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우처 천국의 노동자들
    “집 청소하러 새벽에 출근해요"
    의심을 전제로 설계한 바우처노동, 폐지가 해법
        2017년 05월 11일 10: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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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바우처 천국이다. 복지서비스가 늘어날 때마다 바우처도 하나씩 늘어난다. 보건복지부의 바우처에 대한 맹신이 대단하다. 복지부가 주관하는 사회서비스분야의 바우처 사업항목은 노인돌봄종합서비스(치매가족휴가지원 포함), 장애인활동지원, 산모/신생아건강관리지원, 지역사회서비스투자, 가사간병방문지원, 발달재활서비스, 언어발달지원, 발달장애인부모상담서비스, 임신출산진료비지원, 청소년산모임신출산의료비, 기저귀/조제분유지원 사업 등이다. 태아부터 노인까지 생애주기별 맞춤바우처서비스를 만들어놓고 있는 것 같다.

    기존 사회복지서비스가 공급자 지원방식으로 이루어져 수요자의 선택권이 제한되어 있고 이로 인해 시장 창출에 한계가 있다면, 바우처는 수요자 중심의 직접 지원방식이어서 공급자 중심이고, 공급기관의 허위·부당 청구 등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정부는 말한다.

    빈 가게에서 상품을 고르라고 하는 ‘소비자주의’

    정부가 이야기하는 바우처의 가장 큰 장점인 수요자의 선택권 보장과 시장경쟁에 의한 서비스의 질 제고는 수요자의 필요에 따라 질 좋은 서비스를 살 수 있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말로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서비스가 제공되는 현장의 상황은 별로 그럴듯하지 않다. 바우처라는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은 옛날 시골연쇄점을 연상케 한다. 부녀회가 운영한 우리 마을 연쇄점은 상품이 별로 없고 그나마 있는 상품들은 오래되어서 먼지가 적당히 쌓여 있었다. 햇빛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한낮이면 진열된 상품들 위에 쌓인 먼지들이 부옇게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우처를 통한 서비스(상품) 구입은 고를 게 별로 없는 매장에서 상품을 고르라고 광고하는 꼴이다.

    장애인활동보조인이 되기 위해서 교육을 받을 때 너무나 인상 깊었던 말이 ‘소비자주의’였다. 이 말의 정체가 뭘까? 쉽게 말해서 장애인이 자신이 원하는 활동보조인을 선택하고 필요한 시간에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동안 자신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부탁’을 했다면 이제는 소비자로서 ‘지시’를 할 수 있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자를 수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정말로 이렇게 교육을 받았다. 내가 세 번째 이용자를 만날 때(처음과 둘째 매칭할 때는 코디도 없이 전화번호와 주소만 갖고 혼자 찾아갔다), 계약서를 쓰기 위해 나를 데리고 간 활동지원기관의 사회복지사는 장애인에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바꾸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것도 내가 듣는데서. 그때 그 말을 하는 사회복지사의 눈빛이 민망하고 불안하게 흔들렸다는 걸로 나는 위안을 삼았었다.

    이렇게 노동자의 가슴을 아프게 하면서 장애인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얼마나 제 기능을 할까? 장애정도가 심해서 활동보조인이 수시로 바뀌는 사람들이 있다. 노동조합이 제안하는 해결책은 2인을 동시에 파견하는 것이다. 정부는 그게 가능하게 해주었지만 이 제도는 두 가지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서비스는 하루에 3시간 이상을 쓸 수가 없다. 또 비용이 장애인의 바우처에서 차감된다. 2인활보가 필요한 사람일수록 장애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서비스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경우에 시간이 두 배로 차감되기 때문에 제도가 있다고 해도 마음대로 쓸 수가 없다. 이런 처지에 있는 장애인은 자신의 어려운 몸 상태를 원망하면서 활보가 그만두면 어쩌나 불안해해야 한다.

