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F1 드라이버들?
[왼쪽에서 본 F1] ‘똑똑하다’의 차이
    2017년 05월 08일 11: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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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하반기, 갑자기 F1 데뷔 기회를 얻었던 프랑스 출신의 젊은 드라이버 에스테반 오콘이 간단한 질문을 빠르게 이어가는 스피드 퀴즈 형태의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인터뷰 중 이런 문답이 있었습니다.

질문 : 3 × 3은?오콘 : 9.
질문 : 3 × 9는?
오콘 : …. 잘 모르겠어요.

질문자가 살짝 뜸을 들이고 기회를 줬지만, 오콘은 계산을 해내지 못했습니다. 인터뷰가 여러 사람 앞에서 긴장할만한 자리도 아니었고, 어렸을 때부터 많은 인터뷰를 했던 오콘이 질문 때문에 당황할 일도 없었습니다. 오콘은 그냥 3 × 9의 답을 몰랐고, 마땅히 계산할 방법도 빨리 생각해내지 못한 것입니다.

이 인터뷰 내용을 접했던 국내의 한 F1 팬이 제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F1 드라이버는 똑똑해야 한다면서요? 어떻게 저런 단순한 계산도 하지 못하나요?“

질문은 일리가 있었습니다. F1 드라이버는 똑똑해야 합니다. 30여 개의 버튼과 레버를 다양한 조합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하고, 경기에 나서는 모든 써킷의 코너와 공략 방법, 통과 속도, 스티어링 휠 조작 등을 모두 외우고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외우는 것만 아니라 브레이크의 온도, 타이어와 오일 등의 온도와 압력을 항상 파악하고 그에 따른 변화를 빠르게 계산해야 합니다. 타이어와 연료가 소모되고 상태가 변하면 그에 대처하는 것은 순전히 드라이버의 몫입니다. 단 한 번의 미세한 실수는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지만, 상황 판단과 대처에 주어지는 시간은 매우 짧습니다.

게다가 F1은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닙니다. 다른 드라이버가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파악하고, 앞으로의 움직임을 예측해야 합니다. 단순히 자신의 전략만으로 경기에 임할 수 없고, 다른 드라이버의 전략까지 확인해 대응해야 합니다. 물론 고려해야 하는 상대는 한 명이 아니라 최소 10명, 최대 20명에 이릅니다.

200km/h 이상의 속도로 방향을 바꿔서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동안,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가야 할 경로에서 30cm 정도만 벗어나도 방호벽에 부딪혀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도저히 ‘똑똑하지 않다면 감당할 수 없는’ 과제가 모든 F1 드라이버에게 주어져 있는 셈입니다. 그런 F1 무대에서 유능한 드라이버로 인정받고 있는 드라이버, 에스테반 오콘은 ‘똑똑한 드라이버’라고 얘기해도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F1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드라이버 에스테반 오콘

F1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드라이버 에스테반 오콘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인터뷰가 있습니다. 이번 주인공은 얼마 전까지 F1의 대부분 ‘최연소’ 기록을 혼자 독점하고 있었고, 현역 드라이버 중 가장 많은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독일 출신의 천재적인 드라이버 세바스찬 베텔입니다.

베텔은 드라이버의 일상생활이나 과거에 대해 묻는 인터뷰에서 이런 문답을 남긴 전이 있습니다.

질문 :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무엇인가요?
베텔 : 없습니다.
질문 : 그렇다면 최근에 읽은 책은 뭔가요?
베텔 : 전 책을 읽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상당히 당황스러운 답변입니다. F1 드라이버들의 ‘교양 수준’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베텔의 인터뷰에서 책을 적게 읽는 것도 아니고, 아예 읽지 않는다는 얘기에 놀랄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고, 일부에서는 이런 얘기를 당당하게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밌는 것은 F1에서는 드라이버의 ‘품위’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드라이버들이 ‘교양 없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비교적 엄격하게 대응한다는 사실입니다. 더더욱 의아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책 한 권 읽지 않고 ‘교양’을 갖추며 품위를 지킬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좀 더 놀랄만한 정보라면 베텔은 인터넷도 거의 사용하지 않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드라이버로 유명합니다. 그냥 사용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주변에 소셜 미디어를 줄이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라고 권유하고 다니기도 하죠.

