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전환의 희생자
    [에정칼럼] '교육시스템' 전환 필요
        2017년 05월 10일 09: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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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에너지전환’하면 장밋빛 미래를 떠올린다. 기후변화를 막고,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전환. 그러나 만약 여러분의 일자리가 에너지전환으로 위협을 받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에너지전환의 승자가 있다면, 에너지전환의 패자도 존재한다. 특히 교육은 일자리로 이어지는 경로의 초입부이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에너지전환을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교육 시스템을 통해 에너지전환의 패자와 저항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1. 2016년 비엔나 유엔산업개발기구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다. 그해 6월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브렉시트가 유럽 전역을 강타했다. 그런데 당시 한 영국인 인턴이 작성하고 있는 (거의 완성된) 박사 논문이 EU 관련된 논문이었다. 영국이 EU를 탈퇴 했으니 이 친구로서는 졸지에 자국에서 직장을 잡기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인턴들 사이에서는 꽤 오랫동안 이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이 영국 친구가 만약 EU 탈퇴에 대해 투표를 했다면 아마 주저 없이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을까.

    #2. 역시 2016년 인턴 시절이다. 당시 한국 인턴 모임이 있었는데, 많은 한국 학생들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같은 인턴이기에 함께 술 한 잔을 할 때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눴다. 몇몇 친구들은 학부 전공을 살려 원자력 관련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겠다는 계획을 말하였다. 원전 관련된 얘기에서는 서로 미묘한 입장 차이만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1992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환경회의인 리우회의 이후로 25년이 지났으니 참으로 긴 시간이 흘렀다. 당사국총회도 무려 21번이 열린 끝에 ‘모든 국가가 기후변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귀중한 파리협약을 이끌어냈다. 사실 당사국총회는 십 수 년간 큰 성과가 없어, 당사국총회를 위한 문서 인쇄, 각국 정상들이 타고 오는 비행기가 오히려 기후변화를 더 촉진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였다. 파리협정 이후, 우리 인류가 탄 기차는 파멸의 터널로 들어가기 직전에 겨우 급제동을 하며 생존의 선로로 힘껏 핸들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에너지전환이 있다. 에너지전환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면, 대체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국내로 눈을 돌려보자. 원자력과 화석연료에서 친환경 신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 2017년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도 지속가능한 에너지전환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여 기쁜 마음이다. 물론 공약이 공약에서 끝나지 않도록 당장 다음 주부터는 국민들이 두 눈을 뜨고 감시를 해야겠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에너지 전환을 외칠 때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에너지전환의 패자’다.

    보통 ‘에너지전환’ 하면 장밋빛 미래를 얘기한다. 기후변화를 막고,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 전환. 그러나 만약 여러분의 일자리가 에너지 전환으로 위협을 받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테슬라, 신재생에너지업체가 대표적인 에너지전환의 승자라고 한다면, 에너지전환의 패자도 존재한다. 기존 화석연료 자동차 업체는 자신들이 공들여 쌓아온 내연기관의 패권을 전기차에 넘겨주게 생겼다. 아뿔싸, 내 전공은 내연기관인데, 이를 어쩌나? 여러분이 10년간 공부해 내연기관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이제 더 이상 내연기관이 필요없어진다면? 과연 여러분은 에너지전환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에정

    사진자료: Jeremy Leggett 블로그 http://www.jeremyleggett.net

    앞서 언급한 인턴 시절의 일화로 돌아가보자. EU를 주제로 논문을 쓴 영국 친구에게 브렉시트는 (특히나 더욱) 재앙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부 시절부터 원자력을 공부하고 석박사 학위 진학을 계획하고 있는 인턴에게 ‘원전 제로화’는 재앙과 같을지도 모른다.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시스템에서의 (잠정적) 패자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전환에 강력하게 저항할 것이다. 에너지전환이 꼭 필요하다는 논의가 수십 년 전부터 있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먼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당장 에너지전환이 이뤄지면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는데!

    ‘에너지전환의 패자’는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 노력의 결과물은 에너지전환에 대한 저항이 된다. 그런데 일자리라는 것은 곧 교육에 근간을 두고 있다. 대학의 전공은 어쨌든 한 사람이 자신의 일자리를 결정하는 경로의 초입부인 셈이다. 석사, 박사 학위로 갈수록 학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더욱 제한적이다. 따라서 에너지전환의 패자를 줄이기 위해서 교육의 변화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어떠한가? 원자력을 그 예로 살펴보자. 2016년 5월에 발간된 원자력산업실태조사를 보면 2015년 원자력 관련 대학에 재학 중인 학사, 석사, 박사과정 학생은 총 2,955명으로 전년도(2014년 2,666명) 대비 10.8% 증가하였다. 원전을 축소해나가겠다는 대선 후보들의 공약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졸업한 재학생들이 어떤 일자리를 갖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시스템이 전환되면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 사람들도 바로 이 학생들이 될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환경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원자력, 화석연료 중심에서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의 에너지전환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 에너지전환의 패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빠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에너지전환으로 인해 축소되거나 사라질 일자리 관련 전공을 선택한 우리 학생들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할까? “그런데 뭐 어쩌겠어, 그건 그 학생들 사정이고 어쨌든 우리는 에너지전환이 필요해”라는 말은, 적어도 이런 교육 시스템을 만든 세대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이전 세대가 만든 ‘지속가능하지 않은 교육 시스템’으로 인해 다음 세대가 고통받게 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에너지전환에는 단순한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뿐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 시스템’의 전환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에너지전환 시대에 맞춰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이를 통해 에너지 전환의 패자와 저항을 최소화하여 에너지 전환의 연착륙이 가능하도록 해야겠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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