    활동보조인노조가 애초에 요구한 것은 2인 파견을 할 경우 1인의 비용은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었지만 정부는 어떤 제도의 도입도 바우처를 통하지 않고는 받지 않는다. 대신 정부가 선택한 또 다른 방식이 차등수가를 도입한 것이다. 최중증 장애인에게는 시간당 680원을 더 준다. 노조는 이것이 돈을 더 줄 테니 몸이 망가지도록 일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고 반대했지만, 활동보조인과 장애인 모두는 이것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680원을 더 받는 대상자는 단 3%에 불과하다. 발가락 하나라도 움직일 수 없으면 그는 대상자가 될 수 없다. 정부가 준 선택권, 내가 원하는 활보를 언제든지 고를 수 있는 권리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처럼 바우처는 말만 그럴싸하지 좋은 제도로 볼 수 없는데도 정부는 ‘수급자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을 근거로 오늘도 열심히 바우처를 늘리고 있다. 그러나 수급자들이 만족하는 것은 복지서비스이지 바우처가 아니다. 물론 만족도가 높다는 것도 함정이 있다. 그동안 정부가 얼마나 복지에 인색했으면 이런 제도라도 좋다고 하겠는가.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이 떨어져 있으면 부정수급, 받은 임금도 토해내야

    활동보조인의 스트레스는 종류가 너무 다양하다. 그중에서 정부의 부정수급 단속은 상식을 벗어날 때가 많아서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다. 작년 4월 의정부에서 일하는 활동보조인에게 급하게 전화를 왔다. 센터에서 30여 명의 활동보조인을 불러서 2월 某日 某時에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사유서와 증빙서를 제출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지시를 받은 사람들은 도대체 두 달이나 지난 일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면서 술렁거렸다.

    이 일은 바우처를 관리하는 사회보장정보원이 ‘실시간 모니터링’이라고 해서 서비스급여에 대한 청구가 부정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바우처는 실시간 결제 시스템을 기본으로 하는데, 일을 시작하면서 결제를 시작하고 끝마치면서 결제를 종료한다. 결제를 시작하면 바우처시스템에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이들 중에 무작위로 전화를 해서 활동보조인에게는 이용자를 바꿔라, 이용자에게는 활동보조인을 바꾸라고 요구한다. 만일 전화를 받지 않거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무조건 부정수급 대상으로 지목 당한다. 작년 4월에 의정부에서 발생한 사건은 이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활동보조인은 일을 할 때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못하거나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용자에게 신체지원을 하거나 이동지원을 하는 경우는 전화 받기가 쉽지 않다. 업무 중에 사적인 전화를 받는 것을 싫어하는 이용자를 만나면 통화하는 게 눈치 보여서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것을 일일이 기억할 수도 없거니와 무엇으로 이것을 증명하겠는가? 전화를 받아도 이용자에게 언어장애가 있으면 바꿔줄 수도 없다. 이 경우도 증명할 방법이 없다. 이용자의 요구로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갔거나 병원에 약을 받으러 간 경우에는 영수증 제출을 요구받았다. 이용자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경우에는 출입문을 드나든 CCTV 영상을 제출하라는 요구도 받았다.

    노동조합이 사회보장정보원 바우처본부장을 면담하면서 이렇게 까다롭게 굴면 누가 일을 하겠느냐고 항의를 하자 바우처본부장은 이렇게 답변했다. “우리는 이런 자료 제출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증명을 하라고만 했는데 기관이 오버를 한 거다.” 그런데 증명을 하는 실체가 바로 기관이 요구한 저런 증거들이 아닌가. 책임단위가 많다는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도 하다. 활동지원기관에 부당함에 대해 항의를 하면 답변은 한결같다. 복지부가 시켰다, 사회보장정보원이 요구했다, 지자체에서 지침이 왔다! 이렇게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7천원도 안 되는 시급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온갖 까다로운 주문을 해대는 것이 바우처제도의 실체다.

