 고여 있다.

    『나는 곧 제천보선사무소와 단양, 죽령역에다가 연락을 했읍죠. 소에 있는 가마니는 있는 대로 싣고 오라고도 했읍니다. 그러고는 나는 칸데라에다 불을 붙여서는 굴 안으로 들어갔읍니다. 꼬부라 돌아간 굴속을 3백미터 가량 들어갔을 때 굴속은 짙은 연기로 자욱했읍니다. 목이 막히고 기침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연기 속으로 다시 5백미터를 더 갔을 때는 정작 나도 이상 더 앞으로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았읍니다. 물로 추긴 타올을 코에다 대고 허리를 굽히고 천천히 앞으로 나갔죠. 꿰꿰하고 후덕군한 연기가 전신을 감싸며 목을 칵칵 눌렀읍니다. 나는 땅바닥에 엎드려서는 땅에서 올라오는 찬 공기를 호흡하고는 다시 걷고 해서 1키로 2백 지점까지 왔읍니다.

    그때 어둠 속으로 무서운 신음소리와 기침소리가 들려왔읍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긴장해집디다. 앞으로 더 나가려는데 칸데라 불빛 속에 허연 사람의 몸체가 들어나기 시작했읍니다. 선로 바닥에 쓸어진 사람은 무수했읍니다. 첫 번째 사람을 흔들어 봤죠. 의식은 없는 것 같았으나 죽지는 않았읍니다. 이 한 사람에게 매달려 있을 수도 없고 해서 다시 앞으로 나갔죠. 쓰러진 사람은 더욱 많아졌읍니다. 쓰러진 사람 위에 사람이 겹쳐있고 그 위에 또 겹쳐있고. 나는 처음에는 망서렸으나 하는 수 없었읍니다. 되도록 저의 몸무게를 쓰러진 사람의 몸에다 덜 주려고 벽에다 몸을 기대고 쓰러진 사람을 조심조심 밟고 넘어갔읍니다.

    겹겹으로 쓰러진 사람들의 가느다란 신음은 땅 밑에서 들려오는 억겁의 비장한 울음같이 들렸읍니다. 앞으로 나가는데 쓰러진 사람 밑으로 조그마한 소년의 팔이 나와서는 간신이 굴의 벽을 힘없이 끌고 있는 것을 보았읍니다. 나는 주춤 서고 말았읍니다. 나는 한 손으로 소년 위에 겹쳐진 여러 사람을 질질 끌며 옆으로 밀어젖혀 주었읍니다. 소년은 가벼워진 몸을 몇 차례고 뒤챕디다. 나는 소년의 몸을 땅바닥을 향해 엎디리게 했읍니다. 아무리 연기가 굴속에 차도 연기는 땅바닥에서 한 뼘 정도는 떠 있는 법이죠.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공기 때문이에요. 나도 그 틈 사이로 땅바닥에다 코를 닿이게 하고는 한참 맑은 공기를 들이켰읍니다.

    그리고는 다시 앞으로 나갔읍니다. 차체가 나타납디다. 사람은 쌓여진 것처럼 겹겹했죠. 더 앞으로 나가는데 두 량의 객차가 분리되어 있읍디다. 더욱 앞으로 나갔읍니다. 300미터쯤 나갔을 때 또 차체가 나타납디다. 열차가 굴속에서 분리되었던 것입니다. 간신이 이 기관차까지 가서 기차에 올라가 봤죠. 세 사람의 승무원들도 모두 쓰러져 있읍디다. 분리된 객차 때문에 열차는 후퇴를 하지 못했던가 봐요. 이미 기관차의 화구도 불이 약해져 있었으며 연기는 나오지 않았읍니다. 나는 곧 내려와서는 다시 앞으로 걸어서 상수도로 입구로 나왔읍니다.

    그는 잠시 말을 끊는다. 흡사 모아두었던 한숨을 한꺼번에 토하듯 지금까지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멀리서 골짜기를 내리는 여울소리가 아련하게 흐느끼듯 정적에 스며든다. 얼마 후 구원대가 도착했읍죠. 구조작업이 시작됐는데 그 많은 사람들을 처소겸 살림집으로 쓰고 있는 뜰과 주변의 산언덕 선로가에다 즐비하게 눕혔읍니다. 그날따라 비는 왜 그렇게 억수로 쏟아지는지 시체만 모두 179구라고 기억합니다. 동원된 의사가 백여명 수백명의 경관대가 이 일대의 질서를 유지했읍니다. 헌데 이날…..』

    그는 잠시 말을 끊는다. 괴로운 듯 그렇잖으면 몹시도 흥분해오는 듯 입술을 몇 번 굳게 다진다. 겸손하게 무릎 위에 얹었던 손을 불끈 주먹으로 쥐기도 한다.

    『헌대 이날 동원되어 온 경찰관들이 여기 오자 곧 나를 찾더니 수도내 사고를 내게 한 것은 철도국원의 고의라고 하면서 덧붙여 철도국원은 모두가 빨갱이라고 떠들어 대더니 구원작업에 여념이 없는 나를 처소 뜰로 끌고 가서는 구타를 하기 시작하더군요. 나는 극구 변명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치고 밟고 수없는 구타를 당했읍죠. 뒤늦게나마 보선조역이 달려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혼수상태에 빠졌을 겝니다. 참 분합디다. 억울했죠.』

    그는 크게 어깨를 파동지으며 숨을 토했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이가 갈리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는 듯 눈빛은 몹시도 괴롭게 빛나 보였다.

    『다음날 오후에 이르러 겨우 구조작업이 끝났읍니다. 늘비했던 시체를 거두어서 화차에 싣고 구조대원들은 이곳을 떠났읍니다. 그 후의 정적은 아마 선생님은 상상도 못하실 겝니다. 해가 서산에 떨어지니 이제 그 정적이 공포로 변합디다. 누누했던 시체가 마구 눈앞에 얼렁거리는 데 견딜 수가 있겠읍디까. 그래서 일찍 밥을 먹고 문고리를 안으로 걸고 방안에 들어앉았죠. 식구래야 아내와 젖먹이뿐이었고 아내와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새 꼬박 뜬 눈으로 보냈읍니다. 이런 상태가 오래 계속 됐읍니다. 몇 번이고 그만두고 이곳을 떠나려고 했으나 그것도 여의찮아서 이래저래 세월을 흘려보냈읍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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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수도, 하수도 : 외부인으로부터 터널을 지키기 위한 초소로 2개였음.

    증기기관차가 한 번에 올라가지 못한 것은 불조절 실패로 추정.

    발췌 글은 띄어쓰기와 가독성을 위하여 원 글투를 그대로 두되 임의대로 문단만 나누었음.

    필자소개
    철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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