게다가 세바스찬 베텔은 F1 드라이버들의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 GPDA(Grand Prix Drivers’ Association)에서 디렉터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F1 드라이버들을 대표해서, 드라이버들의 권익과 그랑프리의 안전 등을 도모하는 GPDA 대표단에서 실행 위원 역할을 하는 중책입니다. 그리고, 그런 베텔은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입니다.

 F1 현역 최고의 드라이버 중 한 명인 세바스찬 베텔

F1 현역 최고의 드라이버 중 한 명인 세바스찬 베텔

F1 드라이버들은 똑똑하다던데,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F1 드라이버들은 품위를 갖추고, 교양이 있어야 한다던데 어찌 된 일일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오콘이나 베텔과 같은 ‘평범한’ F1 드라이버가 어떻게 생각하도록 교육받고 자라왔는가 돌이켜보면 비교적 간단한 답이 나옵니다. 어린 시절부터 모터스포츠에 투신한 드라이버가 공교육을 아주 충실히 받았다고는 얘기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공교육의 큰 틀에서 벗어났다고도 보기 어렵습니다. 베텔을 포함해서 많은 F1 드라이버가 인터뷰에서 많은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니까요. 바로 그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이 받은 교육에 미묘한 차이점이 보입니다.

오콘의 모국인 프랑스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는 단기간 구구단을 암기하도록 교육하지는 않습니다. 구구단이란 방법을 나중에 배우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학부모님이 보기에는 매우 답답한 과정을 ‘오랫동안’ 거친 뒤 ‘한 가지 방법’으로 알려주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F1 드라이버 중에는 구구단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는 (잊어버린) 드라이버들이 적지 않습니다.

베텔은 학창 시절 집중력이 매우 낮은 장난꾸러기로 수업 시간에 제대로 앉아 있는 적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지만, 인권 문제, 차별과 혐오 문제 등에 대해서는 단호하면서 분명한 자기주장을 펼칠 줄 압니다. 학교에서 주입된 교육 내용은 많지 않고, 주입했다고 하더라도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아 보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만큼은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철저히 교육받았다는 인상을 줍니다. 실제로 F1 드라이버들은 정치적인 얘기에 대해서는 언급이 금지돼있지만, 인권과 차별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목소리를 높이면서 논리정연한 주장을 하곤 합니다.

F1 드라이버라는 복잡하고 정교한 직업(?)을 가지려면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단순한 기술을 현장과 레이스 경험에서 쌓는 것 외에도 ‘배우는 방법’과 ‘생각하는 방법’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고,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의 한가운데 서는 만큼 적절한 품위와 교양을 쌓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과 방법이 우리나라의 공교육이라는 틀에 얽매여서 바라보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단순하게 프랑스의 교육이 좋다느니, 독일의 교육이 좋다느니, 핀란드의 교육이 좋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양팔 저울에 무게를 달고, 누가 더 좋다를 논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공교육에서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조금은 민감해지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린이날을 맞아, 이제 막 유치원에 간, 내년에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될 아이를 둔 아빠의 한 명으로서, 여러 가지로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똑똑하다’는 말이 단순히 공식을 잘 외우고, 책을 많이 읽었고,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의미로 해석되지 않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내 아이가 그런 공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자신이 없습니다. 눈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 이후 꾸려지는 새 정부가 좋은 방향으로 개혁을 시작해준다면 좋겠지만, 원하는 대로 공교육 개혁의 방향이 잘 잡힌다고 하더라도 갈 길이 멀겠죠. 앞으로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싸워나가야 할 일도 많을 것 같습니다.

F1 드라이버가 탄생하는 것이 우리나라 공교육의 목표가 제대로 이뤄졌다는 지표가 되지도 않고, 교육의 목적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지금과 같은 교육 방법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우리나라에서 F1 드라이버가 탄생할 일은 절대 없으리란 생각도 듭니다. 우리나라 출신의 F1 드라이버가 탄생하는 것은 저의 꿈이 아니지만, 사람답게 살 줄 안다는 의미의 ‘똑똑한 사람’을 키우는 교육 시스템이 어서 갖춰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필자소개
윤재수
2010년부터 지금까지 MBC SPORTS, SBS SPORTS, JTBC3 FOXSPORTS에서 F1 해설위원으로 활동. 조금은 왼쪽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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