    실시간 모니터링 제도는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이 분리되어 있으면 부정수급이 되도록 설계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쉽지 살다보면 별별 상황이 다 생기기 때문에 생각보다 어렵다. 중증장애인은 외출준비에 시간이 많이 들고 챙겨야 할 짐도 많다. 활동보조인 L씨, 이용자의 약을 받으러 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날 마침 비가 내렸다. 워낙 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고 주의를 많이 받은지라 의정부시에 전화를 해서 이런 경우 결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공무원은 결제를 종료하고 다녀오라고 요구했다. L씨는 황당하고 억울했지만 부정수급 논란에 시달리는 게 싫어서 결제를 종료하고 병원에 다녀왔다.

    활동보조인 A씨의 이용자는 직장에 다니는 여성이다. 이용자에게 필요한 서비스 중에 가사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A씨는 가끔 이용자를 직장에 데려다 준 뒤에 이용자의 집으로 돌아가서 가사일을 했다. 어느 날 이용자에게 사회보장정보원이 전화를 해서 활동보조인을 바꿔달라고 했다. 이용자는 집에 보내서 청소를 시켰다고 답했다. 활동지원기관은 A씨에게 아파트 출입구의 CCTV 영상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모든 일은 사회보장정보원과 복지부에 전달이 되었다, 항의와 함께. 1년쯤 지나서 A씨에게 요즘 가사서비스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새벽에 출근해요. 집안일 해놓고 출근시키려면 어쩔 수 없죠.”

    노동조합을 하면서 만난 조합원들은 사연도 갖가지이고 안타까운 분도 많지만, 그 중에서 한 분은 생각할 때마다 너무 아깝고 가슴이 아프다.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부터 열성적으로 활동한 분이다. 모임을 할 때마다 몇 장이라도 노조가입원서를 받아오곤 했다. 온화한 성품과 편안하고 친화력 있는 말투로 남의 동네 교육에 가서도 조합원을 만들었다. 이분이 너무 열심히 활동을 했는지 활동지원기관에 찍혔던 것 같다. 어느 날 출근하면서 장을 봐야 했다. 이용자의 바우처카드를 갖고 퇴근을 해서 아침에 시장에서 결제를 시작하다가 숨어서 지켜보던 기관 직원에게 그길로 끌려갔다. 그 이후 이분은 노동조합 활동을 하지 못한다. 이 조합원이 그날 무사히 이용자를 만나러 갈 수 있으려면 무급노동을 했어야 했다. 독거(獨居)인 이용자가 입원을 하였다면 그동안 집안이 엉망이 되도록 방치해야만 한다. 이용자는 병원에 있고 활동보조인은 이용자 집에 가서 청소를 해서는 안 된다. 둘이 분리돼 있으니 부정수급이기 때문이다.

    활보

    나쁜 제도 찢기 퍼포먼스 하는 활동보조인. ‘바우처로 임금지급, 바우처로 수당지급’이라 적힌 종이를 찢고 있다.(사진=비마이너)

    의심을 전제로 설계한 바우처노동은 폐지가 해법

    사회서비스노동자들이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처럼 부정을 전제로 노동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은 견딜만하지만 의심을 전제로 한 노동감시는 인격모독이다. 이런 식으로 멘탈을 한 번씩 털릴 때마다 한 기관에서 많게는 수십명씩 직업을 포기한다. 정부에 항의를 하고 정황에 대해 설명할 때는 이해하는 표정을 짓는데 바뀌는 건 정말 드물다.

    정부가 말하는, 장애인이 필요한 서비스를 원할 때 받는 게 이렇게나 어렵다. 바우처 천국에서 노동자들은 감시의 공포에 시달려야 하고 자신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또 증명해야 한다. 그렇게 못하면 죽어라 일하고 받은 임금을 환수당해야 한다. 이것이 바우처 천국에서 노동자들이 견뎌야 하는 현실이다. 함정을 파놓고 걸리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함정은 묻어버리는 것이 해법이다. <끝>

    필자소개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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